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을 때, 내가 있던 곳은 내 침실이 아니었다.
천장의 샹들리에는 내 방에 있던 것보다 한참 작았고, 침대 시트의 촉감도 달랐다. 비단이 아니라 값싼 면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가슴에 낯선 무게가 실려 있었다. 내 가슴은 이렇게 크지 않았다. 손을 내려다보니 손가락이 가늘고 길었지만, 내 손톱처럼 정성스럽게 관리된 손이 아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발가벗은 채로 방 안을 휘둘러보았다. 탁자 위에 놓인 화장품, 벽에 걸린 옷들, 모두 낯설었다. 내 옷이 아니었다. 내 방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거울. 거울이 어디 있지?
나는 비틀거리며 욕실로 달려갔다. 문을 열자 형광등이 자동으로 켜지면서 차갑고 선명한 빛이 내 얼굴을 비췄다. 거울 속에 서 있는 건 내가 아니었다.
검은 생머리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고, 얼굴은 작고 가냘프지만 눈매는 날카로웠다. 입술은 도톰하고 붉었으며, 피부는 창백했다. 그리고 목부터 쇄골까지, 음란한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장미와 가시덩굴이 얽힌 문신이 가슴까지 이어져 있었고, 거기엔 더 커진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나는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명이 목구멍에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이게... 뭐야..."
내 목소리도 아니었다. 낮고 약간 쉰 목소리, 교태를 부리는 듯한 음색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욕실 바닥에 주저앉았다. 무릎이 떨렸다. 이건 악몽이다. 분명 악몽이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자 차가운 타일의 감촉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그때, 침대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했다.
나는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에는 발신자 표시가 없었다. 메시지 창 하나가 열려 있었다.
"게임 시작, 암캐야."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누군가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 내 영혼이 이 몸에 갇힌 것도, 이 문신들도, 이 끔찍한 현실도.
나는 이를 악물고 전화 앱을 열었다. 가장 먼저 아빠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한 번, 두 번 울렸다.
"여보세요?"
아빠 목소리였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차갑고 건조했다.
"아빠! 나야, 린 뤄시! 내 몸이 바뀌었어! 누군가 나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수 완칭 씨?"
나는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요? 아빠, 내가 누군지 몰라요? 나 린 뤄시라고!"
"그런 장난은 그만둬. 우리 딸은 지금 옆방에서 자고 있어. 너는 재단 후원을 받는 그 집 아이지? 감히 우리 가족을 사칭하다니, 경찰에 신고하겠다."
전화가 끊겼다.
나는 멍하니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차단되었다. 엄마, 오빠, 집사님... 그들의 번호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가정부 아주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아주머니, 저예요! 린 뤄시!"
"아이고, 수 완칭 씨? 무슨 일로 이른 아침에 전화를... 그리고 린 아가씨 이름을 왜 함부로 부르세요?"
"아주머니, 제 말을 들어봐요. 제가 진짜 린 뤄시예요. 누군가 제 몸을 바꿔치기했어요. 제발 도와줘요!"
"에휴,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세요. 수 양, 당신은 재단에서 데려온 아이잖아요. 린 아가씨는 지금 집에서 아침 드시고 계세요. 정신 차리세요."
전화가 또 끊겼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거울 속의 얼굴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수 완칭. 그 가련하고 착한 척하는 창녀. 그녀가 내 인생을 빼앗았다.
문득, 거울 속 내 몸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 아래쪽에 작은 글자가 쓰여 있었다.
'소유주: 무명'
소유주? 나는 누군가의 소유물이 되었다는 말인가?
그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같은 번호였다. 나는 받아 들었다.
"누구야?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린 뤄시, 이제 네 몸은 내 거야."
여자 목소리였다. 달콤하고 부드럽지만, 그 속에 독이 숨어 있었다.
"수 완칭?"
"맞아. 네 인생, 네 가족, 네 모든 것. 이제 다 내 거야. 그리고 네 몸은... 앞으로 어떤 놈의 손에 넘어갈지 꽤 재미있을 거야."
"이 미친년! 당장 내 몸을 돌려줘!"
"글쎄? 게임은 이제 시작인데. 너, 재미 좀 보자."
전화가 끊겼다. 나는 핸드폰을 벽에 집어던졌다. 깨지는 소리와 함께 액정이 산산조각 났다.
욕실 바닥에 주저앉아 나는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눈물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 나는 린 뤄시다. 한때는 높고 귀했던 재벌가의 딸이다. 이렇게 무너질 순 없었다.
거울 속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기다려, 수 완칭. 네가 시작한 게임, 끝까지 가보자. 나는 절대 지지 않아."
나는 일어나 옷장을 열었다. 거기엔 싸구려 옷들만 걸려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덜 음란해 보이는 검은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부서진 핸드폰을 주워 들고, 방문을 열었다.
밖은 낯선 복도였다. 이 아파트는 어디일까? 그리고 이 몸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나는 복도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엘리베이터 앞에 거울이 있었다. 그 안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이제 두렵지만은 않았다.
"린 뤄시, 정신 차려. 이 게임, 반드시 이겨야 해."
나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나는 그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지만, 적어도 움직여야 했다. 꼼짝 않고 당할 순 없었다. 나는 수 완칭을 찾아내고, 내 인생을 되찾을 것이다.
복수의 불꽃이 가슴 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