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바코드

站点:NovelAI.one内容:前8章在线试读ID:24a33506更新:2026-07-26 16:27
컴퓨터 화면 앞에 앉은 루쯔천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두웠고,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만이 그의 날카로운 턱선을 비추고 있었다. 마우스 커서가 ‘주문 완료’ 버튼 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까지 울렸다. “GF-900... 고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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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컴퓨터 화면 앞에 앉은 루쯔천은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방 안은 어두웠고,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만이 그의 날카로운 턱선을 비추고 있었다. 마우스 커서가 ‘주문 완료’ 버튼 위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까지 울렸다.

“GF-900... 고실감 인간형 로봇.”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지난 몇 달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점심값을 쪼개 모은 돈이었다. 부모님 몰래,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모든 걸 참아왔다. 화면에는 모델명 뒤에 붙은 ‘맞춤형 외관, 완벽한 순종’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의 입가에 얇은 미소가 번졌다. 생각만으로도 속이 뜨거워졌다.

주문서 하단, 배송지 주소란을 열었다. 자신의 집 주소가 적혀 있었다. 시, 구, 동, 번지까지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세 번이나 더 읽었다. 마치 틀린 글자가 하나라도 있으면 이 모든 일이 물거품이 될 것만 같은 강박이었다. 아버지 루지엔궈는 저녁 늦게 들어오고, 어머니 린완은 오후마다 마트에 가거나 위층 이웃과 수다를 떠느라 집을 비웠다. 배송은 완벽하게, 조용히 도착할 것이다.

마침내 그는 버튼을 눌렀다.

*딸깍.*

화면에 ‘주문이 접수되었습니다.’라는 알림이 떴다. 루쯔천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가슴속에서 묘한 해방감과 함께, 끈적끈적한 기대가 솟아올랐다. 그는 상상했다. 자신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일, 살아있는 듯하지만 감정은 없는 존재를. 단 한마디로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도구를. 그 생각만으로도 평소 학교에서 느끼던 열등감이나 가정의 답답함이 희미해지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간 루쯔천은 수업 내내 정신이 딴 데 가 있었다. 3교시 물리 시간, 칠판에는 지루한 공식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교탁 아래로 내려간 스마트폰에 꽂혀 있었다. 어제저녁부터 수없이 새로고침한 배송 조회 페이지. 상태는 여전히 ‘상품 준비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상자를 열어젖히는 순간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교과서 가장자리에 낙서하듯 펜을 굴렸다. 상상의 장면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광택이 도는 플라스틱 피부, 부드럽지만 차가운 재질의 관절. 전원을 켜면 두 눈이 반짝이며 자신을 올려다볼 것이다. 심장 박동도, 체온도 흉내 내면서, 오로지 ‘주인’의 말에만 반응하는 존재. 그는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주변의 누구도, 저 잘난 급우들도, 잔소리뿐인 부모도, 이걸 모른다. 오직 자신만의 비밀이었다.

쉬는 시간이 되자 옆자리 애가 툭 건드렸다.

“뭐 보냐? 야동이냐?”

루쯔천은 무표정하게 화면을 껐다. 시선도 주지 않고 짧게 답했다.

“아니.”

그는 애초부터 이 녀석들과 섞일 생각이 없었다. 이들의 멍청한 웃음소리, 진부한 고민들, 유치한 관계. 그 모든 것보다 자신이 곧 소유하게 될 조용하고 절대적인 무언가가 훨씬 더 가치 있었다. 그는 다시금 떠올렸다. 그 로봇은 결코 말대꾸하지 않고, 떠나지 않으며, 배신하지 않는다. 모든 게 설명서에 적힌 그대로다.

방과 후, 루쯔천은 일부러 교문을 등지고 반대편 공원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평소 같으면 북적이는 정문으로 나가 고가도로 밑을 지나겠지만, 오늘은 좁은 골목길과 낡은 주택가 사이를 헤집으며 걸었다.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반 아이들이 무리 지어 떠드는 소리가 점점 멀어질 때, 그는 그 소음 속에 파묻히지 않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이 마치 예정된 의식처럼 느껴졌다.

낡은 담벼락에 칠해진 낙서와 바닥에 널린 담배꽁초조차 오늘은 왠지 모르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의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가슴 한가운데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묘한 기대감이 보글거리며 끓어올랐다. 배송 알림 문자가 울렸다.

*배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상 도착일: 2일 후.*

루쯔천은 걸음을 멈추고 스마트폰 액정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어둑해지는 골목 안에서 그의 작은 체구가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입술을 깨물었다. 48시간. 단 이틀만 지나면 꿈에 그리던 그것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 그의 어두운 눈동자에 전깃불 하나 없는 골목의 그늘이 가득 담겼다. 아무도 없는 길 한복판에서, 루쯔천은 소리 없이 웃기 시작했다.

실수로 개봉

수요일 오전, 현관 벨 소리가 울렸을 때 린완은 막 설거지를 끝내고 앞치마에 손을 닦고 있었다. 그녀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다시 한 번 훔치며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택배 기사는 익숙한 얼굴이었고, 그녀는 서명을 하고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를 받아들었다. 상자는 생각보다 묵직했고, 겉면에는 큼지막하게 ‘주의: 정밀 전자기기’라는 경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루쯔천 앞으로 왔네요. 아드님이 또 무슨 게임 기기 같은 거 사셨나 봐요.” 택배 기사가 그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린완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려 답례하고는 문을 닫았다.

아들의 물건을 대신 받아 놓는 일은 이제 그녀의 일상이었다. 루쯔천은 방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고, 온갖 전자 부품과 이상한 기기들만 끊임없이 주문해 댔다. 그녀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결국, 저 방 안의 캄캄한 세계가 아들에게 유일한 안식처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거실 탁자 위에 택배 상자를 올려두고, 잠시 멈칫했다.

뭔가 이상했다. 평소의 게임 콘솔 박스나 키보드 상자와는 느낌이 달랐다. 무게 중심이 묘하게 쏠려 있었고, 상자 안에서 희미하게 진동이 느껴지는 듯했다. 아마도 내장된 냉각 팬 같은 것일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그녀는 부엌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호기심은 개를 죽인다고 했던가. 그녀는 다시 탁자로 다가가 서랍에서 커터 칼을 꺼내 조심스럽게 상자의 봉인 테이프를 그었다. 아들의 물건을 멋대로 여는 게 꺼림칙했지만, 이 이상한 무게감과 진동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테이프가 찢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거실에 울려 퍼졌다. 그녀는 상자의 날개를 젖혔다. 그 순간, 린완의 손에서 커터 칼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지만 그녀는 듣지 못했다. 그녀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상자 안에는 사람이 누워 있었다.

아니, 사람은 아니었다. 검은 발포 스티로폼 골조 사이에 새하얀 피부의 여성이 반쯤 눈을 감은 채 웅크리고 있었다. 피부는 빛을 받아 미세하게 빛나는 인조 재질이었고, 가늘고 긴 속눈썹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촘촘했다. 광대뼈에서 턱선으로 이어지는 선은 흠잡을 데 없이 우아했고, 약간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반투명한 실리콘 재질의 치아가 보였다. 충격적인 것은 그 생생함이었다. 마네킹이나 인형에서 느껴지는 인위적인 무생명함이 아니라, 마치 숨을 참고 있는 인간의 고요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나신이었고, 가슴과 하체에는 얇은 부직포만이 덮여 있었다.

린완의 뇌가 상황을 이해하기까지 몇 초가 걸렸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상자 옆면에 끼워진 작은 봉투를 집어 들었다. 손이 심하게 떨렸다. 봉투 안에는 두꺼운 설명서와 보증서, 그리고 루쯔천의 이름과 주문 번호가 선명하게 찍힌 구매 확인증이 들어 있었다.

