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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적의 입구는 깊은 산골짜기 속에 숨겨져 있었다. 사방으로 뒤엉킨 덩굴과 이끼가 자욱한 석벽이 수천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소염은 손에 든 검은 장검으로 앞을 가로막는 잡목을 베어내며, 발아래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피로와 기대가 뒤섞인 빛이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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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유적의 사력 전승

고대 유적의 입구는 깊은 산골짜기 속에 숨겨져 있었다. 사방으로 뒤엉킨 덩굴과 이끼가 자욱한 석벽이 수천 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소염은 손에 든 검은 장검으로 앞을 가로막는 잡목을 베어내며, 발아래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피로와 기대가 뒤섞인 빛이 번뜩였다.

이 유적은 대륙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 속의 장소였다. 무수한 강자들이 탐험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자는 없었다. 그러나 소염에게 이는 곧 기회였다. 투기대륙에서 그는 수많은 역경을 뚫고 정상에 오른 주인공이었다. 그는 이 땅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지 못할 것이 없다고 믿었다.

유적의 입구는 어둡고 으슥한 석실이었다. 벽면에는 오래된 횃불이 걸려 있었지만 불꽃은 이미 꺼져 있었다. 소염은 호흡을 가다듬고 마나를 온몸에 두르며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석실은 깊고 끝이 없었으며, 발밑에선 매번 돌부리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몇 걸음을 걷자 그는 갑자기 발이 허공에 뜨는 것을 느꼈다. 몸이 급격히 아래로 떨어졌다. 그가 재빨리 발을 굴러 주변 돌기둥을 잡았고, 거친 호흡과 함께 식은땀이 흘렀다.

"조심해야 해..."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다시 길을 찾기 시작했다. 몇 차례 굽이를 돌자 좁은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 양쪽에는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석판이 늘어서 있었다. 소염은 손을 멈추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문양은 마치 무언가를 묘사하는 듯했지만 마치 타오르는 불길처럼 선명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 문양을 스치듯 만졌다. 갑자기 석판이 살짝 진동했고, 그의 손끝에 미세한 열기가 스며들었다.

소염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재빨리 손을 거두었지만 이미 늦었다. 통로 끝에서 낮은 울림이 들려왔고, 곧이어 너른 지하 전당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전당은 놀라울 정도로 컸다. 높은 천장은 수십 장(丈) 높이로 우뚝 솟아 있었고, 중앙에는 높이가 한 사람 키만 한 돌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제단 위에는 검은 반지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반지는 옥처럼 매끄러운 흑요석 재질로, 표면엔 가느다란 주홍색 선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고, 마치 살아있는 실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듯했다.

소염은 조심스럽게 제단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내밀어 반지를 집으려는 순간, 반지가 갑자기 섬광을 뿜어내며 그의 손가락을 휘감았다. 소염은 깜짝 놀라 반지를 떼어내려 했지만, 반지는 이미 검은 기운을 뿜어내며 그의 손바닥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파편 같은 기억이 쏟아져 들어왔다.

전승이었다.

거기엔 사력을 다루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었다. 사도구를 통해 타인의 영혼 깊숙이 침투해 통제권을 얻고, 그 힘을 폭발적으로 강화시키는 비술이었다. 전승은 마치 수천 년을 거쳐 전해진 듯했지만, 그 내용은 놀라울 정도로 또렷했다. 소염은 거의 저항할 수 없이 그 지식의 홍수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떨기 시작했다.

‘이런 힘이라면... 이 대륙에서 나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이 스치자마자, 그는 곧바로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런 사력은 너무나 사악했다. 타인의 의지를 억누르고 노예로 삼다니—이건 그의 본심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일이었다. 그는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왔고, 남을 제압하는 힘을 갈망한 적이 없었다.

그는 반지를 빼내려고 발버둥쳤지만, 반지는 이미 그의 손가락 깊숙이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소염은 한숨을 내쉬고 어쩔 수 없이 그대로 두기로 했다. 어쩌면 유적을 떠난 후에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전당을 나서려던 찰나, 전당 깊은 곳에서 구부정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 그림자는 실체가 없는 영혼체였다. 온몸이 반투명하게 흐릿했고, 눈구멍에선 파란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잔혼은 소염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는 돌을 갈아내듯 거칠고 음산했다.

"젊은이, 네가 그 반지를 집었구나."

소염은 경계하며 손을 들어 검을 움켜쥐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는 수천 년 전, 이 유적에 봉인된 강자였다. 한때... 사력에 반감을 샀지."

잔혼의 목소리에는 깊은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빙글빙글 소염 주위를 맴돌며 그의 손가락에 낀 검은 반지를 응시했다.

