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선노

站点:NovelAI.one内容:前8章在线试读ID:b6c036fb更新:2026-07-23 08:16
청운문의 후산 검련장은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새벽 이슬이 맺힌 풀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육설기는 푸른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칼끝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맑고 청량한 검명이 울려 퍼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부터 시작된 혼자만의 수련이었다. 그녀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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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에 빠지다

청운문의 후산 검련장은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대나무 숲 사이로 새벽 이슬이 맺힌 풀잎들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육설기는 푸른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칼끝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맑고 청량한 검명이 울려 퍼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부터 시작된 혼자만의 수련이었다. 그녀는 동문 제자들이 게으름을 피우는 사이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검을 쥐었다. 청운문에서 가장 촉망받는 제자인 만큼 스스로에게 가하는 엄격함 또한 남달랐다.

“실례합니다.”

낯선 목소리가 안개 너머에서 들려왔다. 육설기는 검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대나무 숲 가장자리에 한 젊은 수행자가 서 있었다. 산수 특유의 거친 무명 도포를 입고 있었지만, 자태는 의외로 단아했다.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번져 있었고 눈빛은 지적이었다.

“누구십니까?”

육설기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청운문은 외부인 출입이 자유롭지 않다. 그녀의 경계하는 시선에 수행자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저는 진명이라고 합니다. 삼청산에서 수행하던 중 청운문의 검술 명성이 자자하다 듣고, 잠시 머물며 배움을 청하고자 왔습니다. 문주님께 허락을 받았습니다.”

진명은 품에서 허가 증표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분명 청운문 문주의 인장이 찍힌 문서였다. 육설기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주께서 허락하셨다면 더 물을 것도 없었다.

“무슨 일로 이곳에?”

“사모님께서 청운문 제일의 검수인 육 씨께서 아침마다 이곳에서 수련하신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만약 가능하시다면, 제 검법을 가르쳐 주실 수 없을까 하여 찾아뵈었습니다.”

진명의 말투는 지극히 정중했다. 하지만 육설기는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간간이 청운문을 찾아와 검술을 배우려는 자들을 보아왔다. 대부분이 겉치레뿐이거나, 다른 속셈이 있는 자들이었다.

“저는 타인을 가르칠 만한 경지가 아닙니다. 다른 사형님께 부탁드리십시오.”

돌아서려는 그녀의 뒤로 진명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제가 지금까지 익힌 검법은 대부분 강경한 기운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런데 청운문의 검술은 유려하면서도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육 씨의 검과 같습니다. 잠시라도 좋으니, 그 흐름만이라도 보여주실 수 없을까요?”

육설기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진명의 말은 그녀의 검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청운문 검법의 진수는 바로 유연함에 있었다. 그걸 단번에 알아본 자는 흔치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검법을 어디서 배웠습니까?”

“여기저기 떠돌며 여러 문파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산수의 몸이라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진명의 눈빛에는 약간의 쓸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육설기는 잠시 그를 관찰했다. 낯선 자에게 검을 보여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진지했고, 말투에는 허세가 없었다.

“한 번만 보여드리겠습니다. 잘 보십시오.”

육설기가 검을 다시 쥐었다. 그녀의 몸이 낮게 중심을 잡고 칼끝을 앞으로 겨누었다. 이내 그녀의 팔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검을 휘둘렀다. 칼끝이 그리는 궤적은 마치 물결처럼 유연했다. 대나무 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그 움직임을 따라 춤추듯 흘러내렸다.

진명은 숨을 죽여 지켜보았다. 그의 눈에는 감탄과 경외가 섞여 있었다. 몇 합이 지나자 육설기는 검을 거두었다.

“이것이 청운문 검법의 기본 흐름입니다. 이를 익히려면 최소 수년의 수련이 필요합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진명의 목소리는 진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육설기에게 다가가 예를 갖추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혼자 되새겨 보겠습니다. 내일 다시 와도 괜찮겠습니까?”

육설기는 망설였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가벼움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진정으로 검을 사랑하는 자처럼 보였다.

“내일 아침, 이 시간에 오십시오. 그때 다시 보여드리겠습니다.”

진명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대나무 숲 너머로 사라졌다. 육설기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짚을 수 없었다. 그저 약간의 불편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진명은 매일 아침 육설기를 찾아왔다. 그는 언제나 정중했고 배움에 대한 열의가 가득했다. 육설기가 검을 보여주면, 그는 한 동작 한 동작을 놓치지 않고 따라 했다. 부족한 점이 있으면 자신의 생각을 겸손히 묻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자 육설기는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진명은 검술에 대한 이해가 깊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치가 담겨 있었다. 때로는 그가 던진 질문이 육설기 자신조차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검술의 심오한 경지를 건드리기도 했다.

“어제 가르쳐 주신 '유수식'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그런데 칼끝의 기운을 돌리는 지점에서 자꾸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혹시 손목의 각도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어느 날 아침, 진명이 검을 거두며 진지하게 물었다. 육설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 동작은 단순히 손목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리의 회전과 호흡이 함께 맞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보여드리죠.”

육설기가 검을 휘둘렀다. 칼끝이 공기를 가르며 부드러운 포물선을 그렸다. 진명은 그 움직임을 눈에 새기듯 응시했다. 그러는 동안 육설기는 자신도 모르게 진명의 호흡과 시선이 자신의 움직임과 맞춰지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두 사람의 기운이 잠시 겹쳐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육설기의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눈앞이 아른거렸고, 귀에서 낮은 웅웅거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속삭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설기 씨?”

