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울렸다. 첨령월은 땀에 흠뻑 젖은 채로 링 위에 서서, 쓰러진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심판이 그녀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승리를 선언했고, 관중석에서는 열광적인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링 아래로 내려왔다. 다리는 무거웠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3라운드 내내 이어진 치열한 혈투, 상대의 펀치가 갈비뼈를 스치고 지나갔고, 정강이에는 멍이 들어 퍼렇게 변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좋았다. 시합 중에 느끼는 그 아찔한 통증은 마치 마약 같았다.
경기장을 나와 차에 올랐다. 운전대를 잡는 손이 살짝 떨렸다 — 아직도 남아 있는 기운 때문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바로 안경을 집어 들고 코에 얹었다. 무테 안경이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를 부드럽게 감춰주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손가락으로 뺨에 난 작은 상처를 살며시 만졌다. 피가 굳은 자국이 손끝에 밀착되었다.
“괜찮아.”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소파에 몸을 던졌다. 온몸의 근육이 축 처지는 느낌이 기분 좋았다. 눈을 감고 시합의 장면을 떠올렸다. 상대의 주먹이 자신의 얼굴을 강타했을 때의 그 짜릿함, 그리고 자신이 상대를 바닥에 내리꽂았을 때의 쾌감. 정말 더 세게 맞았더라면... 그런 생각이 불쑥 스쳤다.
그녀는 눈을 떴다. 호박색 눈동자가 거실의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자신의 팔뚝을 바라보며, 굵은 혈관이 선명하게 드러난 피부를 어루만졌다. 더 강한 손에 잡히고 싶었다. 더 거친 숨결을 목덜미에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언제쯤 그런 존재를 만날 수 있을까?
휴대폰이 울렸다.
첨령월은 손을 뻗어 탁자 위에 놓인 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에는 ‘언니’라고 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령월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언니 첨지연의 목소리가 활기차고 명랑하게 들렸다. 그와 동시에 주변에서 짐 정리하는 소리도 함께 흘러나왔다.
“응, 시합 끝나고 집에 막 왔어.”
“시합? 오늘 시합 있었어? 아, 맞다. 깜빡했네. 네가 요즘 프로 격투기 하는 거. 어땠어?”
“이겼어.”
“역시 우리 령월이야! 언니가 자랑스러워.”
첨령월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언니의 너무나도 밝은 목소리는 언제나 그녀를 약간 피곤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말하려는 게 뭔데?”
“아, 역시 내 동생은 똑똑해. 실은 말이지...”
첨지연이 잠시 망설이는 듯했다. 잠시 후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회사에서 갑자기 해외 출장을 보내게 됐어. 무려 1년 동안.”
“1년?”
“응. 처음에는 반년인 줄 알았는데, 본부장이 와서 말하더라고. 현지 사업이 너무 중요해서 최소 1년은 있어야 한다고.”
첨령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의 목소리에 섞인 당혹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말인데... 천이를 좀 맡아줄 수 있을까?”
임천. 그녀의 조카. 고등학교 3학년, 열여덟 살이었다. 첨령월은 그를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명절에 가족 모임에서 얼굴을 본 게 전부였고, 그때마다 그는 항상 구석에 앉아서 말없이 음식만 먹고 있었다.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아이였다.
“나? 왜 하필 나야?”
“다른 사람 믿을 데가 어디 있어? 엄마 아빠는 시골에 계시고, 다른 친척들은 멀리 살고. 게다가 너는 백수잖아.”
“백수라니, 나 프로 선수야.”
“알아, 알지. 근데 시합 없을 때는 시간이 많잖아. 천이는 이제 곧 수능인데, 내가 옆에서 밥 챙겨주고 청소도 해줘야 하는데...”
첨령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니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거절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언니는 눈치를 주는 대신,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며 상대방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시합 훈련 때문에 시간이 없어.”
