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파도 위에

站点:NovelAI.one内容:前8章在线试读ID:25b76125更新:2026-07-05 16:56
임약계는 사장실 유리창 너머로 흐릿해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책상 위에는 분기별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숫자들은 모두 냉혹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매출은 세 분기 연속 하락했고, 직원 이직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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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안개

임약계는 사장실 유리창 너머로 흐릿해지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책상 위에는 분기별 보고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숫자들은 모두 냉혹한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매출은 세 분기 연속 하락했고, 직원 이직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보고서의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

그녀는 내선 전화를 눌렀다.

“진자 과장님, 저 잠깐 좀 뵐까요?”

몇 분 후, 진자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임약계는 그녀에게 다가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어요. 전 직원이 참여하는 해상 워크숍을 열려고 해요. 장소는 제가 알아볼 테니, 인사팀에서 일정과 프로그램을 준비해 주세요.”

진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갑자기 워크숍이라면...”

“사람들이 좀 쉬면서 마음을 열고 소통할 기회가 필요해요. 바다에 나가면 다들 긴장을 풀겠죠.”

임약계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또 다른 계획이 떠오르고 있었다.

한편, 1층 영업부 사무실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했다. 임진은 구석진 자리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데이터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 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인턴! 이 서류 좀 복사해 줘.”

조강이 두꺼운 서류 묶음을 그의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임진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복사기를 향해 걸어갔다. 조강이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요즘 인턴들은 다 이렇게 얌전한가? 참 재미없네.”

임진은 복사기 앞에서 서류를 정리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곧,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내 실력을 보여 주겠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 메시지였다.

“다음 주 워크숍, 나랑 같이 가.”

임진은 문자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또 그녀가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걸까.

워크숍 당일, 회사 앞에 도착한 버스들을 바라보며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런데 모두의 시선이 갑자기 한 방향으로 쏠렸다. 임약계가 연회색 정장 대신 진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짧은 가발을 쓰고, 등에 작은 배낭을 메고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평소보다 열 살은 어려 보였고, 마치 막 대학에 입학한 여학생처럼 보였다.

임진이 그녀를 보고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이게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쉿.”

임약계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오늘은 네 여동생이야. 이름은... 음... 임나래라고 해.”

배에 탑승하는 등록대 앞에서 직원들이 줄을 서서 명찰을 받고 있었다. 임진이 다가가 명찰을 받자, 직원이 그의 뒤에 선 임약계를 보며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구죠?”

임진이 머뭇거리자, 임약계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저는 오빠 친구예요. 구경 왔어요.”

직원이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어린이용 손목밴드를 내밀었다.

“그럼 이거 착용하세요. 갑판에서는 안전 수칙 꼭 지키고요.”

임약계가 손목밴드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재빨리 배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조용한 구석에 서서 휴대폰으로 사내 메일을 보냈다.

“긴급한 일이 생겨 워크숍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자 과장님이 진행을 맡아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한편, 배는 이미 항구를 떠나 푸른 바다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갑판 위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임약계는 그들 사이에 끼어 웃고 떠들며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을 만끽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우리 사장님 요즘 일이 너무 많은가? 워크숍도 갑자기 취소하고.”

조강의 목소리였다. 그는 몇몇 동료들과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며 불평을 쏟아내고 있었다.

“맞아, 그 나이에 그렇게 일만 하면 뭐 해? 아직도 시집도 안 갔잖아. 성격은 왜 그렇게 독한지...”

다른 직원이 끼어들었다.

“그러게 말이야. 저런 여자가 사장이라니, 우리 밑에 있는 사람들만 죽어나지.”

임약계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아이들과 함께 블록을 쌓으며 놀고 있었지만, 귀는 그들의 말에 쫑긋 세워졌다.

그때, 진자가 갑판 반대편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임약계의 뒷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 목덜미의 곡선, 어깨를 움직이는 방식, 그리고 걷는 걸음걸이... 모든 것이 사장님을 떠올리게 했다.

진자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만약 저 사람이 정말 사장님이라면, 이건 정말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될 거야. 그녀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바다 위로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배 전체가 이 층층이 쌓인 안개 속에서 점점 더 신비롭고 불가사의해지는 듯했다.

가면을 처음 쓰다

워크숍 첫날 일정은 예상보다 훨씬 자유분방했다. 임약계는 '샤오웨'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해변에 섰다. 바닷바람이 그녀의 얇은 티셔츠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일부러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얼굴에는 최소한의 화장만 했다. 거울 속 모습은 마치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샤오웨! 여기, 여기!"

직원들이 손을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 비치발리볼 팀이 한 팀 모자랐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모래 위를 뛰어갔다. 작은 체구였지만 움직임은 놀랍도록 민첩했다.

"서브는 내가 받을게!"

그녀가 외치자 몇몇 직원들이 웃었다.

"꼬맹이가 큰소리치네!"