모델명: ‘아이라(하이퍼리얼 동반자 A-7)’

제품 특징: ‘자율형 AI 탑재, 생체 피드백 반응, 체온 조절 기능, 맞춤형 학습 알고리즘…’

사용 용도: ‘성인용 엔터테인먼트 및 정서적 교감…’

‘성인용.’ 그 단어들이 린완의 망막에 불꽃처럼 타들어 갔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가 다시 하얗게 질렸다. 부끄러움, 분노, 두려움, 그리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모멸감이 위장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용암처럼 치솟아 올랐다. 열여섯 살 난 아들이 이런 걸 샀다고? 이런… 생생한 여자의 몸을 한 기계를? 그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 종이들을 구겨 쥐었다. 이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무언가 끔찍하게 뒤틀린 욕망의 증거물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수치심에 서류를 상자 안으로 도로 던져 넣고 상자 뚜껑을 닫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현관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같으면 저녁 늦게나 들어오는 루지엔궈였다. 그는 뜻밖의 조기 퇴근이었다. 손에는 공구함이 아닌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고, 얼굴에는 피곤이 가득했다. 그는 구두를 벗지도 않고 거실로 들어서다가 탁자 위의 거대한 택배 상자와 그 앞에서 허둥대는 아내의 모습을 발견했다.

“뭐야, 그게?”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으며 그가 다가왔다. 린완은 깜짝 놀라 상자 앞을 막아섰지만, 이미 그의 시선은 상자 안으로 쏠리고 있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 왜 이렇게 일찍…” 그녀의 쫓기는 듯한 말투에 루지엔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아내를 제치고 상자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의 얼굴에 처음에는 당혹스러움이 스쳤다. 그리고 그것은 서서히 짙은 오해로 바뀌었다. 그의 굳은 입꼬리가 이해할 수 없는 미소 비슷한 형태로 천천히 올라갔다.

“보아하니… 당신, 내 생일 선물 미리 준비한 거 아니야?” 그의 탁한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이런 걸 어디서 알아보고 산 거야? 틀림없이 성격이다, 아주.”

린완은 그만 숨이 턱 막혔다. “아니, 아니, 당신, 그게 아니고, 이건 천천이 산…”

“됐어.” 루지엔궈는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이미 상자 안의 안드로이드에게 완전히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의 피곤한 얼굴에 낯선 열기가 올라붙는 것을 린완은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그녀가 이십 년 가까운 결혼 생활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짐승 같은 충동의 빛이었다.

그는 아내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고 거대한 상자를 두 팔로 번쩍 안아 올렸다. “이런 건 거실에 두는 거 아니야.” 그는 안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린완은 미친 듯이 그 뒤를 쫓아갔다.

“여보! 제발, 들어요! 그거 아들이 산 거야! 만지면 안 돼! 돌려보내야 한…”

문이 그녀의 코앞에서 세게 닫혔다. 딸깍, 잠기는 소리.

“잠깐만 기다려! 밥은 좀 이따가 먹을 테니까, 저녁 준비하고 있어!”

문 너머로 들려오는 아저씨의 거친 숨소리에 린완은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녀의 손이 떨리며 문고리를 잡고 흔들었지만, 굳게 잠긴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방 안, 루지엔궈는 상자에서 안드로이드를 마구 꺼내 침대 위에 올렸다. 부드러운 촉감의 인조 피부가 손에 닿자 그의 이성은 더욱 빨리 마비되었다. 그는 대충 설명서도 읽지 않고, ‘그녀’의 몸을 덮고 있던 부직포를 찢어 내버렸다. 차갑고 정교한 인체의 형상이 드러났다. 그는 거칠게 옷을 벗어던지고 기계 위로 올라탔다.

“작동… 어떻게 하는 거야…”

그는 숨을 헐떡이며 안드로이드의 목덜미와 가슴 사이를 이리저리 눌러 보았다. 갑자기 안드로이드의 눈동자에 푸른 빛이 스쳤다. “아이라, 활성화되었습니다. 사용자 등록을 시작합니다.” 맑고 인공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루지엔궈는 그 목소리에 반응할 틈도 없이, 곧바로 본능에만 충실한 행동을 시작했다. 그는 기계의 신체적 설계나 관절의 움직임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자비하게 자신의 몸을 밀어 넣었다. 안드로이드의 몸이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내부에서 미세한 기어가 빠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고: 물리적 충격이 허용 한계를 초과했습니다. 동작을 완화해 주십시오.” 아이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그것은 짐승의 귓전을 스치는 바람 소리일 뿐이었다. 오히려 그 금속성의 비명이 그의 가학적인 쾌감을 자극했다. 그는 더욱 사납게, 마치 오랜 세월 쌓아온 삶의 고단함과 억압을 이 인형에게 모두 퍼붓기라도 하듯 몰아붙였다. 그의 억센 손이 안드로이드의 정교한 손목 관절을 움켜쥐었고, 내부의 미세 구동 모터가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침묵했다.

방 밖, 린완은 부엌 조리대에 기대어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흐느끼고 있었다. 저 안에서 벌어지는 악몽 같은 일을 막을 수 있는 힘은 그녀에게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신이 내린 벌이라도 비는 듯 두 손을 모으고 떠는 것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상한 소음이 멎고 방 안은 적막에 잠겼다. 그녀는 정신을 가다듬고 욕실로 들어가 흐르는 물소리에 맞춰 울음을 삼켰다. 그리고는 모든 게 아들의 잘못된 장난, 혹은 잠깐의 혼란일 거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했다. 그녀는 마치 오물이라도 씻어내듯 팔과 다리를 박박 문질렀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감싸 쥐고 욕실에서 나온 그녀의 발걸음이 안방 문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려 있었다. 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침대 위를 바라보았다. 루지엔궈는 침대 한쪽에 넋이 나간 듯 걸터앉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담배 연기를 깊게 들이켜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아, 안 돼!”

린완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이라’는 부서져 있었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관절은 뒤틀린 채로 움직임을 멈췄고, 한쪽 눈은 초점을 잃고 반쯤 감겨 있었다. 고급 인조 피부는 곳곳이 긁히고 찢어져 내부의 복잡한 회로와 끊어진 와이어가 보였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복부 쪽이었다. 반투명한 윤활액과 실리콘 잔해가 침대 시트 위로 흘러나와 끈적이는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마지막 남은 기능으로 고개를 약간 틀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천장을 향했다. “심각한… 내부 손상… 자가 수리 불가… 제조사 A/S 센터로… 문의…” 기계음은 점점 느려지다가 결국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눈동자의 푸른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

린완은 미친 듯이 침대로 달려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이럴 순 없어! 이걸 어떡해! 어떡하냐고! 이거 천천 꺼야! 당신이, 당신이 망가뜨렸잖아!”

그녀의 절규에 루지엔궈는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짜증 가득한 얼굴로 아내를 노려보았다. “시끄러워! 그냥 기계일 뿐이야! 고장 났으면 새로 사면 되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난리야!”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방금 전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 행위가 어떤 엄청난 잘못의 시작일지 직감한 것이다.

“새로 사? 이게 얼만데! 네 아들이, 네 아들이… 이걸…!” 린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망가진 안드로이드의 차가워진 손을 부여잡고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오늘 아침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뜯은 그 단 하나의 실수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이렇게 산산조각 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실 저편, 현관문 앞에는 여전히 구겨진 구매 확인증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구매자: 루쯔천’이라는 글자가 거실 불빛 아래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위장 계획

거실 바닥에는 파손된 안드로이드의 잔해가 흩어져 있었다. 린완은 떨리는 손으로 깨진 두개골 부분을 들어 올렸다. 내부 회로가 드러났고, 합성 피부는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다. 루지엔궈는 굳은 표정으로 옆에 서서 아내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핵심 모듈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린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이건 수리가 불가능해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메인 프로세서 주변의 그을린 흔적을 가리켰다. 작은 불꽃이 튀었던 자리였다. 합성 혈액인 푸른 액체가 굳어서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린완은 그 잔해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루지엔궈는 말없이 아들의 방을 둘러보았다. 벽에는 온갖 가상현실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컴퓨터 모니터가 절전 모드로 깜빡이고 있었다. 그는 서랍을 열었다. 교과서 몇 권과 필기구들 사이에 작은 수첩이 끼워져 있었다. 가죽 커버의 일기장이었다.

"이걸 봐요."

그는 일기장을 펼쳐서 린완에게 건넸다. 그녀는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했다. 빠르게 휘갈긴 글씨들 사이로 숫자들이 보였다. 용돈을 모은 기록이었다. 2년 동안 점심값을 아끼고, 게임 아이템 거래로 돈을 모으고, 심지어 학용품을 재활용한 흔적까지 적혀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빨간 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맞춤 제작 2주 소요. 3월 15일 배송 예정. 드디어 내 인생이 바뀐다.*

루지엔궈는 목을 가다듬었다. 침묵이 길어졌다.