진명의 목소리가 그녀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육설기는 정신을 차리고 눈을 깜빡였다. 그녀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진명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육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근래 계속된 수련으로 조금 피곤한 모양입니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오늘은 여기까지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진명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육설기는 어딘가 모르게 그 목소리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낯선 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마음을 가라앉힌 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육설기는 검을 거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의 뒤통수가 묵직하게 무거웠다. 단지 피로 때문일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진명은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대나무 숲에 서 있었다. 그의 입가에 스며드는 미소는 온화함을 넘어선, 어딘가 음험한 기운을 담고 있었다. 그는 오른손 검지를 들어 허공에 작은 문자를 그렸다. 영력의 흔적이 대나무 잎 사이로 스며들어 순간 스러졌다.

“생각보다 재빠르군. 그래도…… 씨앗은 이미 심었어.”

진명은 낮고 음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어둡게 번지는 빛이 스산한 아침 안개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도포 자락을 정리하며 대나무 숲을 빠져나갔다. 첫 번째 최면의 암시는 성공적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뿐이었다.

심층 최면

진명이 손을 내밀어 육설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의 손끝에서 미약한 진기가 스며들었다.

"육 사매, 요즘 수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소."

육설기가 살짝 몸을 움찔하며 물러섰다. 차가운 눈빛으로 진명을 응시했다.

"진 사형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청운문에서 모르는 일이 없지. 나는 문파에서 가장 오래된 제자니까." 진명이 온화하게 웃었다. "사실 나에게 비법이 하나 있소. 심층 최면술이라 하는데, 수련자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공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뛰어나다오."

육설기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최근 제 이중경의 벽을 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스승님께서도 뚜렷한 해결책을 주지 못했다.

"심층 최면술이라면... 혹시 마공 쪽의 술법이 아닙니까?"

"하하, 사매의 경계심이 참 대단하구나." 진명이 고개를 저었다. "이는 정통 도가의 비전이야. 내가 어찌 사매를 해치겠소? 단지 도움을 주고 싶을 뿐이오."

육설기가 잠시 침묵했다. 진명은 문파에서 온화하기로 유명한 제자였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항상 예의를 갖추었다. 그가 나쁜 뜻을 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한 번 믿어보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위험한 기미가 보이면 즉시 중단하겠습니다."

"물론이지. 사매의 의사를 존중하겠소."

진명이 그녀를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방 안에는 은은한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창문은 두꺼운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고, 바닥에는 부드러운 방석이 깔려 있었다.

"자, 여기에 앉게."

육설기가 방석에 앉았다. 진명이 그녀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작은 향로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금부터 내 목소리에 집중하게. 주변의 모든 소리를 잊어버려."

진명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졌다. 육설기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방 안의 향기가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네 눈을 감아. 몸의 모든 힘을 빼. 긴장을 풀어..."

육설기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호흡이 점차 고르게 변했다.

"네가 깊은 숲 속에 서 있다고 상상해봐.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새들이 지저귀고 있어. 발밑에는 부드러운 이끼가 깔려 있어..."

진명의 목소리가 마치 꿈결처럼 들렸다. 육설기의 의식이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숲 속을 걷고 있었다. 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공기는 신선했다.

"계속 걸어. 앞에 작은 연못이 보일 거야. 연못물은 맑고 투명해. 그 물속에 네 모습이 비치고 있어..."

육설기가 연못 앞에 섰다. 물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그 얼굴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었다.

"이제 그 연못 속으로 들어가. 몸이 물에 잠기면서 모든 생각이 사라져. 너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어..."

그녀의 몸이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차가운 물이 전신을 감쌌다. 모든 소리가 멀어지고, 모든 생각이 흩어졌다.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좋아. 아주 잘하고 있어."

진명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육설기의 표정이 완전히 이완되었다. 그녀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더 이상 의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들을 거야. 이 말들은 네 깊은 의식 속에 새겨질 거야."

진명이 손을 들어 육설기의 이마에 가져갔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너는 육설기가 아니야. 너는 설노야. 순수하고, 복종하는 존재야. 기억해라. '설노야 돌아와라'라는 말을 들으면 깨어나고, '잠들어라 설노'라는 말을 들으면 잠들어."

육설기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닫혔다.

"'설노야 돌아와라.'"

육설기가 갑자기 눈을 떴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생기 없이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가 너를 깨웠는지 말해봐."

"...주인."

"좋아. 아주 좋아." 진명의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났다. "이제 '잠들어라 설노'라고 말할게."

육설기의 눈이 다시 감겼다. 그녀의 호흡이 깊고 고르게 변했다.

진명이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살짝 쓰다듬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이제야 비로소 너는 내 것이 되었구나."

그는 천천히 방 안을 거닐었다. 향로의 연기가 여전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창문 틈새로 저녁 햇살이 스며들어 바닥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깨어나라, 설노."

육설기가 눈을 떴다. 이번에는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속에는 순수한 복종만이 담겨 있었다.

"주인,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아직 때가 아니야. 다시 잠들어라."

"잠들어라 설노." 그가 낮게 속삭였다.

육설기의 시선이 다시 흐릿해졌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쓰러졌다. 진명이 그녀를 받아 안아 방석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태연하게 걸어가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로 충분하겠군."

