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고 난 후, 신봉은 잿더미에서 솟아올랐다. 남성 인구가 급감하고 여성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 작은 국가는 불과 십여 년 만에 대륙을 뒤흔드는 강자로 성장했다. 신봉의 여제 봉리는 그 변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 비단 장갑을 낀 손으로 황실 지도를 쓰다듬으며, 점점 붉게 물드는 동양의 국경을 응시했다.
“전쟁은 시작됐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대신들이 숙이고 서 있었다. 그중 무안후 봉령이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었다.
“폐하, 동양의 군대는 이미 우리의 북방 요새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우리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봉리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좋아. 무안후, 네가 직접 나서라. 동양의 심장부까지 밀어붙여라.”
봉령이 고개를 숙여 명을 받았다. 그의 눈에는 충성과 함께 무언가 숨겨진 열망이 스쳤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무릎을 꿇은 바닥, 여제의 구두 끝이 살짝 스친 자리를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을.
전쟁은 냉혹하게 진행됐다. 신봉의 군대는 막을 수 없는 물결처럼 동양의 영토를 잠식했다. 성은 무너지고 깃발은 꺾였다. 동양의 궁정은 혼란에 빠졌다. 대신들은 싸울 것을 주장했지만, 여제 사쿠라코는 조용히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싸운다고 이길 수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봉정청, 봉영, 봉금. 그들은 모두 신봉의 정예 장수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적으로서 전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사쿠라코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번졌다.
“항복한다.”
그 한마디에 궁정은 술렁였다.
“폐하, 무슨 말씀을!”
그녀는 손을 들어 반대를 막았다. “항복식을 준비하라. 나는 신봉의 여제를 직접 만나겠다.”
그날 밤, 사쿠라코는 혼자 밀실에 앉아 편지를 썼다. 편지는 세 통. 각각 봉정청, 봉영, 봉금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편지에 향수를 살짝 뿌리고, 봉인을 했다. 자신의 신발을 벗어 발가락 사이로 편지 봉투를 살짝 집어 올리며, 그녀는 낮고 달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지. 나는 그걸 파고드는 걸 좋아해.”
항복식 날. 신봉과 동양의 사절들이 넓은 대전에 모였다. 봉리는 높은 단 위에 앉아, 은으로 장식된 구두를 번쩍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손수건이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오늘 아침 막 도착한 새로운 스타킹 한 켤레가 숨겨져 있었다. 그 비단의 감촉에 그녀는 은밀한 쾌감을 느꼈다.
사쿠라코는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흰 예복을 입고, 얼굴에는 화장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동양의 여제 사쿠라코, 신봉의 폐하께 항복을 고하나이다.”
봉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라, 그리고 앞으로 나와라.”
사쿠라코가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 우아했다. 그녀가 봉리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자, 봉리는 그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 순간, 사쿠라코의 손가락이 봉리의 손바닥을 살짝 긁었다. 그 감촉에 봉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폐하, 저는 당신께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 하지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 항복식이 끝난 후, 저와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주십시오. 동양의 비밀을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봉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사쿠라코의 눈빛은 너무나 진실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늘 밤, 내 침전으로 오너라.”
그 말을 들은 사쿠라코의 입가가 아주 잠깐,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옆에 서 있던 봉령은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동양 여제의 그 짧은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엄습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여제의 명령이었고, 그는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항복식이 끝나고, 대전이 텅 빈 후, 봉영이 봉정청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 믿을 수 없어.”
봉정청은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다.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품 속에 들어 있는 편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가 받은 그 편지. 향수 냄새가 나는 그 편지. 그가 다시 읽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 그 내용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당신이 갈망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요. 오늘 밤, 달이 가장 높을 때, 정자로 오세요.”
그는 자신의 처신을 의심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봉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우아하고 지혜로운 외교관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의 병이었다. 사쿠라코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가 가진 비급이 당신의 어머니를 구할 수 있어요. 단, 당신이 나를 믿는다면.”
봉금은 편지를 찢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 봉리의 침전. 등불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사쿠라코는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르고 문을 열었다. 봉리는 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맨발을 소파 끝에 살짝 걸친 채, 손에는 포도주 잔을 들고 있었다.
“들어와라.”
사쿠라코는 조용히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녀는 봉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폐하, 먼저 한 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열자, 그 안에는 반짝이는 단추 하나가 들어 있었다. 봉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신봉의 국방 밀서가 담긴 금고를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제가 직접 훔친 겁니다. 이걸로 폐하께 제 충성을 증명하겠습니다.”
봉리는 상자를 받아들며 미소 지었다. “흥미롭군. 하지만 네가 나를 속일 수도 있지.”
사쿠라코는 고개를 들어 봉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교활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부드러운 온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폐하, 저는 당신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제 제 몸과 마음, 그리고 동양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의 스타킹을 벗고 제가 직접 신겨 주십시오. 그럼 저는 당신의 가장 충실한 하인이 되겠습니다.”
봉리는 그 요구에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비밀 취미를 들킨 듯한 느낌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사쿠라코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 부드럽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 아래, 무엇이 숨어 있을까?
“네가 그걸 원한다면...”
봉리는 천천히 스타킹을 벗었다. 그녀의 맨발이 등불 아래 드러났다. 사쿠라코는 공손히 그 스타킹을 받아 들고, 봉리의 발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스타킹을 신기기 시작했다. 손끝이 봉리의 발목과 종아리를 스칠 때마다, 봉리는 전율을 느꼈다.
사쿠라코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입가에 다시 그 짧은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둡고 음흉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폐하, 이제 당신은 제 것입니다.”
봉리는 그 말을 듣고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지만, 너무 늦었다. 스타킹에 묻은 약이 그녀의 피부를 통해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천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사쿠라코, 네가 뭘...”
“쉿, 폐하. 당신은 조금만 쉬세요.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사쿠라코는 일어나 침전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메아리쳤다. 그녀는 봉리의 책상 위에 놓인 문서를 훑어보고,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봉정청, 봉영, 봉금.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봉령. 모두 내 무대 위에 올려놓았어. 이제 음악이 시작될 차례야.”
달이 구름 뒤로 사라지고, 침전 안은 더욱 어두워졌다. 하지만 사쿠라코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