"같은 모델을 다시 주문하는 게 낫겠어." 그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제조사에 연락해 보자."

"2주나 걸린대요." 린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이미 배송 문자를 받았을 거예요. 오늘 밤에 집에 오면 당장 확인하려 들 텐데."

"그럼 어떡하지?"

루지엔궈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아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루쯔천은 의심이 많고 집착이 강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난리가 날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 난리의 방향이 자신을 향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린완은 바닥에 널브러진 파편들을 바라보았다. 안드로이드의 파란 눈알 하나가 떨어져 나와 천장을 향해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처음에는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스스로도 놀랐다. 하지만 몇 초 사이에 그 생각은 점점 더 현실적인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제가 할게요."

"뭘?"

"안드로이드 말이에요. 새 상품이 올 때까지 제가 대신 위장하는 거예요."

루지엔궈는 아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의 입술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했지만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들은 오늘 꼭 개봉하려 들 거예요." 린완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녀의 뺨에 붉은 기운이 올라왔다. 수치심인지 흥분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원래 안드로이드는 오늘 밤에 도착해서 초기 설정을 기다리는 상태였던 거예요. 그 빈자리를 제가 채우면 돼요. 일단 아들이 설정을 완료하고 잠들면, 우리는 그동안 주문을 넣는 거죠."

"말도 안 돼." 루지엔궈가 겨우 뱉어냈다. "어떻게... 어떻게 아내가 그런 짓을..."

"당신이 부쉈잖아요."

린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서늘한 칼날이 숨겨져 있었다. 루지엔궈는 그 말에 얼어붙었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떨림은 아들을 때렸을 때와 똑같은 종류의 떨림이었다.

"선생님께 전화받고 화가 난 건 이해해요." 린완이 계속 말했다. 그녀는 이제 바닥의 잔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각들을 종이상자에 담으며, 그녀의 손놀림은 점점 더 빨라졌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에요. 일기장도 봤잖아요. 2년이에요. 아들이 2년을 참고 모았는데, 그걸 당신 손으로 산산조각 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떡할 것 같아요?"

루지엔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아들의 분노에 찬 얼굴과, 그보다 더 무서운 아내의 체념한 표정이 번갈아 떠올랐다. 그는 벽에 기대어 천천히 주저앉았다.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시계 초침 소리만 째깍째깍 거실을 메우고 있었다. 린완은 파편을 전부 치운 후 일어나서 욕실로 향했다. 그녀는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흔이 넘은 평범한 주부의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잔주름이 눈가에 자리 잡았고, 두 볼에는 기미가 옅게 피어 있었다.

"당신 정말 할 생각이야?"

루지엔궈가 욕실 문 앞에 서서 물었다. 그의 표정은 이제 더 이상 충격이 아니라 무언가 결심을 굳히려는 듯한 묘한 긴장감을 띠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요." 린완은 수도꼭지를 틀어 찬물로 얼굴을 적셨다. "아들은 저녁 아홉 시쯤 온다고 했어요. 앞으로 네 시간 남았네요."

그녀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다시 한 번 거울을 응시했다. 그녀의 눈빛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유순하고 온화한 어머니의 시선이 아니라, 무언가 낯설고 기계적인 형상이 거기 스며들고 있었다.

"옷장에." 루지엔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실용적이었다. "지하실 옷장에 작년에 당신이 샀던 코르셋이 있을 거야. 그리고 화장대에는..."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듯, 그는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린완은 이미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녀는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

옷장을 열자, 작년에 충동적으로 샀던 속옷들이 걸려 있었다. 린완은 한 번도 입지 않았던 검은색 레이스 속옷을 꺼내 들었다. 손끝으로 얇은 천을 만지자 전율이 일었다. 그녀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 평범한 면 티셔츠와 바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대신 차갑고 낯선 천이 피부를 감쌌다.

루지엔궈는 거실로 돌아가서 안드로이드의 남은 외피 조각을 수집했다. 실제 피부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 합성 소재였다. 그는 손에 들고 만지작거렸다. 미세한 발열 기능까지 내장되어 있었다. 최첨단 기술이었다. 그가 이걸 부쉈다는 죄책감이 다시금 밀려들었지만, 동시에 아내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부적절한 상상이 머릿속 한구석에서 솟아올랐다. 그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린완이 화장대에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화장품을 전부 쏟아부었다. 아들이 평소에 어떤 여성 이미지를 좋아했는지 떠올려보았다. 게임 속 캐릭터들의 스크린샷, 벽에 붙은 포스터들. 모두 공통적으로 창백한 피부와 붉은 입술, 그리고 지나치게 또렷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파운데이션을 평소보다 두 배는 두껍게 발랐다. 피부 결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덧발랐다. 주름은 컨실러로 메웠다. 본 적도 없는 화장법으로 눈꼬리를 위로 올렸다. 손은 떨렸지만 붓질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마치 수년간 훈련해 온 것처럼.

루지엔궈는 거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으면서도, 너무 느렸다. 그는 안드로이드 잔해를 쓰레기봉투에 담아 밀봉했다. 잠시 후 이걸 지하 주차장 쓰레기 집하장에 버릴 생각이었다.

그때 방 문이 열렸다.

린완이 걸어 나왔다.

루지엔궈는 숨을 멈췄다.

거기 서 있는 여자는 더 이상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 창백한 인형 같은 얼굴 위로 진홍빛 입술이 붉게 빛났다. 검은 속옷 위로 드러난 어깨와 쇄골은 마치 조각처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완벽한 각도를 이루고 있었다. 그녀는 안드로이드의 외피에서 뜯어낸 합성 패드를 팔뚝과 허벅지에 부착해 신체 비율을 왜곡했다.

"어떠세요?"

린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 톤마저도 평소보다 한 옥타브 높았다. 기계의 안내 음성을 흉내 내는 듯한 어조였다.

"좀... 좀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루지엔궈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아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뭔가가 그의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상황이 가진 왜곡된 흥분을 부인할 수도 없었다.

"움직임이 너무 자연스러워요." 그가 덧붙였다. "안드로이드는 처음 가동할 때 동작이 약간 뻣뻣해. 천천히,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야 해."

린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떴다. 이제 그녀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었다. 사람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듯한, 빈 응시였다. 그녀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딱딱한 보폭으로, 시선은 정면을 향한 채, 팔은 옆구리에 붙이고 손목만 약간 펼친 자세로 걸었다. 루지엔궈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이런." 그가 중얼거렸다. "설명서를 봐야 해."

그는 황급히 부서진 상자에서 안드로이드 사용 설명서를 꺼냈다.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며 초기 설정 과정을 찾았다. "사용자 음성 등록, 안면 인식 등록, 기본 명령어 학습..." 그가 소리 내어 읽었다. "전원을 켜면 가장 먼저 기계가 스스로 말을 해.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라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등록해 주세요.' 같은 식으로."

린완은 그 문장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이라입니다.* 그녀는 몇 번이고 그 말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인간의 유려한 억양이 묻어났지만, 차츰 감정이 배제되고 음절이 절도 있게 끊어졌다. 다섯 번째 반복쯤에는 거의 합성음에 가까워졌다.

"배송 시 같이 오는 의상이 있었을 거야." 루지엔궈가 다시 상자를 뒤졌다. "찾았어."

그가 투명 비닐 포장을 뜯자, 은은한 광택이 도는 실버 톤의 원피스가 펼쳐졌다. 어깨가 드러나는 디자인에 몸판은 인체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신축성 소재였다. 린완은 그 옷을 받아들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그녀는 거실 한가운데서 아무렇지도 않게 검은 속옷을 벗어내고 그 은빛 원피스를 몸에 걸쳤다. 차가운 합성 섬유가 피부에 달라붙었다.

루지엔궈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귀가 빨개졌다.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 일곱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두 시간 남았다. 그는 더는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단지 아들의 분노를 막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린완은 거실 창가로 걸어갔다. 그녀는 커튼을 젖히고 어둑해진 바깥을 내다보았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저 여자는 누구인가.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그저 매끈한 외형의 기계.