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곧 그 미소는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첫 번째 각성

밤이 깊었다. 달빛조차 구름에 가려져 청운문의 권내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다. 진명은 그림자처럼 육설기의 거처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의 발소리는 바람에 실린 낙엽처럼 가벼웠고, 숨결조차도 의도적으로 억제되어 있었다. 그는 문 앞에 섰다. 나무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직 깨어 있는 것이다.

진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문설주를 가볍게 두드렸다. 세 번, 규칙적인 박자.

"누구십니까?" 방 안에서 육설기의 차갑고도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형입니다. 급히 전할 말이 있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실례했습니다." 진명의 목소리는 온화하고 예의 바르며 약간의 미안함마저 섞여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육설기는 겉옷을 걸친 채 문지방에 서서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런 깊은 밤에 사형께서 무슨 일로 제 방에 오셨습니까?"

진명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사부님께서 내일 아침 연무장에서 모든 제자가 모여 시범을 보여야 한다고 분부하셨습니다. 잊지 말아 주십시오."

육설기의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알겠습니다. 사형께서 직접 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진명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동자에 이상한 광채가 스쳤다. 마치 깊은 밤의 우물 속에서 반짝이는 달빛처럼.

육설기의 눈빛이 갑자기 흐려졌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온몸이 돌처럼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진명은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관 속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처럼 음산하고 기이했다.

"돌아와라, 설노야. 돌아와라."

육설기의 몸이 가볍게 떨렸다. 이내 그녀의 눈동자는 점점 초점을 잃고 깊은 공허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의 팔은 축 처지고, 얼굴은 아무 표정도 없는 나무 인형처럼 변했다.

진명이 한 걸음 다가서자 그녀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집어 올렸다. 그녀의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잘 들어라, 설노야. 나는 네 주인이다. 너는 나에게 절대 복종해야 한다."

"...복종합니다." 육설기의 목소리는 메마르고 기계적이었다.

진명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육설기를 안쪽 침상으로 데려가 앉혔다. 그녀는 아무 저항 없이 따랐다.

진명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천천히 그녀의 겉옷을 벗겼다. 육설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몸이 남의 것인 양. 진명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스치고, 목을 따라 내려가 쇄골을 더듬었다. 그녀의 피부는 차가웠다. 그는 자신의 손길에 그녀가 반응하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너는 지금 기분이 어떠냐?" 그는 그녀의 귀에 속삭이듯 물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좋아. 완전히 복종하는구나." 진명의 손이 그녀의 어깨를 더듬고, 팔을 따라 손목까지 내려갔다. 그는 그녀의 손을 들어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육설기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네 몸은 나의 것이다. 네 마음도 나의 것이다. 영원히 나에게 속할 것이다."

"...영원히... 주인님께 속합니다."

진명은 그녀를 침상에 눕혔다. 그의 손길은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을 다루듯 섬세하면서도 냉혹했다. 그는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탐색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근육과 뼈의 윤곽을 손가락으로 따라갔다. 육설기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했다. 오직 그의 손끝이 닿는 곳에서만 미세한 떨림이 일어났다.

진명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손가락을 움직여 봐라."

육설기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인형의 실이 당겨지는 것처럼.

"다시, 더 자연스럽게."

이번에는 조금 더 부드럽게 움직였다. 진명은 그녀의 움직임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음을 확인하고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일어나서 그녀의 머리맡에 섰다. 달빛이 구름 사이로 비스듬히 스며들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의 눈을 제외한 모든 곳이 아름다웠다. 텅 빈 눈동자.

"이제 그만해도 좋다. 잠들어라, 설노야. 잠들어라."

진명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육설기의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그녀의 몸이 침상 위에 축 늘어졌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진명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문을 닫으면서 그는 한 번 더 그녀의 방향을 돌아보았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였다.

이튿날 아침, 육설기는 눈을 떴다. 그녀는 침상에 앉아 이상하게 피곤한 몸을 느꼈다. 어젯밤 꿈을 꾼 것 같지만, 그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창밖에는 청명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녀는 옷을 정리하고 방문을 열었다. 복도 끝에서 진명이 그녀를 향해 온화하게 미소 지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설기 사매.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육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잘 잤습니다. 사형께서는 벌써 일어나셨군요."

진명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오늘 시범을 보일 준비는 되셨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준비는 되어 있습니다."

진명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 앞서 걸어갔다. 그의 등 뒤에서 육설기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어젯밤에 또 다른 생명체가 살았던 것처럼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생각을 곧 머리에서 지웠다. 그냥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고.

그녀는 진명의 뒤를 따라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아침 햇살이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는 어젯밤의 기억이 영원히 감춰져 있었다.

일상적 위장

아침 안개가 채 가시지 않은 청운문의 연무장에 육설기의 검광이 휘날렸다. 그녀의 몸짓은 정확하고 우아했으며, 검끝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맑고 청아한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주검과 환검의 경계가 조금 더 명확해진 것 같다.”

그녀는 검을 거두며 가볍게 숨을 고르고 중얼거렸다. 최근 며칠간 수련이 유난히 순조로웠다. 밤잠을 충분히 자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는 몰라도 기운이 예전보다 훨씬 맑게 통하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가뿐하고 정신도 또렷했다.

