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내 귀에는 그저 피가 철철 흐르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내 두 손은 거친 새끼줄로 뒤로 묶여 있었다. 땅바닥은 차가웠고, 내 뺨에 닿은 흙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내가 이끌던 군사들은 모두 쓰러졌다. 그들은 내 명령을 따랐고, 내가 그들을 이끌었지만 결국 이 지옥 같은 곳으로 인도하고 말았다.
왜군들이 나를 끌고 갔다. 그들은 내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마치 가축을 다루듯 했다. 나는 소리치려 했지만 목에서는 쇳소리 같은 신음만이 새어 나왔다. 갑옷은 이미 찢겨져 나갔고, 내 피부에는 채찍질한 자국이 선명했다. 그들이 나를 돌계단 위로 끌어올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웅장한 고대 궁전이었다. 검은 기와와 붉은 기둥, 그리고 높이 솟은 문루. 이 모든 것이 내 조국을 비웃고 있는 듯했다.
“저 여장군, 꽤 억세 보이는군.”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나는 소완이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나를 궁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넓은 대청 마루에는 무늬가 있는 돗자리가 깔려 있었고, 향불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중심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허리에는 긴 칼을 차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소완 장군, 드디어 만났군.”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오만함이 깃들어 있었다. 나는 침을 뱉었다. 피가 섞인 침이 그의 발치에 떨어졌다.
“네 놈이 흑전현이냐? 썩은 개자식아, 나를 죽여라!”
흑전현은 천천히 일어나 내 앞으로 걸어왔다. 그는 내 턱을 집어 올리며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죽이라고? 그렇게 쉽게 보내줄 것 같으냐? 너는 내가 직접 훈육하겠다. 앞으로 너는 나의 정실이 될 것이다.”
정실? 내 귀를 의심했다. 나는 장군이다. 나는 남자들 위에서 싸워 온 여자다. 그런 내가 왜놈의 아내가 된다고? 나는 몸을 비틀며 발버둥쳤지만, 팔을 붙잡은 병사들의 힘은 내 예상보다 훨씬 강했다.
“네놈들의 정실은 개나 줘버려! 나는 결코 네 놈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흑전현은 내 외침에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을 내리고, 천천히 내 주위를 돌았다.
“굴복하지 않는다고? 좋아. 그 굴하지 않는 정신을 내가 하나하나 부숴주마. 너는 이제 더 이상 중국의 장군이 아니다. 너는 나의 물건이다. 나의 인형이다. 나는 네 머리카락을 잘라 동양식 상투를 틀어줄 것이고, 네 입에는 왜말만을 가르칠 것이다. 네 몸은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내 찢긴 옷자락 사이로 스쳤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너는 결코 나를 길들일 수 없다.”
흑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래, 아직은 그렇게 말할 때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이제 그녀를 목욕시키고, 새 옷을 입혀라. 내가 오늘 밤 결혼식을 올릴 테니.”
병사들이 나를 끌고 갔다. 나는 뒤돌아보며 흑전현의 눈을 마주쳤다. 그 눈에는 기대와 쾌감이 어려 있었다. 나는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나는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소완이다. 나는 나 자신이다. 그 어떤 왜놈도 나를 길들일 수 없다.
하지만 그날 밤, 그들이 내 머리를 강제로 깎고, 내 입에 왜말을 주입하며, 내 몸에 낯선 옷을 입혔을 때, 나는 처음으로 절망이라는 감정을 맛보았다. 그리고 그 절망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나를 집어삼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