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정과 사악의 대전이 끝난 후, 어둠의 신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하늘과 땅이 진동하던 전쟁이 끝나자 모든 신들은 선계로 돌아갔고, 인간계와 선계 사이의 통로는 영원히 닫혔다.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인 대지와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뿐이었다.
봉와는 선계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녀는 전장에서 피 흘리는 인간들을 보며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들의 생명은 짧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아가는 모습이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 그녀는 자신의 신력을 일부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곁에는 항상 용와가 있었다. 용와는 그녀의 선택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가는 길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젊은 남녀가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특별한 힘을 지녔고, 마을을 지켜준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봉와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병든 이를 돌보았다. 용와는 사냥을 하고, 마을 경계를 순찰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은 점점 인간과 다름없이 살아갔다.
수십 년이 흘렀다. 마을은 번영했다. 논밭은 풍성한 열매를 맺었고, 아이들은 건강하게 자랐다. 봉와와 용와의 모습은 여전히 젊었다. 그들의 시간은 인간과 달랐기에, 그들은 변하지 않은 얼굴로 세월을 견뎌냈다. 하지만 봉와의 마음은 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용와를 볼 때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가 마을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웃을 때, 그가 사냥한 사슴을 어깨에 메고 돌아올 때, 그가 해질녘 그녀의 방문 앞에 서서 조용히 미소 지을 때마다, 봉와는 참을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녀는 여신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었다. 그 감정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어느 날 저녁, 봉와는 마을 뒷산의 바위 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하늘 아래, 그녀의 긴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용와였다.
"봉와, 밤이 되기 전에 내려와야지."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봉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좀 더 있고 싶어."
용와는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들의 어깨가 스쳤다. 봉와는 온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가 자신을 보는 것을 막으려는 듯.
"왜 자꾸 나를 피하는 거야?"
용와의 물음에 봉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는 것이 두려웠다. 그녀는 여신이었다. 그가 신하일지라도, 그 마음을 품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바위를 긁적였다.
"피하는 게 아니야."
"그럼 왜?"
"그냥... 생각이 많아서."
용와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녀의 곁에 앉아 함께 석양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봉와는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그저 이 순간만이라도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밤중의 일이었다. 맑게 갰던 하늘이 갑자기 붉게 물들었다. 대지가 울렸다. 마을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봉와와 용와도 동시에 깨어났다. 그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 밖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고 있었다. 거대한 운석이었다. 그것은 검은 안개를 휘감으며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충격파가 마을을 흔들었다. 집들이 흔들렸고,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다.
봉와와 용와는 재빨리 운석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숲속이었다. 그곳에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 검은 돌이 박혀 있었다. 돌에서는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생명력이 느껴지는 안개였다. 악의와 어둠이 섞인 이상한 기운.
"이건..."
봉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돌에 손을 뻗었다. 용와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위험해!"
"괜찮아. 이건 그냥 돌일 뿐이야."
봉와는 손을 내밀어 검은 돌을 만졌다. 그 순간, 그녀의 몸에 전류 같은 것이 흘렀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용와가 그녀를 끌어당겼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안개가 그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봉와!"
용와의 외침이 귀를 때렸다. 하지만 봉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녀의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언어로, 그녀의 영혼을 흔드는 목소리.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