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 대전의 불길이 꺼진 지 이미 천 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둠의 신이 소멸하고, 여와를 비롯한 신들이 선계로 돌아간 후, 인간계와 신계 사이의 연결은 끊어졌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더 이상 신들의 발자취가 없었고, 오직 인간들만이 대지를 누비며 살아가고 있었다.
동방의 어느 작은 마을, 산기슭에 자리 잡은 이곳은 울창한 숲과 맑은 시냇물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봉와 선생님이 오신다!"
아이들 중 한 명이 소리치자, 모두가 흥분하여 길가로 몰려들었다. 길 저편에서 한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은은한 광채를 발하는 흰색 치마를 입고 있었고, 긴 검은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달빛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웠으며, 걸음걸이마다 우아함이 묻어났다. 그녀가 바로 봉와였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주실 거예요?"
가장 어린 아이가 봉와의 치맛자락을 잡으며 물었다. 봉와는 살며시 웃으며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별들의 움직임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봉와의 수업을 가장 좋아했다. 그녀는 신들의 지식을 인간의 말로 쉽게 풀어내곤 했다. 봉와는 원래 동방 신와 중 하나였지만, 정사 대전 이후 자신의 신력 일부를 버리고 인간과 융화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이 마을에 정착하여 교사가 되었고, 아이들에게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었다.
마을 건너편, 언덕 위에 선 한 남자가 멀리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건장한 체격에 준수한 얼굴을 가졌고, 허리에는 긴 검이 차여 있었다. 그가 바로 용와였다. 그는 원래 봉와와 마찬가지로 동방 신와였으며, 여와의 아들이었다. 정사 대전 후, 그는 신력의 일부를 버리고 인간계에 남아 이 마을의 수호자가 되었다.
"용와님, 또 순회하시는 겁니까?"
마을 나이든 어부가 그에게 인사했다. 용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네, 대지를 순시할 때가 되었습니다. 며칠간 마을을 비울 예정입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용와님이 계셔서 우리는 항상 평안합니다."
용와는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한 후, 대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정기적으로 대지를 돌며 광명의 힘으로 땅을 살폈다. 그의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풀과 나무가 더욱 무성해지고, 땅은 생기를 되찾았다. 이것이 그의 임무였다. 인간계의 평화를 지키는 것.
그날 저녁, 봉와는 교실에서 마지막으로 칠판을 닦고 있었다. 창밖으로 노을이 지고,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용와가 며칠 전 떠난 후, 그녀의 마음은 왠지 허전했다. 그들이 함께 신계에 있을 때는 항상 곁에 있었지만, 인간이 된 후로는 그리 자주 만날 수 없었다.
"봉와, 아직 안 가고 있었네."
뜻밖의 목소리에 봉와는 놀라 뒤돌아봤다. 문가에 용와가 서 있었다. 그는 순회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참이었다.
"용와! 벌써 돌아왔구나. 순회는 어땠어?"
"무난했어. 대지는 평화롭고, 특별한 이상은 없었어."
용와는 교실 안으로 들어와 봉와 옆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함께해왔지만, 인간이 된 후로는 어색한 순간들이 생겨났다.
"봉와, 너는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니?"
용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봉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응. 아이들은 순수하고, 마을 사람들도 다정해. 나는 이곳이 좋아. 너는?"
"나도 마찬가지야. 인간의 삶은 신계와는 달라. 복잡하지만, 그만큼 따뜻한 것 같아."
용와는 말하면서 봉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고, 그 미소는 그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와의 자식들로서, 신분 때문에 그 감정을 마음속에 묻어두어야 했다.
"봉와, 나는..."
용와는 말을 꺼내려다가 멈췄다. 봉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네가 항상 건강하길 바란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용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내려앉고, 별들이 하나둘 빛나기 시작했다. 봉와도 그의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 아름답지? 신계에서 보던 별들과는 달라. 여기 별들은 더 가깝고, 더 따뜻해."
봉와가 중얼거렸다. 용와는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아름다워."
그 말은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지만, 봉와는 분명히 들었다. 그녀의 가슴이 조용히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용와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늘만 보고 있었다.
그날 밤, 봉와는 잠들지 못했다. 그녀는 창가에 앉아 별들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용와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들은 신와로 태어났고, 여와의 자식으로서 서로를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
봉와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달빛에 반짝였다.
다음 날 아침, 마을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봉와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용와는 마을 입구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들의 감정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선생님, 어제 별 이야기 더 해주세요."
한 아이가 손을 들며 말했다. 봉와는 미소 지으며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좋아. 그럼 오늘은 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좀 더 자세히 알려줄게."
그녀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별들의 궤도를 설명했다. 아이들은 그녀의 말에 집중하며 눈을 반짝였다. 교실 밖, 용와는 창문 너머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그녀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고 있었다. 그의 가슴이 아려왔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다.
그날 오후, 용와는 마을 뒤쪽 언덕에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봉와도 가끔 이곳에 와서 쉬곤 했다.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용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그는 놀라 뒤돌아봤다. 봉와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교실 일을 끝내고 언덕으로 올라온 참이었다.
"봉와, 너였구나."
"응. 너도 여기 오는구나. 나는 가끔 이곳에 와서 바람을 쐬곤 해."
봉와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들은 잠시 동안 아무 말 없이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그들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용와, 나는 언젠가 이 평화가 깨질까 봐 두려워."
봉와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용와는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둠의 신은 이미 사라졌어. 인간계는 평화로워."
"하지만 나는 불안해. 이건 너무 완벽해서, 마치 꿈처럼 느껴져."
봉와는 두 손을 꼭 쥐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용와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괜찮아. 내가 항상 너를 지킬게. 우리는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어."
그의 손길은 따뜻했고, 봉와는 그 온기에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그에게 기대어 눈을 감았다.
"고마워, 용와."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평온했다. 용와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의 숨결을 느꼈다. 그의 마음속에는 그녀를 향한 사랑이 가득했지만, 그는 그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흘러, 봉와와 용와는 인간 세계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갔다. 봉와는 아이들에게 신들의 지식을 전파하며 지혜를 나누었고, 용와는 대지를 순시하며 평화를 지켰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하지 못한 사랑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로, 오늘도 이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