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촌 노예: 성숙한 여교사의 절망적 타락

站点:NovelAI.one内容:前8章在线试读ID:f67705ec更新:2026-05-31 19:07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 향을 음미하며 창밖으로 비치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한 빛이 내 얼굴을 비추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런 평온한 오후는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여보, 왔어요.”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 진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原创 剧情 爽文 架空 热门
산촌 노예: 성숙한 여교사의 절망적 타락 提供 前8章在线试读,可直接在线阅读。你也可以前往“最新小说”“热门小说”“发现小说”继续浏览站内内容。
当前页面收录可公开展示内容,以下为前 8 章试读:

행복의 겉모습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 향을 음미하며 창밖으로 비치는 가을 햇살을 바라보고 있었다. 따뜻한 빛이 내 얼굴을 비추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런 평온한 오후는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여보, 왔어요.”

현관문이 열리고 남편 진호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그를 맞이했다. 그는 정장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내가 좋아하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오늘 회사 일은 어땠어?”

그가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물었다.

“좋았어. 아이들이 시험을 잘 봤고, 학부모 면담도 순조롭게 끝났어.”

나는 그의 넥타이를 정리해주며 대답했다. 그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 다행이야. 너무 무리하지 마. 알지?”

“응, 알았어. 너도 많이 피곤해 보인다. 얼른 편히 쉬어.”

우리는 나란히 부엌으로 걸어갔다. 그가 상추를 씻기 시작했고, 나는 도마 위에 토마토를 꺼내 썰기 시작했다. 이런 평범한 일상이 오히려 가장 소중했다. 결혼한 지 10년, 우리는 여전히 첫날처럼 서로를 존중하고 아꼈다.

“완팅, 금요일에 소몽요가 우리 집에 저녁 먹자고 했어. 괜찮겠어?”

그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잠시 손을 멈췄다가 다시 칼을 움직였다.

“응, 좋지. 우리도 오랜만에 다 같이 모이는 거니까.”

소몽요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녔고, 대학도 같은 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에도 계속 연락하며 지냈다. 그녀는 나보다 훨씬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이라 늘 내 곁에서 여러 일을 챙겨주었다. 그런데 왜일까, 요즘 들어 가끔 그녀의 눈빛에서 무언가 낯선 것을 느꼈다.

금요일 저녁, 소몽요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그녀는 빨간 원피스를 입고 굽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었고, 화려한 메이크업에 머리를 웨이브로 말아 우아하게 늘어뜨렸다.

“완팅, 보고 싶었어!”

그녀는 반갑게 나를 껴안았다.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가 강하게 풍겼다. 나는 살짝 놀라 몸을 빼며 웃었다.

“들어와. 진호가 벌써 음식을 준비했어.”

그녀는 내 어깨를 툭 치며 현관으로 들어갔다. 진호가 주방에서 나와 그녀를 맞이했다.

“몽요 왔구나. 어서 앉아.”

“와, 진호 씨가 직접 요리를 하다니? 완팅 정말 부러워요.”

그녀는 내 팔을 감싸며 장난기 섞인 말투로 말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웃었다.

식탁 위에는 진호가 정성껏 준비한 요리들이 가득했다. 촉촉한 불고기, 새콤달콤한 탕수육, 깔끔한 새우볶음까지. 소몽요는 음식을 보자 신나서 박수를 쳤다.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완팅, 너는 정말 복 받은 여자야.”

그녀가 이렇게 말하며 내게 윙크를 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웃음으로 화답했다.

저녁 식사 내내 소몽요는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사업 성공담, 해외여행 이야기, 새로운 남자친구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늘어놓았다. 진호는 가끔 몇 마디 끼어들며 듣고 있었지만, 나는 그가 점점 침묵해지는 것을 느꼈다.

“완팅, 너도 한번 나처럼 살아봐. 하루 종일 아이들만 가르치면 지루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살짝 손을 빼며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이 일이 좋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내 꿈이었거든.”

“물론 좋은 직업이지.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변화도 필요하잖아?”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깊어지자 소몽요가 일어나 작별 인사를 했다. 진호가 그녀를 문까지 배웅했다.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했다.

“완팅, 오늘 정말 고마웠어. 다음에 또 보자.”

그녀가 뒤돌아 나에게 인사했다. 나는 그녀의 표정에서 무언가 불편한 것을 감지했지만, 구체적으로 짚을 수는 없었다.

진호가 다시 들어와 내 옆에 서서 행주를 집었다.

“피곤하지? 내가 할게.”

“괜찮아. 거의 다 했어.”

내가 대답했다.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몽요는 좀 변한 것 같지 않아?”

“변했다니?”

“글쎄… 너무 적극적이랄까? 아니면 너무 과장됐다거나?”

그의 말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나도 가끔 소몽요의 행동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친구였고, 그녀는 항상 나에게 친절했다.

“그냥 성격이 좀 변한 것 같아. 원래 활발하잖아.”

“그래, 맞는 말이야. 내가 너무 예민한가 봐.”

그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그의 품에 몸을 기대며 창밖 어둠을 바라보았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을 때 진호는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 인생은 겉보기에는 완벽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안정된 직업, 편안한 생활. 하지만 가끔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마치 모든 것이 너무 순조로워서 조금 불안한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은 학부모 면담이 있는 날이었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학생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늘 기분 좋아 보이세요!”

나는 웃으며 그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들의 순수한 눈빛을 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셨다.

2교시가 끝난 후, 나는 교무실로 돌아와 앉았다. 핸드폰을 확인하자 소몽요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완팅, 오늘 점심 같이 먹을래? 새로 생긴 레스토랑이 있대.”

나는 잠시 망설였다. 솔직히 오늘은 좀 피곤했지만,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기 미안했다.

“좋아. 몇 시에 만날까?”

그녀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12시, 학교 앞에서 만나.”

점심시간, 나는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잠시 후 소몽요가 새 차를 타고 나타났다. 그녀는 운전석 창문을 내리며 화려한 미소를 지었다.

“올라타, 데려다줄게.”

나는 차에 올랐다. 차 안에는 고급 스웨이드 가죽 냄새가 났다.

“차 새로 샀어? 예쁘다.”

“응, 저번 달에 샀어. 마음에 들어?”

그녀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레스토랑은 조용하고 아늑했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를 훑어보았다.

“너 요즘 진호랑 잘 지내?”

그녀가 갑자기 물었다.

“응, 아주 잘 지내고 있어. 왜?”

“아니, 그냥 궁금해서. 요즘 바쁘니까 남편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잖아.”

그녀가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 걱정 마.”

“그래, 참 좋다. 나는 아직 좋은 사람을 못 만났거든.”

그녀가 한숨을 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아, 너도 좋은 사람 만날 거야.”

그녀가 내 손을 꼭 쥐었다.

“고마워, 완팅. 너는 항상 나한테 잘해줘.”

점심 식사가 끝나갈 무렵, 그녀가 갑자기 말했다.

“완팅, 나 요즘 사업 때문에 좀 큰 돈이 필요해. 좀 빌려줄 수 있어?”

“얼마나 필요한데?”

“500만 원 정도면 돼. 다음 달에 꼭 갚을게.”

나는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고, 항상 내게 친절했다.

“알았어. 오늘 저녁에 계좌로 보내줄게.”

그녀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고마워, 완팅! 너는 정말 나의 천사야.”

그날 저녁, 나는 약속대로 그녀의 계좌로 돈을 보냈다. 진호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500만 원? 너무 큰돈 아닌가?”

“괜찮아. 그녀는 내 가장 친한 친구야. 다음 달에 갚겠다고 했어.”

“그래도 조심해야 해. 요즘 그녀가 너무 자주 돈을 빌리려고 하는 것 같아.”

“걱정 마. 우리 오랜 친구잖아.”

하지만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마치 모든 행복이 찰나의 거품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다음 날, 학교에 도착하자 교장 선생님이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예 선생님, 최근에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교장의 표정이 무거웠다.

“아니요, 무슨 말씀이시죠?”

“며칠 전 누군가가 학교에 항의 전화를 했어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다고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적 없습니다. 저는 항상 학생들을 공정하게 대했어요.”

“저도 그렇게 믿어요. 하지만 학부모의 불만이 있으면 우리도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당분간 수업에서 잠시 물러나 주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러웠다. 교무실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지만, 머릿속은 하얗게 멍해졌다.

누군가가 나를 모함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날 저녁, 진호가 내 표정이 안 좋은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

“여보, 무슨 일 있어?”

나는 그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내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볼게. 분명 오해가 있을 거야.”

하지만 나는 속으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 모든 일이 소몽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녀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녀가 나를 모함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왜 내 가슴은 이렇게 불안하게 뛰는 것일까?

선량의 함정

소몽요가 내 교무실 문을 두드린 건 점심시간이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미소 속에 무언가 숨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녀를 반갑게 맞았지만,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완팅 언니, 나 좀 도와줘야겠어.”

소몽요는 내 책상 앞에 앉아 손에 든 서류를 내밀었다. 그녀의 눈빛은 다정했고, 나는 그 따뜻함에 속아 넘어갔다.

“무슨 일인데? 말해 봐.”

