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보는 깎아지른 절벽 위에 우뚝 솟아 있었다. 구름을 뚫고 솟은 봉우리 위, 돌로 쌓은 성벽은 천 년의 세월을 견뎌낸 듯 웅장하고도 거칠었다. 그 성문 안에서 옥낭은 자랐다. 아버지 심룡비의 손에 이끌려 해가 뜨기 전부터 무예를 익혔고, 눈이 내리든 비가 내리든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몸짓은 유려했다. 호신강기(護身罡氣)가 푸른 빛을 띠며 손끝에서 춤을 추었다. 열여덟 살의 나이에 이미 비룡보 최고의 검수로 불렸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녀를 아는 이유는 무예 때문이 아니었다. 옥낭은 아름다웠다. 그 미모는 단순한 용모를 넘어 마치 달빛을 응축한 듯한 기품을 지녔다. 백옥 같은 살결, 가늘고 맑게 선 콧날, 그리고 붉은 연꽃잎처럼 도톰한 입술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했다. 그녀가 성문을 나서면 강호의 협객들은 말을 멈추고 길을 비켰으며, 그녀가 지나간 자리엔 봄꽃이 핀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그날, 그 아름다움은 위기를 불러들였다.
불현듯 하늘이 어두워졌다. 협곡 너머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오듯 수백 명의 무사들이 비룡보를 향해 진격해 왔다. 깃발은 나부끼지 않았다. 그들은 걸음걸이조차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선두에 선 젊은 고수는 자줏빛 도포를 휘날리며 공중을 미끄러지듯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차갑고 교만했다. 천당방(天堂坊)의 방주, 위동청이었다.
“비룡보에 흑영지(黑靈芝)가 있다는 소문은 사실이더군.”
위동청은 음험한 미소를 지었다. 흑영지. 공력을 백 배로 증폭시킨다는 전설의 영초. 천 년에 한 번 핀다는 그 초목을 차지하기 위해 열두 개의 문파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위동청은 그중 가장 먼저 비룡보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보주 심룡비에게 전하라. 흑영지를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노라고.”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살육이 시작되었다.
칼과 검이 부딪치는 쇳소리, 피 냄새가 바람에 섞여 퍼졌다. 심룡비는 직접 검을 빼어 위동청과 맞섰다. 그는 강자였다. 오십 년의 내공이 실린 장검은 마치 용의 발톱처럼 맹렬했다. 그러나 위동청은 달랐다. 그의 장력(掌力)은 무서울 정도로 정교했다. 마치 실타래를 풀듯 심룡비의 검세를 하나하나 풀어내더니, 결국 빈틈을 찾아 가슴을 내리쳤다.
심룡비의 몸이 절벽에 내리꽂혔다. 돌이 부서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성 안까지 들렸다.
“석 달이다.”
위동청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심룡비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석 달 안에 흑영지를 가져와라. 그렇지 않으면 비룡보의 모든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노예로 삼겠다. 특히…”
그의 시선이 살며시 옆으로 옮겨갔다. 성문 안, 칼을 쥔 채 떨고 있는 한 여인에게 꽂혔다. 옥낭이었다. 위동청의 눈이 번뜩이며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그의 호흡이 잠시 멈추었다.
“저런 여자는 처음 보는군.”
그 짧은 속삭임은 그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피식 웃고는 몸을 돌려 천천히 사라졌다. 그의 뒤를 따라 무사들도 물러갔다. 비룡보는 깃발이 찢기고 성벽이 무너진 폐허가 되어 남았다.
그날 밤, 옥낭은 아버지의 침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심룡비는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입가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보주님의 내상은 맥을 끊을 듯합니다. 흑영지가 아니고서는 소생할 가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흑영지는 만독의 늪 깊은 곳에서만 자란다는 전설이 있을 뿐, 그 위치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옥낭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예전처럼 따뜻하지 않았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수많은 생각이 스쳤다. 어릴 적 아버지가 가르쳐준 검술. 비룡보의 높은 성벽 위에서 함께 본 일출. 그리고 오늘 본 위동청의 그 음험한 눈빛.
“흑영지는 반드시 있습니다.”
옥낭이 일어섰다. 눈동자에는 불꽃이 살아 있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흑영지를 찾아오겠습니다.”
심룡비가 간신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애처로움이 섞여 있었다.
“안 된다… 그곳은… 네가 갈 곳이 아니다. 흑영지는… 사람을… 짐승으로 만든다…”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지듯 희미해졌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옥낭은 아버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마음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허리에 검을 차고, 어깨에 보따리를 맸다.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성문을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은 가냘프면서도 그 누구보다도 강렬했다.
동이 트고 있었다.
비룡보의 성벽 아래, 붉은 노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옥낭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흑영지를 찾기 위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위동청이라는 사내가 씻을 수 없는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그녀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