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소청의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보는 순간, 그녀의 손이 떨렸다. 임일이었다.
“여보세요?”
“소청 씨, 오늘 오후에 시간 돼요? 지난주에 말했던 과외, 오늘 하기로 했잖아요. 제 아파트로 와 주세요.”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거부할 수 없는 압박이 숨어 있었다. 소청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네, 알겠어요.”
“좋아요. 주소는 문자로 보낼게요. 늦지 마세요.”
전화가 끊겼다. 소청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창백했고, 눈가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긴 소매 원피스를 골랐다. 몸에 남은 자국을 가리기 위해서였다.
임일의 아파트는 교외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해 있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임일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잘 왔어요. 들어와요.”
거실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책상 위에는 과외 교재들이 놓여 있었다. 소청은 긴장한 채 소파에 앉았다.
“오늘은 뭘 할 건가요?”
“간단한 수학 문제 몇 개 풀어보죠. 자, 여기 앉아요.”
임일은 그녀 옆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팔을 소파 등받이에 걸쳤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어깨에 스치자 소청은 몸을 움츠렸다.
“과외는 진짜가 아니죠. 당신,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임일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똑똑하네요. 그래, 오늘은 좀 더 특별한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당신이 내 말을 잘 듣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
그가 일어나서 서랍에서 얇은 끈을 꺼냈다. 소청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제발... 오늘은 그만둬요.”
“아니요.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요.”
임일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청은 저항했지만, 그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끈이 손목을 감싸고 단단히 묶였다. 임일은 그녀를 소파에 밀어 앉히고, 반대쪽 끈을 책상 다리에 고정했다.
“이제 움직이지 마요. 그리고 내가 말할 때까지 가만히 있어.”
소청은 눈을 감았다. 이미 이런 상황에 여러 번 당했기에, 그녀는 이제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느껴지는 수치심과 무력감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았다.
임일이 소파 맞은편에 앉아 천천히 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칼날이 사과 껍질을 얇게 벗겨내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그는 가끔씩 소청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몇 시간이나 이렇게 있을 생각이에요?”
“글쎄요. 기분 내키는 대로요. 당신이 불쌍하게 굴면 더 오래 갈 수도 있고요.”
소청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임일은 그 모습을 보며 쾌감을 느꼈다. 그가 사과 조각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자, 이제 질문을 시작할게요. 지난주에 내가 당신에게 뭘 가르쳐 줬는지 기억나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해요.”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모든 게 괜찮아진다고 했어요.”
“맞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걸 잘 지키지 않았잖아요. 학교에서 나를 피하려고 한 것 같던데.”
소청의 어깨가 떨렸다.
“그건... 그냥 무서워서...”
“무서워? 나한테 왜 무서워해. 나는 당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인데.”
임일이 일어나 그녀 앞에 서서,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은 겉으로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무시무시한 위협이 숨어 있었다.
“오늘 여기서 나가면, 내일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 싶어요?”
소청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잘 들어요. 나는 당신을 파괴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러기 싫어요. 당신이 내 말을 잘 듣기만 하면, 모든 게 평화롭게 유지될 거예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임일은 그것을 손가락으로 닦아주며, 자신의 손가락을 그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달콤해요. 당신의 눈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청의 몸은 점점 굳어갔다. 그녀의 손목은 끈에 의해 붉게 물들었고, 정신은 점점 흐려졌다. 그녀는 점점 더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방 안의 모든 것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임일은 몇 시간 후에야 그녀를 풀어주었다. 그는 끈을 풀며 부드럽게 말했다.
“잘 했어요. 이제 집에 가도 돼요. 하지만 다음 주에도 또 올 거지요?”
소청은 아무 대답 없이 일어섰다. 그녀의 손목은 아렸고, 온몸이 무거웠다. 그녀는 현관으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소청 씨.”
임일의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오늘 일,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세요. 우리만의 비밀이에요. 알겠죠?”
소청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문을 닫는 순간, 그녀는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더 이상 그녀의 삶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임일의 손안에 있었다.
그날 저녁, 소청은 집에 돌아와 욕실 거울 앞에 섰다. 손목에 남은 붉은 자국을 보며,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건... 괜찮은 거야. 그냥 참으면 돼.”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빛이 없었다. 그녀는 샤워기 아래로 들어가 뜨거운 물을 틀었다. 물이 그녀의 몸을 적셨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텅 빈, 아무것도 없는 허공 속에 서 있을 뿐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소청은 교실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친구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도, 그녀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소청, 너 요즘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괜찮아. 그냥 피곤해서... 집에 가서 좀 쉬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그녀의 얼굴에 붙은 가면일 뿐이었다. 그녀의 내면은 이미 무너져 내렸다. 도움을 요청할 용기도, 방법도 없었다. 오직 임일이 그녀를 움직이는 손가락 하나하나가 그녀의 삶을 조종하고 있었다.
점심시간, 소청은 매점에 가려고 복도를 걷다가 임일을 마주쳤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걸어가며 웃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 그녀를 스치자, 소청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소청 씨, 점심은 먹었어요?”
임일이 그녀 앞에 서서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그녀만은 그 속에 숨은 독기를 알 수 있었다.
“아니요, 아직요.”
“그럼 같이 먹을래요? 학교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가 있는데, 거기 샌드위치가 꽤 괜찮대요.”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소청은 거절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임일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살짝 감싸며,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행동했다. 소청은 그의 손길에 온몸이 굳어졌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은 이미 그에게 속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