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봉의 굴레: 스타킹과 권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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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고 난 후, 신봉은 잿더미에서 솟아올랐다. 남성 인구가 급감하고 여성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 작은 국가는 불과 십여 년 만에 대륙을 뒤흔드는 강자로 성장했다. 신봉의 여제 봉리는 그 변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 비단 장갑을 낀 손으로 황실 지도를 쓰다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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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가 처음 타오르다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고 난 후, 신봉은 잿더미에서 솟아올랐다. 남성 인구가 급감하고 여성들이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 작은 국가는 불과 십여 년 만에 대륙을 뒤흔드는 강자로 성장했다. 신봉의 여제 봉리는 그 변화의 정점에 서 있었다. 그녀는 검은 비단 장갑을 낀 손으로 황실 지도를 쓰다듬으며, 점점 붉게 물드는 동양의 국경을 응시했다.

“전쟁은 시작됐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했다. 대신들이 숙이고 서 있었다. 그중 무안후 봉령이 앞으로 나서며 무릎을 꿇었다.

“폐하, 동양의 군대는 이미 우리의 북방 요새를 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우리는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봉리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좋아. 무안후, 네가 직접 나서라. 동양의 심장부까지 밀어붙여라.”

봉령이 고개를 숙여 명을 받았다. 그의 눈에는 충성과 함께 무언가 숨겨진 열망이 스쳤다. 하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가 무릎을 꿇은 바닥, 여제의 구두 끝이 살짝 스친 자리를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을.

전쟁은 냉혹하게 진행됐다. 신봉의 군대는 막을 수 없는 물결처럼 동양의 영토를 잠식했다. 성은 무너지고 깃발은 꺾였다. 동양의 궁정은 혼란에 빠졌다. 대신들은 싸울 것을 주장했지만, 여제 사쿠라코는 조용히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싸운다고 이길 수 있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봉정청, 봉영, 봉금. 그들은 모두 신봉의 정예 장수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적으로서 전장에 서 있었다. 하지만 사쿠라코의 입가에는 오히려 미소가 번졌다.

“항복한다.”

그 한마디에 궁정은 술렁였다.

“폐하, 무슨 말씀을!”

그녀는 손을 들어 반대를 막았다. “항복식을 준비하라. 나는 신봉의 여제를 직접 만나겠다.”

그날 밤, 사쿠라코는 혼자 밀실에 앉아 편지를 썼다. 편지는 세 통. 각각 봉정청, 봉영, 봉금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편지에 향수를 살짝 뿌리고, 봉인을 했다. 자신의 신발을 벗어 발가락 사이로 편지 봉투를 살짝 집어 올리며, 그녀는 낮고 달콤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이 있지. 나는 그걸 파고드는 걸 좋아해.”

항복식 날. 신봉과 동양의 사절들이 넓은 대전에 모였다. 봉리는 높은 단 위에 앉아, 은으로 장식된 구두를 번쩍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손수건이 놓여 있었고, 그 아래에는 오늘 아침 막 도착한 새로운 스타킹 한 켤레가 숨겨져 있었다. 그 비단의 감촉에 그녀는 은밀한 쾌감을 느꼈다.

사쿠라코는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흰 예복을 입고, 얼굴에는 화장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동양의 여제 사쿠라코, 신봉의 폐하께 항복을 고하나이다.”

봉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라, 그리고 앞으로 나와라.”

사쿠라코가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 우아했다. 그녀가 봉리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자, 봉리는 그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 순간, 사쿠라코의 손가락이 봉리의 손바닥을 살짝 긁었다. 그 감촉에 봉리의 눈빛이 흔들렸다.

“폐하, 저는 당신께 모든 것을 바치겠나이다. 하지만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말해 보아라.”

“이 항복식이 끝난 후, 저와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을 주십시오. 동양의 비밀을 모두 알려드리겠습니다.”

봉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사쿠라코의 눈빛은 너무나 진실해 보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오늘 밤, 내 침전으로 오너라.”

그 말을 들은 사쿠라코의 입가가 아주 잠깐,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옆에 서 있던 봉령은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는 동양 여제의 그 짧은 미소를 놓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엄습했지만,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여제의 명령이었고, 그는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항복식이 끝나고, 대전이 텅 빈 후, 봉영이 봉정청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 믿을 수 없어.”

봉정청은 고개를 저었다.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다. 우리가 나설 필요는 없어.”

하지만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품 속에 들어 있는 편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늘 아침, 그가 받은 그 편지. 향수 냄새가 나는 그 편지. 그가 다시 읽지 않기로 결심했지만, 이미 그의 머릿속에 그 내용이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당신이 갈망하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요. 오늘 밤, 달이 가장 높을 때, 정자로 오세요.”