나는 차를 한 잔 따라주며 물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을 꺼냈다.

“내가 전에 있었던 산골 마을 알지? 거기가 정말 안타까워. 아이들 교육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선생님이 한 명도 없어. 마을 사람들이 나한테 도움을 요청했는데, 나는 학교 일 때문에 당장 갈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생각해 냈어, 언니가 나 대신 가줄 수 없을까?”

그녀의 목소리는 애처롭게 떨렸고,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하지만 망설임도 있었다. 지금 막 이혼한 상황에서 모든 게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몇 달 동안이나?”

“석 달이면 돼. 짧은 시간이야. 거기 아이들은 정말 도움이 필요해. 언니 같은 훌륭한 선생님이 가면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녀는 내 손을 덥석 잡으며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손의 온기가 내 망설임을 녹였다.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진호와의 이혼 후 마음은 텅 빈 듯했다. 그에게 배신당한 상처가 여전히 아팠지만, 소몽요는 내 결에서 항상 나를 위로해 주었고, 그건 유일한 친구였다. 그녀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알겠어. 내가 갈게.”

내 대답에 소몽요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지만, 어딘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순간적인 섬뜩함이 스쳤다. 나는 당시 그 미소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고마워, 언니! 정말 고마워! 바로 준비할게. 내일 출발하면 돼.”

그녀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교무실을 나갔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나는 이번 여행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그날 저녁, 나는 집에서 짐을 꾸렸다. 작은 여행 가방에 몇 벌의 옷과 교과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줄 학용품을 넣었다. 진호가 남기고 간 빈집은 적막했고, 가끔 바람에 창문이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다. 나는 벽에 걸린 우리의 결혼 사진을 바라보며 쓰라린 미소를 지었다. 한때의 행복은 이제 사라지고 없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진호였다.

“완팅, 소몽요가 너 산골로 간다고 들었어? 정말 가려고?”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차갑게 대답했다.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우리는 이미 끝났잖아?”

“그건 아니지만…… 너 가는 곳이 너무 외져서 걱정이 돼서……”

“걱정 마. 나는 혼자서도 잘해.”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와의 관계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내 마음을 약간 흔들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남은 것은 소몽요가 보내준 지도뿐이었다. 종이는 이미 낡았고 마을의 위치가 대충 표시되어 있었다.

이튿날 아침, 해가 뜰 무렵 나는 집을 나섰다. 공기에는 이슬 맺힌 풀 냄새가 배어 있었고,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기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역에서 소몽요가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나에게 도시락과 물을 건네며 얼굴에 또렷한 미소를 띠었다.

“언니, 조심히 가. 도착하면 연락해.”

“응. 고마워, 몽요야.”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 손은 예상외로 차가웠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달렸다. 창밖의 풍경은 점점 황량해졌고, 푸른 산과 푸른 물은 점차 메마른 황토로 변했다. 나는 소몽요가 말한 그 아름다운 산골 마을을 상상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저녁노을이 학교 운동장을 물들이는 모습을. 그 생각에 나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몇 시간 후, 버스는 좁은 비포장길에 멈춰 섰다. 기사가 말했다.

“여기가 마을 입구야. 걸어서 한 시간쯤 가야 해.”

나는 가방을 메고 내렸다. 햇빛은 따갑게 내리쬐고, 주변은 적막했다. 먼지가 바람에 날려 내 눈을 찔렀다. 나는 가방을 꽉 움켜쥐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길은 울퉁불퉁했고, 양옆에는 키 큰 잡초만 무성했다. 나는 가끔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마음속에는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소몽요가 말했듯이, 이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했다. 선생님으로서 내가 이럴 때 나서야 했다.

한 시간 넘게 걸은 후, 마침내 마을이 보였다. 그런데 그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집들은 낡고 허름했고, 심지어 몇 채는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거리에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마치 죽은 듯한 적막이 감돌았다.

나는 당황했다. 이게 소몽요가 말한 그 마을이었나? 잠시 망설이는 사이,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두 남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나는 건장하고, 다른 하나는 키가 작고 마른 체구였다. 그들의 눈빛에는 탐욕스러운 빛이 반짝였다.

“너, 예완팅이냐?”

건장한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굵고 무거웠다.

“네, 그런데…… 당신들은?”

“나는 왕대산이다. 이 마을의 촌장이다. 소몽요가 네가 온다고 미리 연락했어.”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스쳤다. 나는 그 미소에 불편함을 느꼈지만, 그냥 웃어 넘겼다.

“아, 네. 몽요한테서 들었어요. 이 아이들의 교육 환경이 정말 열악하다고요.”

“그래, 그래. 고생 많았어. 자, 우리 집으로 가자.”

왕대산은 내 가방을 들어 올리며 앞장서 걸었다. 나는 그를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가는 동안 그는 나에게 마을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그의 말투에는 무언가 숨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마을은 아이가 많지는 않지만, 모두 가난해서 책 한 권 제대로 살 형편이 못 돼. 네가 와서 정말 고맙다.”

“별말씀을요. 선생님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나는 겸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의문이 스쳤다. 이 마을은 너무 황량했고,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왕대산의 집은 마을 중앙에 있었다. 다른 집들보다 훨씬 크고 튼튼해 보였다. 그는 나를 안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우리가 너를 위해 방을 하나 마련했어. 앞으로 여기서 지내면 돼.”

방은 좁고 어두웠으며, 벽에는 거미줄이 얽혀 있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 여기가 내 숙소인가요?”

“응. 불편하더라도 좀 참아. 마을 형편이 이래.”

왕대산은 냉담하게 말하며 돌아섰다. 그러다 문득 멈춰 서서 뒤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낯선 날카로움이 담겨 있었다.

“참, 하나 전해줄 게 있어. 내 딸 취화가 너를 만나고 싶어 해. 오늘 밤 우리 집으로 와.”

“네 딸이요?”

“응. 왕취화. 가서 인사해.”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 나는 방에 혼자 남겨져 낯선 냄새를 맡으며 점점 커져가는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돌아갈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생각했다. 아마도 첫인상이 좋지 않아서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그날 밤, 나는 왕대산의 집으로 향했다. 달빛이 땅에 차갑게 내려앉았고, 바람에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마을은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 무언가 숨겨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왕대산의 집 문을 열자, 따뜻한 불빛이 얼굴을 비췄다. 방 안에는 촌장 내외와 딸 왕취화가 둘러앉아 있었다. 왕취화는 얼굴에 여드름이 돋은 뚱뚱한 여자였고, 눈에는 교활한 빛이 반짝였다.

“아, 예 선생님이 오셨군요. 어서 들어오세요.”

왕대산의 아내가 나를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그들의 안내를 받아 식탁에 앉았다.

“예 선생님, 우리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앞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부탁드립니다.”

왕대산이 술잔을 들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따라 마셨다. 술은 목을 타고 넘어가며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남겼다.

술자리가 진행됨에 따라 그들의 태도는 점점 이상해졌다. 왕대산은 자꾸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상한 말을 했고, 왕취화는 계속 나를 훔쳐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때 왕취화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예 선생님, 아직 안 갈 거죠? 저랑 얘기 좀 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그 속에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아까 그 술…… 그 안에 뭔가 들어 있었던 걸까.

“미안해요,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가볼게요.”

나는 힘겹게 일어나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뒤에서 왕취화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도망가도 소용없어요, 예 선생님. 여긴 우리 마을이니까요.”

그 말은 차가운 칼날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 나는 마을 입구로 달려가려 했지만, 다리가 무거워 움직여지지 않았다. 달빛 아래 마을은 더욱 음산해 보였고, 모든 집이 입을 벌린 괴물처럼 보였다.

나는 겨우 내 방으로 돌아왔다. 문을 잠그고 침대에 주저앉아 깊은 숨을 쉬었다. 손이 떨렸고,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소몽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마을은 완전히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소몽요의 미소, 왕대산의 눈빛, 그리고 이 마을의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함정이었다. 나는 순진하게 그들의 미끼에 걸려든 것이다.

나는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하지만 어깨는 떨렸다. 내 선량함이 나를 이곳에 빠뜨렸고, 지금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밖에서는 바람 소리만이 처절하게 울부짖었고, 나는 그 사운드 속에 점점 빠져들었다.

아직 희망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반드시 탈출구를 찾을 거야, 반드시. 하지만 그 말은 어쩐지 내 귀에는 더없이 공허하게 울렸다.

산촌의 환영

버스가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달리다가 마침내 멈춰 섰다.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 지붕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문을 열자 신선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어서 오십시오, 예 선생님!”

웃는 얼굴의 중년 남성이 내게 다가왔다. 왕대산 촌장이었다. 그의 뒤로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경외심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이렇게 많이 나오실 필요 없었는데요.”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예 선생님은 우리 마을의 구세주십니다!”

왕대산 촌장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의 손은 거칠고 따뜻했다.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한 아주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내 손에 신선한 과일을 쥐어주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다가와 선물을 건넸다. 닭, 계란, 직접 만든 빵까지.

“이런, 너무 과분하신데요.”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 주신다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의 진심이 담긴 미소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도시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나는 항상 학부모들의 불만과 학생들의 무관심에 지쳐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사람이었다.

