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존: 암영의 정욕
## 제1장 암류의 움직임
영검산 정상, 만년청송이 우거진 깊은 골짜기.
서북연은 푸른 장포자락을 날리며 조용히 요요의 수행 동굴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근심 가득한 표정이 떠올라 있었지만, 눈동자 깊은 곳에서는 알 수 없는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요요, 괜찮으신가?"
부드러운 목소리가 동굴 안으로 스며들었다. 서북연은 손에 든 영과를 살며시 어루만지며 말을 이었다.
"주원 형님이 폐관 수행 중이셔서, 형님을 대신해 누님께서 혹시 곤란한 일은 없으신지 살펴보러 왔습니다."
동굴 안에서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드디어 요요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 도주께서 직접 오실 일이 아니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서북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손가락이 영과 표면을 스치자 은은한 광채가 번져나갔다.
"누님께서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 영과는 받아주십시오. 형님께서 출관하시기 전까지 누님의 건강을 제가 지켜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투에는 거절할 수 없는 부드러움이 배어 있었다. 요요는 잠시 망설이다가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은발이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났고, 창백한 얼굴에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습니까?"
서북연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다. 그는 고개를 숙여 정중하게 인사했다.
"꿍꿍이라니요? 저는 단지 형님의 부탁을 받들어 누님을 보필할 뿐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자 손바닥 위의 영과가 황금빛 기운을 뿜어냈다. 요요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것은 천 년에 한 번 열매를 맺는다는 금령과였다.
"이걸 제게 주시겠다는 겁니까?"
"네. 누님의 수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서북연의 따뜻한 시선이 요요의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쳤다. 그 순간, 요요는 자신도 모르게 그 온기에 이끌려 손을 내밀고 있었다.
***
며칠 후, 무요가 무술 연마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였다.
"무요, 혼자 수련하는 게 외롭지 않으냐?"
서북연이 연회색 도포를 입고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두 개의 찻잔이 들려 있었다.
"도주께서 무슨 일로 이곳에?"
무요는 검을 거두고 차갑게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주원 형님 얘기를 하려고 왔다."
서북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형님이 폐관하시기 전에, 무요를 잘 돌봐 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형님은 항상 무요를 생각하신다."
"주원 님이 저를요?"
무요의 목소리에 희미한 떨림이 섞였다. 서북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찻잔 하나를 그녀에게 건넸다.
"물론이다. 하지만 가끔은... 형님이 당신의 마음을 너무 늦게 깨닫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의 말에 무요의 손이 살짝 움찔했다. 서북연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놓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형님은 오로지 무도의 정점만 바라보신다.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잘 보지 못하신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다, 내가 너무 걱정이 많았나 보다. 자, 이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라. 내가 직접 우린 명차다."
서북연은 따뜻하게 웃으며 찻잔을 내밀었다. 무요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 찻잔을 받아 들었다. 차향이 코끝을 스치자 그녀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도주께서는 주원 님과 참 각별하시군요."
"그렇다. 형님은 나의 은인이다. 그래서 형님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내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북연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가 찻잔을 기울일 때, 그의 눈동자 속에 스치는 어둠을 무요는 알아채지 못했다.
***
소유미는 약초밭에서 허리를 굽혀 영초를 따고 있었다. 그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고, 순수한 눈동자에는 곤혹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아직도 영초를 캐고 있었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소유미가 놀라 몸을 돌렸다. 서북연이 그녀 뒤에 서서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서, 서 도주님!"
소유미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서북연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손에 든 영초를 살펴보았다.
"수련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구나. 이 영초는 기운을 조절하는 데 쓰는 것이지?"
"네, 도주님. 제가 아직 기운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그렇다면 내가 가르쳐 주마."
서북연이 그녀의 손목을 살며시 잡았다. 그의 손에서 전해지는 따뜻한 기운이 소유미의 경맥을 타고 흘러들었다.
"여기, 이쪽으로 기를 집중해 보아라."
그의 손가락이 소유미의 손등을 스치며 내려갔다. 소유미는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숙였다.
"도, 도주님..."
"무서워할 것 없다. 나는 단지 너의 수련을 도우려는 것뿐이다."
서북연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소유미의 붉어진 귀와 가냘픈 어깨선에 고정되어 있었다.
"앞으로 내가 자주 찾아와서 가르쳐 주마. 좋겠느냐?"
"감사합니다, 도주님!"
소유미가 기쁜 듯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순수한 눈동자에는 믿음과 존경만이 담겨 있었다. 서북연은 그 모습을 보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
그날 밤, 서북연은 자신의 서재에 앉아 지도를 펼쳐 놓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천천히 따라 움직였다.
"주원 형님의 폐관은 앞으로 석 달..."
그의 중얼거림은 서늘한 웃음으로 이어졌다. 서북연은 붓을 들어 지도 위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요요가 수행하는 동굴, 무요가 자주 찾는 연무장, 소유미가 머무는 약원. 그 모든 곳이 그의 계획 속에 연결되어 있었다.
"멀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
서북연이 붓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도저히 선해 보이지 않는 미소가 번졌다.
"주원 형님, 당신이 무도에만 집중하는 동안,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가져가겠소."
그의 손이 허공을 스치자 서늘한 기운이 서재를 감쌌다. 서북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요요, 무요, 소유미... 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어떻게 요리할지 지켜보시게나."
그의 목소리에는 냉소와 욕망이 뒤섞여 있었다. 달빛 아래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마치 어둠 자체가 형체를 이룬 듯했다.
다음 날 아침, 서북연은 세 명의 여인에게 각각 다른 쪽지와 함께 영약을 보냈다.
요요에게는 '주원 형님의 부탁으로 보내는 영약'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복용법이 적힌 쪽지를 보냈다. 무요에게는 '함께 차를 마시며 주원 형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초대장을 보냈다. 소유미에게는 '수련 지도를 위해 오후에 약원을 방문하겠다'는 전갈을 보냈다.
서북연이 바람개비처럼 각각의 여인들을 돌보는 동안, 주원의 폐관 동굴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그리고 며칠 후, 서북연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요요, 무요, 소유미. 주원 형님을 위해 묘약을 구하러 황룡곡으로 가고자 합니다. 세 분도 함께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의 눈에는 진심만이 담겨 있는 듯 보였다. 세 여인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룡곡으로 가는 길은 험난할 것이고, 그곳에는 주원이 폐관한 동굴과는 반대 방향에 위치해 있었다. 서북연의 계략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길을 나서며 서북연은 자신의 소매 속에 감춰진 작은 병을 만지작거렸다. 그 병 속에는 세 여인의 의식을 흐릴 수 있는 약이 들어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지만, 그가 원할 때면 언제든 쓸 수 있었다.
"모든 것은 내가 정한 대로 흘러간다."
서북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그의 그림자가 세 여인의 발걸음을 따라 길게 늘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