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 용우는 왕좌에 기대어 깊은 숨을 내쉬었다. 삼천 년째 같은 자리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일은 더 이상 짜릿함을 주지 못했다. 모든 전투는 예측 가능했고, 모든 도전은 무의미했다. 두 호법이 동시에 덤벼도 그의 발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검을 휘두르면 대지가 갈라지고, 주먹을 내지르면 하늘이 울었다. 그러나 그 모든 힘은 이제 무의미한 장식에 불과했다.
“지겨워라.”
그의 낮은 목소리가 대전(大殿)에 울렸다. 주위에 있던 마물 시종들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물러났다. 마왕의 분위기가 무거울 때는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용우는 손을 들어 허공을 가르자, 공간이 찢어지며 작은 상자가 나타났다. 검은 나무로 만들어진 그 상자는 고대의 룬 문자로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뚜껑을 열자 은은한 푸른 빛이 퍼져 나왔다. 그 안에는 하나의 목걸이가 놓여 있었다. 가느다란 사슬에 매달린 푸른 보석은 마치 살아있는 듯 내부에서 마력이 꿈틀거렸다.
“만능 목걸이… 드디어 완성되었구나.”
그는 조심스럽게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삼천 년의 세월 동안 그는 이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수많은 마법사와 장인들을 동원했고, 수백 번의 실패 끝에 겨우 빛을 본 결과물이었다.
“이 목걸이를 착용하면 내 레벨을 낮출 수 있다. 단순한 변장이 아니다. 진정으로 내 힘을 제한하는 아이템… 아니, 끝없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다.”
그는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보석이 반짝이며 그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펌프처럼 그의 체내에서 마력이 빠져나갔다. 근육이 수축되고, 뼈가 울렸다. 10레벨 정점의 힘이 서서히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크흡…!”
용우는 주먹을 쥐었다. 손끝에서 푸른 불꽃이 사라졌다. 그의 마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오히려 반짝였다. 이것이 바로 그가 원하던 것이었다. 다시금 성장의 갈망을 느끼고 싶었다. 다시금 도전과 싸움 속에서 살아있는 기쁨을 맛보고 싶었다.
“호법들을 불러라.”
그의 명령에 시종 한 명이 급히 달려나갔다. 잠시 후, 두 명의 9레벨 마물 호법이 대전에 들어섰다. 하나는 거대한 흑룡의 모습을 한 ‘크로우스’, 다른 하나는 여섯 개의 팔을 가진 거인 ‘자르칸’이었다. 둘 다 마왕 휘하에서 가장 강력한 전사들이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크로우스가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곧 마왕의 목에 걸린 목걸이를 향했다. 자르칸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느꼈겠지만, 내 마력이 줄어들었다. 목걸이 덕분이다.”
용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나와 겨루어라. 네가 이기면, 나는 너에게 호법의 자리뿐 아니라 마왕의 지위까지 넘겨주겠다.”
“폐하?! 무슨 말씀을…!”
크로우스가 놀라서 외쳤다. 자르칸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폐하, 그건 위험합니다. 마왕의 힘이 약해지면 마물들 사이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나를 이기면 모든 것을 가져가라는 것이다. 내가 지면, 그 또한 재미있지 않겠느냐?”
용우의 눈빛은 진지했다. 그는 진심으로 싸움을 원하고 있었다. 그 어떤 장난도 아니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진심으로 받들겠습니다.”
크로우스가 자세를 잡았다. 그의 몸에서 검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자르칸도 뒤로 물러서서 상황을 지켜보았다.
용우도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예전처럼 가볍지 않았다. 마력이 줄어든 만큼 반응 속도도 느려졌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즐겼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 그의 혈관을 타고 흘렀다.
“간다!”
크로우스가 입을 벌리며 화염을 내뿜었다. 커다란 불기둥이 왕좌를 향해 돌진했다. 용우는 몸을 옆으로 날렸다. 화염이 그의 옆자리를 스치며 지나갔다. 벽에 부딪힌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좋아! 한 번 더!”
용우는 땅을 박차고 크로우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흑룡의 비늘을 향해 내리쳤다. 하지만 평소 같으면 10레벨의 힘으로 산을 부술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저 강한 타격에 불과했다. 크로우스는 꼬리를 휘둘러 그의 공격을 막았다.
“크흐…!”
용우는 뒤로 밀려났다. 그의 손에서 피가 흘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이었다. 그는 입가를 닦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정말 오랜만이다! 이렇게 싸우는 기분!”
그의 웃음소리에 크로우스와 자르칸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하지만 곧 이해했다. 마왕이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폐하, 더 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오늘 밤은 새도록 놀아보자.”
용우는 다시 주먹을 쥐었다. 그의 눈에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날 밤, 마왕성 전체가 진동했다. 마물들은 놀라서 숨을 죽였지만, 그 소리는 언제나 기쁨과 전율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