“예 선생님, 이쪽으로 오십시오. 숙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왕대산 촌장이 나를 이끌었다. 마을 길 양옆으로 사람들이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손을 흔들었고, 노인들은 고개 숙여 인사했다.

“저희 마을이 좀 후미져서 편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반겨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에요.”

사실 나는 조금 불안했다. 내가 과연 이곳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환영에 그런 걱정은 금세 사라졌다.

숙소는 작은 한옥이었다. 앞에는 예쁜 정원이 있고, 방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 방은 원래 마을의 보물 창고였는데, 선생님을 위해 특별히 비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왕대산 촌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오늘 저녁은 마을 회관에서 환영 만찬이 있습니다. 꼭 오십시오.”

저녁, 마을 회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긴 탁자 위에는 갖가지 음식이 가득했다. 나는 상석에 앉았고, 왕대산 촌장과 그의 딸 왕취화가 내 옆에 앉았다.

“자, 예 선생님. 마을을 대표하여 이 한 잔 올리겠습니다.”

촌장이 술잔을 내밀었다. 나는 망설였지만, 그들의 정성을 거절할 수 없어 받아 마셨다. 술은 독했지만 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예 선생님, 저희 마을 아이들은 정말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왕취화가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달리 뚱뚱하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정말 존경합니다. 앞으로도 쭉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말에는 무언가 강압적인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밤이 깊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손에 이끌려 어색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이곳이 진정한 나의 자리일지도 모른다고.

소몽요는 이런 나를 보고 뭐라고 말할까? 그녀는 항상 내가 너무 순진하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필요로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 내일부터 수업 시작하시죠?”

아이 하나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그래, 내일부터 열심히 가르칠게.”

아이의 눈빛은 반짝였다. 나는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달빛이 촘촘히 비쳤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공기에는 흙과 풀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 이곳 생활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괜찮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방에 들어서자 탁자 위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 소몽요가 보낸 것이었다.

“잘 적응하고 있길 바래. 도시 생활이 그립지 않기를. 곧 만나자.”

나는 편지를 접어 서랍에 넣었다. 그녀의 배려에 감사하면서도, 왠지 모를 불안감이 스쳤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그냤 내 착각일 거라고.

그날 밤, 나는 평온한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 꿈속에서 나는 어두운 굴속에 갇혀 있었고, 누군가 내게 다가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이제 우리 거야.”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식은땀이 흘렀다. 창밖은 아직 어두웠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단지 악몽일 뿐이라고.

아침이 밝았다. 마을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나는 창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아이들이 학교로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이들이 일제히 인사했다. 나는 손을 흔들며 답례했다.

“모두 교실로 들어가자. 오늘 첫 수업이다.”

교실은 낡았지만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앞자리에 앉아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했다.

“오늘은 첫 수업이니까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나는 칠판에 내 이름을 적었다.

“저는 예완팅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국어를 가르칠 거예요.”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려 노력했다.

수업이 끝난 후, 왕취화가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어머님들이 선생님께 점심을 대접하고 싶어 하십니다. 함께 가시죠.”

“아, 네. 고맙습니다.”

나는 그녀를 따라 마을 회관으로 갔다. 거기에는 이미 몇몇 여성들이 모여 있었다.

“예 선생님, 앉으세요.”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음식을 권했다. 밥, 국, 반찬까지. 정말 푸짐했다.

“맛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니 다행입니다.”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여기서 얼마나 계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싶어요.”

그녀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는 선생님이 오래 계시길 바랍니다. 우리 마을에는 교육이 정말 필요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왕대산 촌장이 다가왔다.

“예 선생님, 오후에는 마을을 좀 구경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마을을 천천히 걸었다. 논밭, 과수원, 그리고 작은 공방까지.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친절하게 인사했다.

“이곳은 정말 평화롭네요.”

“네, 저희는 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이 평화의 일부가 되어 주십시오.”

촌장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무언가 숨겨진 것이 있는 듯했다.

“저, 촌장님.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십시오.”

“제 전임 선생님은 왜 그만두셨나요?”

촌장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하지만 곧 미소를 되찾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모호했다. 나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저녁, 숙소로 돌아와 나는 소몽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완팅이야? 잘 지내?”

“응, 꽤 잘 지내. 마을 사람들이 정말 친절해.”

“다행이다. 그래도 조심해. 너무 순진하게 굴지 말고.”

“알았어. 걱정 마.”

전화를 끊고 나는 침대에 누웠다. 천장에는 나무 결이 선명했다. 도시의 소음이 그리웠다. 하지만 여기도 나름대로 좋았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점점 무서운 것으로 변해갔다.

“너는 이제 우리 거야.”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나는 도망치려 했지만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창밖은 어둡고 고요했다. 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심호흡을 했다. 단지 꿈일 뿐이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불안이 자라나고 있었다. 과연 이곳은 정말 내가 있어야 할 곳일까? 그 의문은 금세 떨쳐버렸다. 나는 이곳에 도움이 필요하고,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한다. 그걸로 충분했다.

아침이 오고, 나는 다시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동화를 읽어주기로 했다.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는 동화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표정을 바꿔가며 이야기에 집중했다.

“선생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요!”

“그래? 그럼 다음에도 또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올게.”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떠날 때까지 나는 그들을 배웅했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지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왕취화가 찾아왔다.

“선생님, 내일 마을 회의가 있습니다. 꼭 참석해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무슨 회의인가요?”

“마을의 중요한 사항을 논의할 것입니다. 선생님도 이제 우리 마을의 일원이니 참석하셔야 합니다.”

그녀의 말투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회의는 마을 회관에서 열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나는 구석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오늘 회의는 예 선생님에 관한 것입니다.”

왕대산 촌장이 말문을 열었다.

저에 관한 회의라고요? 나는 긴장했다.

“우리 마을은 예 선생님께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곳에 머무르며 우리 아이들을 가르쳐 주시길 바랍니다.”

마을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신뢰의 증표로 작은 의식을 준비했습니다.”

의식이라니? 나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단지 서약을 하는 것뿐입니다. 우리 마을의 규칙을 따르겠다는.”

“어떤 규칙인가요?”

“간단합니다. 마을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절대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 말에 나는 머뭇거렸다.

“그게... 영원히 떠나지 말라는 뜻인가요?”

“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는 마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촌장의 눈빛이 반짝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다정했지만, 무언가 강요하는 듯했다.

“저... 생각할 시간을 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선생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정상적인 요구일까? 하지만 그들은 나에게 너무 잘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한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곳에 머물기로 결정한 것은 자발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영원히 떠나지 말라는 요구는 너무 무거웠다.

그날 밤, 나는 또 악몽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웃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은 점점 더 커졌다.

“너는 이제 우리 거야. 영원히.”

나는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아직 새벽이었다. 창밖으로 달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마을은 고요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음속 불안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불안은 앞으로 더 커질 것임을 나는 아직 몰랐다.

습관과 변화

아침 햇살이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눈을 떴다. 몸은 천근처럼 무거웠고, 어깨와 등은 어젯밤 촌장 집에서 쌀가마니를 옮기느라 아직도 욱신거렸다. 이제 이틀째다. 이틀 동안 나는 이 낯선 산골 마을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서울의 아파트, 학교 교실, 학생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멀어져 갔다. 하지만 이제는 깨어날 때마다 먼저 느껴지는 것은 현실의 무게였다.

방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문 틈으로 보니 왕취화가 마당에 서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날카롭고 거침없었다. “오늘은 저 마당 좀 치우고, 닭장도 고쳐야 해. 예완팅, 나와!”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일어났다. 다행히 어젯밤 촌장은 나를 마지막까지 붙잡지 않았다. 아마도 아내가 있는 데서 무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왕취화는 나를 보자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잘 잤어? 오늘 할 일이 많아. 먼저 마당을 쓸고, 그다음에 장작을 패야 해. 저녁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일 거니까, 음식 준비도 해야 하고.”

“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간단했지만, 그 뒤에 숨은 현실은 훨씬 무거웠다. 나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은 넓었다. 흙바닥이었고, 여기저기 닭과 오리 똥이 널려 있었다. 나는 빗자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다. 어제 촌장의 지시대로, 나는 하루 종일 집안일과 마을 공동 작업을 도맡아 했다. 빨래, 청소, 요리, 심지어는 밭일까지.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더 지쳐 있었다.

마당을 쓸고 있는데, 몇몇 마을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지만, 이제는 무심함과 당연함이 담겨 있었다. 한 아줌마는 지나가면서 “저 새 여자, 오늘도 일하고 있네?” 하고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이 “그래, 촌장님이 데려왔다면서. 우리 마을 일을 도와주는 거래.” 하고 대꾸했다. 그들의 말투는 마치 내가 여기서 당연히 일해야 하는 존재인 양, 아무런 의문도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계속 빗자루를 움직였다. 손바닥은 이미 굳은 살이 박혀 있었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생존의 문제였다. 내가 일하지 않으면, 내가 촌장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내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점심때가 되자, 왕취화가 나를 불렀다. “예완팅, 들어와서 밥 좀 먹어. 오후에 할 일이 많으니까.”