“훈련? 집에서도 할 수 있잖아. 천이는 학교 가니까 낮에는 집이 텅 비어 있어. 네가 훈련하기 딱 좋지 않아?”
“......”
“제발, 언니 한 번만 도와줘. 돌아오면 꼭 보답할게. 령월아, 제발~”
“알았어.”
첨령월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언니가 기뻐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고마워! 정말 고마워! 내일 천이 데리고 갈게. 아, 맞다. 너희 집 주소 다시 보내줘야겠다. 깜빡했어.”
“응.”
“그럼 내일 보자! 푹 쉬어!”
전화가 끊겼다. 첨령월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눈을 감자 잠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열여덟 살 조카. 고등학생. 수줍음 많은 아이. 과연 자신이 그런 아이와 제대로 지낼 수 있을까? 시합 준비에 집중해야 할 텐데.
“됐다, 뭐.”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얼음물을 꺼내 마시며, 창문 너머로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제 며칠 후면 조카가 이 집에 들어와 살게 된다. 아마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은 훈련하고, 시합 나가고, 집에 돌아와서 쉬는 일상을 반복할 테니까. 조카가 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이번 만남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수줍음 많던 조카 속에 숨겨진 비범한 재능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첨령월은 거실 벽에 걸린 샌드백을 바라보았다. 너덜너덜해진 가죽 표면에 묻은 자국의 흔적들. 그녀는 주먹을 꽉 쥐고 주춤자세를 취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멈췄다.
“오늘은 쉬어야지.”
샌드백에서 눈을 돌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이 몸을 적셨다. 시합의 피로가 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그녀는 벽에 손을 짚고 서서, 머리를 숙인 채 물줄기를 온몸에 맞았다. 생각이 많아졌다. 언니가 없는 1년 동안, 조카와 함께 지내는 동안, 자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할까?
사워를 마치고 나와 타월로 머리를 닦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잘록한 허리, 굵은 허벅지, 단단한 복근. 모두가 부러워하는 프로 격투가의 몸.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다른 욕망이 숨겨져 있었다. 강한 손에 잡히고 싶은, 지배당하고 싶은, 숭배하고 싶은 그런 욕망.
“바보 같은 생각.”
그녀는 타월을 탁자 위에 던지고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눕자마자 눈이 감겼다. 시합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언니의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천이를 맡아줘.” 그리고 어렴풋이 떠오른 조카의 얼굴. 그 조용하고 수줍은 표정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잠들기 전에 그녀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만약 조카가 나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면? 하,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고등학생일 뿐인데.
다음 날 오후, 초인종이 울렸다.
첨령월은 막 운동을 마치고 땀이 흐르는 상태였다. 도복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언니 첨지연과 조카 임천이 서 있었다.
“령월아! 왔다!”
첨지연이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임천은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키가 꽤 컸다. 180은 훌쩍 넘는 것 같았다. 어깨가 넓고 체격이 좋았다.
“들어와.”
첨령월이 몸을 비켜주며 말했다. 언니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왔고, 임천은 조심스럽게 그 뒤를 따랐다.
“아이고, 집이 깔끔하네! 운동하는 사람은 확실히 달라.”
첨지연이 거실을 둘러보며 감탄했다. 그러자 갑자기 놀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 맞다! 너 운동하고 있었지? 미안, 방해했네.”
“괜찮아. 막 끝났어.”
첨령월은 소파에 앉아 물을 마셨다. 눈길이 임천에게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그 모습이 왠지 불쌍하게 보였다.
“천아, 인사해라.”
“안녕하세요, 이모.”
임천이 조용히 말했다. 목소리는 성량이 제법 굵었지만, 어딘가 떨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응, 반가워. 편하게 있어라.”
짧은 인사가 오가고, 침묵이 흘렀다. 첨지연이 분위기를 전환하며 말을 이었다.
“자, 내가 간단하게 짐 풀어놓고 갈게. 천이는 방이 어디야?”
“저쪽 끝에 손님방 있어.”
“알았어! 알았어!”
