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욕성환
## 제1장 불청객
녕정성의 동쪽 거리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번지는 돌길 위로, 한 여인이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여인의 옷차림은 남루했다. 누더기에 가까운 겉옷은 여러 군데 찢어져 있었고, 긴 검은 머리는 흐트러져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오랜 도피 생활에 지친 듯 어깨를 축 처뜨린 채 걸음마다 휘청거렸다.
"제발... 아무도... 찾지 마..."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섞인 중얼거림은 바람에 흩어졌다.
바로 그때, 골목 모퉁이에서 백합이 걸어나왔다.
백합은 멈춰 섰다. 순백의 천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의복은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나는 듯했다. 그녀의 눈이 길가에 쓰러지려는 여인을 포착했다.
"괜찮으십니까?"
백합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여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여인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자국이 선명한 얼굴, 떨리는 입술, 그리고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
"살려주세요... 그들이... 저를 쫓고 있어요..."
여인의 목소리는 가냘프게 떨렸다.
백합의 눈동자가 살짝 움직였다. 그녀의 후각이 미세한 냄새를 감지했다. 땀 냄새, 먼지 냄새, 그리고 그 아래에 숨겨진 어떤 향기. 평범한 도망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녀는 그것을 무시했다.
"누가 당신을 쫓습니까?"
"모르겠어요... 저는...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 그냥 도망쳐야 했어요..."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정말로 진실해 보였다.
백합은 잠시 망설였다. 광명계의 신이자 상원의 의장으로서, 그녀는 늘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이 여인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여워 보였다.
"제 집에 오시겠습니까? 적어도 오늘 밤은 편히 쉴 수 있을 겁니다."
여인의 눈이 희미하게 빛났다. 그것은 감격의 빛이었다.
"정말... 괜찮으신가요?"
"네, 따라오세요."
백합이 몸을 돌려 길을 안내했다. 그녀의 뒤에서 여인, 미토 긴코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애처로움과는 거리가 먼, 냉소와 자신감이 섞인 것이었다.
*쉽게 걸려들었군. 이 순진한 신은.*
미토 긴코는 백합의 뒤를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그녀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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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합의 집은 녕정성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저택이었지만, 그 안에는 정교한 방어 결계와 공간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입니다. 편히 쉬세요."
백합이 현관문을 열며 말했다. 그녀는 미토 긴코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응접실은 우아하고 고급스러웠다. 흰색과 은색을 기본으로 한 인테리어는 백합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한 듯 깔끔하고 정돈되어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를 가져오겠습니다."
백합이 방을 나가자, 미토 긴코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그녀의 눈에는 세심함과 계산이 담겨 있었다.
*여기 있는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군. 완벽주의자... 아니면 강박증에 가까운 집착.*
그녀는 소파에 편안히 앉아 다리를 꼬았다. 남루한 옷차림에도 불구하고, 그 동작에는 우아함과 위풍이 느껴졌다.
백합이 차를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미토 긴코 앞에 찻잔을 놓으며 자세히 살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저는... 그냥... 길 잃은 여행자라고 불러주세요. 제 이름은..."
미토 긴코는 잠시 망설이는 척했다.
"...소녀라고 불러주세요."
"소녀... 알겠습니다. 저는 백합이라고 합니다."
백합은 미소 지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의 손이 찻잔을 집어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미토 긴코의 어깨가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눈물을 흘리는 척했다.
"저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을을 습격했어요. 모두 죽었어요... 저만 겨우 도망쳤죠..."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완벽한 연기였다.
"그들이 왜...?"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저를 쫓고 있어요. 아마도... 제가 무언가를 봤기 때문일 거예요...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요..."
백합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손이 살짝 떨렸다.
*이 여인...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진짜 같아.*
"걱정 마세요. 이곳은 안전합니다.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못할 거예요."
"고맙습니다... 정말로..."
미토 긴코가 고개를 들어 백합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감사함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바로 그때, 문이 열리며 천흔이 들어왔다.
"백합,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천흔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녀의 눈이 미토 긴코를 훑었다.
"아, 천흔. 이분은... 길에서 만난 도망자야. 오늘 밤만 재워주기로 했어."
백합이 설명했다.
천흔은 미토 긴코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녀의 직감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 여인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도망자? 어디서?"
"...저는... 아무 것도 몰라요..."
미토 긴코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녀의 눈이 두려움에 떨렸다.
"괜찮아, 겁먹지 마."
백합이 미토 긴코의 손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천흔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백합이 이 낯선 여인에게 지나치게 호의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백합에 대한 신뢰가 그녀의 의심을 누르게 했다.
"...알았어. 네가 결정한 일이니까. 하지만 조심해."
천흔이 돌아서서 방을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미토 긴코는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저 여자, 의심이 많군. 하지만 그 의심도 곧 사라지게 해주지.*
"죄송합니다... 제가 폐를 끼친 것 같아요..."
"아니에요. 천흔은 원래 성격이 좀 그래요. 하지만 마음은 좋은 사람이에요."
백합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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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었다.
미토 긴코는 손님용 방에 홀로 남아 있었다. 그녀는 창가에 서서 어둠을 바라보았다.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자, 그 표정은 더 이상 애처롭지 않았다.
*계획은 순조로워. 백합의 관심을 끌었고, 그녀의 신뢰도 얻었어. 하지만 저 천흔이라는 여자가 문제야.*
그녀는 천천히 검은 스타킹을 벗기 시작했다. 그 동작은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 느리고 관능적이었다.
스타킹이 그녀의 매끄러운 다리에서 벗겨졌다. 미토 긴코는 그것을 손에 쥐고 냄새를 맡았다. 그녀의 표정이 음흉하게 변했다.
*오늘 저녁, 백합의 후각이 이상하게 반응했어. 내 냄새에 무언가 끌리는 것 같았지...*
그녀는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검은 스타킹을 복도 한가운데에 버렸다.
*냄새로 유혹하는 것도 재미있겠지.*
미토 긴코는 방으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내 향기에 이끌려, 그녀가 직접 찾아오겠지.*
한편, 백합은 자신의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코가 무언가를 감지했다. 미세하고, 달콤하면서도 자극적인 냄새. 그것은 낯선 여인에게서 풍겨나던 향기였다.
백합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 냄새... 뭐지?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거야?*
그녀는 복도로 나갔다. 발소리는 조용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그때, 그녀의 발이 무언가에 닿았다.
검은 스타킹이었다.
백합은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강렬한 향기가 그녀의 코를 찔렀다. 그것은 낯선 여인의 체취와 섞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였다.
*이건...*
백합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스타킹을 코에 가까이 가져갔다.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순간, 그녀의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참을 수 없는 유혹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이럴 수가... 나는 왜...*
백합은 자신의 행동을 부정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스타킹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냄새를 맡았다.
이번에는 더욱 깊게, 더욱 탐닉하듯이.
*주인님...*
그 단어가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백합은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스타킹을 손에 쥔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문을 닫고, 그녀는 벽에 기대어 숨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여전히 스타킹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건... 위험한 게임이야.*
백합은 알 수 없는 공포와 함께, 감출 수 없는 욕망을 느꼈다.
그녀의 눈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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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실에서, 미토 긴코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예민한 감각이 복도에서 일어난 일을 모두 감지하고 있었다.
*시작됐군. 이제 곧, 그녀는 내게 무릎 꿇게 될 거야.*
달빛이 그녀의 발가락을 비추었다. 그녀는 천천히 발가락을 움직이며, 자신감에 찬 눈빛을 빛냈다.
*이 게임의 승자는 나야, 백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