그는 자신의 처신을 의심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봉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우아하고 지혜로운 외교관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었다. 바로 어머니의 병이었다. 사쿠라코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제가 가진 비급이 당신의 어머니를 구할 수 있어요. 단, 당신이 나를 믿는다면.”

봉금은 편지를 찢어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밤, 봉리의 침전. 등불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사쿠라코는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르고 문을 열었다. 봉리는 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신발을 벗고 맨발을 소파 끝에 살짝 걸친 채, 손에는 포도주 잔을 들고 있었다.

“들어와라.”

사쿠라코는 조용히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녀는 봉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폐하, 먼저 한 가지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열자, 그 안에는 반짝이는 단추 하나가 들어 있었다. 봉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신봉의 국방 밀서가 담긴 금고를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제가 직접 훔친 겁니다. 이걸로 폐하께 제 충성을 증명하겠습니다.”

봉리는 상자를 받아들며 미소 지었다. “흥미롭군. 하지만 네가 나를 속일 수도 있지.”

사쿠라코는 고개를 들어 봉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교활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오직 부드러운 온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폐하, 저는 당신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제 제 몸과 마음, 그리고 동양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당신의 스타킹을 벗고 제가 직접 신겨 주십시오. 그럼 저는 당신의 가장 충실한 하인이 되겠습니다.”

봉리는 그 요구에 놀랐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비밀 취미를 들킨 듯한 느낌에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사쿠라코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 부드럽고 순진해 보이는 얼굴 아래, 무엇이 숨어 있을까?

“네가 그걸 원한다면...”

봉리는 천천히 스타킹을 벗었다. 그녀의 맨발이 등불 아래 드러났다. 사쿠라코는 공손히 그 스타킹을 받아 들고, 봉리의 발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스타킹을 신기기 시작했다. 손끝이 봉리의 발목과 종아리를 스칠 때마다, 봉리는 전율을 느꼈다.

사쿠라코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입가에 다시 그 짧은 미소가 스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어둡고 음흉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폐하, 이제 당신은 제 것입니다.”

봉리는 그 말을 듣고 무언가 잘못됐음을 직감했지만, 너무 늦었다. 스타킹에 묻은 약이 그녀의 피부를 통해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천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사쿠라코, 네가 뭘...”

“쉿, 폐하. 당신은 조금만 쉬세요. 우리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사쿠라코는 일어나 침전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발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메아리쳤다. 그녀는 봉리의 책상 위에 놓인 문서를 훑어보고, 서랍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창문을 열고 어둠 속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봉정청, 봉영, 봉금.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봉령. 모두 내 무대 위에 올려놓았어. 이제 음악이 시작될 차례야.”

달이 구름 뒤로 사라지고, 침전 안은 더욱 어두워졌다. 하지만 사쿠라코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마치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항복의 날

신봉 황궁의 정전은 그야말로 금칠과 비단으로 장식된 찬란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 화려함은 더욱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항복식.

대전 중앙에 높이 솟은 옥좌에는 동양 여제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는 연한 금사로 수놓은 자주색 도포를 입고 있었지만, 그 도포 아래 드러난 다리는 오늘따라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짧은 살색 스타킹이 가느다란 종아리를 살짝 감싸고 있었고, 발끝에는 화려한 자수와 구슬로 장식된 나막신이 신겨져 있었다. 스타킹과 신발 사이로 드러난 발목의 가느다란 곡선이 은은한 관능미를 풍겼다.

“무안후 봉령, 전상에 나아와 항복의 예를 올리라.”

전령관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신봉의 사대 주신 중 한 명이자 무안후인 봉령이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어깨는 무언가에 짓눌린 듯 축 처져 있었다.

봉령이 무릎을 꿇고 절하려는 순간, 그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동양 여제의 발치로 쏠렸다. 살색 스타킹이 나막신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는 그 모습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가늘고 긴 발가락, 아치를 이룬 발등, 그리고 스타킹 위로 살짝 드러난 발목 뼈. 모든 것이 너무나도 완벽했다.

그의 호흡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이성을 잃을 것 같은 충동이 그를 휩쌌다. 그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지만, 눈은 이미 그곳에 고정되어 버렸다. 여제의 발이 움직일 때마다, 스타킹이 신발 사이로 살짝 비칠 때마다 그의 심장은 더욱 거칠게 뛰었다.

동양 여제는 그의 이상한 행동을 눈치챘다. 그녀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천천히 일어났다. 나막신이 대리석 바닥에 닿아 맑은 소리를 냈다.

“무안후,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봉령은 간신히 고개를 들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흐릿했다.

“아... 아닙니다. 폐하께서... 너무나 당당하시기에...”