조강이 코웃음 쳤다. 그는 상의를 벗고 민소매 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임약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공이 날아오자 그녀는 몸을 낮추며 정확히 리시브했다. 공이 세터 앞으로 정확히 떨어졌다.

"와! 샤오웨 실력 좋은데?"

진자가 박수를 쳤다. 그녀는 인사부 과장답게 항상 밝은 표정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은근히 관찰하는 듯했다.

임약계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임약계 사장'이 아니라 그저 귀여운 '샤오웨'일 때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게임이 거듭될수록 그녀는 더욱 열정적으로 뛰어다녔다. 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다. 처음 몇 걸음은 서툴렀지만 곧 몸이 풀리며 예전의 감각이 돌아왔다. 대학 시절, 그녀는 교내 배구부 주장이었다. 그 시절의 자신감이 조금씩 살아나는 듯했다.

"야, 샤오웨! 너 혹시 배구 좀 했었어?"

누군가가 물었다.

임약계가 대답하려는 순간, 조강이 끼어들었다.

"저 나이에? 아마 학교에서 좀 쳤겠지."

그녀는 그 말에 웃음을 참았다. 조강은 자신이 무시하는 이 '어린 소녀'가 실제로 자신의 상사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조강의 시선이 그녀를 스쳤다. 그 눈빛에는 무언가 의심하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야, 샤오웨. 근데 너 꼭 사장님이랑 말투가 비슷한 거 같지 않아?"

임약계의 심장이 멈칫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고개를 갸웃하며 순진한 척 물었다.

"사장님이요? 저는 아직 사장님을 뵌 적이 없어요. 어떤 분이세요?"

조강이 킥킥 웃었다.

"못 뵌 게 다행이지. 그 여자, 사람을 개처럼 부려먹는 괴물이야."

직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임약계는 그 웃음소리에 얼굴이 살짝 굳어졌지만, 곧 다시 밝은 표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공을 받기 위해 몸을 돌리며 그 말을 흘려버렸다.

한참 게임이 진행된 후, 조강이 다시 말을 걸었다.

"야, 샤오웨. 너 혹시 '이익률'이 뭔지 알아?"

임약계는 순간적으로 몸이 굳었다. 그녀는 깨달았다. 조강이 일부러 업무 용어를 꺼내며 시험해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얼마나 회사 일에 익숙한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이익률이요? 저는 숫자만 보면 머리가 아파져요. 그런 건 경리팀 아줌마들이나 알겠죠."

주변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맞아, 맞아! 경리팀은 진짜 숫자 괴물들이야!"

누군가가 맞장구쳤다. 조강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않았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때 멀리서 진자가 다가왔다. 그는 대형 트렁크를 끌고 있었다. 땀에 젖은 이마가 빛나고 있었다.

"물품 다 옮겼어. 근데 샤오웨,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임진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그 눈빛에는 뭔가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분노일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일까.

"워크숍 참여 중이야. 너도 좀 놀래?"

임약계가 가벼운 말투로 대답했다. 하지만 임진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저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머니가 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웃고 떠드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저 모습은 '임약계 사장'이 아니다. 그건 그의 '어머니'도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사람의 가면을 쓴 낯선 여자다.

임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이 직접 물품을 옮기고, 직원들에게 시키는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이 분노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노스러운 것은 저 모습을 보면서 가슴 한켠에서 올라오는 묘한 쾌감이었다.

저 강력한 여자가 이렇게 낮아지는 모습. 그것이 그에게 이상한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숯불 그릴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 왔다. 진자가 능숙하게 자리를 배치했다.

"샤오웨, 여기 앉아. 조강 선배 옆이야."

임약계는 순간적으로 불쾌감을 느꼈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조강은 이미 맥주를 두 병째 비우고 있었다.

"야, 꼬맹이. 너 취직하려면 사장님 성격 잘 파악해야 해."

조강이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임약계는 그 손길에 몸을 움츠렸다.

"사장님이 얼마나 무서운 분인데?"

그녀는 맥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쓰디쓴 맛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사장님... 좋은 분 아니에요?"

그녀가 되물었다.

순간 테이블 전체가 조용해졌다. 그러다 이내 모두가 폭소를 터뜨렸다.

"좋은 분? 하하하! 너 사장님 얼굴 한 번만 봐라. 그 차가운 눈빛에 얼어 죽을 걸!"

진자가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임약계는 그 웃음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분노를 삭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순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에이, 그래도 사장님이 회사를 잘 운영하시잖아요."

그녀가 덧붙였다.

조강이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잘 운영? 그건 수단이 더럽다는 뜻이야.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저 여자 사람 가죽을 벗겨서라도 이익을 내는 타입이야."

임약계는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고기를 집어 먹었다. 구운 고기의 연기가 눈을 찔렀다.