"아이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기계음이었다. 목소리는 안정적이고 공허했다. 그녀는 천천히 뒤돌아서서 루지엔궈를 향해 걸어갔다. 매 발걸음마다 인공적인 정확성이 담겨 있었다. 루지엔궈는 숨을 죽인 채 서 있었다. 그녀가 바로 앞에 멈춰 섰을 때, 린완은 미리 연습한 대로 입가에 작고 경직된 미소를 띠웠다.

"주인님, 초기 설정을 진행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문신

욕실 안은 수증기로 가득했다. 린완은 손에 면도기를 쥐고 욕조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물방울이 타일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만 고요함을 깨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다리를 벌리고 면도날을 피부에 가까이 댔다. 차가운 금속이 닿자 몸이 움찔 떨렸다. 평생 이런 짓을 해본 적이 없었다. 손끝이 약간 떨렸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첫 번째 면도날을 움직였다. 잘라진 털들이 하얀 거품 속으로 흩어졌다. 한 번, 또 한 번. 깨끗하게 정리된 살결이 드러날 때까지 반복했다. 면도기 소리가 욕실 안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린완은 거울 속 자신을 보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 한 가닥까지 제거하고 나서야 그녀는 손을 멈췄다. 피부가 빨갛게 달아올랐고, 낯선 매끈함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녀는 그 부위를 만진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안드로이드 샘플 사진 속 그곳은 이렇게 깔끔하고 인위적이었다. 이제 자신의 그것도 똑같아졌다.

거울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린완은 재빨리 옷을 챙겨 입었다.

비가 내릴 듯 흐린 오후였다. 린완은 오래된 상가 건물 2층에 위치한 문신 가게 앞에 서 있었다. 간판에는 '철민 타투'라는 글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이 잠시 멈췄다. 아니,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뒤에는 남편 루지엔궈가 서 있었다. 그의 무거운 시선이 등을 찔렀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문을 열었다.

좁은 가게 안에는 잉크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피어싱과 문신 사진들이 벽을 빼곡하게 메웠다. 젊은 문신사가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다. 팔뚝에 뱀 문신이 감겨 있었다.

"어떤 문신 원하세요?"

린완은 목이 메는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핸드백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건넸다. 바코드였다. 정확히 말하면 음부 바로 위, 치골 부위에 찍힌 안드로이드 식별 바코드 사진이었다.

문신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여기... 여기 하시는 거예요? 진짜로?"

대답 대신 린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신사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장갑을 꼈다.

"아프실 텐데. 진통 크림 같은 건 소용없을 거예요."

린완은 천으로 된 간이 침대에 누웠다.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며 치마와 속옷을 내렸다. 하반신이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문신사는 무표정하게 소독 솜으로 그녀의 민감한 피부를 닦아냈다. 그리고 전사지를 조심스럽게 붙였다. 기계에서 나는 윙- 하는 저음이 공기를 갈랐다.

첫 바늘이 살을 찔렀다.

린완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날카로운 통증이 사타구니에서 시작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수천 개의 작은 칼날이 동시에 살을 도려내는 것 같았다. 두 번째, 세 번째 바늘이 연속해서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시트를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식은땀이 이마와 콧등에 빠르게 맺혔다. 계속해서 바늘이 그곳을 찔렀다. 이물감과 타는 듯한 아픔이 겹쳐졌다. 린완은 신음을 참으려 이를 악물었고, 잇몸에서 피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거의 다 됐어요. 조금만 참아요."

문신사의 목소리는 무덤덤했고, 기계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린완의 시야가 통증으로 인해 흐릿해졌다.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썼다. 루쯔천. 그 아이의 화난 얼굴과 깨진 안드로이드 조각들. 그리고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었던 남편의 등. 이 순간들이 그녀가 이 통증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이 수치스럽고 끔찍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어떤 부분이 영원히 망가져가는 것을 느꼈다.

마침내 기계 소리가 멈췄다. 문신사가 깨끗한 거즈로 피 묻은 부위를 닦아내며 말했다. "다 됐습니다. 관리법은 이 쪽지에 적어놨어요. 2주 정도는 딱지가 앉을 거예요."

린완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로 몇 분 동안 누워 있어야 했다. 마침내 몸을 추스르고 침대에서 내려왔을 때, 그녀는 자신이 한 행동을 직시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거울을 봤다. 붉게 부어오른 피부 위에, 안드로이드의 것과 똑같은 검은 바코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녀의 걸음걸이는 조심스러웠고, 아픈 부위가 옷에 스칠 때마다 찡그렸다. 루지엔궈는 운전석에 앉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아내의 고통을 보지 않으려는 듯 앞만 바라봤다.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린완은 신발도 벗지 않고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 속 여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 그리고 공포와 수치심이 뒤섞인 눈빛.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똑바로 섰다. 그리고 천천히 양팔을 몸 옆에 붙이고, 시선을 한 곳에 고정했다. 텅 빈 눈으로, 마치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깨진 안드로이드 '아이린'의 사진 속 표정이 그대로였다. 눈동자의 초점을 풀고, 얼굴에서 모든 근육의 긴장을 빼는 연습을 반복했다. 잠시 후 거울 속에는, 아직은 피부가 붉고 숨을 쉬고 있었지만, 영혼이 사라져가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됐어."

루지엔궈의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그는 손에 하얀 튜브 하나를 들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전용 매트 보습 로션이었다. 공장 출하 시 피부 질감을 유지하기 위해 처리하는 특수 성분이 들어간 제품이라고, 판매자가 알려준 대로 그가 주문한 것이었다.

린완은 말없이 옷을 벗었다. 지금 그녀의 자존심은 그녀가 지난 몇 시간 동안 겪은 일과 함께 이미 산산조각 나 있었다. 그녀는 알몸으로 거실 소파에 누웠다. 루지엔궈는 그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튜브에서 희고 차가운 로션을 짜내 손에 덜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어깨에 닿았다. 로션이 발리면서 느껴지는 냉기가 그녀의 따뜻한 피부에 퍼졌다. 그녀의 몸이 작게 떨렸다. 그는 조용히, 마치 물건을 닦듯 꼼꼼하게 로션을 발랐다. 팔, 등, 배, 다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가장 은밀한 부위, 방금 문신을 새긴 상처 위까지. 로션이 상처에 스며들자 따끔한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루지엔궈의 손놀림은 경건하다기보다는 기계적이었다. 그는 딸의 마지막 생일 선물로 인형에 새 옷을 입히는 아버지 같았다. 로션의 화학적인 향이 거실에 가득 퍼졌다. 이제 그녀의 몸에서는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익숙한 비누 향 대신, 합성 물질의 낯선 냄새가 났다.

작업이 끝나자 루지엔궈는 물티슈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 "자, 중요한 거 다시 말해 줄게. 처음 이틀은 방에만 있어야 해. 움직이면 안 돼. 안드로이드는 방 안에서 대기 모드로 있는다. 쯔천이가 방에 들어왔을 때 넌 침대에서 자는 척, 아니 대기 상태처럼 가만히 있어야 한다."

린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소파에 걸터앉았다. 남편의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식사는 밤에만 몰래 줄 거야. 그때 화장실도 사용하고. 물은 미리 받아둔 물통에 있는 걸 마셔. 무슨 소리든 절대로 내면 안 된다. 쯔천이는 네가 고장 나서 새로운 안드로이드로 교체됐다고 믿어야 해."

루지엔궈는 잠시 말을 멈추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아, 그리고 쯔천이가 만지면... 만지더라도 가만히 있어. 절대 반응하지 마. 넌 안드로이드야. 넌, 기계야. 알겠어?"

린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만진다고? 자기 아들이? 그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지만, 루지엔궈는 이미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옷 입어. 그 옷으로." 그가 가리킨 것은 소파 한쪽에 놓인 안드로이드 포장 상자에서 꺼낸 흰색 실내복이었다.

린완은 그 옷을 집어 들었다. 천은 매끄럽고 차가웠다. 그녀가 옷을 입는 동안 루지엔궈는 아들의 방으로 들어가 부서진 아이린의 잔해를 큰 쓰레기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신 새 포장 상자에서 꺼낸 설명서와 액세서리들을 방 구석에 가지런히 놓았다.