"그 반지는 마음의 먹이다. 사력은 겉보기엔 달콤하지만, 그 속에는 무서운 독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심지(心志)를 조금씩 갉아먹고 결국엔 이성을 완전히 삼켜버린다. 나는 한때 그 힘에 미쳐 세상을 통제하려 했고, 결국 이 유적에 갇혀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소염의 얼굴색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왜 이 유적에 전승을 남겨둔 것인가? 모두를 타락시키려는 것인가?"

"전승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 반지가 스스로 봉인을 깨트린 것이다. 아마도 천명인가 보다... 이 힘은 결국 세상에 나오게 되어 있다. 하지만 너는, 너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면 사력이 너를 지배할 것이다."

잔혼의 말은 비수처럼 날카로웠지만, 소염은 그것을 가볍게 웃어 넘겼다.

"나는 수많은 역경을 겪어왔다. 그까짓 힘쯤이야 능히 다스릴 수 있다."

"오만함이 바로 타락의 시작이다."

잔혼이 고개를 저으며, 몸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내 말을 기억하라, 젊은이. 네가 사력을 쓸 때마다, 그것은 네 영혼을 한 조각씩 갉아먹을 것이다. 언젠가 네가 되돌아보면, 너는 이미 예전의 네가 아닐 것이다."

말을 마치자 잔혼은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전당은 다시 적막에 잠겼다.

소염은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서서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는 잔혼의 경고를 마음에 새겼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욕망을 부정할 수 없었다. 사력의 전승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만약 선(善)을 위해 쓴다면 어쩌면 이 대륙에 더 큰 평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그는 몸을 돌려 전당을 나섰다. 발걸음은 무거웠지만 확고했다.

유적 밖으로 나오자, 찬바람이 불어왔다. 소염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검은 반지가 은은하게 빛나며, 그의 손가락에 살며시 마찰했다. 그것은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 주인을 인정하는 신호였다.

소염은 무심코 반지를 바라보았다. 손가락 끝에서 퍼지는 미열이 그의 팔을 따라 천천히 올라와 흉부에서 작게 울렸다. 그는 생각을 멈추려 했지만, 그 열기는 그의 의식을 타고 점점 짙어져 갔다.

‘이 힘... 나는 결코 그 경고대로 타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다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이미 잘 알 수 없는 변화가 일고 있었다. 반지는 울림을 멈추지 않았고, 그의 성격도 반지와 함께 조금씩 어두운 방향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소염은 유적을 떠나 하산의 길을 따라 내려갔다. 머지않아 깊은 산속에선 새가 지저귀고, 먼 곳에선 마을이 점점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전과 같지 않았다. 눈빛에는 더욱 깊고 알 수 없는 빛이 감돌고 있었고, 입가에는 희미하고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여관방에 홀로 앉아 반지를 빼내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소용없었다. 반지는 마치 그의 손가락과 한몸이 된 듯, 어떤 힘으로도 그 결합을 깨트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지쳐서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목에는 이미 가느다란 검은 선이 생겨났고, 그것은 조금씩 위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사력은 이미 깨어났고, 저항할 수 없는 기세로 그의 삶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사력 첫 사용: 훈아의 타락

가마 제국의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제국의 중심에 자리잡은 거대한 전각, ‘천염궁’ 앞마당에는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소염은 검은 장포를 입고 천천히 돌계단을 올랐다. 그의 눈동자에는 한 줄기 어두운 붉은 빛이 스쳤고, 손끝에서 새어나오는 기운은 보이지 않게 공기를 일렁였다. 그는 고대 유적에서 사력을 얻은 이후, 몸속에서 흐르는 힘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예전의 투기대륙 주인공으로서의 정직함은 이제 어딘가 뒤틀리기 시작했고,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두 개의 목소리가 충돌했다.

“소염 오빠!”

맑은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소염은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소훈아는 마당 끝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순백색 장포를 입고 있었고, 긴 머리는 바람에 흩날렸다. 얼굴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돌아왔구나! 가마 제국을 떠난 지 벌써 반 년이야!”

소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가의 미소는 예전 같지 않았다. 소훈아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녀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소염의 눈동자 속에 감춰진 그 어두운 붉은 빛을 본 것이다. 무언가 낯설고 불편한 기운이 느껴졌다.

“오빠… 몸상태 안 좋은 거 아니지? 기색이 예전 같지 않은데.”

소훈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염은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웃었다.

“아무 일도 없어. 오히려 네 수련은 더 게을러진 것 같구나.”

소훈아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거침없이 소염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누가 게을러! 난 매일 매일 수련했어. 고족의 훈련장에서 밤낮으로 검을 휘둘렀다구!”

두 사람은 나란히 천염궁 안으로 들어갔다. 소염의 시선은 은근히 그녀의 목덜미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흐르는 생명력의 파동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사력이 내면에서 꿈틀거렸다.

---

그날 밤.