사제들이 인사를 건네자 그녀는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했다. 입가에 미소는 없었지만 말투에 예의가 깃들어 있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설기 사매, 오늘 순찰은 서쪽 산문 쪽이야?”

“그래. 벌써 교대 시간이군.”

동문이 다가와 물었고, 육설기는 차분히 답했다. 그녀는 검을 허리에 차고 먼저 산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길을 걷는 동안 발밑에 깔린 돌부리 하나하나가 선명히 보였다. 숲 사이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얼굴을 스쳤다. 예전 같으면 무심히 지나쳤을 풍경인데 오늘은 유난히 감각이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이 모든 게 남동생뻘 되는 그 후배 수행자의 ‘치료’ 덕분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편이 약간 부드러워졌다.

며칠 전, 진명은 시험 삼아 만든 ‘청신단’이라는 환약 한 알을 건네며 말했다.

“설기 선배, 이거 드셔 보세요. 수련으로 쌓인 피로를 풀고 숙면에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며칠 먹어 봤는데 효과가 괜찮았어요.”

몽롱한 기억 속에서 그가 건넨 붉은 환약이 떠올랐다. 처음엔 거절하려 했지만 그의 간절한 표정에 결국 받아 삼켰다. 그날 밤 이상하리만큼 깊이 잠들었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한결 가벼웠다.

“생각보다 성실한 후배군. 승진 시험을 앞두고 연구까지 게을리하지 않다니.”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며 순찰로를 따라 북문 쪽으로 향했다. 가벼운 발소리가 나지막이 울렸다.

한 바퀴 순찰을 마치고 연무장 근처의 정자에 앉아 휴식할 때였다.

“선배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진명이 두 손에 찻주전자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온화한 미소를 띠고 다가왔다.

“순찰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제가 우연히 작약차를 좀 끓였는데, 괜찮으시면 한 잔 드실래요?”

“네가 신경 써 줬구나.”

육설기는 망설이다가 빈자리를 툭툭 털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진명은 조심스럽게 찻잔을 채우며 마주앉았다. 따뜻한 차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요즘 수면 상태는 좀 어떠세요? 전에 드린 약이 잘 맞는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잘 자고 있어. 너 덕에 정신이 맑아진 기분일 정도야.”

“그것 참 다행입니다. 저도 선배님 같은 고수께 도움이 될 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진명은 정말 기쁜 듯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그의 눈은 맑고 순수했다. 그런 그를 보며 육설기는 이전에 느꼈던 약간의 경계심이 불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어졌다.

“사실 예전에 너를 좀 멀리한 것 같아 미안하구나. 선배로서 도움을 줘야 하는데 오히려 네가 나를 챙겼으니.”

“아니에요, 선배님은 항상 모범이셨고 저 같은 후배가 감히 감히…… 그냥 작은 마음이에요.”

진명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짧게 스친 그의 눈빛에 무언가 깊은 그림자가 스쳤으나 육설기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도 앞으로는 수련이나 경전에 궁금한 게 있으면 아무 때나 찾아와라. 내가 아는 대로 가르쳐 주마.”

“정말요? 그럼 앞으로 자주 뵙겠습니다, 선배님.”

진명이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 속에 숨겨진 어둠을 상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해가 기울고 어둠이 점차 청운문을 감싸기 시작했다. 육설기는 독방에서 방금 목욕을 마치고 나와 머리를 말리며 창밖의 달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이상하게 졸리군…… 일찍 자야겠다.”

그녀는 하품을 참으며 침상에 누웠다. 몇 분도 채 안 되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시각, 그녀의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진명이 달빛을 등지고 들어섰다. 그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고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일어나라, 설노야.”

나지막한 명령에 육설기가 조용히 눈을 떴다. 평소의 차갑고 맑은 눈동자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공허하고 순종적인 빛만 어렴풋이 흘러넘쳤다.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 그 앞에 무릎 꿇어 앉았다.

“잘 듣는구나. 오늘은 좀 더 깊이 너를 가르쳐 주마.”

진명이 손을 내밀어 그녀의 턱을 살며시 쳐들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얼굴은 고요했고, 몸은 이미 어떤 기대감에 사로잡혀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는 거친 손길로 그녀의 옷자락을 벗겼다. 저항은 없었다. 단지 작게 숨을 들이쉬며 떨릴 뿐.

“지난번보다 네 몸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좋다, 잘 적응하고 있어.”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나신 위를 천천히 훑었다. 전에 없던 촉감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자, 이제 네 혀의 움직임을 가르쳐 주마. 내가 시키는 대로 하라.”

진명이 자신의 옷도 거침없이 벗어던지고 침상 끝에 앉았다. 설노가 무릎 걸음으로 다가와 그의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처음 몇 번의 시도는 서툴렀다. 날카로운 이가 살짝 스치기도 했다. 진명은 약간 찡그리며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천천히, 좀 더 부드럽게. 혀를 편평하게 펴고 목젖을 애무해라. 그래, 그렇게.”

그의 음성이 저음으로 떨어질 때마다 그녀의 움직임이 조금씩 매끄러워졌다. 아까운 재능의 여제자가 이제는 한낱 쾌락의 도구로 전락해 그의 뜻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설노의 동작은 더욱 능숙해졌고, 진명은 쾌락에 눈을 감은 채 낮은 신음을 흘렸다.

“좋아, 이제는 내 앞에서 네 다리를 벌려라.”