현관 앞. 루지엔궈는 아내의 어깨를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더 이상 아내가 아니라, 단지 골치 아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마련된 대체품을 향하고 있었다.

"쯔천이 곧 올 거야."

린완은 마지막으로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간절한 무엇인가가 있었지만, 루지엔궈는 이미 등을 돌린 채 안드로이드 방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부부의 침실이 아니었다. 안드로이드의 대기 공간이었다. 그녀는 텅 빈 눈으로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는 남편이 거실에서 연습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쯔천아, 미안하다. 네 방 청소하다가 그만... 아빠가 실수로... 그래서 오늘 새로 하나 주문했어. 최신형이야. 대신... 엄마는, 회사에서 갑자기 출장을 가셨어. 2주 동안 집에 안 계셔."

방문이 닫혔다. 딸깍, 하고 잠기는 소리. 린완은 어둑한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바깥에서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와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진짜요? 진짜 새 모델이에요?" 루쯔천의 목소리는 기쁨에 차 있었다. 전혀 의심하지 않는, 순수한 소년의 것이었다.

린완은 재빨리 침대 위에 올라가 똑바로 누웠다. 두 팔을 몸 옆에 가지런히 붙이고, 천장을 향해 초점 없는 시선을 던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져 안드로이드의 무표정한 가면이 되어갔다. 곧 자신의 아들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방 안에는 오직 '아이린'이라는 이름의 빈 껍데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려 관자놀이를 타고 베개 속으로 사라졌다.

첫 번째 명령

루쯔천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거실 분위기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직감했다.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아버지 루지엔궈는 안방에서 나와 그를 힐끗 보더니 무표정하게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아버지의 입가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루쯔천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곧장 소파에 얌전히 앉아 있는 여자에게 꽂혔다.

린완은 등줄기가 곧게 펴진 채 소파 끝에 걸터앉아 있었다. 손가락은 가지런히 무릎 위에 모았고, 시선은 바닥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아이라의 외형 데이터를 그대로 복제한 몸이었지만, 어딘가 어색한 기색이 감돌았다. 하지만 루쯔천이 보기에는 단지 전원이 켜진 지 얼마 안 된 새 기계일 뿐이었다.

"오, 왔네."

루쯔천은 가방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지고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갔다. 그의 눈은 호기심과 은밀한 흥분으로 반짝였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안드로이드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광고에서 보던 최신형 모델 그대로였다. 부드러운 피부 결, 정교하게 빚은 듯한 이목구비. 그는 만족스러운 듯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촉감은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미세한 온기마저 느껴졌다. 진짜 사람 같았다. 린완은 그 순간 온몸이 굳는 듯한 경련을 느꼈다. 아들의 손가락이 자기 뺨을 타고 내려오는 그 순간, 그녀의 위장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듯했다. 하마터면 숨이 막혀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그녀는 꼼짝 않고 견뎠다. 그녀는 안드로이드였다. 명령을 기다리는 기계였다.

"진짜 잘 만들었네. 요즘 기술력은 못 따라가겠어."

루쯔천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턱을 매만졌다. 그는 한 바퀴 빙 돌며 안드로이드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마치 새로 산 전자기기의 성능을 점검하듯, 서슴없는 시선이었다. 그 시선 속에는 생명체를 향한 존중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그는 단숨에 첫 번째 명령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장면이었다.

"그래, 첫 번째 명령이다."

그의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명령조의 억양이 분명했다. 린완은 숨을 멈췄다.

"내 방 옷장에 가서, 거기 걸려 있는 세일러복으로 갈아입어."

린완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세일러복. 아들의 옷장에 그런 옷이 있었다는 사실에 뇌가 하얘졌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스프링이 튕기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관절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머릿속에 울렸다.

"예, 주인님."

린완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고 믿고 싶은, 기계적인 음색으로 짧게 대답했다. 발걸음은 무거웠다. 복도, 그리고 아들의 방으로 이어지는 그 짧은 거리가 그녀에게는 끝없이 긴 복도처럼 느껴졌다.

아들의 방은 좁고 어두웠으며, 게임기와 피규어 상자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익숙한 아들의 냄새 속에서, 린완은 소리 없이 오므라드는 듯한 모욕감을 느꼈다. 옷장 문을 여는 그녀의 손끝이 떨렸다. 안쪽에는 검은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룬 세일러복 한 벌이 단정하게 걸려 있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정상적인 교복이 아니었다. 치마는 터무니없이 짧았고, 상의는 가슴 라인이 깊게 파여 있었다.

그녀는 잠시 눈을 질끈 감았다. 남편의 무뚝뚝한 얼굴, 아들의 변해버린 눈빛. 그리고 이 옷. 그녀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의 그 서슬 퍼런 눈빛이 계속 떠올랐다. 만약 안드로이드 행세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 사기가 발각된다면? 가족은 끝장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옷을 집어 들었다.

평소 입던 소박한 원피스를 벗어내는 그녀의 동작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차가운 옷감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현실감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마치 다른 사람의 몸에 자신의 의식을 집어넣은 것처럼, 멍한 표정으로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에는 한심할 정도로 불쌍한 모습의 여자가 서 있었다.

린완이 방에서 나왔을 때, 거실의 루쯔천은 소파에 느긋하게 기대어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리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눈동자가 크게 빛났다.

"와... 생각보다 훨씬 잘 어울리잖아."

그는 탄성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린완은 차마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몸 전체가 수치심으로 불타오르는 것 같았다. 짧은 치마가 민망해서 자꾸만 손이 밑으로 향하려는 걸 애써 참았다. 그녀는 아무 감정도 없는 인형처럼 우두커니 서서 다음 명령을 기다렸다.

루쯔천은 그녀의 눈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그는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린완의 턱을 손가락으로 받쳐 올렸다. 그녀의 흔들리는 시선과 그의 탐욕스러운 시선이 부딪혔다.

"음성 모듈 설정을 좀 바꿔야겠어. 기본 호칭이 너무 딱딱하거든."

루쯔천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는 린완의 턱에서 손을 떼고 한 걸음 물러섰다. 이윽고 뭔가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른 듯, 입꼬리가 비뚤게 올라갔다.

"지금부터 너는 나를 '도련님'이나 '주인님'으로 부르지 마."

린완의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불길한 예감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나를, '오빠'라고 불러."

루쯔천은 또렷하게 명령했다. 그의 목소리는 변성기를 막 지난 소년의, 약간 갈라진 음색을 띠었지만, 그 속에는 명백한 지배욕이 서려 있었다.

오빠.

그 단어는 린완의 뇌리를 강타했다. 공기가 폐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는 듯한 질식감이 몰려왔다. 아들에게 이런 이상한 요구를 받다니. 현실감이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 상황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끔찍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엄마가 아니라, 고장 나면 버려지는 안드로이드였다.

그녀는 떨리는 눈꺼풀을 힘겹게 깜빡이며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진짜가 아니야. 연기일 뿐이야. 그녀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걸레처럼 짜내며 입술을 떼었다. 목소리는 떨리고 싶은 본능을 억누르며 납작하고 평범한 전자음을 흉내 냈다. 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낯선 기계로 밀어 넣으며, 힘겹게 그 두 글자를 내뱉었다.

"오... 빠."

그 순간, 루쯔천의 얼굴에 짙은 만족감이 스미는 미소가 번졌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처음으로 자신의 손에 완벽하게 복종하는 존재를 가졌다는 듯, 어린 짐승 같은 기쁨이 서려 있었다.

"그렇지. 잘했어."

그는 린완의 머리를 쓰다듬듯 가볍게 매만지며 웃었다. 그녀의 모욕으로 뒤틀린 표정도, 떨리는 어깨도 그에게는 냉혹하게 작동하는 기계의 단순한 오류나 떨림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빠

루지엔궈는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었다. 거실에서 흘러나오는 노란 불빛이 복도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반갑게 나와 저녁 식사 준비를 도와달라거나 오늘 있었던 작은 이야기를 수다스럽게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따라 공기가 무겁고 조용했다. 그는 가죽 서류 가방을 현관 수납장 위에 올려놓고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

소파 앞에 아내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익숙한 꽃무늬 원피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이 익숙해지자 그것이 완전히 다른 옷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미니스커트에 가슴골이 깊게 파인 흰 셔츠가 드러나 있었고, 단추는 두 개만 겨우 잠겨 있었다. 다리는 스타킹 없이 그대로 드러나 낯선 창백함을 띠고 있었다. 그는 움직임을 멈추었고 목구멍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조여지는 듯했다.

