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리는 순간 육침은 자신의 심장이 한 박자 멎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문 뒤에 선 사람은 진원이 아니었다. 민소매 원피스, 자연스럽게 늘어진 긴 생머리, 군살 하나 없는 목선과 쇄골. 저벅 문턱을 넘어선 여자는 서늘한 체향을 풍기며 그를 빤히 응시했다.
“진원 군 친구 맞지? 어서 들어와요.”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부드러운 울림이 귀를 간지럽혔다. 육침은 잠시 얼어붙었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짙고 깊었으며, 입가에는 정갈한 미소가 감돌았다. 얇고 투명한 피부 아래로 푸른 실핏줄이 은은하게 비쳤다.
“저… 진원이 집에 없다고 해서… 그냥 좀 기다리려고요.”
육침은 평소와 달리 말까지 더듬으며 현관을 들어섰다. 원래 오늘은 진원과 밤새 게임하기로 약속했었다. 부모님이 모두 출장 가셔서 집에 아무도 없다는 말에 편하게 오라고 했는데, 도착해 보니 이런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거실로 안내받으며 육침의 눈은 바쁘게 움직였다. 소파에 앉은 그녀의 등허리 곡선, 바닥에 놓인 맨발 복사뼈, 찻잔을 집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 모든 것이 무심한 듯 우아했다. 심청의는 그를 소파에 앉히고는 주방으로 향했다. 발걸음마다 원피스 자락이 살랑거렸고, 민소매 사이로 드러난 어깨와 팔뚝의 매끈한 라인이 육침의 시선을 끌었다.
심청의가 차를 준비하는 동안 육침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의 흥분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도자기 찻잔이 탁자 위에 놓일 때, 그녀가 허리를 숙이자 민소매 원피스의 목부분이 약간 쳐지며 쇄골 아래 완만한 곡선이 드러났다. 육침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의식적으로 다리를 꼬았다.
“진원이 요즘 공부 열심히 하나 보네. 밤늦게까지 친구랑 게임이라니.”
심청의가 찻잔을 닦으며 조용히 던진 말에 육침은 번쩍 정신을 차렸다.
“아, 네! 요즘 시험 기간이긴 한데 그래도 자주 만나요. 헌데 진원이가 잘 도와줘서….”
육침의 대답이 어색하게 길어졌다. 그는 본래 말재간이 뛰어난 편이었지만, 심청의 앞에서는 혀가 꼬부라지는 듯했다. 찻잔을 집어 든 심청의의 손가락이 차의 김과 어우러져 어떤 회화처럼 보였다.
“재미있는 친구네요. 진원이가 항상 너 침이란 친구 자랑을 많이 했어요. 부모님이 모두 계시고 해외 사업도 하신다면서요?”
“네, 부모님은 거의 외국에 계세요. 저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해서….”
육침의 대답에 심청의는 잠시 멈칫했다. 그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곧 평소의 냉정한 미소를 되찾았다.
“혼자라니… 많이 외롭겠네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육침은 그 안에 담긴 공명을 캐치했다. 그는 의식적으로 눈을 맞추며 살짝 미소 지었다.
“어머님도요?”
침묵. 단 2초 남짓의 정적이었지만, 육침에게는 반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심청의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에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외로움과 공허함이 잠시 어른거렸다.
바로 그때 현관문이 쾅 열리며 진원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들어왔다.
“미안해, 침아! 학과 회의 때문에 늦었어! 헐, 심지어 차까지 대접받은 거야? 우리 계모님, 진짜 친절하시지?”
진원은 가방을 아무렇게나 벗어 던지고 다짜고짜 육침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의 무심한 말투는 거실의 미묘한 긴장감을 단숨에 깨부수었다.
“야야, 배고파 죽겠다. 계모님, 라면 좀 끓여주시면 안 돼요? 아 맞다, 너 침이 오늘 우리 집에서 자기로 했지? 걱정 마, 부모님 출장 가고 계모님이랑 나랑 단둘이라 엄청 심심했는데 딱 좋아!”
진원의 말에 육침의 마음은 은근히 기뻤다. 부모님이 없다니, 이 집에는 심청의와 진원뿐이라니.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는 심청의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보았다. 아까 차를 따를 때 드러난 쇄골의 완벽한 곡선이 머릿속에 생생히 남아 흔들리고 있었다.
저녁 내내 육침은 진원과 대화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온 신경을 심청의에게 집중했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공기 중에 스치는 미세한 체향, 그녀가 빨래를 개키는 손짓, 냉장고를 열 때 살짝 앞으로 쏠리는 어깨 라인. 매 순간이 그의 눈에는 마치 느린 화면처럼 포착되었다.
“야야, 있잖아. 혹시라도 계모님 이상하게 보지 마. 그분도 사실 나이에 비해 되게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 아빠는 항상 출장이고 나는 학교에 있고… 연로한 분이 집에 혼자 계시니까 내가 맨날 걱정돼.”
진원의 별뜻 없는 말이었지만 육침의 심장을 찔렀다. 연상의 여자, 그것도 친구의 계모. 모든 게 위험한 경계선이었지만, 바로 그 점이 그를 더욱 도발했다. 외로운 영혼과 외로운 영혼이 서로 끌리는 법이라는 무모한 변명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밤이 깊자 심청의는 우아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육침이 탁자 위에 남겨진 찻잔을 무심코 집어 들자, 잔 끝자락에 남은 연한 립스틱 자국이 보였다. 그는 무의식중에 손가락끝으로 그 자국을 살짝 쓸어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날 밤, 진원이 곁에서 이미 코를 골며 자고 있는데도 육침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천장의 어둑한 그림자를 응시하며 가만히 누워 있자니, 심청의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그녀의 빛나는 피부, 차분하지만 알 수 없는 매력을 품은 눈빛, 그리고 허리 숙여 보일 듯 말 듯 드러난 신체 곡선.
손목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육침은 몸을 뒤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심청의가 찻잔을 내려놓던 정경, 그녀의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까지 생생히 기억났다. 자신이 이토록 강렬하게 이끌리다니, 이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뭔가 타오르는 충동이 그의 혈관 속에서 거칠게 달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벌떡 일어나 조용히 발코니로 걸어 나갔다. 손난로를 손에 쥐듯 휴대폰을 꼭 쥐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찬바람이 뺨을 스쳤지만 몸속의 뜨거운 조바심은 식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친구의 계모인 그녀와 가까워질 것인가. 위험함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집요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불길처럼 번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