그는 더듬거리며 대답했지만, 말은 끝까지 채우지 못했다. 그의 뺨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었다.

동양 여제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마치 그를 유혹하는 듯했다. 봉령의 시선은 그녀의 발을 따라 움직였고, 그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의 입술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신하를 두니 나 역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여제의 손가락이 봉령의 뺨을 스쳤다. 그의 몸이 전율했다. 그녀는 속으로 기뻐했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이야. 자신의 발이 이토록 강한 남자를 제압할 수 있다니, 그것이 그녀에게는 무엇보다 큰 쾌락이었다.

“일어나십시오, 무안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이미 승리의 확신이 스며 있었다. 봉령은 간신히 일어섰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여제의 발 아래 완전히 굴복해 있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이 작은 취미가 그의 인생 전체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를.

대전 안의 신하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봉정청과 봉영, 봉금은 모두 봉령의 얼굴에 어린 그 미묘한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알았다. 동양 여제가 이미 그들 중 한 명을 완전히 장악했음을.

은밀한 취미

봉령은 깊은 밤, 자신의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촛불이 흔들리며 벽에 어른거리는 그림자가 마치 그 뒤흔들리는 마음처럼 불안정했다. 손에 쥔 붓은 이미 몇 번이고 먹물에 적셨다가 다시 닦아내기를 반복했지만, 종이 위에는 아무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제 연회에서 본 그 장면이 멈추지 않고 맴돌았다. 동양 여제가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한쪽 다리를 다른 쪽 위에 포개고 있었다. 그 다리에 감긴 검은색 비단 스타킹이 촛불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며 매끄러운 곡선을 그렸다. 그리고 그 끝, 발목에서부터 시작된 우아한 아치가 발등으로 이어지고, 발가락 사이로 비치는 스타킹의 얇은 망사 무늬가… 그의 숨을 멎게 했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가. 자신은 신봉의 무안후,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적의 피를 본 장군이다. 그런 자신이 하필 여자의 발이라는 한심한 것에 정신이 팔리다니.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박힌 손톱 자국이 아프게 느껴졌지만, 그 고통조차도 마음속의 어지러움을 지우지 못했다.

그때, 문 밖에서 조용히 인기척이 났다.

"후께서 아직 깨어 계시는군요."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봉령이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림자가 하나 스르르 들어와 촛불 앞에 섰다. 동양 여제의 시종이었다. 그는 손에 작은 쟁반을 들고 있었고, 그 위에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전하께서 전해드리라 하셨습니다."

봉령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뜻이냐?"

시종은 살짝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후께서 무척이나… 세심한 분이시라고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작은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 열어보시면 생각하시는 바를 아실 것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시종은 몸을 숙여 인사한 뒤, 조용히 방을 나갔다.

봉령은 녹슨 기계처럼 천천히 손을 내밀어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한 켤레의 검은색 비단 스타킹이 들어 있었다. 손끝으로 살짝 만져 보니, 그 촉감은 마치 액체가 손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듯했다. 정확히 어제 여제가 신고 있던 것과 같은 질감, 같은 색깔이었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이건… 이건 명백한 시험이었다. 여제가 이미 그의 은밀한 취미를 알아챈 것이다. 어떻게? 그는 그런 내색을 한 적이 없었다. 단지 눈길이 조금 더 오래 머물렀을 뿐인데.

그 순간, 봉령은 깨달았다. 자신이 이미 함정 속으로 들어왔음을. 그리고 그 함정을 판 사람이 누구인지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다음 날, 동양 여제는 누각 위에 앉아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어젯밤 시종이 가져온 보고서가 들려 있었다. 보고서에는 봉령의 자택에서 발견된 물건들, 그의 서재에 숨겨진 몇 권의 책과 스케치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시선이 머물렀던 순간들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발… 페티시라."

여제는 낮고 음탕한 웃음을 흘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보고서 위를 가볍게 스쳤다.

"저렇게 강하고 냉철한 무안후가 하필 이런 약점을 가지고 있다니.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지."

그녀는 일어나 누각 난간에 기댔다. 바람이 그녀의 치마자락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발목을 드러내며, 오늘은 스타킹 대신 맨발에 가벼운 비단 신발만을 신고 있었다. 그녀의 발가락이 신발 사이로 살짝 드러나 반짝였다.

"봉령… 네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띠었다.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는 완벽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를 부르고, 그와 단둘이 만나고, 자연스럽게 발을 드러낼 기회를 만들고, 그의 시선이 그곳에 고정되는 순간, 그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다.

그녀는 뒤돌아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는 편지지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붓을 들어 먹을 묻히고, 우아한 필체로 한 통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무안후 봉령 각하께. 오늘 저녁, 작은 다과회를 열고자 하오니 꼭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전하께서 직접 준비하신 차와 함께, 각하께서 좋아하실 만한 특별한 볼거리도 준비되어 있답니다."

