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번째 생일이 지난 지 일주일, 월월은 아버지의 변호사에게서 두꺼운 서류 뭉치를 받았다. 명문가의 외동딸로서 그녀는 이제 가족 기업의 지분 절반을 공식적으로 상속받았다. 60층짜리 본사 빌딩 최상층 사무실에서 그녀는 서류를 넘기며 무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이힐을 신은 발이 대리석 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 AV 자회사는 뭐죠?” 그녀가 손가락으로 한 페이지를 톡톡 쳤다. “아버지는 저한테 엔터테인먼트 사업만 한다고 하셨는데.”
변호사의 안경 너머로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쪽 부문은…… 진숙 사장님이 직접 관리하십니다.”
“진숙.” 월월이 그 이름을 음미하듯 되뇌였다. 아버지의 오른팔이라는 그 중년 남자. 언제나 정장을 단정하게 입고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녀는 서류를 닫고 일어섰다. “연락해요. 제가 직접 가보겠다고.”
사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들. 가죽 제본에 금박으로 장식된, 표지에는 아무 제목도 없는 책들. 열세 살 소녀가 몰래 훔쳐본 그 책들 속에는 여자들의 팔이 묶이고 몸이 채찍질당하는 그림들이 가득했다.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몸을 만지며 부끄럽고도 이상한 쾌감을 느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 그 책들을 다시 꺼내 보곤 했다.
지금, 그때의 호기심과 두려움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AV 촬영장은 도시 외곽의 낡은 창고 건물에 있었다. 월월은 비싼 명품 가방을 대신 평범한 백팩을 메고, 화려한 메이크업을 지운 민낯에 교복처럼 수수한 원피스를 입었다.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소월 씨?” 젊은 남자가 문을 열며 물었다. 화려한 문신이 팔을 타고 올라가 있었다. 그는 웃으며 그녀를 안으로 안내했다. “진숙 사장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신입 스태프가 온다고. 저는 아걸이라고 합니다.”
건물 안은 상상 이상이었다. 사무실 공간을 지나자, 넓은 스튜디오가 나타났다. 조명이 번쩍이고 카메라가 세 대나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에는 침대 모양의 소품이 있었고, 그 위에서 젊은 여자가 남자 배우와 격렬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다.
월월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처음으로 실제 AV 촬영을 눈앞에서 보았다. 여자의 신음, 살이 부딪히는 소리, 카메라의 기계음이 뒤섞여 귀를 찔렀다. 그런데도 그녀는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 보시죠?” 아걸이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며 중얼거렸다. “재미있어요, 그렇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그 책을 보며 느꼈던 바로 그 감정이었다.
“장면 끝!” 아걸이 박수를 쳤다. “다음 장면은 대기. 소월 씨, 이리 와서 좀 보실래요?”
월월은 그의 손에 이끌려 모니터 앞에 앉았다. 화면 속에는 아까 찍은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고통과 쾌락 사이에서 일그러져 있었다.
“이 여자 주인공 역할이 마침 비어 있어요.” 아걸이 무심한 듯 말했다. “원래 배우가 갑자기 빠졌거든요. 좀…… 가벼운 장면인데, 소월 씨 분위기가 딱 맞아요.”
월월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장난기와 함께 날카로운 계산이 숨어 있었다.
“무슨 뜻이죠?”
“간단해요.” 아걸이 어깨를 으쓱였다. “가명으로 나오면 아무도 몰라요. 연기 경험이 없어도 돼요. 리허설 잡아 놓은 신인 배우가 있긴 한데…… 그쪽보다 소월 씨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월월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두 가지 목소리가 싸웠다. 거절해야 한다는 이성과, 한 번쯤 경험해보고 싶다는 어둡고 수치스러운 욕망.
“안 돼요. 전 그냥……”
“생각해 보세요.” 아걸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익명으로. 아무도 몰라요. 진숙 사장님도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연습 삼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그 순간 월월은 자신이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함정이 왜인지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하지만 얼굴은 가려주세요.”
아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촬영은 다음 날 오후에 진행되었다. 월월은 가운을 입은 채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 있었다.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었다. 평소의 우아하고 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붉게 물든 뺨과 흐트러진 눈동자가 있었다.
“처음이시죠?” 옆에서 소접이 물었다. 그녀는 현장에서 잠시 본 베테랑 여배우였다. 원래 부잣집 딸이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월월은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걱정 마세요.” 소접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처음엔 다 그래요. 참다 보면…… 나중엔 오히려 그걸 원하게 돼요.”
무슨 뜻인지 월월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이 가슴 한구석을 파고들었다.
“소월 씨, 준비되셨으면.” 아걸이 현장 밖에서 외쳤다.
월월은 가운을 벗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조명이 눈부셨다. 카메라가 그녀를 향해 있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 누웠고, 남자 배우가 그 위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카메라의 렌즈만이 무표정하게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자가 그녀의 허벅지를 벌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날카로운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녀는 비명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좋아, 좋아! 그 표정!” 아걸이 모니터를 보며 외쳤다. “더, 더 해!”
몇 분이 지나자 고통이 점차 다른 감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등골을 타고 올라가는 찌릿함, 하복부에서 뭉클거리는 압박감. 그리고 갑자기, 남자가 안에서 터뜨렸다. 뜨겁고 끈적한 액체가 허벅지 사이로 흘러내렸다.
월월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 눈물은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항상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완전히 통제되고, 짓밟히고, 부서지는 것. 그 속에서 느끼는 수치심과 쾌감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컷!” 아걸이 외쳤다. “첫 테이프 훌륭했어요.”
스태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월월은 여전히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은 떨리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과 달리 평온함을 찾고 있었다.
소접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처음은 항상 힘들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여기서는 모든 게 다 가능하니까.”
월월이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청바지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냈다. 액정 속에는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찍혀 있었다. 그녀는 전화를 끊고 진숙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더 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다음에 또 부탁드립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설레기까지 했다.
촬영장 밖으로 나서며,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석양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 책들의 붉은 표지처럼, 그리고 방금 경험한 뜨거운 감각처럼.
월월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