나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은 좁고 연기가 자욱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고, 솥에는 된장찌개가 끓고 있었다. 나는 밥을 퍼서 상에 놓았다. 왕취화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 둘러앉았다. 나는 한쪽에 조용히 앉아 밥을 먹었다. 그들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로 이어졌다.

“촌장님이 저 여자 꽤 마음에 들어 하시나 봐.” 왕취화의 남편이 말했다. “어제도 밤늦게까지 일을 시켰잖아.”

“그래, 우리한테는 좋지.” 왕취화가 웃었다. “일손 하나 생긴 거니까. 게다가 아직 젊고, 몸도 좋아. 오래 쓸 수 있을 거야.”

그들의 말은 마치 내가 도구인 양,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나는 숟가락을 든 손이 떨렸지만, 참았다. 지금 싸우면 더 나빠질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근데 촌장님 왜 저런 여자를 데려왔을까?” 왕취화의 남편이 궁금한 듯 물었다. “도시에서 왔다면서? 교사였다면서?”

“몰라. 하지만 촌장님이 하시는 일은 다 이유가 있겠지.” 왕취화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우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돼. 그리고 저 여자, 말 잘 듣고 일도 잘하니까 괜찮아.”

나는 밥을 다 먹고 일어섰다. “다 먹었습니다. 할 일 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가.” 왕취화가 손을 휘저었다. “오후에는 촌장 집에 가서 마당 좀 치워 줘. 촌장님이 부탁하셨어.”

“네.”

나는 다시 마당으로 나왔다. 햇살은 따가웠고, 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움직일 뿐이었다.

오후, 나는 촌장 집으로 갔다. 촌장 왕대산은 마당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보자 씩 웃었다. “왔구나. 마당 좀 치워 줘. 그리고 저쪽 장작도 패야 해.”

“네, 촌장님.”

나는 도끼를 들고 장작더미 앞에 섰다. 처음에는 손이 맞지 않아 힘들었지만, 이제는 조금 감이 왔다. 도끼를 휘두르고, 장작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유일하게 내 마음을 비울 수 있는 순간이었다.

“잘하고 있구나.” 촌장이 다가와 말했다. “너는 배운 사람이라 그런지, 뭘 해도 빨리 배우네.”

“감사합니다, 촌장님.”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장작을 팼다.

“근데, 너 요즘 우리 마을 사람들이 너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지?” 촌장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다들 너를 좋아해. 일도 열심히 하고, 말도 잘 듣고.”

나는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촌장님,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 그래.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게 있어.” 촌장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너를 탐내는 자들도 있어. 너는 여자고, 그것도 예쁜 여자니까. 만약 내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 말은 분명한 협박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표정은 그대로였다. “네, 촌장님. 잘 알겠습니다.”

“좋아. 계속 일해라. 저녁에 마을 회의가 있으니까, 너도 와야 해. 음식 준비도 해야 하고.” 촌장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나는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혔고, 터져서 피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생각이 들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는지, 모든 게 꿈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녁, 마을 회의가 열렸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든 장소는 촌장 집 앞마당이었다. 나는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상에 차렸다. 술과 안주, 몇 가지 반찬. 모두 내가 만들었다.

사람들이 둘러앉았고, 촌장이 맨 앞자리에 앉았다. “자, 오늘도 수고 많았어. 우리 마을은 작지만, 다들 화합해서 잘 살아가고 있어. 그리고 오늘은 새로 온 예완팅 씨를 소개할게.”

모든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나는 부엌 문간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예완팅 씨는 앞으로 우리 마을에서 살 거야. 그러니까 다들 잘 대해 줘. 그리고 그동안 우리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해 줬으니까, 다들 한잔 해.” 촌장이 잔을 들었다.

사람들도 따라서 잔을 들었다. 누군가가 말했다. “예완팅 씨, 여기 와서 한잔 하게.”

나는 망설였지만, 촌장의 눈빛에 못 이겨 앞으로 나갔다. 잔을 받아 들고, 한 번에 마셨다. 술은 목을 타고 넘어가며 쓰라렸다.

“좋아, 좋아!”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내 귀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한참 술자리가 진행되면서, 분위기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 어떤 남자들은 나를 슬쩍슬쩍 쳐다보았고, 어떤 여자들은 수군거렸다. 나는 그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마치 내가 그들의 소유물인 양,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인 양.

“예완팅 씨, 근데 너 정말 교사였어?” 한 남자가 물었다. “도시에서 살다가 왜 여기까지 왔어?”

나는 잠시 멈칫했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절친의 배신, 전 남편의 이혼, 모든 걸 잃고 도망치듯 이곳에 왔다는 것을.

“그냥... 쉬고 싶어서요.” 나는 짧게 대답했다.

“쉬고 싶다고? 여기서?” 다른 남자가 웃었다. “여기는 산골이야. 뭐가 있어서 쉬겠다고?”

“그만해.” 촌장이 끼어들었다. “예완팅 씨가 우리 마을에 온 걸 환영해야지, 왜 괴롭혀?”

남자들이 입을 다물었지만, 그들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웠다.

밤이 깊어지자, 회의는 끝났다. 나는 부엌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손은 이미 얼얼했고, 온몸이 쑤셨다. 하지만 내일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방으로 돌아와, 나는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나는 참았다. 울면 지는 거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날을 위해 버텨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긴장했다. 문이 열리고, 왕취화가 들어왔다.

“아직 안 자고 있었네?” 그녀가 웃었다. “오늘 수고 많았어. 그래도 이제 좀 익숙해졌지?”

“네, 조금요.”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좋아. 내일도 할 일이 많으니까, 일찍 자.”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나는 문을 닫고, 방 안에 혼자 남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나를 감쌌다.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물집이 터지고, 굳은 살이 박힌 손. 더 이상 예전의 교사 손이 아니었다. 이제는 노예의 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버틸 것이다. 언젠가는 이곳을 벗어날 날이 올 것이다. 그날까지, 나는 참고, 견디고, 기다릴 것이다.

악의의 첫 발현

아침이 밝았다. 좁고 누추한 오두막에서 눈을 뜨니 온몸이 쑤셨다. 어젯밤 내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일어나라, 게으른 년아!”

밖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에 나는 벌떡 일어났다. 얼른 옷을 챙겨 입고 문을 열자 왕대산의 아내인 김순녀가 서 있었다.

“빨래터로 가거라. 오늘 빨래가 산더미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따라 나섰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제는 논에서 일하고, 그제는 장작을 패고, 사흘 전에는 마을 회관 청소를 했다. 이제는 빨래까지 시키다니.

빨래터에 도착하자 이미 몇몇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낄낄거리며 수군거렸다.

“저 도시 여자, 드디어 왔네.”

“어젯밤에 우리 남편 빨래까지 어떻게 했는지 봐야지.”

참을 인(忍) 자를 되뇌이며 무릎을 꿇고 빨래를 시작했다. 차가운 물에 손이 시렸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소몽요가 내게 신신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참아, 완팅아. 곧 모든 게 끝날 거야.’

하지만 과연 그럴까. 벌써 한 달째다. 산촌에 끌려온 지 한 달이 넘었지만 탈출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어이, 예완팅!”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왕취화였다. 촌장의 딸. 그녀는 빨래터로 성큼성큼 걸어와 내 앞에 섰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독사처럼 차가웠다.

“일어나 봐.”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섰다.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내 뺨을 쓰다듬었다.

“참 예쁘게 늙었네. 마흔둘이라고?”

손길이 섬뜩했다. 나는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어머니가 하시던 일을 대신 좀 해 줘. 알겠지?”

나는 어쩔 줄 몰라 고개를 끄덕였다. 왕취화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빨래터를 떠났다. 그녀가 간 후에도 여자들의 시선은 여전히 따가웠다.

점심때가 되자 나는 촌장 집으로 불려갔다. 부엌에서 일을 도우라는 명령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기름 냄새. 널찍한 부엌에는 이미 여러 가지 음식 재료가 널려 있었다.

“여기서 밥을 해.”

김순녀가 대충 지시를 하고 나갔다. 나는 재료를 살펴보며 요리를 시작했다. 도시에서 혼자 살 때 요리를 해 본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다.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왕취화가 서 있었다. 그녀는 요리하는 내 모습을 잠시 지켜보더니 다가왔다.

“맛있어 보이네. 근데…”

그녀는 숟가락으로 국을 떠서 맛을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찡그렸다.

“짜다. 다시 해.”

순간 당황했지만 재료를 보니 간이 딱 맞아야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취화 씨, 간을 다시 보시면…”

“닥쳐!”

왕취화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감히 내 요리에 태클을 걸어? 너는 그냥 하라는 대로 해. 다시 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이번에는 일부러 간을 더 약하게 했다. 다시 그녀가 맛을 보더니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다. 그런데 이제부터 이 요리는 네 몫이 아니야. 저쪽에 있는 개 밥그릇에 담아.”

내 눈이 커졌다. 그녀는 내 표정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왜, 싫어? 너도 이제 이 마을의 개일 뿐이야. 아니, 개보다 못한 존재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분노와 수치심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삼켰다. 개 밥그릇에 국을 담아 내밀었다. 왕취화가 그릇을 받아 들고 마당으로 나가 개에게 던져주었다.