소염은 은밀히 천염궁 지하 밀실로 들어갔다. 사방의 석벽에는 어두운 문양이 가득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작은 제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는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손가락으로 공중에 복잡한 주문을 그렸다.

사력이 흘러나오며 공기를 붉게 물들였다.

소염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그의 눈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는 손바닥을 펼쳐 한 쌍의 은백색 팔찌를 꺼냈다. 유환. 이 유환은 사력으로 정제되었고 내부에는 무수한 핏빛 문양이 깃들어 있었다. 한 번 착용하면 영혼 깊숙이 침투하여 주인의 노예로 만든다.

“훈아… 미안하다.”

소염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의 손가락이 유환 위를 스치자, 사력 문양이 어둡게 반짝였다. 그는 눈을 감았다. 내면에서는 두 목소리가 격렬하게 싸웠다.

“넌 그녀를 제압할 수 없어. 그녀는 네 지기야.”

“하지만 사력을 완전히 장악하려면 제물이 필요해. 훈아는 강하고 믿음직스러워. 그녀가 첫 번째가 되어야 해.”

소염은 양손을 불끈 쥐었다. 손바닥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그는 다시 눈을 떴을 때, 눈동자 속의 붉은 기운이 더욱 짙어져 있었다.

“운명은 잔혹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어.”

---

다음 날.

소염은 태연한 표정으로 소훈아를 천염궁 후원으로 불렀다. 후원에는 수많은 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공기 중에는 희미한 향이 감돌았다. 소훈아는 손에 검을 들고 나타났다.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소염 오빠, 뭘 가르쳐 줄 거야?”

소염은 가볍게 웃으며 유환 두 개를 내밀었다.

“이건 내가 고대 유적에서 얻은 수련 비법이야. 착용하면 기혈과 심지를 강화시켜 두존 경지로 도약할 수 있게 해줘.”

소훈아가 유환을 받아 들고 살펴보았다. 팔찌는 은백색으로 빛나고 내부에는 핏빛 줄무늬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이거… 무슨 기운이 느껴져? 좀 이상한데…”

“너를 믿지 않아? 나를 믿어.”

소염의 목소리는 다정했지만, 눈빛 속에는 어쩔 수 없는 강제성이 숨겨져 있었다. 소훈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네가 준 거라면, 난 믿어.”

그녀는 가볍게 유환을 손목에 착용했다. 순간 팔찌가 갑자기 붉게 빛나며 핏빛 문양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수많은 가느다란 붉은 선이 팔찌에서 흘러나와 소훈아의 팔뚝을 타고 번져갔다.

“어?!”

소훈아가 놀라서 손을 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유환은 그녀의 피부에 깊이 박혀 들어갔고, 핏빛 문양이 살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혼이 격렬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소염 오빠! 이게… 무슨…!”

소염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연민이 스쳤지만 곧 차가운 결의로 바뀌었다. 그는 손을 들어 공중에 복잡한 수결을 맺었다.

“참아, 훈아. 곧 끝날 거야.”

사력 문양이 폭발하듯 빛나며 소훈아의 전신을 감쌌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땅에 엎드렸다. 몸속의 힘이 마치 끓는 듯 격렬하게 요동쳤고, 영혼은 찢기는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안 돼… 안 돼… 나를… 놓아줘…”

그녀는 땅을 짚고 팔을 떨며 겨우 자신을 지탱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소염은 꿈쩍하지 않았다.

“저항하지 마. 오히려 네가 더 강해질 거야.”

소염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그 속에는 거스를 수 없는 위엄이 담겨 있었다. 사력 문양이 점점 더 깊이 소훈아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녀의 의식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저항할 힘이 점점 사라졌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도 어두운 붉은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몇 번의 숨결이 지나자, 그녀의 몸이 갑자기 붉은 기운을 폭발시켰다. 그 기운이 주변의 나무와 바위를 산산조각내며 공중으로 흩어졌다. 두존 경지의 위압감이 맹렬히 퍼져나갔다.

소훈아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녀의 눈은 이미 완전히 붉게 물들었고, 얼굴에는 더 이상 고통이 없었다. 오히려 공허하고 차가운 표정이 깃들었다. 그녀는 소염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주인.”

목소리는 낮고 떨림 하나 없었다.

소염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앞으로 너는 나와 함께할 거야. 더 강해져서, 나와 함께 이 세상을 정복하자.”

소훈아는 고개를 들어 소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 속에는 한 줄기 혼란이 스쳤지만 곧 사라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주인. 저는 주인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며 하늘을 완전히 뒤덮었다. 천염궁 후원에는 사력의 잔영만이 흩날리고 있었다. 첫 번째 유환이 완성된 순간,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사인족의 복종: 미두사의 치욕

사막의 끝자락, 붉은 벽돌로 쌓은 성이 햇살에 타오르고 있었다. 사인족의 성지, 여왕 미두사가 다스리는 땅.

