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범은 사무실 책상 뒤편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했다. 화면에는 회사 내부망의 접속 기록이 실시간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업무 관련 사이트나 뉴스, 간단한 메신저 사용이 전부였다. 하지만 한 이름이 그의 시선을 멈추게 했다.
엽강.
그의 접속 기록은 다른 직원들과 확연히 달랐다. 최면술 관련 커뮤니티, 야설 사이트, 그리고 최면 세뇌에 관한 전문 블로그까지. 임범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기록을 더 자세히 살폈다. 엽강은 같은 사이트를 하루에도 수차례 방문했고, 특히 '최면으로 상대를 지배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반복해서 읽은 흔적이 선명했다.
"흥미롭군."
임범은 천천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는 원래부터 사람의 심리를 꿰뚫는 데 탁월했다. 그리고 그 심리를 이용해 게임을 만드는 것도 그의 특기였다. 엽강은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눈에 띄는 직원이었다. 늘 구석에 처박혀 일하고, 점심시간에도 혼자 도시락을 먹으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그런 남자였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 숨겨진 욕망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임범은 마우스를 움직여 몇 가지 자료를 추가로 검색했다. 엽강이 즐겨 찾는 최면 사이트 중 하나는 아마추어들이 만든 가상 현실 게임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용자가 최면 스크립트를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임범은 그 사이트의 URL을 복사해 따로 저장했다.
그날 저녁, 임범은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현관문을 열자 거실에서 은은한 향초 냄새가 풍겨왔다. 아내 서청이 거실 소파에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그를 보며 반겼다.
"어? 벌써 퇴근했어요?"
"응. 재미있는 걸 발견해서."
임범은 넥타이를 풀며 소파에 앉았다. 서청이 궁금한 듯 몸을 일으켜 그의 무릎에 기대었다.
"무슨 재미있는 건데?"
"우리 회사에 재미있는 직원이 하나 있어. 엽강이라고 아는가?"
"엽강... 아, 그 조용하고 눈에 잘 안 띄는 직원? 저번에 회식 때 혼자 술만 마시던 그 사람?"
"맞아. 그런데 걔가 최면에 진짜 빠져 있더라. 회사 내부망으로 최면 사이트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어가더라고."
서청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항상 무언가 재미있는 계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거예요?"
"간단한 게임 하나 해보려고. 걔가 최면에 그렇게 관심이 많다면, 실제로 경험하게 해주는 거지. 물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말이야."
임범은 서청의 허리를 감싸며 조용히 속삭였다. 서청은 그의 말을 듣자 얼굴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띠었다.
"그러니까... 제가 그 엽강 씨를 최면에 빠뜨려서 길들이라는 거예요?"
"정확해. 너는 내가 훈련시킨 대로 행동하면 돼. 걔가 이미 최면에 미쳐 있으니까, 적당한 트리거만 넣어주면 금방 걸려들 거야. 그리고 나중에는..."
"나중에는?"
임범은 서청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달콤했다.
"나중에는 네가 그를 통제하게 될 거야. 그리고 그 통제권은 결국 내 손에 있겠지. 재미있지 않아?"
서청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길들여지는 쾌감을 사랑했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다른 사람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느끼는 짜릿함도 놓칠 수 없었다. 특히 남편이 계획한 게임이라면 더욱 그랬다.
"좋아요. 그럼 계획을 알려주세요."
임범은 스마트폰을 꺼내 몇 가지 사이트를 보여주었다. 엽강이 주로 방문하는 최면 커뮤니티, 그리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야설 목록까지.
"일단 접근은 자연스럽게 해야 해. 너는 새로운 직원 교육을 담당하고 있잖아? 그 핑계로 그와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 그리고 대화 중에 최면 이야기를 슬쩍 흘려보는 거야. 걔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라고."
서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용을 꼼꼼히 숙지했다. 그녀의 눈에는 벌써부터 모험에 대한 기대감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럼 언제부터 시작할까요?"
"내일부터. 아침에 출근해서 그에게 먼저 말을 걸어. 간단한 업무 지시로 시작해서 자연스럽게 점심 식사 자리로 이끌어. 거기서 한 번 테스트해보자."
임범은 서청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방 안에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기억해. 이 게임의 승자는 항상 나야. 너도 그 일부일 뿐이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야."
서청은 그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볼에 문지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전 항상 당신의 게임을 즐기잖아요."
밤이 깊어갔다. 거실에는 여전히 향초 연기가 은은하게 감돌고 있었고, 두 사람은 게임의 세부 사항을 조금씩 다듬어갔다. 임범은 엽강의 심리를 완벽히 분석한 도표를 만들어 서청에게 설명했고, 서청은 그 도표를 바탕으로 접근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임범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서청의 이마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내일이 기대되네."
"저도요.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은 오랜만이에요."
서청은 소파에 몸을 눕히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미 엽강이 최면에 걸려 자신의 명령에 따르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임범의 차가운 미소도 함께.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게임의 첫 수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놓일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