“이년 참 착하네.”

그날 오후, 나는 마을 회관으로 불려갔다. 들어서자 왕대산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옆에는 마을의 남자들 몇이 서 있었다.

“예완팅, 이 마을에 온 지도 한 달이 넘었지.”

왕대산이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서 고맙다. 근데 이제 슬슬 다른 일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두 손을 꽉 쥐었다.

“이 마을의 규칙에 따르면 새로 들어온 사람은 공동 작업 외에도 각 가정을 도와야 해. 오늘부터 저녁마다 다른 집을 돌아가며 일을 도와라.”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낮에는 빨래와 요리, 밭일까지 하고 있었다. 저녁까지 다른 집 일을 하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제가… 벌써 낮에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녁은 좀…”

“뭐라고?”

왕대산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 내 앞으로 걸어왔다.

“네가 감히 거절해? 이년아, 네가 어떤 처지인지 알고 있냐?”

그의 손이 내 턱을 움켜잡았다. 고통스러웠지만 참았다.

“너는 우리 마을의 공유 재산이야. 내 말 들려? 공유 재산. 그러니까 명령에 따르는 게 당연하지.”

나는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왕대산이 손을 놓았다.

“그래, 이제 시작이야. 오늘은 김 서방 댁에 가거라.”

나는 비틀거리며 회관을 나왔다. 저녁이 되자 김 서방 집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허름한 집 안에서 한 중년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선생님.”

그의 비꼬는 말투에 소름이 끼쳤다. 그는 내가 교사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부엌에 가서 저녁 준비해. 그리고 빨래도 하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여 일을 시작했다. 부엌에는 더러운 그릇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설거지하며 다시는 교단에 설 수 없을 거라는 현실이 가슴을 찔렀다.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달빛 아래서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소몽요였다.

“완팅아.”

그녀는 다정한 척 다가왔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 숨겨진 게 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오늘 좀 힘들었지? 하지만 조금만 더 참아. 내가 방법을 찾고 있어.”

“몽요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 난 더 이상…”

“조금만! 알겠지?”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바로 부드럽게 바뀌었다.

“미안, 내가 너무 걱정돼서 그래. 걱정 마, 곧 끝날 거야.”

그녀는 내 어깨를 토닥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해진 걸까.

숙소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좁은 방 안, 촛불 하나만이 어둠을 밝혔다. 나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오늘 일어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개 밥그릇, 왕취화의 조롱, 왕대산의 위협.

그리고 문득 떠오른 진호의 얼굴. 만약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잘 살폈더라면… 아니, 그 모든 게 소몽요 때문이었을까. 점점 모든 게 수상하게 느껴졌다.

다음 날 아침, 또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열어보니 왕취화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이거 열어 봐.”

나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낡은 옷가지와 함께 작은 노리개가 들어 있었다. 그 노리개는 내가 대학 졸업 후 처음 샀던 귀걸이였다. 분명 서울에 두고 왔는데…

“어때, 반갑지?”

왕취화가 음흉하게 웃었다.

“네 절친한테서 받았어. 네 짐을 좀 가져왔더라고.”

소몽요? 그녀가 어떻게?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 소몽요를 만났어?”

“응, 어제 저녁에. 네가 김 서방 댁에 갔을 때 말이야. 우리 참 친해졌어. 앞으로 네가 말을 안 들으면 이 귀걸이를 어떻게 할까?”

그녀는 귀걸이를 꺼내 내 눈앞에 흔들었다.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이었다. 엄마가 남겨준 유일한 물건이기도 했다.

“제발… 그건 안 돼…”

내 목소리가 떨렸다. 왕취화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 잘 들을 거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늘은 나랑 같이 시장에 가자. 내 물건을 좀 들어 줄 거야.”

나는 그녀를 따라 촌장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 개의 짐이 준비되어 있었다. 왕취화가 가장 무거운 보따리를 내게 안겨주었다.

“어깨에 메. 그리고 내 뒤를 따라와.”

시장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야 하는 곳이었다. 무거운 보따리를 메고 걷는 내내 어깨가 찢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참았다.

시장에 도착하자 왕취화는 물건을 팔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그녀가 시키는 대로 물건을 건네주고 돈을 받았다.

그때였다.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와 멈춰 섰다.

“취화야, 이 여자가 누구야?”

“우리 마을 새 노예야. 예쁘지?”

왕취화가 내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나는 비명을 참으며 고통을 견뎠다.

“와, 진짜 예쁘네. 얼마에 팔아?”

그 남자의 시선이 내 몸을 더듬었다. 소름이 끼쳤다.

“안 팔아. 우리 마을 공유 재산이야. 하지만…”

왕취화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빌려줄 순 있어. 하루에 오만 원.”

그 남자의 눈이 반짝였다. 나는 경악하여 고개를 들었다.

“취화 씨…!”

“닥쳐!”

왕취화가 내 뺨을 때렸다. 따끔한 통증이 퍼졌다.

“네가 뭔데 끼어들어. 이건 명령이야.”

그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왕취화가 내 팔을 붙잡았다.

“기다려, 여기서 말고 저녁에 마을로 와. 그때 데려갈게.”

남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 내 마음은 무거웠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도망칠 곳도 없었다. 이 산촌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었다. 휴대폰도, 차도 없었다.

저녁이 되자, 그 남자가 실제로 마을에 나타났다. 왕취화는 나를 그의 집으로 보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저항할 힘이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몸을 팔아야 했다. 숙소로 돌아와 몸을 씻으며 흐느꼈다. 더러워진 몸을 씻어도 마음은 씻기지 않았다.

“진호야… 미안해…”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이제 나는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처음엔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더 이상 노동이 아니었다. 인격을 짓밟는 폭력이었다.

다음 날, 왕취화가 또 왔다.

“어제 일이 어땠어? 재미있었어?”

그녀의 조롱 섞인 질문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말해 봐. 재미있었냐고?”

“…그만둬 주세요.”

내 목소리가 바스러졌다.

“그래? 그럼 오늘은 다른 일을 시킬게. 마을 회관 청소해.”

나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 회관에 가자 거기에는 왕대산과 마을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눈치를 보며 청소를 시작했다.

그때, 내 핸드폰이 울렸다. 분명 압수당했을 텐데. 놀라서 돌아보니 왕취화가 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전화 왔어. 네 남편이래.”

숨이 막혔다. 진호였다. 그가 왜 지금 전화를…

“받고 싶어? 받게 해 줄까?”

왕취화가 내 앞에서 핸드폰을 흔들었다. 나는 간절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릎 꿇어.”

순간 주변의 남자들이 낄낄거렸다. 나는 주저하다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좋아, 이제 마을 사람들한테 ‘저는 노예입니다’라고 말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 할래? 그럼 전화는 여기서 끝.”

그녀가 전화를 끊으려 했다. 나는 급히 소리쳤다.

“…저는 노예입니다.”

내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더 크게!”

“저는 노예입니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왕취화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핸드폰을 내게 건넸다.

받아 든 핸드폰에서 진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완팅아? 무슨 일이야? 왜 목소리가 그래?”

“진호… 나…”

말하려는 순간 핸드폰이 뺏겼다. 왕취화였다.

“아이고, 여보 씨. 걱정 마세요. 완팅 씨는 저희 마을에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좀 피곤해서 그래요.”

그녀는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진호가 무언가 더 묻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바로 끊어버렸다.

“됐어. 이제 일이나 해.”

나는 망연자실하게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 희망마저 끊겼다.

그날 밤, 나는 오두막에 혼자 앉아 생각했다. 모든 게 소몽요의 계획이었을까. 그녀가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질투? 시기? 아니면 단순한 재미?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거였다.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악의가 처음 발현된 날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악의에 맞서 싸울 힘조차 잃어가고 있었다.

협박과 굴복

그날 밤, 나는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등잔불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벽에 비친 그림자는 마치 나를 집어삼킬 듯 움직였다. 손가락이 무의식적으로 식탁 가장자리를 스치며 작은 긁힘 하나를 만졌다. 그것은 며칠 전 왕취화가 내게 붙인 상처 자국이었다. 아직 아물지 않아 건드리면 따끔거렸지만, 나는 그 고통이 오히려 정신을 차리게 해주는 것 같아 감사하게 여겼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무겁고 규칙적인 발걸음.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 소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왕취화였다. 그녀는 항상 이렇게 늦은 밤에 찾아왔다. 마치 내가 피할 수 없다는 걸 증명하듯.

“예 선생님, 안 자고 뭐 하세요?”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그 속에 숨겨진 악의는 내 등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문틈 사이로 불그스름한 등잔불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통통한 볼에 눈은 가늘게 뜨고, 입가에는 언제나 익숙한 비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이제 자려고요.”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직 일이 있어요.” 그녀가 다가와 내 앞에 섰다. 그녀의 그림자가 나를 완전히 덮었다. “사촌이 보낸 편지, 아직도 기억하시죠?”

내 심장이 마치 찬물에 담근 것처럼 차가워졌다. 그 편지. 바로 그 편지가 나를 이 지옥 같은 곳에 묶어 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 사촌이 쓴 편지에는 내가 도시에서 빚을 지고 도망쳤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거짓말이었다. 사촌은 내가 이 마을에서 교사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함정이었다.

