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사쿠라는 일곱 살이었다.
마당 가득 벚꽃이 흩날리던 날이었다. 꽃잎은 눈송이처럼 바람에 실려 와 흰 비단 위에 내려앉았다. 언니 유키코는 그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화려한 후리소데 기모노는 봄빛 아래 선홍색으로 타올랐고, 금실로 수놓은 띠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사쿠라, 보아라."
어머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사쿠라는 손바닥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다. 언니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 손에 쥐어진 품검의 칼자루는 작고 섬세했지만, 언니의 손보다 더 작았다. 언니는 열여섯이었다. 가문이 저지른 전쟁의 과실. 그 책임을 지고 오늘 이 자리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다.
유키코가 천천히 칼을 빼 들었다. 칼날이 햇빛에 번뜩였다. 사쿠라는 숨을 삼켰다. 언니의 무릎 아래, 흰 비단 위로 물기가 번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이었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기모노 자락이 어두운 색으로 젖어 들었다.
"유키코, 정신을 차려라."
아버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언니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그러고는 사무라이의 딸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거두어 들이듯 고개를 곧게 세웠다.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닦지 않았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볼까지 흘러내렸다.
칼끝이 기모노의 겨드랑이 아래를 찢고 들어갔다.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가 사쿠라의 귀에 선명하게 박혔다. 찢어지는 소리, 그리고 이내 흘러나오는 핏물. 선혈이 흰 비단 위로 퍼져 나가며 자지러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언니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 으..."
사쿠라는 그 소리를 잊을 수 없었다. 고통과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오르는 무언가. 언니의 배 속에서 내장이 꿈틀거리는 것이 얇은 비단 위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창자가 비집고 나오려는 듯 경련을 일으켰다. 유키코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고 비틀었다. 더 깊이, 더 넓게.
눈물과 식은땀, 침이 뒤섞여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그러나 사쿠라는 보았다. 그 고통의 한가운데서 언니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당겨졌던 입가가 풀리고, 눈동자의 초점이 흐려지면서도 그 속에 이상한 빛이 스며들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했다. 유키코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프고, 무섭고, 죽어 가면서도 그녀는 미소 짓고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는 순간, 그 너머에서 금지된 따뜻함이 몰려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름다워..."
언니가 중얼거렸다. 핏물이 벚꽃잎을 적셔 검게 물들였다. 비단 위로 피가 계속 퍼져 나갔다. 언니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마지막 숨을 내쉬며 그녀의 눈이 감겼다. 얼굴에는 평화가 깃들어 있었다. 고통과 황홀함이 뒤섞인,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사쿠라는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아랫배에서 이상한 저릿함이 꿈틀거렸다.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무언가가 배 속에서 꿈틀거리며 깨어나는 듯했다. 사쿠라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감쌌다. 그 감촉은 따뜻했고, 동시에 무언가에 갈망하는 듯했다.
그날 이후로 사쿠라는 변했다.
언니가 입었던 선홍색 후리소데 기모노, 흰 비단, 금실 띠, 그리고 품검. 그 모든 것이 그녀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 무엇보다도 언니가 마지막에 지었던 그 표정. 고통의 절정에서 피어난 황홀함. 그것이 사쿠라를 사로잡았다.
자라면서 그녀는 기모노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특히 할복할 때 입는 격식 있는 예복을 찾아다녔다. 여성의 할복은 남자와 달랐다. 가슴이 아닌 배를 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얼굴에 떠오르는 고통과 쾌락의 경계. 사쿠라는 그것에 집착했다.
이십 년이 흘렀다.
사쿠라는 지금 일본 육군 정보부 장교였다. 뛰어난 두뇌와 냉철한 판단력으로 여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다. 그러나 그녀를 아는 자들은 그녀의 기이한 복장에 대해 수군거렸다. 그녀는 언제나 분홍색 후리소데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흰색 띠를 매고, 게다와 다비 신발을 신었다. 허리에는 항상 품검을 숨기고 있었다. 군복을 입어야 할 자리에서도 그녀는 기모노를 고집했다.
"사쿠라 대위, 당신은 군인입니다. 제복을 입으시오."
상관이 몇 번이나 지적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숙여 사과할 뿐 고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명령을 완벽히 수행했다. 그 능력 때문에 그녀의 기벽을 눈감아 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느 늦봄 저녁이었다.
사쿠라는 자신의 방에 앉아 품검을 닦고 있었다. 칼날에 비친 자신의 눈동자가 어둡게 빛났다. 창밖으로 벚꽃이 다시 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손에 든 품검을 살며시 만지며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그 감각이 돌아왔다.
배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갈망이었다. 오래전 그날, 언니의 모습을 목격한 이후로 멈추지 않는 갈망. 사쿠라는 눈을 감았다.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통에 찢기면서도 황홀했던 그 표정. 그때 느꼈던 저릿함이 다시 몸을 타고 흘렀다.
"아름다워..."
사쿠라는 입술 사이로 중얼거렸다. 그 말은 언니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제는 제물이 필요했다. 자신의 갈망을 먹여 살릴 아름다운 그릇. 언니처럼 고통과 황홀함의 경계에서 아름답게 부서질 존재.
사쿠라는 기모노의 주름을 정리했다. 흰색 띠를 다시 매고, 품검을 허리에 꽂았다. 거울 속의 자신이 바라보았다. 분홍색 기모노를 입은 여자. 장교가 아니라, 언니의 환생처럼 보였다.
그녀는 방을 나섰다.
군율과 규율의 바깥으로, 그녀만의 사냥터로. 제물이 될 아름다운 그릇을 찾아서. 배 속의 꿈틀거림이 점점 더 거세졌다. 사쿠라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는 언니의 마지막 순간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