밤이 깊어지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선실로 돌아갔다. 임약계는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파도 소리가 귀를 감쌌다.

선실로 돌아와 문을 잠갔다. 그제야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손가락으로 얼굴을 더듬으며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티슈에 묻어나는 메이크업 속에서 서서히 임약계의 얼굴이 드러났다.

거울 속의 그녀는 낯설었다. 화장을 지운 얼굴은 초라해 보였다. 하지만 그 눈빛만은 예전과 달리 날카로웠다.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이었다. 이렇게 낮아지고, 모욕당하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 하지만 그 속에서도 무엇인가 이상한 스릴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게... 내가 원한 거였나?"

그녀가 거울 속 자신에게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람 소리만이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

임약계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이 게임의 끝이 어디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디까지 갈 의향이 있는지.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미 발을 들여놓았으니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그리고 거울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낯설었고, 동시에 너무나 익숙했다. 그것은 '임약계 사장'의 미소였고, 동시에 '샤오웨'의 미소이기도 했다.

시험의 촉수

둘째 날 아침, 워크숍장은 어제보다 더 칙칙한 분위기였다. 밤새 내린 비가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회색빛 하늘을 더욱 우중충하게 만들었다. 직원들은 반쯤 둥글게 모여 앉아 컵에 든 연한 커피를 저으며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었다.

조강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다리를 꼬고, 깎아놓은 듯한 턱을 만지면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어린 소녀’를 관통했다.

“야, 샤오웨.”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무뚝뚝했지만, 그 안에 숨길 수 없는 즐거움을 담고 있었다.

임약계는 몸을 움찔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바닥만 바라보며, 자기 주름진 치맛자락을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감았다. 그녀는 머리를 속으로 열 번쯤 저었다. *안 돼, 안 돼.* 그녀는 이런 굴욕을 당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작은 신입 여사원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네, 조 부장님.”

그녀의 목소리는 작고 떨렸다. 자신도 그 목소리를 듣고 놀랐다. 얼마나 잘 훈련된 나팔새인가, 한마디면 꼬리를 흔든다.

조강이 입가를 비틀며 일어났다. 그는 소파 앞 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흔들었다.

“다들 보는 앞에서 노래 한 곡 해 봐. 분위기 좀 띄워 봐.”

주변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몇 직원들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신나는 표정을 지었다. 인사부의 진자 과장은 고개를 갸웃하고 여린 꽃잎처럼 얼굴을 약간 기울여 관찰하는 듯이 바라보았다.

임약계는 눈을 굴리며 도움을 청하는 듯한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결국 구석에 서 있는 임진에게 닿았다. 그는 서류를 든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 속에는 분노, 당황,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그가 앞으로 나서려는 듯 잽싸게 걸음을 옮겼다.

“조 부장님, 그녀는 아직 적응 중이라……”

“닥쳐, 신입.”

조강의 목소리는 갑자기 낮고 무거워졌다. 마치 쇠못을 마루바닥에 박아 넣는 듯했다.

“네가 감히 이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참견을 하겠다는 거야. 여기 네가 말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조용히 보고 배워, 알겠어?”

임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있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먹은 주머니 속에서 꽉 쥐어졌고, 손바닥에 자국이 나도록 깊게 파고들었다.

임약계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조강 앞으로 걸어가서 회색빛 먼지가 쌓인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목구멍은 마치 가시덤불이 막은 것 같았다.

“네, 그럼…… 하나 부르겠습니다.”

그녀는 힘겹게 목소리를 꺼냈다. 그 목소리는 가늘고 떨렸지만, 방 안에서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작은 별, 작은 별…… 반짝반짝……”

그녀는 기억나는 동요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어렸을 적 아들에게 불러주던 노래였다. 그 때는 임진이 어머니 품에 안겨 환하게 웃었다. 지금 그 아들은 구석에 서서 그녀가 노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눈에는 알 수 없는 복잡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곡이 끝나자 약한 박수 소리가 몇 번 울렸다. 조강은 입꼬리를 올리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꽤 괜찮은데. 좀 더 자신감을 가져.”

임약계는 억지로 웃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바늘을 밟는 듯 무거웠다. 그녀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견뎌, 이것도 다 지나갈 거야.*

그때 진자가 조용히 손에 든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카메라를 임약계 쪽으로 살짝 돌리며 은밀히 셔터를 눌렀다. 찰칵 소리가 방 안에서 울려 퍼졌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에이, 이렇게 귀여운데, 친구들한테 보여줘야겠네.”

진자가 가볍게 웃으며 휴대폰을 흔들었다.

임약계는 일순간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진자에게 달려가며 거의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안 돼요! 진 과장님, 제발요! 삭제해 주세요!”

그녀는 진자의 팔을 잡고 애처롭게 흔들었다. 그 모습은 진짜 철부지 소녀가 애교를 부리는 것 같았다. 그녀의 눈에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맺혀 있었고, 그 눈물은 굴욕과 공포와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진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내렸다.