그녀는 편지를 봉하고, 시종을 불렀다.

"이것을 무안후께 전하여라. 그는 반드시 올 것이다."

시종이 편지를 받아 나가자, 여제는 다시 혼자 남았다. 그녀는 책상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보관된 수많은 스타킹들을 바라보았다. 검은색, 흰색, 붉은색, 그리고 가장 얇은 망사까지. 그녀는 손을 뻗어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빛에 비춰 보았다.

"이제 네 차례야. 저 강한 자의 마음을 흔들어라."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냉철했다.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정복이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무릎 꿇는 모습을 보는 것이니까.

첫 접촉

봉령은 어전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무릎을 꿇고 조용히 숨을 고르며 여제의 부름을 기다렸다. 전후 수습과 새로운 조약에 관한 논의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아직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동양 여제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봉령 후, 가까이 오시오.”

봉령은 고개를 들었다. 여제는 옥좌에 반쯤 기대어 앉아 있었고, 그녀의 눈빛은 평소처럼 온화했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빛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일어나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 다시 무릎을 꿇었다.

“폐하, 무슨 분부이십니까?”

여제는 대답 대신 천천히 자세를 고쳤다. 그녀의 긴 치마가 살짝 흔들렸고, 나막신이 바닥에 닿으며 가볍게 소리를 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는 나막신을 벗어 옆으로 밀쳐 놓았다. 그 순간 봉령의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발로 쏠렸다.

살색 스타킹이 그녀의 발목을 감싸고 있었고, 가는 발가락이 스타킹 사이로 은은하게 비쳤다. 그 발은 마치 옥처럼 하얗고 매끄러웠으며, 아치가 우아하게 휘어져 있었다. 봉령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그의 가슴 속에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떨림이 일어났다. 그것은 오랫동안 숨겨왔던 은밀한 욕망이었다.

여제는 그의 반응을 눈치챘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그녀는 천천히 발을 들어 올려 구름처럼 가볍게 뻗었다.

“봉령 후, 전후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먼저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소.”

“예, 폐하.”

“이번 전쟁에서 그대의 공로는 실로 컸소. 내가 그대에게 특별한 보상을 내리고 싶소.”

그녀의 발이 공중에서 살짝 움직였고, 스타킹의 광택이 등불 아래에서 반짝였다. 봉령의 시선은 그 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여제 앞에서 이렇게 무력해질 줄은 몰랐다. 그의 마음은 마치 폭풍 속의 배처럼 흔들렸다.

“폐하, 신은 그저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아니오.” 여제의 목소리는 달콤하지만 단호했다. “내가 주고 싶은 것을 그대도 받아야 하오. 자, 가까이 오시오.”

봉령은 망설였다. 그는 이 여제의 음흉한 본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을 향한 은밀한 취미가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일어나 여제 앞까지 다가갔다. 여제는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발을 만지게 했다.

스타킹의 매끄러운 감촉이 그의 손끝에 전해졌다. 봉령의 손이 떨렸다. 그는 자신의 충성이 이렇게까지 시험받을 줄은 몰랐다. 여제는 그의 반응을 즐기며 천천히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의사가 있소. 이를 통해 우리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지길 바라오.”

봉령은 고개를 숙였다. 그의 마음 속에는 갈등이 소용돌이쳤다. 충성과 욕망 사이에서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폐하, 신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신이 감히 폐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사오니, 폐하의 뜻에 따르겠나이다.”

여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놓고 다시 발을 내렸다.

“좋소. 그럼 내일 밤, 내 침전으로 오시오. 거기서 더 깊이 논의하도록 하겠소.”

봉령은 깊이 절하며 물러났다. 그의 마음은 무거웠지만, 발의 감촉은 아직 손끝에 남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미 이 여제의 농락에 걸려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냄새 나는 스타킹의 유혹

동양 여제의 거처는 항상 어렴풋한 향이 감돌았다. 그 향은 너무 진하지도 않고 너무 희미하지도 않아, 마치 여제 자신과도 같았다. 멀리서 보면 한 점 티 없이 맑고 고고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있는 듯 없는 듯한 음흉함이 느껴진다.

봉령이 이날 황명을 받들어 내전으로 들어섰을 때, 여제는 침상에 느긋하게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하늘빛 나는 얇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치마 아래로 맨살이 비치고 있었다. 원래 그녀가 신고 있던 살색 스타킹은 벗겨져 침상 옆 탁자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무안후께서 오셨소."

여제가 미소 지으며 손짓했다. 그 목소리는 마치 꿀을 묻힌 칼날처럼 달콤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봉령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폐하께서 신하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별일 아니라오. 그저 무안후께 한 가지 물건을 선물하고 싶어서요."