첨지연이 임천의 짐을 들어 방으로 가져갔다. 그 사이, 첨령월과 임천은 거실에 남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서 있었고, 그녀는 물을 마시며 그를 관찰했다. 임천은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서 있었다.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앉아.”
임천이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아래를 향하고 있었다. 첨령월은 그 모습이 좀 어색했지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학교는 언제 시작해?”
“다음 주부터입니다.”
“수능 준비는 잘 하고 있어?”
“네,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응, 좋아. 여기 있는 동안 불편한 점 있으면 바로 말해.”
“네, 감사합니다.”
대화는 거기서 멈췄다. 첨지연이 방에서 나오며 활짝 웃었다.
“다 정리했어! 자, 이제 나는 출발해야지. 비행기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벌써 가?”
“응, 미안. 가야 해. 천이 잘 부탁한다, 령월아!”
첨지연이 동생을 껴안고, 이어서 아들에게도 껴안았다. 그녀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엄마 없는 동안 착하게 지내야 한다. 알았지?”
“네, 엄마.”
“그리고 이모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또 잔소리가 이어질 것 같자, 첨령월이 끼어들었다.
“언니, 놓칠라.”
“아, 맞다! 간다!”
첨지연이 서둘러 현관으로 걸어갔다. 신발을 신고 나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령월아. 꼭 보답할게.”
“응, 잘 다녀와.”
문이 닫히고, 집 안에 침묵이 흘렀다.
첨령월은 언니가 간 방향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임천은 여전히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마치 조각상처럼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무슨 생각 해?”
임천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반듯한 이목구비, 짙은 눈썹, 그리고 깊은 눈동자. 수줍음이 많지만, 그 아래에 숨겨진 무언가가 느껴졌다. 첨령월은 그 눈빛을 보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요, 아무것도요.”
“그럼, 저녁은 내가 만들 테니 기다려.”
“제가 도와드릴게요.”
“괜찮아. 넌 방에 가서 쉬어.”
임천이 일어나 방으로 걸어갔다.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첨령월은 생각했다. 수줍음 많은 고등학생. 하지만 어깨는 확실히 넓었다. 운동을 좀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는 운동 선수답게 단백질 위주의 식재료가 가득했다. 닭가슴살, 브로콜리, 달걀. 오늘은 조카가 있으니 좀 더 푸짐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아!”
방에서 대답이 없었다.
“임천!”
“네?”
문이 열리고 임천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가 이전보다 조금 더 컸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뭐든지 괜찮습니다.”
“알았어. 곧 나와서 밥 먹자.”
“네.”
임천이 방으로 들어갔다. 첨령월은 고개를 저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달걀을 깨고, 닭가슴살을 썰고. 평소에는 혼자 먹는 것이라 대충 했지만, 오늘은 좀 더 신경 썼다. 언니가 부탁한 일이니 최소한 밥은 잘 챙겨줘야겠다고 생각했다.
30분 후, 식탁에 음식이 차려졌다. 닭가슴살 야채볶음, 계란찜, 김치, 그리고 밥. 간단하지만 영양 균형이 맞춰진 식사였다.
“임천, 밥 먹자.”
임천이 방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식탁에 앉았다. 그는 숟가락을 들기 전에 잠시 음식을 바라보았다.
“많이 드세요. 몸 키우려면 단백질 많이 먹어야지.”
“네, 감사합니다.”
임천이 조용히 숟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그는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한입 한입 조심스럽게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첨령월은 생각했다. 수줍고 조용하지만, 예의는 바르고 착한 아이였다. 언니가 말한 대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운동은 해?”
갑자기 첨령월이 물었다. 임천이 고개를 들었다.
“네? 아, 네. 학교에서 체육 수업 말고는 따로 안 합니다.”
“몸이 꽤 좋아 보이는데. 운동 좀 해도 될 것 같아.”
“감사합니다.”