“아이고, 농담이야, 농담. 안 보낼게, 안 보낼게.”

그러나 그녀의 눈빛에는 아직도 흥미로운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샤오웨’와 여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 미묘한 닮은 점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비밀을 감추고 관찰하는 스릴을 즐기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회의실은 윙윙거리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직원들은 도시락을 까거나 밖으로 나가 식사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조강은 테이블에 느긋하게 앉아 팔짱을 끼고 임약계를 바라보았다.

“야, 샤오웨. 우리 커피 좀 타 줘. 모두 한 잔씩.”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수많은 시선이 임약계에게 쏠렸다.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숙여 조강의 지시를 따랐다.

“네, 조 부장님.”

그녀는 접시를 들고, 플라스틱 컵과 설탕과 프림을 정성스럽게 담았다. 접시가 꽤 무거웠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척 힘을 내려고 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접시를 받치고 다른 손으로 컵을 내리며 한 사람씩 차례대로 건넸다.

그런데 임진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손가락이 살짝 미끄러졌다.

그녀의 발 밑에 잘 보이지 않는 연장선이 있었고, 그녀의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접시가 기울어졌다. 따뜻한 커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탁자 위에 있던 서류가 즉시 흠뻑 젖었다. 중요한 영업 보고서였다.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조강이 벌떡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변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그의 목소리는 방 안을 울리며 천둥처럼 쾅쾅 울렸다.

“너 눈이 없냐? 이게 얼마나 중요한 서류인지 알아? 네 월급이 이 서류보다 더 비싸냐?”

임약계는 머리를 숙이고, 젖은 치맛자락이 다리에 찰싹 달라붙은 것을 느꼈다. 그녀의 귀는 새하얗게 질렸고, 손가락은 떨려서 컵 조각을 제대로 집지도 못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조 부장님……”

그녀는 고개를 깊이 숙여 사과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거의 울음기마저 섞여 있었다.

조강은 그녀를 노려보며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코웃음을 쳤다.

“됐다, 치워. 다시는 이런 실수하지 마.”

임약계는 얼른 바닥에 흩어진 컵 조각을 주웠다. 그녀의 손바닥이 유리 조각에 베여 피가 조금 났지만, 그녀는 고통을 참고 계속 치웠다.

임진은 구석에 서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그의 시선은 어머니의 구부러진 등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평소에 알던 강하고 당당한 여자는 지금 연약해 보이는 작고 여린 소녀가 되어 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분노, 연민, 혐오, 그리고 이상한 쾌감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어떤 충동이 그를 자리에서 붙잡고 있었다.

임약계가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거울 속의 얼굴에서 적갈색으로 변한 눈가와, 자꾸만 드러나는 잔주름을 발견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 주름을 만지며,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거울 속의 자신에게 속삭였다. “왜 그런 장난을 친 거야…… 왜……”

그녀는 물을 틀어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 물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화장이 번졌다. 그녀는 거울을 바라보며, 이 낯선 얼굴이 점점 더 낯설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그녀는 다시 일터로 돌아가야 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그녀는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불장난은 그녀가 시작한 것이었다.

길들이기의 서장

조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샤오웨, 너 꼭 우리 사장님 닮았어. 표정이랑 말투 말이야."

진자가 옆에서 킥킥 웃었다. "그러고 보니 진짜 비슷하네. 사장님처럼 저렇게 새침한 표정 한번 지어 봐."

임약계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얼굴에는 억지로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조강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하하! 완전 똑같네! 목소리도 그렇게 한번 해 봐. '이게 뭐야, 보고서 제대로 못 써?' 요렇게."

직원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임약계는 입술을 깨물었다. 목소리를 가늘게 쥐어짜 냈다. "이게... 뭐야... 보고서... 제대로 못 써?"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진자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와, 진짜다. 사장님한테 혼나는 기분이네. 근데 샤오웨가 하니까 더 귀엽다?"

조강이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너 우리 사장님 딸이냐? 왜 그렇게 닮았어? 아, 맞다. 임진! 이리 와 봐."

임진이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 조강이 그를 끌어당겼다. "야, 네 딸 재미있지? 우리 사장님 닮았는데, 어떠냐?"

임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의 목소리는 메말랐다. 조강이 다시 웃었다. "역시 임진이 딸이네, 재미있는 걸 잘 알아."

저녁이 되었다. 조강이 다가와 임약계의 손목을 잡았다. "샤오웨, 이리 와. 네가 신입이니까 직장 예절을 좀 가르쳐 줘야겠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자신의 무릎을 두드렸다. "여기 앉아 봐."

임약계의 몸이 굳어졌다. 주변 직원들이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무릎 위에 걸터앉았다. 조강의 거친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그래, 이게 직장에서 상사한테 예의를 갖추는 법이야. 우리 사장님한테도 이렇게 해야 하는데, 그 여자는 안 그러잖아?" 그는 헛웃음을 쳤다.

