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이었다. 집 안은 고요했고, 서재의 모니터 불빛만이 소당의 얼굴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그는 몇 시간째 같은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우스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거칠어지는 숨을 참느라 어깨가 굳어 있었다.
화면에는 남의 아내를 탐하는 남자들의 후기와, 그걸 지켜보는 남편들의 익명 고백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소당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게 내가 원하는 거라고?”
혼잣말이 허공에 스쳤다. 아니라고 부정하기엔 너무 선명한 상징들이 그의 눈을 파고들었다. 다른 남자의 손길에 젖어드는 임위의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흥분이 소당의 가슴을 조여 왔다.
사랑한다.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런데 왜 이런 걸 보고 있는 걸까. 왜 다른 남자와 있는 그녀를 상상해야 직성이 풀리는 걸까.
소당은 의자에 깊숙이 기대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감았다. 몇 번이고 결심하고, 몇 번이고 무너졌다. 오늘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모니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이 후들거렸다. 침실로 향하는 복도가 끝없이 길게 느껴졌다.
문을 열자 은은한 무드등 불빛이 방을 감싸고 있었다. 임위는 침대에 기대어 전화기를 보고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소당아? 늦었는데, 안 자?”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소당은 그 목소리에 잠시 발끝이 멈췄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었다. 그는 침대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임위야. 할 말이 있어.”
임위는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다름을 알아챘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그의 손을 잡았다.
“왜 그래? 얼굴이 안 좋아. 무슨 일 있어?”
소당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말을 잇지 못했다. 손에 쥔 임위의 손이 따뜻했다. 그 온기가 오히려 자신을 더 비천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내가… 이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어. 말하기도 부끄러운…”
임위는 그의 손을 더 꼭 잡았다. “천천히 말해봐.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나는 네 편이야.”
그 말에 소당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나는… 임위를 다른 사람과… 그런 모습으로 보는 걸 상상해. 아니, 보고 싶어 해. 네가 다른 남자에게… 안기는 모습을.”
침묵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임위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지금… 농담하는 거지? 나보고 다른 남자랑… 그러라는 거야?”
소당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렸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멈출 수가 없어. 네가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걸 상상하면… 미칠 것 같아. 그걸 진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네가 너무 사랑해서… 이런 걸 원하는 것 같아.”
임위는 그의 말을 듣는 동안 가슴 한복판이 얼어붙는 듯했다. 배신감이 밀려왔다. 동시에, 그렇게 괴로워하는 소당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을 찢어 놓았다.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이 고민을 짊어지고 있었을까.
길고 긴 침묵이 흘렀다. 새벽 바람이 창문을 살짝 흔들었다.
마침내 임위가 입을 열었다.
“소당아. 나는 너를 사랑해.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거라면… 나는 해볼게. 비록 내가 두렵고, 이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네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네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소당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맺힌 임위의 눈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들은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까?” 소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임위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몰라.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너 말고 다른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야. 단지… 네 소원을 들어주는 것뿐이야.”
“알아. 나도 알아. 그래서 미안해.”
“미안해하지 마. 내가 선택한 거야.”
새벽이 깊어 갔다. 창밖이 조금씩 밝아 오기 시작했다. 시계는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 번만 해보자. 그래도 내가… 이걸로 정리될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일단 시작해 보고, 너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보자.”
소당의 말에 임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을 향한 그의 사랑에 대한 감동이 뒤섞여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부터 천천히 알아보자. 부담 갖지 말고.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을게.”
임위가 작게 중얼거렸다. “응. 나도 항상 네 곁에 있을게.”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가장 낯선 길을 함께 걷기로 잠정적으로 결정했다.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새벽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빛은 차갑고 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