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고 이나즈마는 차갑다
제1장 벚꽃의 맹세
천수백목신상 앞에 라이덴 쇼군이 섰다. 검은 갑옷이 석양을 반사하며 차가운 광택을 뿜었다. 벚꽃 잎이 바람에 흩날려 그녀의 어깨에 닿았지만, 쇼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나즈마의 영원이 흔들리고 있다.”
그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앞에 늘어선 아홉 명의 여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카미사토 아야카, 산고노미야 코코미, 쿠죠 사라, 사유, 요이미야, 쿠키 시노부, 키라라, 치오리. 각자의 사연을 가슴에 품은 그들 모두가 이 자리에 불려왔다.
“너희의 죄는 무겁다. 변화를 꿈꾸고, 영원을 거스르고, 이나즈마에 혼란을 불러왔다.”
쇼군의 손이 천둥의 칼자루를 스쳤다. 그 순간 하늘이 어두워지고 먼 곳에서 천둥소리가 울렸다.
“할복으로 속죄하라. 너희의 피로 영원을 다시 굳게 하라.”
여인들 사이에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 침묵 속에서 요이미야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쿠죠 사라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미사토 아야카만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마치 벚꽃이 지기 직전의 아름다움 같았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아야카의 목소리는 맑고 고요했다. 그녀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다른 여인들도 하나둘 따라 무릎을 꿇었다. 코코미는 눈을 감았고, 키라라는 꼬리를 떨었지만, 아무도 쇼군을 거스르지 않았다.
쇼군은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눈동자에는 아무 감정도 없었다. 아니, 감정을 감추고 있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천수백목신상을 향해 걸어갔다. 벚꽃이 다시 바람에 흩날렸다.
---
카미사토 아야카는 사봉행소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찻잔 속에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그 너머로 정원의 벚꽃이 보였다. 꽃잎이 바람에 흩날려 연못 위에 떠내려갔다.
그녀는 찻잔을 입술에 대고 멈추었다. 여행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이나즈마에 처음 왔을 때, 갑자기 나타나 모든 것을 바꿔놓았던 그 날들. 그가 함께 춤추던 밤, 벚꽃이 흩날리던 그 순간.
아야카는 찻잔을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는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창백한 얼굴, 단정히 묶은 머리, 그리고 눈동자 속에 숨겨진 슬픔.
“여행자여,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방 안에 메아리쳤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벚꽃이 다시 한번 흩날릴 뿐이었다.
그녀는 서랍에서 작은 부채를 꺼냈다. 그것은 여행자가 선물한 것이었다. 부채를 펼치자 벚꽃 문양이 드러났다. 아야카는 그 문양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이게 마지막이겠지요.”
그녀는 부채를 접어 가슴에 안았다. 카미사토 가문의 명예, 백로 공주의 책임, 모든 것이 그녀의 어깨에 얹혀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기꺼이 몸을 바치기로 했다.
---
쿠죠 사라는 군영의 텐트 안에 앉아 붓을 들었다. 앞에는 하얀 종이가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붓을 든 채 움직이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버님께.”
붓 끝이 종이에 닿았다. 글자가 하나둘 쓰여갔다. 충성하는 딸로서, 장수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편지.
그녀는 붓을 내려놓고 텐구 가면을 집어 들었다. 가면은 오랜 세월 동안 그녀와 함께해왔다. 전장에서 그녀를 지켜주고, 쇼군에 대한 충성을 상징하던 바로 그 가면.
사라는 가면을 얼굴에 가져갔다. 차갑고 딱딱한 감촉이 피부에 닿았다. 그리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면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그것이 천천히 번져갔다.
“쇼군님, 저는 당신을 믿었습니다.”
그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충성과 의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신앙은 그녀를 지탱해주었지만, 인간성은 그녀를 흔들었다.
사라는 가면을 내려놓고 편지를 계속 썼다.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전장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소서.”
그녀는 붓을 내려놓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다시 텐구 가면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녀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
요이미야는 불꽃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저녁 노을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마지막 폭죽을 꺼냈다. 그것은 그녀가 직접 만든 특별한 폭죽이었다. 이름은 ‘벚꽃의 꿈’.
그녀는 폭죽을 땅에 세우고 불을 붙였다. 심지가 타들어가며 불꽃이 일었다. 잠시 후, 폭죽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섞여 벚꽃 모양으로 터져 나갔다.
요이미야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꽃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었다. 결연한 표정, 그리고 미소.
“예쁘다. 정말 예쁘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단호했다. 불꽃이 점점 흩어지며 별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 줄기 불꽃이 사라질 때, 요이미야는 눈을 감았다.
“이나즈마의 밤하늘, 마지막으로 이렇게 아름다웠구나.”
그녀는 가게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벚꽃이 지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처럼, 모든 것이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후회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빛을 피우는 것이 그녀의 길이었다.
밤이 깊어가고, 이나즈마의 거리는 고요해졌다. 다만 바람만이 벚꽃을 흩날리며 울부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