임약계는 숨을 죽였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경직되었다. 진자가 다가와 속삭였다. "참 얌전하네. 역시 훈련이 잘됐어."

임진이 밖으로 나갔다. 갑판에 도착하자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그는 난간을 붙잡고 몸을 구부렸다. 위가 뒤틀리는 듯한 욕지기가 올라왔다. 입안에 쓴물이 차올라 바다로 쏟아냈다.

"내가... 아무것도 못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온 목소리는 바람에 흩어졌다. 주먹을 쥐고 난간을 내리쳤다. 손등이 찢어져 피가 흘렀지만 아프지 않았다.

선실로 돌아왔을 때 임진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문가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다.

임약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신경 쓰지 마, 계속 연기해."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임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심연이 응시하다

진자가 손뼉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 깊었는데, 그냥 이렇게 끝내긴 아쉽지 않아요? 우리 '진실 혹은 대담'이나 할까요?"

직원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조강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며 소주잔을 탁자에 내리쳤다. "좋아! 재미있겠네."

진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구석에 앉아 있는 '샤오웨'에게 향했다. "처음 온 사람이니까, 우리 샤오웨부터 할까?"

임약계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전... 진실을 고를게요."

"에이, 심심해." 조강이 코웃음을 쳤다. "진실은 재미없어. 대담을 골라야지."

"맞아요! 대담! 대담!" 직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임진이 입을 열려고 했지만, 어머니의 날카로운 시선에 멈췄다. 임약계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알겠어요. 대담으로 할게요."

진자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좋아. 그럼 내가 첫 번째 미션을 낼게. 조 대리, 뭘 시킬까?"

조강의 눈이 반짝였다. 그는 천천히 임진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간단해. 저 신입 사원한테 키스해."

침묵이 방을 감쌌다. 임약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시선이 아들의 얼굴에 머물렀다가 재빨리 피했다. "그건..."

"뭐, 쫄았어?" 조강이 비웃으며 소주를 한 잔 따라 마셨다. "간단한 게임인데."

"그래요, 그래요! 빨리 해요!" "한 번만 딱! 재미로 하는 거예요!"

임약계의 손톱이 자기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임진 앞으로 걸어갔다. 아들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숙여 임진의 볼에 입술을 대었다.

직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 대단하다!" "샤오웨,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이네!"

임진의 얼굴이 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어머니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화끈거렸다. 그는 어렴풋이 그 따뜻함 속에서 무엇인가 이상한 감정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상하게도, 그것은 혐오감만은 아니었다.

게임은 점점 더 격해졌다. 진자가 다시 한 번 '샤오웨'를 지목했다. 이번에는 조강이 나섰다. "이번엔 좀 재미있는 걸로 하자. 개 짖는 소리 한 번 들어볼래?"

임약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의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왜? 귀여운 거 한 번 해보라고." 조강이 능글맞게 웃었다. "우리 다 재미로 하는 건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임진의 주먹이 무릎 위에서 꽉 쥐어졌다. 그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소리로, 두 번, 개 짖는 소리를 냈다.

"컹... 컹..."

침묵이 흘렀다. 조강이 박수를 쳤다. "하하! 진짜 하네! 귀여운데?"

임진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그는 조강의 가슴팍을 밀쳤다. "그만해! 얘는 이제 그만 쉬게 해야겠어요."

조강이 놀라며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왜, 딸바보야? 아직 재미있는 건 많은데."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임진이 단호하게 말하고 임약계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에이, 재미없게." 누군가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진자가 분위기를 봐서 말리는 척했다. "그래, 그만하자. 내일 일도 있으니까."

임진은 어머니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문이 닫히자, 임약계가 천천히 아들의 손을 놓았다. 그녀는 창가로 걸어가 등을 돌렸다.

"네가 한 행동은 옳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하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마."

임진은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견뎌야 하는 법이야." 임약계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가 살짝 떨렸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네가 참견하면 상황이 더 나빠질 뿐이야."

임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그는 어머니가 자신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착각을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착각이, 아마도 그녀가 이 모든 굴욕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몰랐다.

방 안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밖에서는 아직도 직원들의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선의 붕괴

워크숍 마지막 날 아침, 조강이 선실 문을 열며 잡아당겼다.

"샤오웨야,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우리 모두를 위해 멋진 공연을 준비했으면 좋겠어."

임약계는 방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동용 원피스를 입고, 머리는 양갈래로 땋았다. 그는 그들의 요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어젯밤 진자가 "내일 수영복을 입고 춤춰야 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싫어요..."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조강은 이미 옷장에서 수영복을 꺼내 들고 있었다. 분홍색 아동용 수영복, 앞에는 작은 리본이 달려 있었다.