명령에 그녀가 얌전히 등을 대고 눕자 진명은 그녀 위에 올라타 다리를 들어 올렸다. 준비 운동 없이 곧바로 강하게 찔러 넣었다.

“크윽…… 아직 좀 조이긴 하지만, 곧 풀리겠지.”

그가 힘껏 허리를 밀어 넣자 설노의 입에서 가느다란 숨결이 새어 나왔다. 전보다 반응이 선명해졌다. 몸이 이미 이 관계를 기억하고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달이 중천에 걸렸을 무렵, 진명은 마지막 정액을 쏟아 내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일어났다. 설노는 온몸이 새하얗게 질리고 숨이 가쁜 채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오늘도 수고했다. 이제 평소처럼 잠들어라.”

그가 손을 흔들자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흐려졌다가 다시 본래의 빛을 되찾았다. 그러나 의식은 즉시 깊은 잠에 빠졌다.

진명은 흐트러진 침상을 단정히 정리하고 그녀의 옷을 다시 입혀준 뒤 방을 빠져나갔다. 달빛은 차갑게 비칠 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했다.

다음 날 아침, 육설기는 상쾌하게 일어났다.

“오늘은 어쩐지 몸이 더 개운하네.”

그녀는 어렴풋이 느껴지는 나른함과 허벅지 사이의 묘한 감각에 조금 이상함을 느꼈지만, 잠시 생각한 끝에 ‘최근 수련이 잘 풀려서 생긴 현상이겠지’ 하고 넘겼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고치는데, 어깨와 가슴 사이에 아주 희미하게 남은 붉은 자국이 보였다.

“벌레에 물렸나……? 왠지 간지럽네.”

그녀는 아무런 의심 없이 옷깃을 여미고 방을 나섰다. 정자 앞에서는 진명이 손을 흔들며 그녀를 맞이하고 있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오늘은 어떤 수련을 하실 건가요?”

“먼저 검술 기본 자세를 점검해야겠다. 너도 와서 배우려무나.”

“네!”

진명이 해맑게 대답하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침 햇살 아래에서 두 사람은 한없이 평화로운 선후배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전날 밤 벌어진 어둡고 타락한 광경을 상상하지 못했다.

진명은 속으로 생각했다.

‘점점 완벽해져 가는군…… 그녀가 스스로 나를 의지하게 될 때까지. 그 순간이 오면 이 예술은 완성된다.’

그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육설기의 뒤를 따라 연무장으로 향했다. 등의 태양은 따사로웠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깊고 차가운 어둠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은밀한 밤

저녁 달빛이 서늘하게 내려앉은 청운문의 후원, 육설기의 거처는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초승달이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밤, 모든 것이 평온해 보였지만 진명의 발걸음은 그 평온을 깨뜨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복도를 따라 걸었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수련 시간이 끝난 후, 모든 제자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때를 그는 정확히 노렸다. 육설기의 창문가에는 한 줄기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고, 그녀는 침상에 누워 얕은 숨을 쉬고 있었다. 평소의 날카로운 눈빛은 사라지고, 잠든 얼굴은 어쩐지 연약해 보였다.

진명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방 안으로 조용히 들어섰다. 그는 육설기의 침상 곁에 서서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이 그녀의 이마에 살짝 닿았다. 차가운 감촉이他的 손끝을 스쳤다. 그는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설노야, 돌아와라."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육설기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평소의 맑고 냉철함을 잃고, 대신 몽롱하고 공허한 빛을 띠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았고, 긴 머리가 어깨에 흘러내렸다. 마치 꿈속에서 깨어난 인형 같았다.

"주인."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지만, 그 안에는 생기가 없었다. 진명은 그 부름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턱을 살짝 집어 올리며 눈을 마주했다.

"오늘은 기분이 좋군."

그는 말하면서, 그녀의 옷깃을 천천히 풀기 시작했다. 육설기는 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손짓에 따라 몸을 움직이며, 그의 품 안으로 스며들었다. 진명은 그 순간의 절대적인 통제감을 즐겼다. 평소에는 차갑고 고고하며 적의를 품고 있는 그녀가, 지금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침상 위로 밀어 넘어뜨렸다. 달빛이 침상을 비추고, 그 위에 두 그림자가 얽혀 있었다. 진명의 손길은 부드러우면서도 강압적이었다. 그는 천천히 그녀의 옷을 벗기며, 드러난 하얀 살결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날카로웠다.

"설노야, 네 몸을 내게 맡겨라."

그의 목소리는 속삭임 같았지만, 명령이었다. 육설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몸을 맡겼다. 진명은 그 위로 올라타서, 그녀의 몸을 자신의 아래에 두었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자신의 흔적을 새겨 넣었다. 육설기의 입가에서는 낮은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지만, 그 소리는 오히려 진명의 쾌감을 자극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 안에는 그들의 숨소리와 가끔씩 들리는 신음소리만이 가득 찼다. 진명은 그 순간의 절대적인 지배를 즐겼다. 그는 육설기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며, 모든 반응을 통제했다. 그녀에게는 거부할 힘이 없었고, 오직 순종만이 있을 뿐이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진명은 몸을 움츠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육설기 위에서 내려와, 그녀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피부에는 붉은 자국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고, 그 광경에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옷을 정리했다. 그리고 다시 침상 곁으로 가서, 손을 내밀어 육설기의 이마를 살짝 쓰다듬으며 주문을 외웠다.