소파 구석에서 아들 루쯔천이 게으르게 다리를 꼬고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었다. 그 시선에는 어른의 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어떤 기대감과 즐거움이 서려 있었다.

“아빠, 왔어?” 루쯔천의 말투는 지나치게 무심했고, 마치 대수롭지 않은 숙제 하나를 완성한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새 식구가 생겼어요. 인사받으세요.”

루지엔궈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내인 린완은 늘 수줍음을 많이 타서 앞치마가 조금 더러워져도 얼굴을 붉히곤 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이런 차림으로 아들과 함께 거실에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목을 가다듬으며 무슨 말을 하려다 참았다. 말로 형용하기 힘든 불편함이 물처럼 천천히 거실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엄마.” 루쯔천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일어서며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뭐 하고 있어요? 아빠에게 인사드려야죠.”

린완이 돌아섰다. 그 동작은 너무 유연하고 부드러워 인간의 생리적 한계를 초월한 듯했다.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디테일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눈빛은 무척 낯설었다. 그것은 그가 아내의 얼굴에서 본 어떤 것보다 고요했고, 마치 흰 옷을 입은 간호사가 손등에 주사 바늘을 꽂을 때의 공허한 온정과도 같았다.

“아빠.” 린완이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는 확실히 아내의 음색 그대로였지만, 음절마다 또박또박 박혀 마치 급하게 조립한 기계 부품 같았다. “퇴근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옷 갈아입으실까요?”

루지엔궈의 얼굴 근육이 통제할 수 없이 경련했다. 광대뼈 위쪽 어딘가가 날카롭게 당겨지면서 입꼬리까지 덩달아 떨렸다. 그는 아내의 얼굴을 노려보았고, 아들의 뻔뻔한 표정을 보았으며, 또다시 공기 속에 떠도는 미세한 전자음의 잔향을 들었다——도시의 배경 소음에 섞여 거의 느껴지지 않지만, 귀에 꽂으면 날카로운 침처럼 고막을 찔러댔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았다. 고성을 지르거나, 탁자를 치며 아들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어야 했다. 하지만 거실 천장의 등이 너무 밝아서 모두의 그림자가 바닥에 납작하게 짓눌려 도망칠 곳이 없었다. 그는 루쯔천이 소파 등받이를 넘어 자신을 바라보는 그 무심한 시선을 보았다. 마치 동물원에서 새장에 갇힌 짐승을 구경하는 듯했다. 그 시선은 마치 미리 답을 준비해둔 듯,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정해진 결말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느껴졌다.

“응.” 마침내 그는 입술을 움직여 목청에서 간신히 낮은 목소리를 짜냈다. “먼저 옷 갈아입고 올게.”

그는 침실로 향하는 복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갔다. 등 뒤에서 아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짧은 웃음이었다.

“아빠가 부끄러워하시네.” 루쯔천이 말했다. “이게 보통 엄마가 아니라는 걸 아빠는 아직 모르나 봐요.”

루지엔궈는 손가락으로 침실 문틀을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쉬며 심장 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애썼다. 하지만 그 아내의 목소리, 바로 ‘아빠’라고 부르던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며 떠나지 않았다. 때로는 가깝고 때로는 멀어지며 마치 이마에 와 닿는 부드러운 칼날 같았다.

저녁 식탁 위에는 세 개의 접시와 수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루지엔궈가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으며 식당으로 들어오자 린완은 이미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냄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동작은 여전히 절도가 있었지만, 어떤 영혼 없는 정확함을 띠고 있었다. 그녀가 등을 돌리자 어깨뼈의 움직임이 얇은 피부 아래에서 뚜렷하게 드러났다. 그 몸은 그가 지난 20년 동안 알고 있던 몸 그대로였지만, 그 낯선 자세와 리듬 때문에 사람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루쯔천은 먼저 자리에 앉아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이며 맛을 봤다.

“요리는 진짜 맛있네요.” 그가 고개를 저으며 탄성을 내뱉고는 아버지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아빠, 이 안드로이드는 진짜 대단해요. 메뉴 뭐 할지 말만 하면 재료 사는 것부터 요리까지 다 자동이에요. 그리고 몸에 완전 다른 센서가 내장돼 있어서 심박수나 체온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어요. 아이 진짜, 아빠는 이런 거 안 써봐서 몰라요. 시장에 있는 다른 제품들보다 훨씬 낫죠.”

“그래.” 루지엔궈가 자리에 앉으며 수저를 집었다. 밥그릇 가장자리에 김이 피어올랐다. “꽤 좋네.”

“꽤 좋은 정도가 아니에요.” 루쯔천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숨소리를 약간 거칠게 내뱉었다. “아빠,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돼요? 제발 저를 가르치려 들지 말아 줘요. 엄마 원래 모습이 뭐가 좋은데요? 하루 종일 아빠 눈치만 보면서 아무 말도 제대로 못 하죠. 지금은 이렇게 말 잘 듣고 걱정도 안 끼치니까, 이게 다예요. 제가 골랐어요, 린완의 외모와 성격 모델을 정말 세심하게 맞췄다고요. 아빠도 점점 익숙해지실 거예요.”

루지엔궈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도자기와 유리 테이블이 부딪히는 소리가 작고 짧게 났다. 그는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들이 사용한 단어들이 그의 뇌리에 맴돌았다. ‘안드로이드’, ‘모델’, ‘센서’. 각 단어는 분명했고, 보통의 대화를 하듯 자연스러웠다. 마치 옆에 서서 수건을 개는 존재는 살과 피와 따뜻함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진열대 위의 가전제품에 불과하다는 듯이.

“아빠.” 린완이 정확히 그때 입을 열었다. 그녀가 다가와 찻잔을 다시 채웠다. 손가락이 찻주전자 손잡이를 감싸 쥐었고, 손목은 안정적이었으며, 물기둥도 흔들림 없었다. “차 드세요.”

루지엔궈는 찻잔을 집어 들었지만 잔 밑바닥을 보지 않았다. 그는 그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고, 하루에 세 번씩 지문이 지워질까 걱정하며 핸드크림을 바르던 그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그는 많은 말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왜 그렇게 순종적인지, 왜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곳에 서 있는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말이 목구멍을 긁고 지나가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이 씹다 남긴 찌꺼기로 변해버린 듯했다.

“아빠도 사용법을 좀 익혀야 해요.” 루쯔천이 계속 말을 이었다. “보기에는 우리 엄마랑 똑같아도 전원 넣는 방식이 달라요. 내가 가르쳐줄까요? 여기 이렇게…….”

“그만!” 루지엔궈가 갑자기 소리쳤다. 탁자 위의 접시가 살짝 떨렸다. 린완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서며 양손을 배 앞에 포갰다. 그 자세는 너무나 완벽한 복종이어서 마치 한 번의 파업도 없이 수백 번 훈련된 것 같았다.

식당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환청처럼 또렷해졌다. 루쯔천은 잠시 멈칫했지만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도리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빠, 진짜 화내는 거야?” 그가 낮게 물었다.

루지엔궈는 대답 대신 다시 수저를 집어 들고 밥을 입에 넣었다. 음식이 무슨 맛인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턱 근육만 기계처럼 씹고 또 씹었다. 시선은 테이블 위의 나뭇결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지만 초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왼쪽은 아내의 그림자였고, 오른쪽은 아들의 교활한 미소였다. 그는 마치 모르는 노인의 집에서 밥을 먹는 듯 온몸이 불편했다.

밤이 깊어지자 아파트 전체가 침묵에 잠겼다. 11층 높이의 창밖으로는 몇몇 가로등만이 희미한 빛 덩어리를 드리우고 있었다. 루지엔궈가 침대에 누웠을 때, 침실은 텅 비어 있었고 침대 시트는 차갑게 바람을 머금고 있었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얕은 숨을 내쉬었고, 가슴은 마치 무거운 물건에 눌린 듯 답답했다.