"순순히 하면 쉽게 끝난다. 아니면 우리가 도와줄까?"

진자가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이미 동영상 촬영을 시작한 듯했다.

임약계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임진을 위한 것이라고.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손가락이 수영복의 천을 스칠 때, 어딘가 모르게 묘한 쾌감이 스쳤다. 마치 이런 굴욕 속에서 자신이 진정한 존재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수영복을 갈아입었다. 치마는 너무 짧아서 엉덩이를 겨우 가렸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그는 마치 진짜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연약하고, 작고, 저항할 힘이 없었다.

연회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많은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조강은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경쾌한 동요, 그러나 임약계의 귀에는 마치 조롱처럼 들렸다.

"춤춰, 샤오웨!"

조강이 손뼉을 쳤다. 다른 직원들도 따라 박수를 쳤다. 박수 소리는 점점 리듬을 타며, 마치 그를 몰아붙이는 북소리 같았다.

임약계는 눈을 감았다. 그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팔과 다리가 마치 남의 몸처럼 굳었다. 그러나 점차 그는 음악에 빠져들었다. 엉덩이를 흔들고, 팔을 들어 올리며, 가장 요염하면서도 순수한 동작을 만들려고 애썼다.

직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와, 샤오웨 춤 정말 잘 춘다!"

"한 번 더, 한 번 더!"

임약계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열정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이런 굴욕감 속에서, 그는 어쩔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마치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은 후에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구석에서 임진은 의자에 묶여 있었다.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손톱이 손바닥에 박혀 피가 났지만,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단지 어머니가 사람들 앞에서 몸을 흔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마다 마치 누군가가 그의 심장을 조여 오는 것 같았다.

분노, 무력감, 그리고 이상한 쾌감이 뒤섞여 그의 가슴속에서 끓어올랐다. 그는 이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어머니의 굴욕은 그에게 어떤 병적인 만족감을 주었다. 그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이런 희생을 하는 모습은 그가 아직 가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 주었다.

조강이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기념으로 남겨야지. 샤오웨의 이번 공연이 정말 멋있으니까."

임약계의 동작이 갑자기 멈췄다. 그는 달려가 핸드폰을 빼앗으려 했지만, 조강이 한 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어? 왜 그래? 창피한 거야?"

임약계는 발버둥 쳤지만, 조강의 힘은 너무 강했다. 그는 마치 작은 인형처럼 조강의 품 안에 갇혔다. 직원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어떤 이는 핸드폰으로 이 장면을 찍었다.

"놔줘! 제발!"

임약계의 목소리는 울먹였다. 그러나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모순된 생각이 스쳤다. 이런 굴욕이 더 많은 관심을 받게 해 주었다. 이런 뒤틀린 인정 속에서, 그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의자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임진이 몸으로 밧줄을 끊어냈다. 그의 손목에는 피가 흘렀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달려가 주먹을 휘둘렀다. 조강이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임진의 주먹이 그의 얼굴에 정확히 맞았다.

"윽!"

조강이 비틀거리며 뒤로 넘어졌다.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직원들은 모두 놀라서 숨을 죽였다.

임진은 임약계의 손을 잡아당겼다.

"따라와!"

그는 어머니를 이끌고 연회장을 뛰쳐나갔다. 뒤에서 직원들의 웅성거림과 조강의 욕설이 들렸다. 그러나 임진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단지 앞만 보고 달렸다.

선실 문이 닫혔다. 임진은 문을 잠그고, 그제야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임약계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그의 몸은 아직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수영복은 이미 축축하게 젖었고,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내가 왜 이러는 거야..."

그는 말을 더듬었다. 목소리에는 자조와 혐오가 섞여 있었다.

임진은 그를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인 것은 처음 보았다. 평소의 강하고 냉철한 여사장은 사라지고, 오직 깨지기 쉬운 어린 소녀만 남았다.

그는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약계 씨..."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너무 차가웠다.

임약계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는 임진의 눈에서 분노와 고통, 그리고 어떤 이상한 위로를 읽었다.

"진아... 나는..."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임진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팔을 벌려 그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이 포옹은 조심스러웠다.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잔을 다루듯. 임진은 어머니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거기서는 익숙한 향수 냄새가 났다. 어린 시절, 그가 아팠을 때 항상 냄새를 맡던 향기.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임진이 조용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어린 시절을 달래듯 부드러웠다.

임약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울었다. 그는 임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모든 굴욕과 분노와 혼란을 울음 속에 쏟아냈다.

임진은 그를 꼭 안았다. 두 사람은 이 좁은 선실에서 굴욕의 잔해 속에 처음으로 포옹했다. 그 순간, 그들은 모두 모순과 뒤틀림에서 잠시 벗어나, 오직 서로의 체온만을 느꼈다.