“그 편지는…… 거짓말이에요.” 나는 간신히 그 말을 꺼냈다.

“거짓말이든 진짜든, 지금은 중요하지 않죠.” 왕취화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손은 무겁고 뜨거웠으며, 내가 떨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마을에서 모두가 당신을 빚쟁이로 알고 있어요. 내가 좀 도와주지 않으면 아마…….”

그녀는 말을 멈추고 빙긋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마을 사람들이 나를 가리키며 수군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저 여자, 빚 때문에 도망쳐 왔대.” “저런 교사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애들을 가르쳐?” 그 말들은 칼처럼 내 마음을 찔렀다.

“뭘 원하는 거야?” 내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간단해요.” 그녀가 몸을 굽혀 내 귀에 속삭였다. “내 사람이 돼요.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그러면 편지도 없던 일로 하고, 마을 사람들도 더 이상 당신을 쫓지 않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일종의 만족감이 스며 있었다. 마치 사냥감이 덫에 걸린 것을 보는 듯한 기쁨이었다.

“왜…… 왜 나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나는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다.

“왜냐고요?” 그녀가 하하 웃었다. “예 선생님, 당신은 너무 순수해요. 이 마을에서 당신 같은 교사는 보기 드물어요. 착하고, 참을성 있고, 가르치는 것도 잘해요. 하지만 그게 바로 문제예요. 당신은 너무 눈에 띄니까.”

그녀의 손가락이 내 뺨을 스쳤다. 차갑고 날카롭게.

“아버지는 당신을 좋아해요, 아버지는 당신이 아이들을 똑바로 가르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나는 달라요.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이 가장 싫어요. 항상 선한 척, 고귀한 척, 하지만 결국은 모두 가식이잖아요?”

나는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단지 내 일을 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증오를 사야 하는가?

“선택은 당신 몫이에요.” 왕취화가 몸을 일으키며, 손에 편지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바로 그 편지였다. “내일 아침까지 결정해요. 만약 거절하면, 이 편지를 경찰서에 보낼 거예요. 당신이 도시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경찰이 관심을 가질 거예요.”

그녀가 돌아서서 문 밖으로 나갔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내 마음은 이미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만약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경찰이 나를 잡으러 올 것이다. 그 편지의 내용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지만, 한 번 얽히면 끝이 없다. 게다가 지금 내가 이 마을에서 겪는 나날들은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다. 만약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나는 정말로 도망칠 곳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의하면? 왕취화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명예와 존엄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들은 모두 노예처럼 살았다. 어떤 명령에도 복종하고, 어떤 모욕도 참아내야 했다. 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을까?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바깥은 캄캄했다. 마을의 밤은 항상 이렇게 어두웠다. 가로등 하나 없고, 별빛마저 희미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창문을 열었다. 찬 바람이 불어와 내 뺨을 스쳤다. 차갑고 날카로웠다.

이 순간, 갑자기 진호가 생각났다. 우리는 이미 이혼했지만, 그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선량한 사람이었고,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이런 처지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만약 그가 알게 된다면? 나는 그가 실망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또 소몽요가 생각났다. 나의 절친. 그녀는 항상 나를 이해해 주고 지지해 주었다. 그녀가 내 편에 서서 도와주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게다가 나는 그녀에게 내 고통을 털어놓을 용기가 없었다.

시간이 한 방울 한 방울 흘러갔다. 나는 알 수 없는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아마도 이것이 나의 운명일지도 모른다. 도망칠 수 없는 운명.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비쳤다. 나는 눈을 떴다. 눈이 충혈되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일어나 간단히 옷을 차려입고 왕취화의 집으로 갔다.

그녀의 집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었다. 2층짜리 건물로, 이 마을에서는 보기 드문 집이었다. 문 앞에는 개 두 마리가 누워 있었는데, 나를 보자 으르렁거렸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요.” 안에서 왕취화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녀는 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를 보자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와, 예 선생님. 생각보다 빨리 오셨네요.”

나는 그녀 앞에 서서 고개를 숙였다. 목소리는 낮고 떨렸다. “내가…… 동의할게.”

그녀는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손이 내 어깨에 닿았다. “이게 맞아요, 예 선생님. 당신은 현명한 선택을 한 거예요.”

그녀의 손이 점점 힘을 주었다. 나는 통증을 느꼈지만, 참아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부터 당신은 내 사람이에요.” 그녀가 내 귀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요. 그러면 적어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말은 마지막 희망마저 앗아가는 듯했다.

그날,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집을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을 지었다. 그녀는 옆에 앉아 지시만 내렸다. 나는 쉴 틈도 없이 일했다. 손이 부르트고 허리가 아팠지만, 그녀는 냉소만 지었다.

“예 선생님, 좀 더 힘내요. 이렇게 약해서 어떻게 해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숙여 일만 계속했다. 마음속에는 후회와 분노가 가득했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녁이 되자, 그녀가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다. 술자리에서 그녀는 내게 술을 따라주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라고 시켰다. 나는 순종했다. 하지만 속은 이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술자리가 끝난 후, 그녀가 나를 방으로 불렀다. 방 안에는 침대 하나와 탁자 하나만 있었다. 그녀가 탁자 위에 놓인 서류를 가리켰다.

“서명해요.”

나는 서류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내가 마을을 떠날 수 없다는 내용과 내 모든 재산이 그녀에게 귀속된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손이 떨렸다.

“이건…….”

“서명하라고 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싫으면, 지금이라도 떠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요.”

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연필을 집어 들고 이름을 썼다. 획 하나하나가 마치 내 마음에 칼을 긋는 듯했다.

서명을 마치자, 그녀는 만족스러운 듯 서류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됐어요, 이제 쉬어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요.”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방을 나갔다. 나는 홀로 방 안에 남았다.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렸다.

이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미 돌아갈 길을 잃었다는 것을. 나는 왕취화의 노예가 되었다. 소유물이 되었다. 더 이상 자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진호가 생각났다. 그가 나를 구하러 올 수 있을까? 소몽요가 생각났다.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까?

나는 그 희망들이 얼마나 허무한지 알고 있었다. 이 산촌에서 나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었다. 아무도 나를 구할 수 없었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모두 내 불행을 모르고 있었다. 또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머리는 텅 빈 듯했다. 아마 이것이 나의 운명일 것이다. 도망칠 수 없는 운명.

이때, 문 밖에서 다시 발소리가 들렸다. 가볍고 조심스러운 발걸음. 나는 몸을 움츠렸다. 누구지? 왕취화가 돌아온 것일까?

문이 열렸다. 등잔불 아래에 선 사람은 왕대산이었다. 마을 촌장. 그의 얼굴에는 술기운이 어렸고, 눈에는 한 줄기 음흉한 빛이 스치고 있었다.

“예 선생님, 아직 안 주무시네요?”

그가 다가왔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쉬세요, 쉬어요. 난 그냥 와서 당신 상태를 좀 보려고 온 거예요.”

그의 말은 상냥했지만, 그의 눈빛은 내게 불길함을 느끼게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뒤로 움츠렸다.

“촌장님, 너무 늦었어요. 쉬시는 게…….”

“아직 안 늦었어요.” 그가 내 옆에 앉았다. 침대가 삐걱거렸다. “취화가 당신을 좀 심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내가 있어요.”

그의 손이 내 손등을 스쳤다. 나는 놀라 손을 움켜쥐었다.

“촌장님, 제발…….”

“왜 그래요?” 그의 목소리가 약간 딱딱해졌다. “나는 당신을 도우려는 건데.”

그의 눈빛이 점점 더 뜨거워졌다. 나는 그의 표정에서 위험한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촌장님, 정말 늦었어요. 좀 쉬어야겠어요.”

“그래, 나도 가야지.” 그가 일어나면서도 여전히 나를 응시했다. “하지만 예 선생님, 기억하세요. 이 마을에서는 누가 진짜 권력을 쥐고 있는지. 나는 당신이 적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가 돌아서서 나갔다. 문이 닫혔다. 나는 폭신한 침대 위에 주저앉아 몸이 축 처졌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내 인생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나는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이 세상에는 선량함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누군가는 악의를 이용해 착한 사람을 삼킨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다시 흘러나왔다. 이 눈물은 자유를 위한 것이었고, 포기를 위한 것이었다.

나는 왕취화의 노예가 되었다. 나의 절망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개인 노예의 일상

아침 햇살이 좁은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지만, 그 빛은 나에게 아무런 온기도 주지 못했다. 나는 차갑고 단단한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무릎은 이미 시리고 저렸지만, 그 고통은 내 마음속 절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왕취화는 내 앞에 있는 나무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고, 그녀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일어나, 밥해야지."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내 귀를 찔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조롱과 경멸이 섞여 있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나는 버티려고 애썼다. 이곳에 온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이 끔찍한 현실에 익숙해지지 않았다.