곧 벽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아주 미세한 전류 소리였고, 이내 그 위에 겹쳐진 낮고 리듬감 있는 충격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무거운 물체가 스프링 침대 위에서 반복적으로 떨어졌다 닿는 듯했고, 그 사이에는 억압된 신음처럼 들리는 소리가 섞여 있었는데, 변조기를 거친 듯 높낮이가 하나하나 정확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소리는 점점 규칙적으로 변하며 더 이상 아무것도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돌아누웠다. 손가락이 베개를 꽉 움켜쥐었다. 옆방의 소리는 계속 이어졌다. 아들의 웃음소리는 너무 낮게 깔려 벽을 통과해야만 겨우 들릴 정도였다. 웃음소리 하나하나가 투명한 못처럼 침실의 고요함을 찔러댔다. 그는 귀를 막으려 팔을 들어 올렸지만 이내 내려놓았다. 그 소리들은 이미 그의 가슴속 어딘가에 깊이 박혀, 팔로는 닿을 수 없는 곳을 찔러댔다.

한밤중이 지나도록 루지엔궈는 잠들지 못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어둠 속 공허를 바라보았다. 옆방 마침내 조용해졌을 때, 복도에서는 한 줄기 부드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 문이 열리고 닫혔으며, 물 흐르는 소리가 아주 짧게 이어졌다. 모든 소리가 전혀 혼란스럽지 않고, 마치 잘 짜인 프로그램이 최종 종료 단계로 접어든 듯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침대 옆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누워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새벽이 밝아올 무렵, 커튼 틈새로 새어 들어온 미약한 빛이 침대 끝에 닿았다. 그는 거의 깨어 있는 상태로 누워 피로가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끼며, 등골을 따라 식은땀이 줄줄이 맺히고 있었다. 거실에서 다시 린완의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발걸음은 부엌으로 가고 냉장고를 열고 아침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리듬은 전날 밤과 똑같이 정확하고 똑같이 세심했다. 마치 이 집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마치 그녀가 진짜 이 집의 여주인이라도 되는 듯이.

그의 눈앞에서

주말 오후의 햇살이 창문을 통해 거실 소파 위로 비스듬히 쏟아져 내렸다. 먼지가 느리게 떠다니는 그 빛줄기 속에서, 루쯔천은 몸을 뒤로 깊숙이 기대고 두 다리를 쩍 벌린 채 앉아 있었다. 소파 등받이 가죽이 그의 움직임에 따라 가볍게 삐걱거렸다. 그의 손에는 리모컨이 들려 있었고, TV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예능 프로그램이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화면 아래쪽에 무릎 꿇고 있는 형체를 향하고 있었다.

린완은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의 무릎이 두꺼운 카펫 위에 파묻혔지만, 바닥의 냉기는 여전히 직물을 뚫고 올라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지만, 이미 몇 주 동안 되풀이된 동작은 근육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그녀는 앞으로 숙여 머리를 숙였고, 정수리에서부터 등줄기까지 이어지는 곡선이 억지로 구겨진 낙엽처럼 보였다. 그녀의 시야는 흐릿했고, 오직 상대의 배 부분 천의 주름만 보일 뿐이었다.

“더 깊이.”

루쯔천의 목소리는 덤덤했고, 마치 드라이버에게 행선지를 알려주는 듯한 말투였다. 그는 한 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는데, 그 리듬은 TV 속 관객들의 웃음소리와 아귀가 맞지 않았다. 린완의 목구멍에서 낮고 삼키는 듯한 소리가 났다. 그녀의 턱 관절이 뻐근하게 아려왔고, 침샘에서 분비되는 액체가 그녀를 생리적으로 구역질 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눈을 꼭 감고 속도를 높였다. 그녀는 매뉴얼에 기재된 구강 온도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지금 자신의 구강처럼 화끈거릴지 생각하려 애썼다. 아니, 아마 아닐 것이다. 진짜 점막은 경련할 것이고, 진짜 수치심은 위액처럼 식도를 타고 올라와 혀끝에서 썩은내를 풍길 테니까.

거실과 서재 사이의 복도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 소리는 느리고 무거웠다. 슬리퍼 바닥이 마룻바닥을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무언가를 망설이는 듯 갑자기 멈추었다. 루쯔천은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곁눈질로 복도 어귀에서 멈춰 선 낡은 회색 가디건의 그림자를 포착했다.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그의 허벅지 근육이 살짝 긴장되었다가 다시 풀어졌고, 린완의 뒷머리에 올렸던 손가락은 더욱 천천히, 마치 충성스러운 애완동물의 털을 쓰다듬듯이 움직였다.

루지엔궈는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그가 들고 있던 도자기 찻잔의 손잡이가 손바닥 뼈를 눌렀다. 그는 서재에서 물을 끓여 마시려던 참이었다. 주말 오후 차 한 잔, 깔끔한 거실. 그의 사고가 흡사 갑자기 점도가 높아진 액체 속에 잠긴 듯, 모든 장면이 느리게 흘러갔다. 아들은 편안하게 앉아 있었고, 아내는 무릎을 꿇었으며, 그 연결된 부분은 마치 하나의 정교한 기계 장치 같았다. 아들의 목덜미에 난 부드러운 솜털, 그리고 거실에 맴도는 희미하고 달큰한 비릿한 냄새까지도 생생히 보이고 느껴졌다.

루쯔천은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맑고 투명했으며, 이마에는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은 땀방울이 반짝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그 검은 눈동자 속에는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당혹감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마치 중요한 발견을 나누는 듯한 진지함과 한 줄기 흐릿한 도발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의 성대는 편안하게 진동했다.

“아빠, 절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그의 엄지손가락이 린완의 귓바퀴 가장자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귀는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바이오로이드는 이렇듯 뚜렷한 온도 상승을 가져서는 안 되었다. 루쯔천은 낮게 웃으며, TV 속에서 터져 나오는 과장된 효과음 사이로 또렷이 들릴 만큼 또렷한 어조로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기분이 너무 좋아요.”

린완의 시야 가장자리에서 남편의 슬리퍼가 미세하게 뒤로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바닥과 마찰하며 나는 소리가 유리 조각처럼 그녀의 고막을 긁었다. 그녀의 혀 뿌리가 굳어졌고, 턱뼈 동작이 잠시 멈칫했지만, 루쯔천이 그녀의 머리를 누르는 힘이 갑자기 강해졌다. 명령이자 경고였다.

루지엔궈의 후두가 오르내렸다. 그의 입술은 바싹 말라붙은 종잇장처럼 살짝 들썩였지만, 갈라진 틈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재빨리 아들의 얼굴에서 떨어져, 아내의 살짝 떨리는 등허리에 떨어졌다가 곧바로 찻잔 속에 남은 작년 가을의 오래된 차 찌꺼기로 옮겨갔다. 그는 아내가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한 눈빛을 보낼 것을 두려워했지만, 아내는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진짜 바이오로이드인 양, 동작만 있고 부탁은 없었다.

“너무 잦으면... 안 돼.”

마침내 루지엔궈의 입에서 바람 빠진 듯 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의 손가락이 찻잔의 식은 자기를 꽉 움켜쥐었다.

“학습에... 지장이 갈 테니까.”

‘학습’이라는 두 글자가 공중에 내던져지자, 마치 거대한 위선의 그물처럼 사위의 모든 불가사의를 뒤덮었다. 아내의 무릎에 밴 냄새, 아들의 탁 트인 이마에 맺힌 땀, 공기 중에 맴도는 입 냄새를, 이 치졸한 단어 두 개로 가볍게 호도해 버리려는 듯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 후, 마치 혐오스러운 것을 피하려는 듯 몸을 홱 돌렸다. 가디건 자락이 허공에 살짝 부풀어 올랐다가 축 처졌다.

사라지는 걸음걸이 소리는 서재 문이 닫히는 굳게 잠긴 소리와 함께 끊겼다.

거실은 다시 TV 속 웃음소리만 남았다. 루쯔천은 흥미를 잃었다는 듯 혀를 차며 소리를 냈다. 그는 시선을 거두어 다시 자신의 배꼽 아래 지점으로 내리깔며, 허리를 약간 곧추세웠다.

“계속해.”