돌아온 환영

워크숍이 끝난 지 이틀, 회사는 다시 평소의 분주함을 되찾았다. 그러나 뭔가 달라졌다. 복도를 지날 때마다 직원들의 표정이 전보다 가벼워 보였고, 점심시간이면 여러 군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영업부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조강이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단체 채팅방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날 샤오웨 표정 진짜 볼만했어. 완전 울상이었는데도 참고 견디더라.”

“조강 형이 시킨 대로 엎드려서 사과하는 거 봤어? 다리 후들거리던데.”

“야, 우리 너무 한 거 아니야? 그래도 재밌긴 했지.”

조강이 키보드를 두드렸다. “다음번엔 더 단단히 준비해야지. 그런 기회 또 오겠어?”

채팅방이 잠시 조용해졌다가 곧 다시 활기를 띠었다. 누군가 ‘매주 했으면 좋겠다’는 농담을 던졌고, 곧바로 동의하는 답글이 줄을 이었다.

그 시각, 사장실에서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임약계는 책상 뒤에 앉아 정장 차림으로 단정히 손을 모은 채, 회의 테이블에 둘러앉은 부서장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워크숍, 정말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또렷했다. “여러분의 노력 덕분에 팀워크가 한층 강화된 것 같아 기쁩니다.”

과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직원들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업무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이번 기회에 확 풀린 느낌이에요.”

“맞아요.” 다른 부서장이 거들었다. “그동안 부서 간에 좀 쌓인 게 있었는데, 이번에 다 풀린 것 같아요. 다음 달 실적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겁니다.”

임약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입가에만 머물렀다.

“좋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를 정기적으로 마련하는 게 좋겠네요. 직원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테니까.”

회의가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임약계는 영업부 쪽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문틈으로 조강과 몇몇 직원들이 모여 앉아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의 입에서 ‘샤오웨’라는 단어가 흘러나왔다.

“그때 울먹이는 표정이 진짜, 아직도 생각나. 완전 어린애 같았어.”

“다음에는 좀 더 재미있는 거 시켜볼까?”

임약계의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동시에 알 수 없는 전율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그들이 ‘샤오웨’라 부르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 그 굴욕감과 함께, 아무도 모른다는 은밀한 쾌감이 뒤섞였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고 자리로 돌아갔다.

문을 닫자마자 노크 소리가 났다. 임진이 주간 보고서를 들고 들어왔다.

“사장님, 보고서입니다.”

임약계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두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임진의 눈에는 무표정함 뒤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었다. 분노? 아니면... 다른 감정?

임약계는 보고서를 받아들고 천천히 펼쳤다. 아무 말도 없었다. 임진도 말없이 서 있었다.

잠시 후, 임약계가 고개를 들어 다시 그를 보았다. 이번에는 눈빛에 경고의 빛이 스쳤다.

임진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임약계는 보고서 위에 손을 얹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 얼굴은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그 너머의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주말의 제물

화요일 아침, 사장실 책상 위에 놓인 연명부는 이미 스무 개가 넘는 서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임약계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첫 번째 서명은 조강이었다. 그의 글씨체는 거칠고 방자했다. 그 옆에는 “딸 데려오는 것도 복지다”라고 적혀 있었다. 진자의 서명은 단정했고, “아이를 보고 싶어요”라는 짤막한 멘트가 달려 있었다. 영업부, 인사부, 총무부... 거의 전 직원이 동참했다.

임약계는 연명부를 내려놓았다. 손끝이 살짝 떨렸다.

“이것들이 무슨——”

그녀는 말을 끊었다. 화가 났지만, 화를 낼 명분이 없었다. 연명부에는 '임진 사원의 딸'이란 표현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그녀의 다른 자아, 그녀의 가장 수치스러운 얼굴.

임진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불안정했다.

“어머니, 거절하셔도 됩니다.”

임약계는 그를 바라보았다. 아들의 눈에는 걱정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그 기대가 그녀를 찔렀다.

“거절하면... 그들이 뭐라 할 것 같냐?”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이성적인 판단을 가장한 변명이었다. “네가 회사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냐?”

임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변명을 찾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핑계를.

“업무에 지장만 없으면... 괜찮다.”

임약계가 대답했다. 그 순간, 그녀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뒤틀렸다. 두려움과 기대가 섞인 감정이 엉켜 있었다.

금요일 저녁 8시.

회사 건물은 텅 빈 듯했지만, 영업부 사무실 불은 켜져 있었다. 임약계는 여자 화장실에서 마지막 점검을 했다. 거울 속의 그녀는 키가 150센티미터도 안 되어 보였다. 분홍색 원피스, 흰색 양말, 검은 구두. 가발은 양갈래로 땋아 내렸고, 리본이 달려 있었다. 볼터치를 짙게 하고 입술은 반짝이는 글로스로 칠했다.

열 살짜리 여자아이.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거울 속의 아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는 너무나 성숙해서 아이의 얼굴과 어울리지 않았다.

