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성의 높은 첨탑을 비추며 유리창을 통해 황금빛으로 물든 긴 복도를 물들였다. 앨리시아는 대리석 기둥이 늘어선 대전의 중앙에 서 있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은실로 수놓은 자수정 빛 비단으로, 움직일 때마다 반짝이며 무거운 운율을 그렸다. 목에는 어머니가 남긴 진주 목걸이가 감겨 있었고, 그 광택은 그녀의 순결하고 고귀한 분위기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신하들이 하나둘 무릎을 꿇고 절했다. 그들의 머리는 숙여져 있었지만, 앨리시아는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려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존경이었고, 혹은 경외였다. 그녀는 가볍게 입술을 열었다.
"일어나십시오. 오늘도 변함없이 성을 위해 힘써 주십시오."
목소리는 맑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공주로서의 위엄이 담겨 있었다. 신하들이 일어나 물러나자, 그녀의 시녀가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공주님, 오늘 오후 일정은 비어 있습니다. 정원 yielded 산책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앨리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긴 치마자락을 정리했다. 그녀는 발코니로 걸어 나가 성 아래의 광장을 바라보았다. 노점상들이 늘어선 거리, 사람들의 왁자한 웃음소리,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초라한 천막들. 그 광경은 그녀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저 아래 무슨 일이 있지?"
시녀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오늘 노예 시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공주님. 길가에서 가난한 이들이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앨리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준비해라. 내가 직접 가보겠다."
시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 마차가 준비되고 호위병들이 뒤따랐다. 앨리시아는 마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공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그 의무가 무엇인지, 그녀는 종종 혼란스러웠다.
마차가 노예 시장에 도착하자, 공기의 냄새가 달라졌다. 흙과 땀, 그리고 절망이 섞인 냄새였다. 앨리시아는 시녀의 손을 잡고 내렸다.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길을 비켰다. 그들의 시선에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천막 사이를 걸으며 노예들을 살폈다. 대부분은 초췌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었고, 어떤 이는 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때, 그녀의 눈에 한 여자가 들어왔다. 갈색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누런 천으로 된 옷을 입고 땅에 엎드려 있었다. 그러나 그 여자가 고개를 들었을 때, 앨리시아는 그 눈동자 속에서 이상한 빛을 보았다. 그것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날카로운 빛.
"저 여자는 누구지?"
상인이 다가와 아첨하며 말했다.
"공주님, 이 아이는 리나라고 합니다. 원래는 귀족 집안에서 일했지만 주인이 죽은 후 노예로 팔렸습니다. 아직 젊고 힘도 좋습니다."
앨리시아는 리나에게 다가가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리나는 고개를 숙인 채 목소리를 낮추었다.
"리나라고 합니다, 공주님."
그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나 평온했다. 앨리시아는 그 차가운 평온함에 끌렸다.
"네가 내 전속 하녀가 되겠느냐? 성에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리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앨리시아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속에서 앨리시아는 무언가 스치는 것을 보았다. 증오일까, 아니면 계략의 단서? 그러나 그 순간 리나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공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앨리시아는 상인에게 금화를 건네고 리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리나는 그 손을 잡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성으로 돌아오는 길, 리나는 마차 구석에 조용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앨리시아는 그녀에게 몇 마디를 건넸지만, 리나는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성문이 열리고 마차가 안뜰로 들어서자, 리나는 성의 높은 벽과 정원을 바라보며 미세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 속에 복수심이 번뜩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앨리시아조차도.
밤이 깊었다. 리나는 하녀들의 방에 배정받았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살짝 긁으며 중얼거렸다.
"공주님, 당신은 아직 모르겠지요. 내가 언젠가 이 손으로……."
그녀는 웃었다. 그 웃음은 조용했지만, 어둠 속에서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