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진정되었다. 정의와 사악의 마지막 격전이 끝나고, 어둠의 신은 영원히 소멸했다. 그가 남긴 것은 대지 위에 아로새긴 상처뿐이었다. 신계의 문이 다시 열렸고, 모든 신들은 각자 선계로 돌아갔다. 인간과 신의 길은 이로부터 완전히 끊어졌다.
그러나 모두가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동방의 신와들 중 둘이 남았다. 그들은 자신의 신력 일부를 버리고 인간의 마을에 섞여들어 조용히 살기로 했다. 그들의 이름은 봉와와 용와. 신들 사이에서도 특별한 존재였던 그들이었다.
봉와는 마을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글자를 가르치고, 천지의 이치를 설명했지만, 결코 자신이 신이었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녀를 사랑했고,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존경했다. 그녀의 미소는 언제나 온화했지만, 그 눈빛 속에는 깊은 그리움이 숨어 있었다.
용와는 마을의 수호자였다. 그는 매일 새벽마다 마을 경계를 따라 광명의 힘으로 순찰을 돌았다. 그의 손에는 더 이상 신병이 없었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별빛이 반짝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지만, 그의 존재만으로도 안심했다.
시간은 흘렀다. 신으로서의 시간은 의미가 없었지만, 인간의 시간은 그들에게 변화를 가져왔다.
봉와의 얼굴은 점차 여성의 아름다움을 띠게 되었고, 그녀의 몸매는 부드럽고 우아하게 성장했다. 그녀가 마을을 거닐 때면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보았다.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바람에 흩날렸고, 그녀의 피부는 달빛처럼 하얗게 빛났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을 배웠다. 슬픔과 기쁨, 그리고 더 깊은 것.
용와도 달라졌다. 그의 어깨는 더욱 넓어졌고, 그의 팔은 강인한 근육으로 단단해졌다. 그의 얼굴은 더욱 굳건해졌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마을의 여인들은 그를 볼 때마다 얼굴을 붉혔지만, 그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가 바라보는 것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봉와는 알았다. 자신이 용와를 사랑한다는 것을. 하지만 그 사랑은 저주와도 같았다. 그들은 남매였다. 신계에서도, 인간 세계에서도, 그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감정을 마음속 깊이 묻었다. 밤이 되면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낮이 되면 그녀는 다시 온화한 스승으로 돌아갔다.
용와도 알았다. 그는 봉와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 무엇보다도 뜨거운 것을 읽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가진 것은 침묵뿐이었다. 그가 그녀를 안을 수 있다면, 그가 그녀에게 입맞출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버틸 수 없었다. 신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어느 날 밤, 하늘이 갈라졌다.
눈부신 섬광이 하늘을 가르고, 천둥 같은 굉음이 대지를 울렸다. 거대한 불덩이가 하늘에서 추락하여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졌다. 땅이 흔들렸고, 새들은 놀라 날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집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보았다.
봉와는 창가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렸다. 그 불덩이 안에서 그녀는 무언가를 느꼈다. 신으로서의 기억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것은 단순한 운석이 아니었다.
용와는 이미 마을 밖으로 나가 있었다. 그는 광명의 힘을 손에 모은 채, 검은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의 발걸음은 빠르고 정확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운석은 이계의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었다.
운석이 떨어진 곳은 마을에서 반나절 거리의 작은 구릉이었다. 그곳에는 고대의 마굴이 있다는 전설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두려워했지만, 용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구릉 위에 서서 바라보았다.
운석은 거대했다. 그 표면은 검게 그을렸고, 곳곳에서 붉은 균열이 나 있었다. 그 틈새로 새어 나오는 것은 어둠의 기운이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는 듯 땅 위를 기어다니며, 주변의 풀과 나무를 말라 죽게 했다.
용와는 손을 뻗어 그 기운을 만져보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어둠의 기운이 그의 손가락을 감싸며 파고들었다. 차가운 고통이 그의 팔을 타고 올라갔다. 그는 재빨리 손을 빼내고 광명의 힘으로 그 기운을 밀어냈다.
“이건...”
그는 중얼거렸다. 이 힘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언가 오래된, 그리고 깊은 것이었다. 신들조차 두려워했던 존재의 힘.
봉와도 그곳에 도착했다. 그녀는 용와의 뒤에서 나타나 운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용와, 우리가 이것을 조사해야 해.”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눈빛은 단호했다. 용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 일에 휩쓸리게 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함께 운석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주변을 맴돌며, 마력의 흐름을 감지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이 운석은 이계의 어둠과 인간 세계의 연결 고리였다. 그 안에는 신들조차 모르는 힘이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봉와는 그 힘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신력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떨렸다. 그녀는 그 힘이 주는 유혹을 느꼈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힘이었다.
용와는 그녀의 변화를 눈치챘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봉와, 봐. 이 힘은 위험해. 우리가 이것을 봉인해야 해.”
그러나 봉와의 눈동자는 이미 변해 있었다. 그 안에 어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용와...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 이것은 기회야.”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그녀의 입가에 무언가 음산한 미소가 번졌다.
용와는 그 미소를 보고 마음이 무너졌다. 그는 봉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아니야. 너는 그 길로 가면 안 돼. 나와 함께 있어. 인간 세계에서, 평범하게 살자.”
봉와는 그의 품 안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크게 뛰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안아주는 것을 느꼈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사랑이 그녀를 구할 수 있을까?
그녀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용와, 나는 이미 선택했어.”
그녀는 운석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끝이 그 어둠에 닿았다.
그 순간, 하늘이 다시 갈라졌다. 어둠의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봉와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신력이 어둠과 충돌하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봉와!”
용와는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봉와의 몸은 어둠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피부 위에 검은 문양이 새겨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눈동자는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하반신이 꿈틀거리며 하나로 합쳐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거대한 뱀의 꼬리가 나타났다.
라미아.
봉와는 마물이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변한 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와 후회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곧 그 감정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더 깊고 어두운 욕망이 채웠다.
그녀는 용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전과 달랐다. 그 안에는 사랑과 함께, 무언가 위험한 것이 피어나고 있었다.
“용와... 나는 이제 너를 놓지 않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그 속에는 독이 숨어 있었다. 그녀는 그의 몸을 향해 뱀의 꼬리를 휘둘렀다.
용와는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 사랑이 그를 파멸시킬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날 밤, 마을 위로 검은 구름이 덮였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어둠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