임천이 미소를 지었다. 처음으로 본 그의 미소였다. 어색하지만 그래도 진심이 담긴 미소였다. 첨령월은 그 미소를 보며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모는 항상 운동만 해요?”
“응, 시합 준비 때문에 거의 매일 해.”
“시합... 무서운 거 아니에요?”
“무섭기보다는 짜릿해. 맞는 것도, 때리는 것도.”
임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첨령월은 그 눈빛을 보고 살짝 가슴이 두근거렸다. 왠지 모르게 그 눈빛이 자신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이모는... 혼자 살아서 외롭지 않아요?”
“외로워? 아니, 나는 혼자가 좋아.”
“하지만...”
임천이 말을 꺼내다가 멈췄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밥을 계속 먹었다. 첨령월은 그 모습이 왠지 아쉬웠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왜? 무슨 말 하고 싶었어?”
“아니요, 그냥... 이모가 강해 보여서. 나도 이모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그 말을 듣고 첨령월이 가볍게 웃었다.
“강해지고 싶다고? 왜?”
“약한 사람은 항상 당하기만 하잖아요. 나는 당하지 않고 싶어요.”
그 말에 첨령월의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임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평소의 수줍음과는 다른, 날카로운 빛이 스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갈등과 결의가 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래, 강해지는 게 좋지. 하지만 강해지려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데요?”
“편안함, 안전함, 그리고 때로는 인간관계도.”
임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밥을 다 먹었다. 그가 일어서서 자신의 그릇을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첨령월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생각보다 참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다.
“이모, 설거지 제가 다 할게요. 쉬세요.”
“고맙다.”
첨령월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임천이 부엌에서 물소리와 함께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혼자의 집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이 이렇게 편안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이상한 욕망이 솟아올랐다. 그 욕망은 강한 손에 잡히고 싶은, 지배당하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조카라는 생각이 들자, 첨령월의 가슴이 갑자기 빨라졌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한 생각이 점점 더 강해졌다. 만약 그가... 그런 힘을 지녔다면?
“미친 거 아냐.”
그녀는 얼굴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임천의 눈빛, 그의 어깨, 그의 목소리. 모든 것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문득, 생각이 났다. 자신이 왜 이렇게 약해졌는지. 그리고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은 강한 남자에게 완전히 지배당하는 것. 하지만 그런 남자를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의 집에 있는 조카는? 그는 수줍음 많고 조용한 아이였다. 하지만 그런 아이일수록 더 특별한 재능을 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야, 아니야. 그건 말도 안 돼.”
그녀는 일어나서 물을 한 잔 마셨다. 차가운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래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뜨거워졌다.
다음 날 아침, 첨령월이 일어났을 때는 이미 해가 높이 떠 있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거기에는 임천이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이모?”
“응. 너 일찍 일어났구나.”
“네, 아침 6시에 일어났어요.”
“아침 먹었어?”
“네, 제가 간단히 해 먹었어요. 이모 드릴 거 남겨놨어요.”
임천이 부엌을 가리켰다. 식탁 위에는 계란 후라이와 토스트, 그리고 우유 한 잔이 준비되어 있었다. 첨령월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고맙다, 천아.”
“아니에요, 당연한 거죠.”
그녀는 식탁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임천이 만든 음식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계란 후라이는 반숙이었고, 토스트는 바삭했다.
“이모, 오늘 훈련 있어요?”
“응, 오후에 가볍게 할 거야. 왜?”
“저도 같이 해도 돼요?”
첨령월이 고개를 들었다. 임천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진지했다.
“운동? 너 학교 가야지.”
“오늘은 개학 전이라 학교 안 가요.”
“그럼... 그래, 같이 할래?”
“네!”
임천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전날 본 것보다 더 밝아 보였다. 첨령월은 그 미소를 보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후, 둘은 집 앞에 있는 작은 공원에 도착했다. 첨령월은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임천은 편한 반바지와 티셔츠 차림이었다.
“먼저 스트레칭부터 하자.”
“네.”