"잠들어라, 설노야."

육설기의 눈이 천천히 감겼다. 그녀의 몸이 다시 평온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진명은 방 안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창문을 통해 다시 그림자처럼 빠져나와, 달빛 아래로 사라졌다.

다음 날 아침, 육설기는 눈을 떴다. 그녀는 몸이 약간 뻐근한 것을 느꼈다. 허리가 특히 아팠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제 수련에서 무리를 했던가 생각했다. 별다른 의심 없이,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아침 수련을 준비했다.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빗으며, 목덜미에 희미하게 남은 붉은 자국을 발견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 자국을 문질렀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벌레에 물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평소처럼 차갑고 고고한 표정으로 방을 나섰다.

복도에서 진명과 마주쳤을 때, 그는 여느 때처럼 온화한 미소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육 사매, 오늘 안색이 좋아 보이네."

육설기는 그를 흘낏 보았다. 눈빛에는 변함없는 냉기가 깃들어 있었다.

"진명 사형께서 무슨 일로?"

"별거 아니네. 그냥 지나가다가 인사한 것뿐이야."

진명은 담담하게 말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육설기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진명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소매를 살짝 정리했다. 그 안에는 그의 깊은 어둠이 숨겨져 있었다.

밤이 되면, 또다시 그의 시간이 올 것이었다.

시험과 신뢰

육설기가 진명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오후 수련이 끝난 직후였다. 그녀는 여전히 평소처럼 차가운 표정을 유지했지만, 진명을 대하는 태도는 예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진명 도우.”

그녀가 문 앞에 서서 조용히 인사했다. 진명은 책상 앞에서 무언가를 읽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육 사매.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지난번 합동 수련 이후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어서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육설기가 방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그녀는 진명이 권한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진명은 그녀의 말을 경청하는 척하며 속으로 쾌감을 느꼈다. 낮 동안의 육설기는 완벽하게 정상이었다. 자신의 최면이 얼마나 정교한지, 그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희열이 밀려왔다.

“사매의 수련 태도는 정말 모범적이오. 그 집중력이라면 분명 큰 진전이 있을 것이오.”

진명이 부드러운 어조로 칭찬했다. 육설기는 살짝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은 듯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그때 진명이 대화의 방향을 살짝 돌리기로 마음먹었다.

“육 사매는 혼자 수련하는 시간이 많다고 들었소. 다른 제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하던데.”

“저는... 혼자 있는 것이 편합니다.”

육설기가 약간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렇군. 그런데 사매는 나이에 비해 너무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오. 젊은이들이라면 연애라든가, 그런 것에도 관심을 가질 법한데.”

진명이 무심한 듯 내뱉은 말에 육설기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그런 것은...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음? 왜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거요?”

진명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육설기는 얼굴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런 것들은... 더럽고, 추잡합니다. 수련하는 몸으로 그런 부정한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금기입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극도의 혐오가 섞여 있었다. 진명은 그 반응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완벽했다. 그녀가 성관계에 대해 이토록 강하게 거부감을 가질수록, 밤의 ‘설노’는 더욱 더 큰 대비를 이루었다. 자신이 그녀의 몸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오. 우리 청운문의 제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진명은 온화한 어조로 맞장구쳐 주었다. 육설기는 그 말에 안도하는 듯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도우께서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매는 정말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제자요. 내가 사매를 도울 수 있어서 영광이오.”

진명의 말에 육설기는 미소를 지었지만, 그 미소는 전혀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진명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낮의 육설기가 얼마나 경계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여도, 결국 밤이 되면 자신의 손안에 있는 인형에 불과했다.

대화가 끝나고 육설기가 돌아간 뒤, 진명은 깊은 만족감에 젖었다. 밤이 오길 기다리며, 그는 더욱 대담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밤이 깊었다. 육설기는 잠들어 있었지만, 진명은 그녀의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육설기의 눈이 떠졌다. 그러나 그 눈에는 아무런 생기가 없었다. 오직 공허만이 가득했다.

“설노.”

진명이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육설기, 아니 설노가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꼭두각시처럼 부드러웠다.

진명은 그녀의 옷을 벗기고, 손가락으로 그녀의 피부를 더듬었다. 지난번보다 더 강하게, 더 선명한 자국을 남기기 위해 힘을 조절했다.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붉은 자국이 남았다. 목덜미, 어깨, 가슴, 허리. 진명은 일부러 그녀가 낮에 옷으로 가릴 수 있는 부위를 피해, 절대 드러나지 않을 곳에 자국을 새겼다.

그의 집착은 끝이 없었다. 완벽한 정복감이 그를 채웠다. 그녀가 잠에서 깨어난 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최면은 그토록 정교했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진명은 설노를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방을 나섰다. 문을 닫는 순간,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다음 날 아침, 육설기가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이상한 감각을 느꼈지만, 곧 흔들어 버렸다.

“아무 일도 아니야.”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목덜미와 어깨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그녀는 무시했다. 어차피 수련하다 생긴 근육통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옷을 정리하고 하루를 준비했다. 진명이 그녀에게 걸어둔 최면은 그 어떤 의문도 품지 못하게 만들었다. 육설기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평소처럼 냉랭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방을 나섰다.

진명은 그녀를 보며 속으로 미소 지었다. 완벽한 게임은 계속되고 있었다.