여제가 일어나 가볍게 탁자 위의 스타킹을 집어 들었다. 그 스타킹은 아직도 그녀의 체온이 남아 있는 듯 보였고, 발가락 부분에는 은은한 땀 자국이 어렴풋이 보였다.

봉령의 눈빛이 갑자기 흔들렸다. 그는 자신의 시선을 바로 거두었지만, 심장은 이미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가 신었던 스타킹이라오. 오늘 아침에 갈아신은 것인데, 아직도 내 발의 온기가 남아 있소."

여제가 스타킹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스타킹의 얇은 천을 스치자 부드러운 촉감이 전해졌다.

"받으시오."

봉령은 몸이 돌처럼 굳어 버렸다. 그가 이 스타킹을 받아야 하는 걸까? 여제의 발이 닿았던 물건을, 그것도 사사로운 자리에서 건네받는 것이 어찌 적절하겠는가?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제어할 수 없이 떨리며 앞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신하가 감히…"

"감히라니?"

여제의 목소리에 살짝 위압감이 섞였다. "내가 주는 것인데, 무안후께서 받지 않겠소?"

봉령이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끝이 스타킹에 닿는 순간, 은은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그의 손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 위에는 여제의 발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는데, 달콤하면서도 약간 시큼한, 독특한 향이었다.

"고맙습니다, 폐하."

그의 목소리가 약간 쉰 듯했다.

여제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가 느긋하게 앉았다. "이 스타킹을 잘 간직하시오. 앞으로도 내가 신는 스타킹은 무안후께서 직접 빨아야 하니, 무안후가 가장 잘 알지 않겠소?"

봉령은 얼굴이 확 붉어졌다. 여제의 말 속에 숨은 뜻을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신하…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날 밤, 봉령은 자신의 서재에 돌아와 조심스럽게 스타킹을 꺼내 들었다. 촛불 아래에서 그 살색 스타킹은 더욱 얇고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손끝으로 살며시 그 표면을 더듬었다. 그 감촉은 마치 여제의 피부와도 같아서 매끄럽고 부드러웠다.

그는 스타킹을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 그 위에는 아직도 여제의 발 냄새가 남아 있었다. 달콤하고 약간 짜릿한, 마취제와도 같은 그 냄새가 그의 코를 파고들었다.

봉령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지만, 그의 손은 이미 스타킹을 꽉 움켜쥐고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후로, 여제는 자주 봉령을 불러들여 그녀의 발을 직접 씻기게 했다. 처음에 봉령은 이를 극도로 거부했지만, 여제의 부드러운 말과 그녀의 발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에 점차 저항하기 어려워졌다.

어느 날, 여제가 목욕을 마치고 나와 봉령에게 말했다. "무안후, 오늘은 내 발 좀 닦아 주시오."

봉령은 무릎을 꿇고 여제의 앞에 앉았다. 여제가 맨발을 내밀자, 그 발은 마치 옥처럼 희고 매끄러웠으며, 발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봉령이 조심스럽게 수건으로 그 발을 닦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이 여제의 발바닥을 스치자, 여제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무안후의 손길이 참 부드럽구려. 마치 내 발을 위하는 것 같소."

봉령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얽혀 있었지만, 결국 그는 고개를 숙이고 여제의 발을 더 세심하게 닦아 주었다.

며칠 후, 여제가 또 봉령을 불렀다. 이번에는 그녀가 일부러 발가락 사이사이에 향유를 바르고 있었다.

"무안후, 와서 내 발의 향을 맡아 보시오."

여제가 명령했다.

봉령은 망설였지만, 결국 여제 앞에 무릎을 꿇고 얼굴을 그녀의 발 가까이에 가져갔다. 그 향은 독특했다. 달콤하면서도 매혹적이었고, 약간의 땀 냄새가 섞여 있어 한층 더 현실감을 더했다.

"좀 더 가까이, 무안후."

여제의 발가락이 살짝 움직이며 봉령의 코끝을 스쳤다.

봉령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여제의 발을 감싸 쥐었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발등에 닿았다.

여제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좋아, 이제야 좀 제대로 아는군."

그날 이후, 봉령은 완전히 여제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되었다. 그는 매일 여제의 발을 씻기고, 스타킹을 빨고, 때로는 여제가 신던 스타킹을 직접 입고 그 감촉을 즐기기도 했다.

그의 집무실 책상 서랍 안에는 여제의 스타킹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는 일이 없을 때마다 그 스타킹들을 꺼내 냄새를 맡고, 만지작거리며, 점점 더 깊이 빠져들었다.