둘은 나란히 서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임천의 몸은 생각보다 유연했다. 그 모습을 보며 첨령월은 속으로 감탄했다.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자, 이제 기본 주먹질 연습을 해볼까?”
“네!”
첨령월이 주춤자세를 취하며 시범을 보였다. 임천은 그 모습을 집중해서 바라보더니, 천천히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의 동작은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더 정확해졌다. 첨령월은 그의 발이 움직이는 방식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임천은 단 몇 번만에 자세를 완벽하게 잡아냈다. 그것은 마치 이전부터 격투기를 배워온 사람처럼 자연스러웠다.
“와, 너 꽤 잘하는구나?”
“처음 해봤는데요. 이모가 잘 가르쳐줘서 그래요.”
“아니야, 너 재능이 있어. 정말로.”
임천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며 첨령월은 마음속에 이상한 감정이 스치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분명히 재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재능은 단순한 운동 능력만이 아니었다. 그의 몸에는 무언가 다른 힘이 숨겨져 있었다.
“자, 계속하자. 이번에는 발차기를 배워볼까?”
“네!”
그날 오후, 둘은 몇 시간 동안 운동을 했다. 첨령월은 임천의 발전 속도에 놀랐다. 그는 모든 동작을 한 번 배우면 금방 익혔고, 자신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능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의 체력도 엄청났다. 몇 시간 동안 땀을 흘리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첨령월은 거실 소파에 앉아 물을 마셨다. 임천은 그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운동 후의 건강한 홍조가 떠올랐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모. 감사합니다.”
“응, 나도 재미있었어. 너는 정말 재능이 있어. 앞으로도 같이 운동하자.”
“네, 꼭요!”
임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순간, 첨령월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기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가 자신을 감싸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가슴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그날 저녁, 그녀는 방에 혼자 앉아서 생각했다. 임천은 분명히 평범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에게 끌리고 있었다. 아니, 그가 자신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이건 위험한 생각이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눈을 감자 마자 임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의 눈빛, 그의 미소, 그의 목소리. 모든 것이 그녀를 미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움켜쥐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이 감정을 어떻게 통제해야 할지 몰랐다.
다음 날, 또 그 다음 날. 시간이 흐를수록 첨령월의 마음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매일 아침 임천과 함께 운동을 했고, 저녁에는 함께 밥을 먹었다.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졌고, 그만큼 그에 대한 집착도 깊어졌다.
어느 날 밤, 그녀는 잠에서 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녀는 일어나서 거실로 나갔다. 거기에는 임천이 소파에 앉아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불빛 아래 그의 얼굴이 비쳤다. 그의 눈빛은 집중되어 있었다.
“왜 안 자?”
임천이 고개를 들었다.
“잠이 안 와서 책 보고 있었어요. 이모는 왜 안 주무세요?”
“나도... 잠이 안 와.”
첨령월이 그의 옆에 앉았다. 그 사이에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아니, 이미 좁혀지고 있는지도 몰랐다.
“무슨 생각 해?”
“그냥...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수능, 대학, 그리고 미래.”
“걱정되지?”
“네, 조금요.”
임천이 책을 덮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평소의 수줍음이 사라지고, 대신 확신이 생겨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 첨령월은 가슴이 뛰었다.
“이모 말이 맞았어요. 강해지려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한다는 것.”
“그래?”
“네. 그리고 나는 포기할 준비가 됐어요.”
임천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확고했다. 그의 말에 첨령월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길을 느낄 뿐이었다.
그날 밤, 그들은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령월은 깨달았다. 자신은 임천에게 끌리고 있었고, 그도 자신에게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그 끌림은 단순한 가족의 애정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주인’으로 만들기로 결심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첨령월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호박색 눈동자, 하얀 피부, 날카로운 턱선. 평소에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녀는 자신의 약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약함을 채워줄 존재가 바로 조카 임천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시작이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그녀는 방을 나갔다. 그녀의 새로운 인생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