7일의 약속

칠흑 같은 어둠이 진명의 방을 감쌌다. 촛불 하나 없이도 그의 눈은 선명하게 빛났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향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육 도우, 치료가 생각보다 더디게 진행되고 있소.”

육설기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냉철함이 서려 있었다. “수행에 지장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지장이라기보다는... 효율의 문제요.” 진명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자네의 내상은 단순한 육체적 손상이 아니오. 정신 영역까지 침범당했소. 그래서 나는 더 깊은 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소.”

“깊은 이완이라면?”

“7일마다 한 번씩, 특별한 주입식 요법을 받는 것이오. 그동안 자네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내 목소리에 집중해야 하오. 그러면 치료 효과가 몇 배로 상승할 것이오.”

육설기가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진명을 믿었다. 지난 열흘 동안, 그의 온화한 태도와 정확한 진단은 그녀의 경계심을 서서히 무너뜨렸다. 그리고 지금, 그가 제안한 방법은 충분히 합리적으로 들렸다.

“그것이 수련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동의하겠습니다.”

진명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손을 내밀어 향로의 뚜껑을 열었다. 은은한 약초 향이 방 안에 퍼졌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하겠소. 눈을 감고, 편안히 숨을 쉬게.”

육설기가 명령에 따랐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진명은 천천히,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네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모든 긴장이 사라진다. 너는 지금 안전하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육설기의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그녀의 호흡이 깊어졌다.

“네 몸은 내 목소리에 반응한다. 네 마음은 내 명령에 열려 있다. 네가 깨어 있을 때는 모든 것을 기억하겠지만, 이 순간만큼은 완전히 내게 맡겨라.”

그녀의 손이 무릎 위에 놓였다. 진명은 일어나 그녀 뒤로 걸어갔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너는 강하다. 하지만 강함이란 때로는 내려놓는 법을 아는 것이다. 지금, 너는 내려놓는다. 모든 저항을. 모든 의심을. 그저 흘러가게 둬라.”

육설기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의 표정은 평온했다. 마치 깊은 잠에 빠진 듯했다.

“이제부터 7일마다, 너는 이 방으로 돌아온다. 매번 더 깊이 이완될 것이다. 네 몸은 점점 더 내 목소리에 익숙해질 것이다. 네 의식은 점점 더 내 명령을 따를 것이다.”

진명의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일어나면, 너는 오늘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가벼운 피로와 함께, 내가 준 치료가 효과적이었다는 느낌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치료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것을 갈망하게 될 것이다.”

그가 손을 휘저었다. 향로의 연기가 소용돌이쳤다.

“이제 깨어나라. 하지만 내 목소리는 네 깊은 곳에 남을 것이다. 영원히.”

육설기가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잠시 흐릿했지만, 곧 또렷해졌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치료가 끝났습니까?”

“그렇소. 기분은 어떤가?”

“조금... 어지럽습니다. 하지만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듭니다.”

진명이 미소 지었다. “처음이라 그런 것이오. 계속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질 것이오.”

육설기가 일어섰다. 그녀는 진명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7일 후, 같은 시간에 오게.”

그녀가 방을 나갔다. 진명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벌써 첫 번째 주입이 끝났군. 앞으로 7일, 그리고 또 7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너는 내 것이 될 것이다.”

그의 눈빛에 어둠이 스쳤다.

며칠 후, 육설기는 수련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동작은 예전보다 약간 느렸다. 무언가가 그녀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치료 후의 피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의식 깊은 곳에 심어진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다.

“육 도우, 요즘 좀 피곤해 보이오.”

한 동료가 다가와 말했다. 육설기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소. 진 도우께서 치료를 해주고 계시오. 곧 나아질 것이오.”

“그래도 무리는 마시오.”

동료가 떠나자, 육설기는 검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진명의 방 쪽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그녀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다음 치료가 기다려졌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치료는 고통스러운 과정인데, 왜 그녀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그녀는 다시 검을 집어 들었다.

7일 후, 진명의 방.

육설기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의 얼굴은 차분했지만, 눈동자에는 약간의 기대가 서려 있었다.

“잘 왔소, 육 도우.”

진명이 그녀를 맞았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부드러웠다.

“오늘은 조금 더 깊은 이완을 시도하겠소. 준비되었소?”

“예.”

육설기가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진명의 목소리가 그녀를 감쌌다.

“눈을 감아라. 숨을 깊이 들이쉬어라. 네 몸이 점점 무거워진다. 편안해진다. 너는 지금... 가장 안전한 곳에 있다.”

육설기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그녀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너에게 말한다. 네 몸은 내 목소리에 더 민감해진다. 네 마음은 내 명령에 더 열린다. 너는 깨어 있을 때도, 내가 심은 씨앗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너를 조종할 것이다.”

진명의 손가락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너는 점점 더 순종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다만, 내가 너에게 준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낄 뿐이다.”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마치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이제 깨어나라. 하지만 기억하라. 너의 진정한 의지는 내 안에 있다.”

육설기가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는 이전보다 더 흐릿했다. 그녀는 진명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기분이 좋습니다. 마치 모든 짐이 내려간 것 같아요.”

“그것이 치료의 효과요.”

진명이 대답했다. 그의 표정은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앞으로 몇 달, 아니 몇 년, 육설기는 점차 변해갈 것이다. 그녀의 냉철함은 무뎌지고, 그녀의 경계심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녀는 완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다.