어느 날 밤, 여제가 봉령을 다시 불렀다. 이번에는 그녀가 침상에 누워 한쪽 다리를 들고 있었다.

"무안후, 와서 내 스타킹 좀 벗겨 주시오."

봉령은 다가가 조심스럽게 여제의 발에서 스타킹을 벗겼다. 그 스타킹은 아직도 따뜻했고, 은은한 발 냄새가 풍겼다.

"이 스타킹을 네가 간직해도 좋다."

여제가 말하며 봉령의 손에 스타킹을 쥐여 주었다.

봉령은 그 스타킹을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얼굴에 가져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 냄새는 달콤하면서도 약간 짜릿하여, 그를 더욱 취하게 만들었다.

"고맙습니다, 폐하."

그의 목소리는 이미 완전히 여제에게 복종하는 듯했다.

여제가 흡족한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가라.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가거라. 하지만 내일 아침 일찍 와서 내 발을 씻겨야 한다는 걸 잊지 마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봉령은 스타킹을 가슴에 꼭 안고 물러나갔다. 그의 눈빛 속에는 더 이상 이전의 냉철함은 없었고, 오직 여제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만이 남아 있었다.

여제는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제 봉령은 완전히 그녀의 손아귀에 들어왔다는 것을.

비밀 조교

동양 여제는 부드러운 비단 이불 위에 반쯤 누워 있었다. 그녀의 발은 가볍게 흔들리며 봉령의 시선을 끌었다. 방 안에는 희미한 향이 감돌고 있었다. 봉령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여제가 그를 부른 이유를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가까이 와라, 봉령아."

여제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다. 봉령은 망설였지만 결국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여제는 천천히 발을 내밀며 말했다.

"요즘 몸이 좀 피곤하구나. 발 좀 주물러 주겠니?"

봉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폐하, 그런 것은 하인이..."

"내가 명령이다."

여제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봉령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내밀었다. 여제의 발은 가늘고 하얗고 매끄러웠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을 만졌다. 처음에는 무뚝뚝하게 마사지했지만, 점점 그의 움직임은 부드러워졌다.

여제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렇게... 좀 더 세게... 아, 거기가 좋구나."

봉령의 손이 떨렸다. 그는 마음속으로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의 몸은 이미 여제의 명령에 복종하기 시작했다. 여제는 그의 눈빛을 읽고 있었다.

"네가 나에게 충성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봉리도 알고 봉정청도 알지만, 그들은 아직 깨닫지 못했다. 너는 나를 위해 그들을 움직여야 한다."

봉령이 손을 멈추었다.

"폐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제는 천천히 일어나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내가 너에게 다른 주신들을 내 곁으로 오게 하라고 명한다. 그들의 마음을 흔들어라. 네가 할 수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봉령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여제의 눈 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보았다. 그는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여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다시 누워 발을 내밀었다.

"계속해라. 오늘 밤은 길다."

봉령은 다시 마사지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그의 손이 더욱 부드럽고 능숙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 굴레에 갇혔다는 것을.

목표 봉정청

봉령은 태평전 서측 낭하를 걸으며 발걸음을 늦추었다. 지난 밤내내 뜬 눈으로 새운 탓에 눈가에 살짝 그늘이 졌다. 어젯밤 여제의 침전에서 나올 때,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아직도 귀에 맴돌았다.

“무안후, 내일 봉정청 주신을 데려오시오. 그와 상의할 일이 있소.”

표면적으로는 공무상의 일이었다. 최근 변경에서 들어온 서신들, 그리고 북방의 이민족 동향에 대한 보고서들이 쌓여 있었다. 실제로도 그런 서류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봉령은 알 수 있었다. 여제의 진짜 의도는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그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봉정청은 보통 이 시간이면 내각 서재에서 문서를 검토하고 있을 터였다.

과연, 붉은 칠문을 열고 들어서자 봉정청은 책상 앞에 앉아 두루마리를 펼쳐 들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으며, 문서를 넘기는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우아했다. 마치 모든 것을 계산한 듯한 그 움직임은 그가 신봉 사대 주신 중 가장 뛰어난 지모가라는 평판에 걸맞았다.

“무안후, 무슨 일로?”

봉정청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예리했지만, 동시에 신중함이 깃들어 있었다.

“여제께서 주신을 찾으시오. 변경 지역의 방어 계획에 대해 상의할 일이 있다고 하셨소.”

봉정청은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듯했지만,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소. 그럼 같이 가시지.”

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봉정청은 아무 말 없이 걸었지만, 그의 눈빛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태평전을 향해 가는 길에 여제가 어떤 의도로 자신을 부른 것인지 이미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있었다.

“무안후, 여제께서 요즘 몸 상태는 어떠하신지?”