화장실 문이 열렸다. 임진이 들어왔다. 그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잠시 멈췄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잘 어울리네요.”

그 말에 임약계의 뺨이 붉어졌다. 수치심인지, 무언가 다른 감정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닥쳐.”

그녀의 목소리는 높고 가냘프게 변해 있었다. 연습한 대로였다.

임진이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손을 잡았다. 아들의 손은 따뜻했다. 그 온기가 그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영업부 사무실로 들어갔다.

조강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진자와 다른 직원 두 명이 있었다. 모두가 술잔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샤오웨'를 보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와, 진짜 작다!”

“임진 너 딸 왜 이렇게 귀여워?”

“얼굴 좀 봐, 완전 인형이잖아.”

임약계는 임진의 뒤에 숨었다. 제대로 연기하고 있었다. 두려움에 떠는 아이처럼.

조강이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180센티미터가 넘는 그의 키는 그녀를 압도했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야, 샤오웨. 네 아빠가 회사에서 일하는 거 도와줘야지?”

임약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크게 뜨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저씨.”

조강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아. 그럼 저기 걸레랑 양동이 봤지? 바닥부터 닦자. 우리 회사 사무실은 매주 금요일 저녁에 청소해야 하거든.”

임약계는 고개를 들어 사무실을 바라보았다. 넓은 공간이었다. 적어도 서른 평은 되어 보였다. 그녀는 걸레를 들고 양동이에 물을 받았다. 찬물이 손끝을 얼렸다.

그녀는 무릎을 꿇었다.

바닥에 닿는 순간, 온몸이 긴장했다. 그들은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걸레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꼼꼼히. 마치 진짜 청소부 아줌마처럼.

“야, 속도 좀 내. 밤새 할 거야?”

조강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손목에 힘을 줘 걸레질 속도를 높였다.

사무실 구석에서 커튼이 살짝 흔들렸다. 임진이 서 있었다. 그는 야근하는 척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시선은 어머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무릎 꿇고 바닥을 닦는 모습, 그녀의 작은 체구가 힘겹게 움직이는 모습. 그것은 그에게 이상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에는 분노였다. 저들이 어머니를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하지만 그 분노는 점점 다른 것으로 변했다.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이렇게 굴욕을 당하는 모습, 그 통제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알 수 없는 쾌감에 입술을 핥았다.

“임진, 네 딸 일 열심히 하네. 칭찬해 줘야지.”

진자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알아차렸다. 그 어린 소녀의 뒷모습이 사장을 닮았다는 것을. 하지만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이 비밀을 아는 게 즐거웠다.

시간이 흘렀다. 11시, 자정, 새벽 1시.

임약계의 무릎은 시렸고, 허리는 아팠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한 번 멈추면, 그들이 더 가혹해질 것을 알았다. 그녀는 바닥 구석구석을 닦았다. 책상 밑, 의자 밑, 복도 끝까지.

“이제 저쪽 창문도 닦아.”

조강이 새 명령을 내렸다. 임약계는 걸레를 들고 창가로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비틀거렸다. 4시간 동안 무릎 꿇고 일했으니 당연했다.

그녀는 창문 틀을 닦기 시작했다. 손이 시렸다. 겨울밤이었다.

“아저씨, 추워요...”

그녀는 가냘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 진심으로 추웠다.

조강이 다가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의 손은 거칠었다.

“추우면 열심히 움직여야지. 안 움직이면 더 추워.”

그의 손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가발이 빠질 뻔했다. 임약계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가발을 붙잡았다.

다행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새벽 3시.

직원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조강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그는 소파에 누워 맥주를 마시며 '샤오웨'를 지켜보았다.

“야, 이제 그만해도 돼. 수고했다.”

임약계는 걸레를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무릎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조강이 일어나 그녀 앞에 섰다. 그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수고비야. 네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

그녀는 지폐를 받았다. 그 순간, 그녀의 손끝이 조강의 손에 스쳤다. 조강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사무실을 나갔다.

사무실은 고요해졌다.

임약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온몸이 쑤셨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참았다. 이곳에서 우는 건 더 큰 굴욕이었다.

임진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물컵이 들려 있었다.

“물 드세요.”

임약계는 컵을 받아 들었다. 물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그녀는 컵을 내려놓고 임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어떤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연민인지, 쾌락인지, 아니면 그 두 가지 모두인지.

“나...”

임약계의 목소리는 바스러질 듯 가냘팠다.

“나... 중독된 것 같아.”

임진이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그것은 만족감이었다. 임약계는 그 미소를 보고 깨달았다. 그녀는 이미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 이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새벽 바람이 사무실 커튼을 흔들었다. 그녀는 무릎을 껴안고 소파에 웅크렸다. 임진은 그녀 옆에 앉아 말없이 그녀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그녀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것 같았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내일도, 모레도, 이 일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중독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