그녀가 방을 나갈 때, 진명은 그녀의 뒷모습에 중얼거렸다.

“다음은 7일 후. 그때는 더 깊은 곳까지 파고들 것이다.”

육설기는 복도를 걸으며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가벼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명을 신뢰했다. 그가 그녀를 치료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모르는 것은, 그 신뢰가 바로 그녀를 무너뜨리는 도구였다는 사실이었다.

깊은 밤의 향연

깊은 밤이었다.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은밀한 후원, 진명은 조용히 육설기의 거처 앞에 섰다. 그는 문고리를 살며시 돌렸다. 걸리지 않았다. 그가 이미 풀어놓았던 것이다.

방 안은 어둑했지만, 진명의 눈에는 전혀 걸림이 없었다. 그는 침상 앞에 다가가 가만히 앉았다. 육설기는 옷을 입은 채로 잠들어 있었고, 숨결은 고르고 평온했다. 진명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얹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깨어나라, 설노."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도 명령적이었다. 육설기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하지만 그 눈동자는 생기를 잃고, 깊은 밤을 닮은 텅 빈 어둠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인."

설노는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았다. 진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그녀의 턱을 집어 올려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했다.

"오늘 밤도 오래 할 것이다. 준비되어 있느냐?"

"예, 주인."

설노의 대답은 망설임 없이 맑았다. 그러나 그 맑음 속에는 어떤 자기 의지도 담겨 있지 않았다. 진명은 그 텅 빈 순종이 즐거웠다.

그는 그녀의 옷깃을 벗겼다. 매끈한 어깨가 드러났다. 침묵 속에서 진명의 손길이 천천히 움직였다. 설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그녀의 숨결이 미세하게 가빠질 뿐이었다.

"자, 엎드려라."

설노는 말없이 몸을 돌려 침상 위에 엎드렸다. 진명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완벽한 곡선, 저항 없는 자세.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이 밤은 길었다.

그가 몸을 밀어 넣자, 설노는 작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도 쾌락도 아닌, 단지 신체의 반사였다. 진명은 그 텅 빈 소리에 더욱 깊이 박아 넣었다. 움직임이 거칠어질수록 설노의 몸은 떨렸지만,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 속에 흩어져 있었다.

"너는 정말 완벽한 인형이다."

진명은 그녀의 귀에 대고 낮게 속삭였다.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감아쥐었다.

"청운문의 천재?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다. 지금 이 순간, 너는 그저 나의 것이다."

설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얌전히 진명의 손에 몸을 맡겼다. 진명은 그 태도가 더욱 자극적이었다. 모욕해도, 괴롭혀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존재. 그것은 그가 완전히 지배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진명은 그녀를 뒤집어 다른 자세를 취하게 했다. 다리를 벌리고, 하늘을 보며 누운 설노. 그는 그녀의 가슴을 움켜잡고, 또 한 번 깊이 찔러 넣었다. 설노의 몸은 아랫배가 경련하듯 떨렸지만, 그녀는 여전히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보아라. 네 몸은 나를 원한다."

진명은 손가락을 그녀의 아랫입술에 가져갔다. 설노는 자동적으로 그 손가락을 입 안으로 받아들였다. 혀가 무의미하게 움직였다. 진명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녀를 몇 번 더 다른 자세로 취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옆으로 누워. 매번 설노는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고, 진명은 그 몸을 마음껏 탐했다. 마침내 그의 몸이 긴장하며 마지막 움직임을 마쳤다. 잠시 후, 그는 그녀에게서 몸을 떼었다.

"이제 씻겨라."

설노는 조용히 일어나 대야로 걸어갔다. 물을 적신 천으로 자신의 몸을 닦기 시작했다. 진명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을 걸었다.

"오늘 밤, 네가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느냐?"

설노가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는 여전히 텅 비어 있었다.

"아니요, 주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좋다. 이제 잠들어라. 그리고 아침이 오면, 너는 육설기로 돌아가야 한다. 기억하라. 너는 밤새 깊이 잠들어 있었다. 피로도 없고, 꿈도 꾸지 않은 편안한 잠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주인."

설노는 침상 위에 다시 누웠다. 눈을 감자 그녀의 숨결은 곧 고르고 깊어졌다. 진명은 한참 동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잠든 얼굴. 그가 저지른 일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을 나갔다. 문을 닫으며 그는 만족감에 입술을 적셨다. 앞으로도 이런 밤은 계속될 것이다.

아침이 밝았다. 육설기는 눈을 떴다. 창밖으로 부드러운 햇살이 들어와 방 안에 비쳤다. 그녀는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몸이 무척 개운했다. 요 며칠 동안 깊이 잠을 잔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옷을 정리하고 문을 열었다. 마침 진명이 댓돌 위에 서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설기 도우미, 밤새 잘 주무셨습니까?"

육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진명 사형님. 덕분에 오랜만에 편안히 잤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아니요. 그냥 지나가다 인사드린 것뿐입니다. 오늘도 수련에 전념하십시오."

진명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육설기는 그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렇게 다정하게 챙겨주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서 수련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명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가에 어두운 미소를 띠었다. 그녀의 눈에는 전혀 비치지 않는 미소였다. 그는 그 은밀한 승리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오늘 밤도, 또 내일 밤도, 그녀는 그의 인형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절대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