봉정청이 무심한 듯 물었다.

“아직도 기침이 잦으시오. 하지만 공무를 보시는 데 지장은 없으시오.”

“음...”

봉정청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이미 눈치챘다. 봉령의 표정이 평소보다 굳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굳은 표정에는 무언가 숨기려는 듯한 미묘한 긴장감이 섞여 있었다.

태평전에 도착하자, 문 앞에 선 시녀가 두 사람을 맞았다. 시녀는 방금 전 여제께서 주신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전했다.

봉정청은 문턱을 넘으며 가볍게 숨을 고르고 들어갔다.

침전 안은 은은한 향이 감돌고 있었다. 백단향이었지만, 그 사이사이에 알 수 없는 달콤한 향이 섞여 있었다. 봉정청은 그 향을 맡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그 느낌을 곧 떨쳐버렸다.

“주신께서 오셨군요.”

여제의 목소리가 휘장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감미로웠지만, 그 속에는 계산된 듯한 미묘한 온도가 실려 있었다.

“네, 폐하. 명을 받들어 왔습니다.”

봉정청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렸다.

여제는 느릿느릿 휘장을 젖히고 일어났다. 그녀는 오늘은 옅은 자주색 치마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검은색 비단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그 스타킹은 그녀의 가느다란 종아리를 감싸 안으며 은은한 광택을 뿜어내고 있었다.

“주신께서는 앉으시오. 앉아서 이야기하세.”

봉정청은 그녀가 가리키는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는 여제의 좌석과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문서를 펼쳤다.

“변경 지역의 방어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잠깐, 주신.”

여제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그녀의 손가락은 가늘고 희었으며, 손끝에는 붉은 색이 감돌고 있었다.

“먼저, 주신께서 요즘 많이 피로해 보이오. 밤을 새며 문서를 보시는 일이 많다고 들었소.”

“폐하께서... 그것까지 아십니까?”

봉정청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자신의 생활 습관이 이렇게까지 여제의 귀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나는 신봉의 여제요. 내 신하의 상태를 모를 리 있겠소?”

여제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 미소는 따뜻했지만, 동시에 그 속에 무엇인가 감춰져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신께서는 지모가로서 많은 일을 책임지고 계시오. 하지만 지나친 고민은 몸을 상하게 하오. 특히... 주신께서는 항상 옳은 선택을 하기 위해 고민하시지만, 그 고민이 때로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함정이 되기도 하오.”

봉정청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여제의 말은 정확히 그의 약점을 찔렀다. 그는 항상 모든 것을 계산하고 신중하게 행동했지만, 그 신중함 때문에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폐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간단하오. 주신, 나는 당신이 더 큰 일을 맡길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하오.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를 너무 가두고 있소. 때로는... 더 대담해져야 할 때도 있소.”

여제가 일어나 천천히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 우아했으며, 비단 스타킹이 바닥에 스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렸다. 그녀가 봉정청의 앞에 멈춰 섰다.

“주신,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소.”

“무슨 제안이십니까?”

봉정청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속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요즘 변경 지역에서 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소. 하지만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 필요하오. 무안후도, 다른 주신들도 모두 각자의 자리가 있소.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지모가로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오.”

여제가 손을 내밀어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무언가 강한 힘을 담고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은밀한 임무를 맡기고 싶소. 그 임무는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되오. 오직 나와 당신만이 아는 비밀이 될 것이오.”

“임무란...?”

“긴급한 서신을 전달하는 일이오. 그 서신에는 변경 지역의 방어 계획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소. 하지만 이 서신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오. 그래서 내가 직접 믿을 만한 사람에게 맡기기로 한 것이오.”

여제가 품 안에서 작은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그의 앞에 내밀었다. 그 두루마리는 검은 비단으로 싸여 있었고, 붉은 인장이 찍혀 있었다.

“이 서신을 받아 주시오, 주신.”

봉정청은 잠시 망설였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 서신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제의 눈빛은 그를 놓지 않았다. 그 눈빛은 부드러우면서도 강제적이었고, 거절할 수 없는 힘을 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는 결국 손을 내밀어 두루마리를 받아들었다. 그 순간, 여제의 손가락이 그의 손등을 스쳤다. 그 감촉은 차갑고 매끄러웠다.

“잘하셨소, 주신.”

여제의 목소리가 그의 귀에 속삭이듯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는 만족감과 함께, 무언가 더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는 듯했다.

봉정청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올리고 태평전을 나섰다. 하지만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그는 손에 쥔 두루마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번 일은 단순한 서신 전달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미 그 함정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여제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그 미소, 그리고 그 손길이 그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날 밤, 봉정청은 서재에 혼자 앉아 그 두루마리를 펼쳐 보았다. 그 내용은 실제로 변경 지역의 방어 계획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아래에는 이상한 문구가 하나 더 적혀 있었다.