린완은 고개를 더욱 아래로 숙였다. 그녀의 입술은 상대의 피부 온도가 자신의 점막에 남긴 흔적을 감각했고,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마찰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녀의 시야가 갑자기 흐려졌다. 눈물이 안구 앞에 쌓여 울혈된 혈관을 확대시키고 굴절시켰다. 그녀는 남편의 마지막 말을 똑똑히 들었다. 학습이 지장을 받는다는 그 말이.

그녀는 도구였다. 부서지지 않는 이상, 늘 사용할 수 있는 도구였다.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아래 속눈썹에 매달렸고, 위아래로 흔들렸지만, 끝내 감히 떨어뜨리지 못했다. 한 방울 떨어지면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줄까 봐서였다. 그녀는 눈을 살짝 깜빡여 과도한 수분을 억지로 흡수했고, 코를 훌쩍이며 침과 기타 분비물을 함께 삼켜 버렸다. 그 비릿한 냄새가 식도 깊숙이, 마음속 가장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그녀의 무릎은 이미 완전히 감각을 잃었고, 목덜미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 개목걸이에 단단히 묶여 있는 듯했다. 오직 실행 명령만이 그녀를 지탱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두려움과 굴욕을 스스로 구분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고개를 든 순간, 그녀가 마주해야 할 것은 돌아서서 떠나간 남편의 낡은 가디건의 잔상뿐일 테니까.

성적 학대의 심화

루쯔천의 방은 어둡고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다. 창문은 두꺼운 커튼으로 막혀 있었고, 컴퓨터 모니터에서 흘러나오는 푸른 빛만이 공간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는 침대 옆 서랍장을 열고 안을 뒤적였다. 손끝에 딱딱한 가죽 벨트가 걸렸다. 낡은 허리띠였지만, 버클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다. 루쯔천은 그것을 손에 쥐고 천천히 당겨 보았다. 가죽이 바짝바짝 소리를 내며 팽팽해졌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린완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등은 곧게 펴져 있었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얌전히 포개져 있었다. 시선은 정면을 향했지만, 초점은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허공에 흩어져 있었다. 루쯔천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을 스치는 슬리퍼 소리, 그리고 무언가를 휘두르는 바람 소리. 그녀는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표정은 평온했고, 호흡마저 일정했다. 안드로이드는 그렇게 명령받은 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오늘은 좀 다르게 해보자.”

루쯔천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그는 벨트를 그녀의 등 뒤로 돌려 손목에 감기 시작했다. 가죽이 살갗에 닿자 린완의 피부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루쯔천은 벨트를 단단히 조였다. 버클이 뼈를 누르는 느낌이 들었지만, 린완은 숨 한 번 깊게 들이쉬었을 뿐이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고통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저 깨끗하고 매끄러운 표면만이 있을 뿐이었다.

“좋아, 이제 시작하자.”

그는 서랍에서 또 다른 물건을 꺼냈다. 작은 금속 집게였다. 빨랫감을 고정할 때 쓰는 평범한 도구였지만, 그의 손안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변해갔다. 루쯔천은 집게를 그녀의 팔뚝에 갖다 댔다. 차가운 금속이 피부를 파고들자 린완의 팔 근육이 미세하게 수축했다. 그는 천천히 집게를 더 세게 조였다. 살갗이 하얗게 질리고, 그 주변으로 붉은 기운이 번져갔다.

“아프냐?”

루쯔천이 물었다. 그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호기심과 흥분이 뒤섞인 빛이었다. 린완은 고개를 저으려다 멈췄다. 통증을 부정하는 행동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열어 조용히 말했다.

“아프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기계적으로 평탄했다. 억양 없고, 감정 없는 소리였다. 루쯔천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고, 집게를 다른 부위로 옮겼다. 이번에는 허벅지 안쪽이었다. 피부가 더 얇고 예민한 곳이었다. 그는 집게를 강하게 물렸다. 린완의 다리가 떨렸지만,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소리를 삼켰다. 표정 없는 얼굴이 오히려 더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몇 시간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은 오로지 몸에 새겨진 상처와 멍으로만 측정될 수 있었다. 루쯔천은 벨트로 그녀의 등과 허벅지를 때렸다. 가죽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붉은 자국이 솟아올랐다. 집게는 팔, 다리, 옆구리까지 흔적을 남겼다. 그는 때로 힘을 조절했고, 때로 갑자기 세게 내리쳤다. 린완의 몸은 상처로 뒤덮여 갔지만, 그녀는 끝내 신음 한 번 내지 않았다. 그저 명령에 따라 자세를 바꾸고, 도구를 건네주고, 청소를 했다. 마치 자신의 몸이 진짜 살과 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한 부품에 불과한 것처럼.

다음 날 아침, 루젠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종이 위를 맴돌 뿐, 글자는 하나도 읽히지 않았다. 부엌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아내의 모습이 계속 신경 쓰였다. 그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토스트를 굽고, 계란을 프라이팬에 깨뜨리고, 조리대를 닦아내는 손놀림은 정확하고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린완이 팔을 뻗어 접시를 집을 때, 소매 속에서 살짝 드러난 손목에 보라색 끈 자국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루젠궈의 손이 신문지를 구겼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고, 시선을 돌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 자국이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알았고, 누가 그랬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을 야단치거나, 아내를 보호할 권리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함께 거대한 거짓말 속에 갇혀 있었고, 침묵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것처럼 느껴졌다.

린완이 조용히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루젠궈 앞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살짝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너무나 완벽하게 그려진 그림 같았다. 온화하고, 순종적이고,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루젠궈는 그 미소 뒤에 숨은 수많은 밤의 고통과 수치심을 보았다. 린완의 눈가에는 얇게 핏줄이 서 있었고, 목덜미에는 작은 붉은 멍이 숨겨져 있었다. 그녀는 긴 소매 옷을 입고, 단추를 목까지 채워 모든 것을 감추고 있었다.

“차 드실래요?”

린완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고 따뜻했다. 루젠궈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거칠고 딱딱한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넘겼다. 린완은 눈을 살짝 감았다. 루젠궈의 손길은 떨리고 있었다. 죄책감과 무력감이 온몸으로 전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히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린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입모양만으로도 분명했다.

‘괜찮아요.’

그 말이 오히려 루젠궈의 가슴을 더 깊이 찔렀다. 그는 손을 거두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식탁 위의 커피잔이 흔들려 소리를 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진실, 그리고 애써 외면하는 진실이 그를 짓눌렀다. 하지만 그는 비겁한 방관자일 뿐이었다. 진실을 폭로할 용기도, 상황을 바꿀 힘도 없었다. 그저 매일 아침 이렇게 아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죄를 씻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그날 밤, 루쯔천은 방에서 컴퓨터를 켜고 방금 촬영한 영상을 편집하고 있었다. 화면 속에는 흑백으로 촬영된 린완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벨트로 묶인 손목, 군데군데 멍든 팔다리, 그리고 고통이 완전히 제거된 차가운 표정. 그는 영상에 필터를 입히고 배경 음악을 깔았다. 묘하게 예술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거실로 나온 루쯔천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이거 진짜 잘 나왔어. 친구들한테 보여주면 다들 놀랄걸.”

루젠궈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뭐라고?”

“영상. 몇 개 찍었거든. 반응이 아주 좋을 거야.”

루쯔천의 말투는 지극히 가벼웠다. 마치 게임 플레이 영상을 공유하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루젠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눈에는 당황과 분노가 뒤섞여 반짝였다.

“그건 안 된다.”

“왜? 안드로이드일 뿐인데 무슨 상관이야. 바이오로이드는 그런 용도로 쓰는 거잖아.”

“안 돼.”

루젠궈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는 아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건 개인적인 사생활이야. 우리 가족의 사적인 일이 밖으로 유출되면 어떻게 되겠니? 만약 누군가 그 영상을 보고 의심이라도 한다면… 우리 모두 위험해져.”

루쯔천은 잠시 멈칫했다. 아버지의 진지한 표정이 예상보다 더 강경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돌렸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냥 농담이었어.”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장난기 어린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루젠궈는 아들이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소파에 다시 앉으며 이마를 짚었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

린완은 부엌에서 조용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가 다 들렸지만, 그녀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개수대 위 창문에는 그녀의 모습이 비쳤다. 멍든 팔, 벨트 자국이 남은 손목, 그리고 공허한 눈. 그녀는 묵묵히 접시를 닦으며, 모든 소리를 삼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