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설은 평소처럼 남자친구 진우의 자취방에 와 있었다. 진우가 샤워하러 간 사이, 심심해서 그의 노트북을 켰다. 바탕화면은 평범했다. 그런데 문득 눈에 띄는 폴더 하나가 있었다. 이름은 '업무 자료'였지만, 아이콘의 미리보기 이미지가 왠지 어색했다.
호기심에 클릭했다. 비밀번호 창이 떴다.
"뭐지? 업무 자료에 비밀번호를 걸어?"
임설의 손가락이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는 진우의 생일을 입력했다. 틀렸다. 그다음엔 자신의 생일을 넣었다. 폴더가 열렸다.
그 안에는 수십 개의 동영상 파일이 정렬되어 있었다. 파일명은 모두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와 알파벳 조합이었다. 임설은 아무 파일이나 더블클릭했다. 화면 가득 퍼지는 영상, 그 속에는 낯선 여자가 다른 남자와 격정적으로 몸을 섞고 있었다.
임설의 숨이 멎었다.
그녀는 재빨리 다른 파일들을 열어보았다. 모두 비슷한 내용이었다. 여자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이었지만, 하나같이 젊고 예뻤다. 남자들도 각자 달랐다. 장소도 다양했다. 호텔방, 차 안, 야외 주차장, 심지어 교실로 보이는 곳까지.
임설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파일 속성과 최근 사용 기록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열린 파일의 시간은 오늘 새벽 2시였다. 진우가 혼자서 이 영상들을 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샤워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임설은 재빨리 폴더를 닫고 인터넷 브라우저를 띄웠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뭐 봐?"
진우가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다가왔다. 그의 맨살에서 샤워젤 향이 났다. 평소에는 좋아했던 그 향이 지금은 역겹게 느껴졌다.
"그냥... 네이버 카페 구경."
임설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진우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따뜻한 그의 손길이, 평소에는 포근했던 그 온기가,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는 내내 임설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숟가락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진우가 이상한 점을 눈치챈 것 같았다.
"얼굴이 안 좋아. 피곤해?"
"응... 요즘 잠을 못 잤어."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잠을 잘 잤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피폐해져 있었다.
문득, 최근 진우의 침대 위 행동이 떠올랐다. 한 달 전부터 갑자기 자기 전에 "만약 다른 남자가 너를 원한다면?"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점점 그런 질문이 늘어났다. "학교에서 누가 너한테 작업 걸어?" "요즘 주변에 괜찮은 남자 없어?" 질문할 때마다 그의 눈빛은 이상하게 반짝였다.
임설은 그걸 그냥 질투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기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영상들 속 여자들도 모두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야, 임설아."
진우의 목소리에 임설이 정신을 차렸다.
"왜?"
"요즘 너한테 어떤 남자가 자꾸 다가온다며? 장레이?"
임설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진우가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진우의 눈이었다. 그가 그 말을 꺼낼 때, 그의 동공이 미세하게 확장되었다. 그리고 입가에 희미하게 번지는 미소.
그 미소는 임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어... 응. 가끔 같이 점심 먹자고 하더라."
"왜 안 만나줘?"
진우의 말투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마치 자기를 다른 남자에게 밀어주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뭐? 너... 진짜 괜찮아? 다른 남자랑 나를?"
"왜? 친구로 만나는 거지. 나는 괜찮아."
임설은 진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진우의 표정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그는 분명히 흥분하고 있었다.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그의 눈동자에 어렸다.
임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녀는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창백했다. 임설은 두 손으로 세면대 가장자리를 꽉 움켜쥐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왜 진우는... 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밀어?'
임설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진우가 그 폴더 속 영상들처럼, 자신도 그런 역할을 하길 원한다는 것을.
그녀는 냉수로 얼굴을 씻었다. 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시험해보자. 정말 그가 원하는 게 뭔지 확인해보자.'
임설은 욕실 밖으로 나왔다. 진우는 여전히 식탁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일부러 천천히 다가가 그의 옆에 앉았다.
"진우야."
"응?"
"있잖아... 장레이가 내일 영화 보자고 했어. 나도 가도 될까?"
임설은 진우의 반응을 놓치지 않기 위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진우의 눈이 스르르 가늘어졌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살짝 떨리다가, 천천히 올라갔다. 미소였다.
"그래. 가. 재미있게 놀고 와."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속에는 참을 수 없는 기쁨이 숨어 있었다. 임설은 알 수 있었다. 진우는 지금, 자기가 상상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임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한 설렘 같은 것도 느껴졌다. 그녀는 그것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 감정은 그녀의 뱃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