“이 서신을 받은 자는 반드시 내 곁에 남아야 한다.”

그 문구는 가느다란 붓글씨로 쓰여 있었고, 그 글씨는 여제의 필체임이 분명했다.

봉정청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여제가 자신에게 건넨 것은 단순한 서신이 아니라, 자신의 충성을 시험하는 덫이었음을.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이미 그 덫에 걸려들었고, 이제는 그 덫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여제의 미소와 그 손길, 그리고 그 문구가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며칠 후, 그는 다시 태평전으로 불려갔다. 이번에는 홀로였다.

“주신, 그 서신을 잘 전달하셨소?”

여제가 물었다.

“네, 폐하. 하지만...”

“하지만?”

여제가 고개를 갸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호기심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그 서신 아래에 적힌 문구는... 무슨 뜻이십니까?”

여제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나의 약속이오. 주신께서 이 서신을 받았다면, 그 뜻을 알게 될 것이오. 당신은 이제 내 곁에 남아야 하오. 신봉을 위해, 그리고 당신 자신을 위해.”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봉정청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이미 여제의 계략에 빠져들고 있었고, 이제는 그 계략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폐하.”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함께,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여제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승리자의 그것이었다.

지혜자의 몰락

동양 여제는 자신의 치밀한 손끝을 바라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봉정청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들어왔다. 그는 네 번째 주신으로서 항상 신중하고 지혜로웠지만, 오늘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폐하, 소신이 왔습니다.”

그가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여제는 손을 들어 가볍게 그를 부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청아, 가까이 오너라. 네게 할 말이 있다.”

봉정청은 주저하지 않고 다가갔다. 여제의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감돌고 있었고, 그 향은 그의 정신을 흐리게 만드는 듯했다.

“폐하께서 무슨 일로 소신을 부르셨습니까?”

여제는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녀의 비단 치마가 바닥을 스치며 은은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천천히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청아, 네가 신봉의 네 주신 중 가장 지혜롭다고 들었다. 많은 비밀을 알고 있다고도 하더구나.”

“폐하께서 지나친 칭찬을 하십니다. 소신은 충성을 다할 뿐입니다.”

여제가 돌아서며 그를 응시했다. 그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냉기가 깃들어 있었다.

“충성? 그런데 네가 숨기고 있는 것들도 있지 않느냐? 예를 들어, 네가 봉리 여제의 뒤에서 몰래 정보를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은?”

봉정청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는 여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비밀은 단 한 사람도 알지 못할 터였다. 그는 자신의 심복들조차도 이 사실을 모른다고 확신했었다.

“그... 그 말씀은 무슨...”

“떨지 마라.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너는 봉리가 네가 주신 자리를 유지하게 해주었기에 그녀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네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너는 이미 그녀를 배신했고, 이제 그 죄를 씻을 길이 없다.”

여제의 말은 칼날처럼 그의 마음을 찔렀다. 봉정청은 무릎이 풀려 땅에 주저앉았다. 그의 모든 지혜가 무너져 내렸다.

“폐하... 소신은... 소신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정보는... 신봉을 위함이었습니다.”

“신봉을 위함이 아니라, 네 자신의 지위를 위함이 아니냐?”

여제가 그에게 다가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발은 정교한 비단 신발을 신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은은한 광택이 나는 스타킹이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신발을 벗고 맨발을 드러냈다. 발가락에는 은은한 붉은 빛이 감돌았다.

“정청아, 네가 이제 나에게 무엇을 바칠 수 있겠느냐? 너의 지혜? 아니면 너의 충성?”

“소신은 무엇이든 바치겠습니다.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여제가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부드러우면서도 잔인했다.

“목숨은 필요 없다. 그보다는...”

그녀가 발을 내밀어 그의 뺨에 살짝 닿게 했다. 봉정청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혼란과 공포가 번갈아 스쳤다.

“네가 이제부터 나의 발 아래 엎드려 충성을 맹세한다면, 나는 네 죄를 묻지 않겠다.”

“폐하... 그건...”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다. 선택하라, 정청아. 이 한 번의 기회가 너를 구할 수도, 멸할 수도 있다.”

봉정청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모든 지혜가 혼란 속에서 빛을 잃었다. 그는 여제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소신은... 폐하에게 충성하겠나이다.”

여제는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 선택했다, 정청아. 너는 이제부터 나의 두 번째 노예다. 영원히 나의 발치에서 섬기라.”

봉정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자존심과 굴복의 싸움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여제에게 완전히 굴복해 있었다. 여제는 그의 목덜미에 부드럽게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이제 시작이다, 나의 지혜로운 주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