부엌은 좁고 어두웠다. 벽에는 그을음이 가득했고, 바닥에는 기름때가 껴 있었다. 나는 쌀을 씻고, 불을 지폈다. 손이 떨렸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낯설었다. 나는 한때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산골마을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왕대산이 들어왔다. 그의 눈에는 음흉한 빛이 번뜩였다. 그는 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잘하고 있구나. 이제 좀 적응한 것 같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처럼 내 마음을 찔렀다. 그는 내 침묵을 순종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분노와 억울함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네가 여기 온 이후로 마을 분위기가 좀 나아졌어. 다들 네가 순둥순둥하다고 하더라."

그의 말에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순둥순둥? 나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참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참음도 한계가 있었다.

왕취화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손에 채찍을 들고 있었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었고, 끝 부분이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탁자 위에 툭 던졌다.

"밥이 다 되면, 마당을 청소해. 그리고 내 옷을 빨아. 알겠지?"

"네."

내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그녀는 내 대답에 만족하지 못한 듯, 채찍을 들어 내 어깨를 툭 쳤다. 아프지 않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모욕이었다.

"더 크게 대답해. 네가 누군지 잊은 거 아니지?"

"네, 주인님."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내가 더럽혀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한때 자존심 강한 여교사였다. 그런데 지금은 이 못된 계집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내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나는 꾹 참았다.

밥상을 차리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왕대산과 왕취화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나는 방구석에 서서 그들이 먹는 것을 지켜봤다. 그들은 내가 함께 앉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지 알고 있다.

"밥은 너도 먹어야지. 그래야 힘을 내서 일하지."

왕대산이 내게 밥을 권했지만, 그 말에는 자비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그가 건넨 밥그릇을 받았다. 그것은 찬밥이었고, 반찬이라고는 간장 한 방울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허겁지겁 먹었다. 배가 고팠기 때문이 아니라, 힘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는 마당 청소를 시작했다. 마당은 넓었고, 낙엽과 먼지가 가득했다. 빗자루를 들고 쓸기 시작했지만, 내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나는 이제껏 내가 해왔던 삶을 생각했다. 서울의 아파트, 학교 교실, 학생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꿈처럼 멀어져 있었다.

갑자기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소몽요가 서 있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화장이 곱게 되어 있었다. 그녀는 내 모습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

"예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녀의 말투에는 비꼼이 섞여 있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내 인생을 망친 장본인이다. 그녀는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알고 있다. 아니, 그녀가 내가 이곳에 오도록 만든 것이다.

"네가 어떻게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어?"

내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내 분노를 아는지 모르는지, 천천히 다가왔다.

"왜요? 저는 그냥 친구로서 인사하러 왔을 뿐인데요."

"친구? 너 같은 사람이 무슨 친구야!"

나는 빗자루를 내던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는 내 반응에 더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예 선생님, 현실을 받아들이세요. 당신은 이제 이 마을의 노예예요. 아무도 당신을 구하러 오지 않아요. 진호 선생님도 이제는 저와 함께 있어요."

그 말에 나는 무너졌다. 진호. 내 전 남편. 그는 나를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소몽요의 계략에 빠져 그녀와 결혼하게 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알지만, 그걸 입 밖에 내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었다.

"제발, 그만둬."

내 목소리는 간청으로 변했다. 그녀는 내 간청을 무시하고, 한 걸음 더 다가섰다.

"당신이 이 마을에 온 이후로, 왕 촌장님이 많은 것을 바꾸셨어요. 당신 같은 도시 여자가 순종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우신가 봐요."

그녀는 내 어깨를 툭 쳤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손에 있는 반지를 보았다. 그것은 내가 진호에게 준 약혼반지였다.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 반지..."

"아, 이거요? 진호 선생님이 저에게 주셨어요. 이제 저의 것입니다."

그녀는 반지를 빛에 비춰 보이며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때 왕취화가 마당으로 나왔다. 그녀는 내가 소몽요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야, 노예가 게으름 피우고 있네? 청소는 다 했어?"

"아직 다 못 했습니다."

"그럼 뭐 하고 있어? 당장 해!"

그녀는 소리치며 내게 다가왔다. 나는 다시 빗자루를 들었다. 소몽요는 그 모습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예 선생님. 다음에 또 뵐게요."

그녀는 우아하게 몸을 돌려 마당을 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분노와 슬픔에 몸부림쳤다.

청소를 마친 후, 나는 왕취화의 방으로 갔다. 거기에는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빨래를 시작했다. 손이 시렸다. 물은 차가웠고, 비누는 거칠었다. 나는 옷을 비비면서도 내 처지를 생각했다.

이곳은 악몽 같았다. 그러나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눈을 꼭 감고, 현실이 아니라고 믿으려 했다. 하지만 손끝의 차가움과 냄새는 나를 현실로 끌어당겼다.

저녁이 되었다. 왕취화는 내게 저녁 준비를 시켰다. 나는 부엌에서 혼자 요리했다. 그 사이, 마을 사람들이 몇 명 들렀다. 그들은 내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어떤 이는 동정했고, 어떤 이는 즐거워했다.

"저 여자, 도시에서 교사였대."

"교사가 왜 여기 왔어?"

"촌장님이 데려왔대. 빚 때문이래."

"허, 참 불쌍하네."

그들의 말이 내 귀에 들렸지만,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요리만 했다.

밥상이 차려지고, 나는 방구석에 앉아 그들이 먹는 모습을 바라봤다. 왕대산은 술을 마시고 있었고, 왕취화는 내가 만든 음식을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꽤 맛있네. 앞으로 이렇게만 해."

그 말은 칭찬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나는 좁은 방에 갇혀 있었다. 방에는 침대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저 낡은 이불 한 장이 깔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내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소몽요는 왜 나를 이렇게 만든 걸까. 진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모든 생각이 뒤엉켜 나를 괴롭혔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이불을 꼭 움켜쥐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나 아무도 내 울음을 듣지 않았다. 이곳에서 나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또다시 왕취화의 명령을 받았다.

"오늘은 마을 회관 청소를 해. 거기서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가 있으니까, 깔끔하게 해."

"네."

나는 말없이 따라나섰다. 마을 회관은 마을 중심에 있었다. 거기는 넓었고, 벽에는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며 이 마을의 어두운 면을 느꼈다.

청소를 하는 동안, 몇몇 마을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내게 이상한 시선을 보냈다. 나는 그 시선이 두려웠지만, 피할 수 없었다.

한 젊은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험악한 표정이 깔려 있었다.

"야, 너 새로 온 노예지? 이름이 뭐야?"

"예완팅입니다."

"예완팅? 듣보잡 이름이네. 여기서는 너를 그냥 노예라고 부를 거야."

그는 내 턱을 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게 했다. 나는 그의 눈에서 음흉한 빛을 보았다. 나는 몸을 떨었다.

"놔 주세요."

내 목소리는 작게 떨렸다. 그는 내 간청을 무시하고, 내 볼을 쓰다듬었다.

"피부가 곱네. 도시 여자는 다르구나."

그 순간, 왕취화가 회관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그 남자의 행동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야, 이건 내 노예야. 함부로 건드리지 마."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 남자는 손을 놓고 웃었다.

"알았어, 알았어. 네 거니까 너 혼자 즐겨."

그는 나를 한 번 더 훑어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왕취화는 내게 다가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일어나, 일이나 계속 해."

나는 억지로 일어나 청소를 이어갔다. 내 마음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마을의 우물가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그때, 한 노인이 내게 다가왔다. 그는 마을의 최고령자였다. 그의 눈에는 지혜와 비밀이 담겨 있었다.

"아가씨, 여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나?"

그의 질문은 갑작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세요?"

"이 마을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속은 썩어 있어. 왕대산과 왕취화 부녀가 마을을 쥐고 흔들지.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사람은 없어."

그의 말은 무거웠다. 나는 그의 눈빛에서 동정을 읽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그들은 마을 밖으로 나가는 모든 길을 막아 놨어. 그리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 마을의 실체를 몰라. 너는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할 거야."

그의 말은 나를 더 절망에 빠뜨렸다. 나는 물통을 들고 일어섰다.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그 노인은 한숨을 쉬며 자리를 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 미래가 얼마나 암울한지 실감했다.

저녁, 나는 다시 왕취화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나를 불러 세웠다.

"오늘 마을 회관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그녀는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거짓말하지 마. 내가 다 봤어. 그 남자가 너를 건드렸잖아."

그녀는 내게 다가와, 내 볼을 손가락으로 톡톡 쳤다.

"네 몸은 내 거야. 다른 사람이 함부로 만지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아."

그녀의 말에는 위협이 섞여 있었다. 나는 몸을 움츠렸다.

"알겠습니다, 주인님."

"좋아. 이제 저녁 준비해."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손이 떨렸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참아야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날 밤, 나는 방에 홀로 앉아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달빛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 달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내 존엄은 이미 무너졌고, 내 삶은 이 마을에 얽매여 있었다.

문득, 나는 노인의 말을 떠올렸다. "죽을 때까지." 그 말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 절망 속에서도, 나는 무언가를 찾고 싶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 나는 또 다른 명령을 받았다. 이번에는 마을의 공동 작업에 참여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남자들과 함께 들에서 일해야 했다. 그것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햇볕은 따갑게 내리쬐었고, 나는 땀에 흠뻑 젖었다. 내 손에는 물집이 잡혔고, 허리는 아팠다. 그러나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내가 게으름 피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점심 시간, 나는 그늘에 앉아 찬밥을 먹었다. 그때, 한 여자가 내게 다가왔다. 그녀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여자 중 하나였다. 그녀는 내게 물을 건넸다.

