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 꺼지던 순간, 월월은 아버지로부터 한 통의 서류를 건네받았다. 가족 기업의 지사 사장인 진숙이 정중하게 문서를 펼쳐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작은 아가씨, 이제부터 회사의 모든 운영 권한은 당신의 것입니다.”
월월은 매니큐어가 깔끔하게 칠해진 손가락으로 서류 겉장을 넘겼다.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부동산 투자, 호텔 체인… 평범한 대기업의 조직도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 페이지, 작은 자회사 목록에서 그녀의 시선이 멈췄다.
‘청몽 영상 제작 유한공사’ – AV 촬영.
‘비천 노예 클럽’ – 여성 노예 조련.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했다. 동시에 익숙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어떤 울림이 가슴속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열두 살이던 해, 서재 구석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 조련술에 관한 일본 서적이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잠들기 전마다 그 책 속의 장면들을 떠올리곤 했다. 굴욕적인 자세, 채찍질, 눈물 범벅이 된 얼굴… 그 장면들은 혐오스러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그녀의 발톱을 움켜쥐었다.
문 닫힌 방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묶어보기도 하고, 벽에 대고 무릎을 꿇어보기도 했다. 그때마다 가슴속에선 부끄러움과 황홀감이 뒤섞인 물결이 일었다.
그리고 지금, 그 비밀이 그녀 앞에 현실로 다가와 있었다.
“진숙, 내일 이 AV 회사를 방문하고 싶어요.”
“예, 작은 아가씨. 제가 일정을 조율하겠습니다.”
진숙의 눈빛이 스치듯 그녀를 스쳤다. 그 순간, 월월은 그가 어떤 계획을 품고 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다음 날, 월월은 값비싼 원피스를 벗고 평범한 티셔츠와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며 가명을 지었다.
“오늘부터 난 샤오웨야. 그냥 견학 온 취업 준비생일 뿐.”
청몽 영상의 촬영 스튜디오는 도시 외곽의 산업단지 안에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사무실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상상 이상이었다. 복도를 따라 늘어선 촬영실마다 독특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스태프들은 익숙한 듯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지에는 젊은 감독이었다. 스물일곱 살 정도로 보였고, 눈매는 날카로웠다. 그는 월월을 한 번 훑어보더니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새로 왔어? 예전에 본 적 없는 얼굴인데?”
“네, 그냥 구경 왔어요.”
“좋아, 따라와. 오늘 촬영하는 작품 보여줄게.”
아지에가 그녀를 데리고 가장 안쪽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한 여배우가 침대에 엎드려 남배우의 삽입을 견디고 있었다. 카메라는 다양한 각도에서 그 장면을 잡아내고 있었고, 스태프들은 무심하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월월의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그러나 눈은 어느새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여배우가 내는 신음 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너, 얼굴이 확 붉어졌네.”
아지에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월월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아니에요, 그냥 더워서…”
“거짓말. 네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어. 본 적 있어? 이런 장면?”
침묵이 대답이었다.
아지에는 씩 웃더니 대본을 하나 꺼내 그녀 앞에 내밀었다.
“오늘 오후에 한 편 뽑을 건데, 여주인공이 너랑 기질이 딱 맞아. 상속녀가 노예가 된다는 내용인데, 한번 해볼래? 익명으로 나오면 아무도 몰라.”
월월은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선 거절해야 한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렸을 적 상상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던 장면들이 떠올랐다. 무릎 꿇은 자신의 모습, 묶인 손목, 누군가의 발아래 굴욕적으로 엎드린 자신.
“나는… 나는 그냥 구경만…”
“구경만 해선 진짜를 알 수 없어. 체험해 봐. 네가 두려워하는 게 정말 두려운 건지, 아니면 기다려 온 건지. 단 한 번, 단 한 편이면 알 수 있어.”
아지에의 목소리는 달콤한 독약 같았다. 월월은 대본을 받아 들었다. 종이 위에 적힌 대사 하나하나가 그녀의 은밀한 소망을 반영하는 듯했다.
“한 번만… 진짜 한 번만.”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
오후 세 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월월은 흰색 셔츠와 검은색 치마를 입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머리카락은 단정히 묶었고, 얼굴에는 옅은 화장만 했다. 상속녀 역할에 어울리는 차림이었다.
아지에는 카메라 앞에서 손짓했다.
“시작! 첫 장면, 상속녀가 남자 주인공에게 붙잡혀 침실로 끌려온다.”
남배우가 다가와 그녀의 팔을 잡았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월월은 저항할 틈도 없이 침대 위로 밀쳐졌다.
“놔요! 당신 누구야!”
대본에 적힌 대사를 읊었지만, 목소리는 진짜 떨리고 있었다. 남배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차례차례 열리는 단추 사이로 드러나는 속살. 스포트라이트가 그 위를 비췄다.
월월의 몸이 긴장으로 굳어갔다. 그러나 동시에, 어디선가 올라오는 뜨거운 기운이 전신을 감쌌다.
“자, 더 리얼하게. 네가 진짜로 저항하는 것처럼, 하지만 네 몸은 이미 받아들이고 있어. 그걸 카메라에 보여줘.”
아지에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남배우가 그녀의 치마를 벗겼다. 이제 속옷만 남은 몸이 카메라 앞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다. 월월은 다리를 오믈렸지만, 남배우는 손쉽게 그 사이를 벌렸다.
“처음이지?”
남배우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월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가장 은밀한 부위로 파고들었다. 날것의 감각에 그녀는 몸을 움츠렸다.
“긴장 풀어. 아프지 않게 할게.”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이어지는 삽입은 생생한 고통이었다. 뭔가가 찢어지는 듯한 느낌, 그리고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는 감각. 월월은 깨물었던 아랫입술에서 피가 났다.
아지에는 클로즈업 샷을 지시했다.
“눈물이야, 바로 지금이야. 네 진짜 감정을 보여줘.”
월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 눈물에는 슬픔만 섞여 있지 않았다. 굴욕 속에서도 어렴풋이 느껴지는 희열, 수년간 억눌러 왔던 환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전율.
남배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월월의 몸은 그 리듬에 맞춰 흔들렸다. 그녀는 손으로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더 있어, 더…”
아지에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어렸을 적 몰래 보던 책 속의 그림들, 서재 바닥에 엎드려 자위하던 밤들,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몸上面에서 움직이는 낯선 남자.
이게 내가 원했던 거야.
마침내 남배우가 몸을 떼었다.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눈물과 땀이 뒤섞인 얼굴, 풀어진 머리카락, 그리고 입가에 번지는 미소.
그 미소를 본 아지에의 눈이 반짝였다.
“훌륭해, 샤오웨. 넌 천재야.”
촬영이 끝난 후, 월월은 화장실 거울 앞에 섰다. 목욕 가운을 걸친 그녀의 몸에는 남배우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손목의 붉은 자국, 허벅지 안쪽의 멍.
그러나 놀랍게도, 그 자국들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대신, 깊은 만족감이 스며 있었다.
비밀이 싹트기 시작했다.
한 번 맛본 굴욕은, 다시 찾아오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