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아 여제는 어두컴컴한 집무실에 홀로 서 있었다. 촛불 하나 없이도 형형하게 빛나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벽면에 걸린 커다란 혈족의 상징을 응시하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릴리스……”
그 이름을 입에 올리자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 철부지 공주로 자란 그 딸은 어머니의 보호를 당연시하며 매일 사냥과 연회에만 탐닉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불안해 보였다. 노예들의 수발에도 싫증을 내고, 늘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이었다. 릴리아는 그것이 단순한 권태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더 큰 자유, 더 짜릿한 쾌락, 어머니의 그늘을 벗어난 진정한 즐거움을 원하는 것이다.
릴리아는 깊은 숨을 내쉬며 서랍 속에 보관된 고문서를 꺼냈다. ‘인격 배설술’——혈족 최고의 금기 중 하나. 영혼을 다른 육체로 옮기는 주술이었다. 겉보기에는 간단해 보였지만, 그 대가와 위험성은 기록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만 딸이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녀는 스스로를 달랬다. 나중에 다시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 임시방편으로 쓸 육체를 찾아 잠시 딸을 자유롭게 해준 뒤,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릴리아는 발걸음을 돌려 지하 감옥으로 향했다. 축축한 돌벽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와 썩은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가장 깊숙한 감방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철창 안에는 여노예 하나가 구부정하게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 여자의 팔은 견갑골에서 매끈하게 잘려나갔고, 다리는 골반에서 절단되어 몸통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유난히 거대한 두 개의 젖가슴이 돌바닥에 짓눌려 퍼져 있었고, 음핵은 성숙한 여자의 주먹만큼 부풀어 그 끝이 바닥을 긁으며 흉측한 움직임을 반복했다. 그 움직임만이 유일하게 그녀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일어나라.”
릴리아의 차갑고 맑은 목소리가 감방 안을 울렸다. 여노예는 몸부림치듯 음핵과 가슴을 이용해 몸을 끌어 올렸다. 바닥에 질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간신히 상체를 반쯤 세워 릴리아를 올려다보았다.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전하…… 저를 불러주셨나이까?”
목소리는 가냘프고 떨렸지만,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음침함이 숨어 있었다. 릴리아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그저 불쌍한 노예의 몸을 빌려 잠시 딸을 놀게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네 몸이 필요하다. 나를 따르라.”
릴리아는 손을 휘저어 철창을 열게 했다. 여노예는 다시 엎드려 질질 기어 나왔다. 젖가슴이 바닥을 끌며 둔탁한 소리를 냈고, 음핵은 매 걸음마다 돌기에 부딪혀 가늘게 떨렸다. 그 고통에 익숙하다는 듯 그녀는 어떤 신음도 내지 않았다.
둘은 의식의 방으로 이동했다. 바닥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주변에는 검은 양초가 늘어서 있었다. 릴리아는 릴리스를 불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릴리스가 나타났다. 은발을 휘날리며 들어온 그녀는 방 안의 광경을 보자 눈썹을 찌푸렸다.
“어머니, 저 못된 여노예를 왜 여기로 데려오셨어요? 냄새가 너무 심한데.”
릴리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릴리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천천히 설명했다.
“릴리스, 네가 지루해하는 걸 알고 있다. 잠시 네 영혼을 이 노예의 몸으로 옮겨, 네가 원하는 자유를 누리게 해주마. 몇 시간만 지나면 다시 되돌릴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이 냄새나는 몸으로 있으라고요?”
릴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곧 어머니의 말에 호기심이 생겼다. 진짜로 영혼을 바꿀 수 있다면, 아마 재미있는 경험이 될지도 몰랐다.
“좋아요. 하지만 금방 되돌려 주셔야 해요.”
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아는 안심하고 의식을 준비했다. 그녀는 여노예를 마법진 중앙에 눕히고, 릴리스도 그 옆에 눕게 했다. 두 사람의 몸이 맞닿았다. 여노예의 축축하고 차가운 피부가 릴리스의 우아한 치마를 적셨다.
릴리아는 손을 들어 마법진에 힘을 불어넣었다. 검은 양초의 불길이 일제히 흔들렸다. 어둠이 방을 감쌌고, 공기가 무거워졌다. 릴리스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갑자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감각, 끔찍한 이질감이 그녀를 덮쳤다.
“어머니…… 이상해요! 뭔가 잘못된——”
릴리스의 비명이 공기를 찢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의 영혼은 완전히 뽑혀 여노예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여노예의 영혼이 릴리스의 아름다운 육체로 들어가 그녀의 자리를 차지했다.
잠시 후, 방 안에 침묵이 흘렀다.
릴리스는 자신의 몸이 가볍고 무력함을 느꼈다. 그녀는 눈을 떴다. 천장이 평소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움직이려고 하자 몸이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격렬한 통증이 어깨와 골반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팔과 다리를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안 돼……”
목소리는 가냘프고 쉰 목소리로 변해 있었다. 릴리스는 몸부림치며 바닥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젖가슴과 음핵만이 바닥을 세게 문지를 뿐이었다. 아픔과 굴욕이 그녀를 덮쳤다.
“어머니! 어머니! 이게 뭐예요! 되돌려 주세요!”
릴리스는 울부짖었다. 하지만 릴리아는 넋을 잃은 듯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법진 위에 우아하게 일어난 ‘릴리스’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평소의 릴리스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음흉해 보였다.
“전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몸을 주시다니.”
여노예의 목소리가 릴리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릴리아는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그저 평소 자만심 강한 딸이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릴리스, 아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보거라.”
릴리아가 다정하게 말했다. 여노예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어머니. 잠깐 정신이 혼란스러웠을 뿐이에요. 이제 이 몸에 적응했으니, 밖에 나가서 좀 놀아도 될까요?”
“물론이다. 하지만 몇 시간 후에 돌아와야 한다.”
“네, 어머니.”
여노예가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의 입가에 드리운 잔혹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이미 릴리스의 몸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릴리스의 절망을 상상하며 흐뭇해했다.
릴리스는 바닥에 엎드려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몸을 비틀며 소리쳤다.
“어머니! 저예요! 그 여자가 제 몸을 빼앗았어요! 저를 봐 주세요!”
릴리아는 방금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그녀는 여전히 다정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눈동자는 황홀한 여노예의 육체를 지나쳐 어딘가 다른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릴리스, 네가 이 몸에 적응하는 게 힘들다는 걸 안다. 하지만 곧 괜찮아질 거야. 잠시만 참아라.”
릴리아는 그렇게 말하고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문이 굳게 닫혔다. 릴리스는 어둠 속에 홀로 남겨졌다. 그녀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졌지만, 아무도 그것을 보지 못했다.
여전히 어머니는 자신이 잠시만 견디면 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진실은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저주였다. 그리고 그 저주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