"고생이 많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나는 물을 받아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이 마을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아. 특히 너처럼 도시에서 온 여자는 더욱 그렇지."

그녀는 내 옆에 앉아,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는 강해. 그들의 말에 흔들리지 마. 너만의 방법으로 버텨."

그녀의 말은 작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일어서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조심해. 그리고 조용히 해. 말이 많으면 해가 돼."

그녀는 떠났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저녁이 되자,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왕취화는 내게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밤에 마을의 창고를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혼자 창고로 갔다. 거기는 어둡고 축축했다. 나는 촛불 하나를 켜고,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왕대산이 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술기운이 어렸다.

"늦게까지 일하는구나."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네, 주인님."

"자, 이리 오너라."

그는 내게 손짓했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거역할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그가 내 팔을 잡았다. 그의 손은 거칠고 뜨거웠다.

"네가 여기 온 이후로, 마을이 조용해졌어. 네 순종이 마음에 들어."

그는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온몸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주인님, 제발..."

"조용히 해. 이건 명령이야."

그의 손이 내 옷자락을 더듬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 영혼이 조각조각 나는 것 같았다. 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창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내 몸은 아팠고, 마음은 텅 비었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소유물이었다. 그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허공을 바라보며,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했다. 이 마을은 지옥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다시 일어섰다. 내 몸은 무거웠지만, 나는 버티기로 결심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살아서, 이 마을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비록 그 길이 험난하더라도.

노출의 시작

나는 그들의 손에 끌려 마을 한복판에 섰다. 왕취화가 내 머리채를 움켜쥐고 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내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나는 참았다. 울면 그들이 더 좋아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자, 선생님. 이제 네가 어떻게 우리 마을의 노예가 되었는지 모두에게 보여줄 시간이다."

왕취화의 목소리는 마치 칼날처럼 내 귀를 찔렀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호기심과 짐승 같은 욕망이 번뜩였다.

"내가 왜... 이런 일을..." 내 목소리는 떨렸다.

"왜?" 왕대산이 내 앞으로 걸어왔다. "네가 순순히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네가 우리 마을의 장식품이 될 거야. 모두가 네 벌거벗은 몸을 볼 수 있게."

나는 몸을 움츠렸다. 내 교복이 찢겨나가고 있었다. 왕취화가 천천히 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첫 번째 단추가 풀렸다. 두 번째 단추가 풀렸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내 가슴이 드러났다. 내 나이 마흔둘의 몸은 더 이상 젊지 않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내 피부를 태웠다.

"아직도 저항할 힘이 있나?" 소몽요가 내 귀에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너는 이미 끝났어. 예완팅. 너는 더 이상 교사도, 인간도 아니야. 그냥 우리의 장난감일 뿐이야."

내 치마가 벗겨졌다. 나는 팔로 내 몸을 가리려고 했지만, 왕취화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안 돼. 다 보여줘야 해. 이것이 네 운명이야."

마을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야유를 퍼부었고, 어떤 이들은 침을 뱉었다. 나는 들판에 세워진 기둥에 묶였다. 내 몸은 완전히 드러났다. 햇빛이 내 창백한 피부를 비추었고, 나는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자, 이제부터 매일 이 시간에 여기 서 있을 거야." 왕대산이 큰 소리로 말했다. "모든 사람이 네 벌거벗은 몸을 볼 수 있게. 네가 우리 마을의 노예라는 것을 잊지 못하게."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내 눈물을 보며 더 큰 쾌감을 얻었다.

"이제 어떻게 느껴?" 소몽요가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들어 올렸다. "전에는 학생들 앞에서 당당한 선생님이었잖아. 이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벌거벗은 몸을 드러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어."

나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힘이 부족했다. 그녀가 내 뺨을 때렸다.

"순종해. 그게 너에게 좋을 거야."

내 몸은 이미 멍투성이였다. 그들이 나를 때리고, 꼬집고, 내 몸 구석구석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의 손에 몸을 맡길 수밖에.

"이제 네가 얼마나 더러운지 모두에게 알려줄 시간이다." 왕취화가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너는 우리 마을의 더러운 노예야. 벌거벗고, 더럽고, 아무도 너를 신경 쓰지 않아."

나는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내 몸은 완전히 드러난 채로, 태양 아래서 떨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내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들의 시선은 내 몸을 찢어발겼다.

"선생님이었잖아. 그런데 이제는..." 한 젊은 남자가 내 앞에 서서 내 가슴을 만졌다. 나는 몸을 움츠렸지만, 그는 손을 떼지 않았다.

"이게 바로 네 운명이야. 예완팅." 소몽요가 내 귀에 속삭였다. "너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우리의 노예일 뿐."

나는 눈을 감았다. 내 마음속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천사였다. 그들은 나를 천사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들의 조롱거리였다.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내 자존심은 산산조각났다.

"이제 시작일 뿐이야." 왕취화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앞으로 더 많은 일이 있을 거야. 너는 우리 마을의 영원한 노예가 될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목소리는 이미 사라졌다. 그저 그들의 손에 몸을 맡길 수밖에. 내 삶은 끝났다. 나는 더 이상 예완팅이 아니었다. 그냥 산촌의 노예일 뿐.

날이 저물어 갔다. 마을 사람들이 점차 흩어졌다. 나는 여전히 기둥에 묶여 있었다. 내 몸은 이미 감각을 잃었다. 그저 멍하니 어두워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왕대산이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만졌다. "내일도 같은 시간에 여기 서 있어야 한다. 알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그들이 내 묶인 밧줄을 풀었다. 나는 땅에 쓰러졌다. 내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소몽요가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발로 밟았다.

"일어나.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나는 간신히 일어났다. 내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들이 나를 다시 소몽요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나는 또 다른 밤을 보내야 했다.

소몽요는 내가 씻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더러운 몸으로 그녀의 방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죽어 있었다.

"진호는 어떻게 지내?" 내가 물었다.

소몽요가 웃었다. "그는 잘 지내. 나와 함께 살고 있어. 너는 이미 그에게 잊혀졌어."

내 가슴이 찢어졌다. 진호, 내가 사랑했던 남자. 그는 내가 이런 지경에 빠진 것도 모르고, 소몽요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에게 말해줘... 나를 구해달라고..."

"말해?" 소몽요가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때렸다. "그는 이미 내 거야.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가 널 어떻게 생각할까? 벌거벗고, 더럽고, 모든 사람 앞에서 모욕당한 여자를?"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맞았다. 진호가 나를 어떻게 볼까? 나는 더 이상 그가 사랑했던 그 여자가 아니었다. 나는 그냥 더러운 노예였다.

밤이 깊어갔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내 몸은 아팠고, 내 마음은 더 아팠다. 나는 오늘 일어난 일을 떠올렸다. 내가 어떻게 그들의 손에 벌거벗겨졌는지, 어떻게 모든 사람 앞에서 모욕당했는지. 그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었다. 더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기도했다. 누군가 나를 구해주길. 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였다. 완전히 혼자.

"예완팅, 너는 이제 끝났어." 내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더 이상 희망은 없어."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그것을 닦지 않았다. 그저 흘러내리게 두었다. 내 눈물은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그들이 빼앗아 갈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이 다시 나를 끌고 나갔다. 다시 마을 한복판에 세워졌다. 다시 내 옷이 벗겨졌다. 다시 모든 사람 앞에 내 몸이 드러났다.

"오늘은 더 재미있는 일을 준비했어." 왕취화가 내 앞에 서서 웃었다. "네가 춤을 추게 할 거야. 모든 사람 앞에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할 수 없어..."

"할 수 있어." 그녀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네가 하지 않으면, 네 전 남편에게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줄 거야. 그가 널 어떤 눈으로 볼지 궁금하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할 수 없었다. 그가 내 모습을 보게 할 수 없었다.

"좋아... 내가 할게..."

내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춤추는 척했다. 내 몸은 부자연스럽게 흔들렸다. 마을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추한 몸짓을 보며 즐거워했다.

"더! 더!" 그들이 외쳤다.

나는 계속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장난감이었다.

그날,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춤을 추었다. 내 다리는 이미 저려왔고, 내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이 멈추라고 할 때까지.

마침내, 날이 저물었다. 그들이 나를 다시 기둥에서 풀어주었다. 나는 땅에 쓰러졌다. 내 몸은 이미 움직일 수 없었다.

"내일도 똑같이 해야 한다." 왕취화가 내 앞에 서서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알겠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선택이 없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났다. 나는 더 이상 예완팅이 아니었다. 그냥 산촌의 노예, 그들의 조롱거리, 그들의 장난감.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었고, 내 영혼은 이미 산산조각났다.

나는 소몽요의 집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구석에 웅크렸다. 내 몸은 떨리고 있었다. 내 마음은 이미 죽어 있었다.

"예완팅, 너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스스로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아무것도..."

그렇게 나의 절망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더 많은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의 손에 몸을 맡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