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풍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소염의 저택을 은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독사를 닮아 차갑고 날카로웠다. 손가락 끝으로 책상 위에 펼쳐진 비단 두루마리를 톡톡 두드리며, 그 위에 적힌 여인들의 이름과 정보를 하나하나 되새겼다. 소의선, 나란연연, 운운, 소훈아, 채린, 소소. 모두가 소염의 곁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와 엮인 여인들이었다.
“소염, 너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곧 하나하나 빼앗기게 될 것이다.”
혼풍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먼저 가장 약한 고리부터 공략하기로 마음먹었다. 소의선, 그 온화하고 순진한 여인은 오래전부터 혼풍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녀의 약점은 바로 남을 쉽게 믿는 성격이었다.
이튿날, 혼풍은 약초방으로 향했다. 소의선이 혼자서 약초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녀는 손끝으로 약초의 잎사귀를 조심스럽게 만지며,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혼풍은 문지방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의선 부인께서는 이렇게 일찍부터 약초를 손보시는군요.”
소의선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혼풍의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가 떠 있었다.
“혼풍 대협께서 이곳에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며칠 전 무술 수련 중에 어깨를 다쳐서 말이오. 혹시 부인께서 치료해 주실 수 있겠소?”
혼풍은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하며 다가갔다. 소의선은 망설임 없이 그에게 다가와 상처를 살폈다. 그 순간, 혼풍의 손이 살며시 그녀의 손목을 스쳤다.
“부인의 손길은 정말 온화하시군요. 어쩌면 이렇게 상냥하신 분이 소염 같은 무뚝뚝한 사람의 아내가 되셨을까요?”
소의선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런 말씀 마십시오. 남편은 비록 냉담해 보이지만, 마음속으로는 저를 잘 챙깁니다.”
“정말 그럴까요?” 혼풍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부인께서 얼마나 외로움을 느끼고 계신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부인 같은 아름다운 분이 혼자서 이 약초방에 틀어박혀 지내시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소의선은 고개를 숙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혼풍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저는 부인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고 싶습니다. 만약 부인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제가 곁에서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그의 말에는 부드러움 속에 교활함이 숨어 있었다. 소의선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손을 떨었다. 혼풍은 그녀의 반응을 만족스럽게 바라보며, 이미 그의 그물에 걸려들었다고 확신했다.
한편, 나란연연은 소염의 무관심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재능을 자랑스러워했지만, 소염은 그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연회장에서 소염이 다른 이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가슴속에는 질투와 원한이 꿈틀거렸다.
그때, 혼풍이 조용히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나란 소저께서 혼자 계시는군요. 소염 대협께서는 아름다운 여인을 이렇게 외롭게 두시다니, 실례가 아닐까요?”
나란연연은 차갑게 대꾸했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상관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혼풍이 능글맞게 웃었다. “저는 소저 같은 절세미인이 무시당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만약 소저께서 저를 믿으신다면, 제가 반드시 소염 대협의 마음을 돌려놓겠습니다.”
“네가? 어떻게?”
“소저께서는 약간의 인내심만 가지십시오. 곧 소염 대협께서 소저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소저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혼풍의 말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나란연연은 그의 눈빛에서 어떤 음모를 읽었지만, 그녀의 자존심은 이미 상처받아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좋다. 네가 약속을 지킨다면, 나도 너를 믿겠다.”
혼풍은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며,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감추었다. 첫 번째 움직임은 성공적이었다. 이제 다음 여인들을 차례로 공략할 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며, 암류처럼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