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연은 눈을 떴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선 하늘이었다. 두 개의 달이 떠 있었고, 하나는 은백색, 다른 하나는 핏빛 붉은색이었다. 검은 숲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공기 중에는 익숙하지 않은 향기와 함께 어두운 에너지의 파동이 감돌고 있었다.
“차원 이동, 성공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손을 들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형체가 없는 푸른 빛의 무늬가 스치듯 번쩍였다. 각본 로딩 금손. 그의 능력이었다.
림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몸을 살폈다. 기존의 인간 육체는 그대로였지만, 이 세계의 법칙에 적응한 듯 체감 능력이 훨씬 예민해졌다. 그는 숲을 가로질러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발밑의 검은 이끼는 그의 발걸음에 반응하며 희미하게 빛났다.
숲을 빠져나오자, 언덕 위에 거대한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돌로 쌓은 성벽, 그 위로 어둠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바로 암영 정원이었다.
림연은 언덕 아래 그늘에 숨어 정원의 입구를 관찰했다. 곧 두 명의 엘프 여성이 정문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명은 은발이 허리까지 내려오고, 눈동자는 호박색이며, 우아하고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다른 한 명은 금발의 단발머리에, 손에 문서철을 들고 있었다. 그녀들은 대화를 나누며 지나갔다.
“알파 님, 오늘 밤 순찰 일정을 이미 정리했습니다.”
“수고했어, 베타. 어둠의 신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림연의 눈에 냉랭한 빛이 스쳤다. 알파와 베타. 칠영 중 첫 번째와 두 번째였다. 그는 정보를 알고 있었다. 차원 이동 전, 그는 이 세계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자료를 미리 입수해 두었다.
며칠 동안, 림연은 암영 정원을 관찰하고 정찰했다. 그는 정원의 구조, 칠영 각자의 행동 패턴, 교대 시간을 전부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이 세계의 힘 체계도 이해했다. 어둠의 에너지가 깃든 이 땅에서, 그는 자신의 각본 로딩 능력을 한계 없이 발휘할 수 있었다.
사흘째 되는 밤, 림연은 행동에 나섰다.
알파는 매일 밤 자정이면 정원 동쪽 탑 위에서 혼자 기도를 올렸다. 림연은 그 시간을 정확히 노렸다. 그는 그림자 기술을 이용해 탑 위로 몰래 올라갔다. 알파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고 어둠의 신에게 기도하고 있었다.
림연은 숨을 죽이고 다가가, 손바닥을 알파의 뒷머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가져갔다.
그 순간, 푸른 빛이 손바닥에서 흘러나와 알파의 머리를 감쌌다.
“각본 로딩: 노출증.”
림연이 속삭였다.
알파의 몸이 움찔했다. 그녀의 눈이 갑자기 떠졌지만, 시선은 흐릿했다. 각본이 그녀의 의식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녀는 림연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표정에는 기도하던 중이던 경건함 대신 어색한 당혹감이 번졌다.
“누... 누구십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고, 이내 자신의 옷깃이 풀어지려는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그것을 애써 억누르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림연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응시했다. 각본이 완전히 로딩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조용히 탑에서 내려와 정원 밖의 그늘로 사라졌다.
다음 날 밤, 알파는 다시 기도하러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행동이 달랐다. 무릎을 꿇은 자세가 불안정했고, 손가락은 옷자락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기도문을 외우던 중, 그녀는 갑자기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망토를 벗기 시작했다.
“안... 안 돼, 나 왜 이러지?”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애써 망토를 다시 입으려 했지만,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망토를 벗어 던지고, 겉옷까지 벗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그녀의 드러난 어깨를 스쳤다.
림연은 멀리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1차 각본 로딩, 부분 성공.
그는 그림자 속에서 계속해서 알파를 관찰했다. 그녀는 혼란과 갈등 속에서 망토를 다시 입으려 애쓰지만, 자꾸만 벗어 던지는 행동을 반복했다.
“아직 완전히 깨지지 않았군. 그래도 시작은 좋아.”
림연은 낮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하고는 정원 밖으로 걸어나갔다. 앞으로의 계획은 더욱 정교해야 했다. 그는 자신의 각본이 이 세계에서 점차 완성될 것임을 확신했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반짝였다. 마치 사냥감을 향한 올빼미의 시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