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 법정은 오늘도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노예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스크린 속 법관은 무표정하게 문서에 서명했고, 시민들은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빚더미에 앉은 가난한 이들에게 이 법은 구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더 깊은 나락으로 이끄는 미끼였다.
소 가문의 저택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정원의 샛길을 따라 늘어선 철쭉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소청은 서재 창가에 서서 아버지가 집사 노진과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구 가문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노진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저희 정보망에 따르면, 그들은 이미 무장 인력을 고용했습니다.”
소 가주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가 무고한 여성들을 납치해 노예로 만든다는 증거를 그들이 잡은 모양이군. 하지만 우리도 똑같이 더러운 짓을 저질렀다. 연방 법을 위반하며 무력을 키운 것은 매한가지다.”
소청의 손가락이 창틀을 감쌌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하는 일이 표면적으로는 자발적 노예 거래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자들의 주문을 받아 무고한 여성들을 납치해 정신을 조종하는 끔찍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녀는 어릴 때부터 이 사실을 알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 자신도 이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식탁에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찜 요리가 놓여 있었다. 소청은 숟가락을 들다 말고 갑자기 창밖에서 들려오는 굉음에 멈춰 섰다.
“무슨 소리지?” 어머니가 놀라 일어섰다.
그 순간, 정문이 폭발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총성이 울려 퍼지고,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구 가문의 무장 인력이 저택을 포위한 것이다.
“소청!” 아버지가 그녀를 붙잡아 비밀 통로로 밀어 넣었다. “지하실로 가라! 거기서 기다려!”
어머니의 눈물이 그녀의 뺨을 스쳤다. 소청은 통로 안으로 끌려 들어가며 뒤돌아보았다. 아버지가 문을 닫고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총성이 다시 울렸다. 아버지의 비명이 찢어지고 어머니의 절규가 이어졌다. 소청의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발은 멈추지 않았다. 살아야 했다. 반드시 살아남아야 했다.
지하실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아버지가 말한 대로, 비상 탈출구 뒤에는 가문의 노예 수송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소청은 망설임 없이 차량에 뛰어올랐다. 트럭 안에는 이미 몇 명의 여성들이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그들의 손목에는 전자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소청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 트럭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엔진이 울리기 시작했다. 소청은 숨을 죽이고 구석에 웅크렸다. 트럭이 출발했다. 그녀는 흔들림 속에서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어머니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소청아, 언제나 강해야 한다.” 그 말이 마지막으로 들렸다.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쇠창살 너머로 회색 하늘이 보였다. 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배인가? 아니면 비행기? 소청은 일어나려고 했지만, 손목이 무거웠다. 그녀는 내려다보았다. 전자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일어났군요.”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소청은 고개를 돌렸다. 중년의 교관이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름표에는 ‘아리’라고 적혀 있었다.
“당신은 어느 가문에서 주문한 노예입니까? 소 가문인가, 구 가문인가?” 아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소청은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소 가문의 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모릅니다.”
아리는 그녀의 대답에 실망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죄송하지만, 당신은 노예 섬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의 규칙은 간단합니다. 순종하고, 훈련받고, 팔려가는 것입니다. 저항하면 죽음뿐입니다.”
소청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녀는 도망쳤지만, 정확히 그녀가 싸우던 시스템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구 가문의 공격을 피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가문이 운영하던 노예 시장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강해지기로 다짐했다. 이곳에서 살아남아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뒤엎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견뎌야 했다.
“훈련장으로 이동합니다.” 아리가 명령했다.
소청은 일어나 다른 여성들과 함께 줄을 섰다. 그녀의 눈은 차가웠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소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었다. 이제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한 명의 노예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이 사슬을 끊어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