소염이 성문 앞에 섰다. 그의 눈동자에는 어렴풋이 붉은 빛이 스쳤다. 그는 손을 들어 가볍게 두드렸다.

“누구냐?”

성문 너머에서 차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염. 미두사 여왕을 뵈러 왔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내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미두사는 높은 왕좌에 앉아 있었다. 금빛 장식이 화려하게 빛나는 그녀의 옷자락이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날카롭고 오만했다.

“네가 소염이냐? 내 영역에 무슨 볼일이 있느냐?”

소염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엔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여왕 폐하, 당신이 두존을 돌파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었소. 내가 도울 수 있겠소.”

미두사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네가? 무슨 수로?”

“나만의 방법이 있소. 만약 실패한다면, 내 목숨을 바치겠소.”

그 말에 미두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두존 돌파는 그녀에게 평생의 꿈이자 갈망이었다.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좋다. 네가 증명해 보여라.”

그날 밤, 달빛이 사막을 은빛으로 물들였다. 미두사는 수련실에 앉아 있었고, 소염은 그녀 앞에 서 있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로 어둡고 붉은 기운이 흘러나왔다.

“긴장을 푸시오. 내가 당신의 기운을 인도하겠소.”

미두사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순간, 소염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그의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붉은 기운이 공중에 흩어지며 거대한 법진을 형성했다. 벽과 바닥에 새겨진 사진이 갑자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미두사가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사진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압도적인 힘으로 그녀를 제압했다. 그녀의 몸이 마비되었고, 아무리 힘을 쏟아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용히 해.”

소염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오른손 검지에 붉은 음기가 맺혀 있었다.

“이건...!”

미두사의 눈이 공포로 가득 찼다. 소염이 그녀의 배 위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음문을 새기기 시작했다.

아프고 쓰라린 고통이 미두사의 복부를 관통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영혼 깊숙이 무언가가 박혀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의 모든 저항이 무너져 내렸다.

“네가... 나를...”

“조용히 해.”

소염의 목소리가 그녀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음문이 완성되자, 붉은 빛이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미두사의 몸에서 엄청난 기운이 솟구쳤다. 두존 초기... 두존 중기... 두존 후기... 마침내 두존 봉우리.

그녀의 실력은 비약적으로 상승했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영혼은 더 이상 자유롭지 않았다.

미두사는 눈을 떴다. 그녀의 눈동자에 붉은 빛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소염을 바라보았다. 증오와 굴욕, 그리고 어쩔 수 없이 피어오르는 경외심이 뒤섞여 있었다.

“나를... 어떻게 한 거냐?”

“간단한 계약일 뿐이오.”

소염이 손을 내밀었다. 미두사는 그 손을 잡아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다. 그녀는 속으로 저항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의 손이 저절로 올라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 익숙하지 않은 감정이 스며들었다. 강한 자에게 복종하는 것, 그것이 주는 어떤 쾌감. 그녀는 이를 부정하려 했지만, 실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한 기쁨이 그녀의 의지를 무너뜨렸다.

“앞으로 나를 주인이라 부르게.”

소염의 말에 미두사의 입술이 떨렸다. 그녀는 침묵했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미 대답하고 있었다.

“네... 주인님.”

그 소리는 겨우 들릴 듯 말 듯 작았지만, 소염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미두사는 그 웃음을 바라보며 자신이 영원히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임을 직감했다.

그날 밤, 미두사는 혼자 방에 앉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두존 봉우리의 힘이 손끝에서 일렁였다. 그녀는 그 힘을 느끼며 미소 지었다. 그 미소 속엔 비참함과 기쁨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여왕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해졌다. 그 사실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다.

“나는 복종한다. 하지만 그 대가로 힘을 얻었다.”

그 말은 스스로에 대한 위안이자, 동시에 타락의 시작이었다.

독체의 이변: 소의선의 절망

# 제4장 독체의 이변: 소의선의 절망

밤하늘에 검은 구름이 모여들었다. 소의선은 자신의 독막 안에 웅크린 채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액난독체가 또다시 폭발하려는 조짐이었다.

"아... 또야..."

그녀의 손끝에서 검푸른 독기가 새어 나왔다. 평소보다 더 강렬하고 통제 불능이었다. 소의선은 이를 악물고 독기를 억누르려 애썼지만, 독기는 오히려 더 거세게 그녀의 경맥을 휘감았다.

"소염 오라버니... 도와주세요..."

간신히 내뱉은 말이었다. 소의선은 몸부림치며 독막을 걷어냈다. 주위의 공기가 그녀의 독기에 오염되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먼 곳에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소염이었다.

"의선아!"

소염의 목소리에 잠시 안도감이 스쳤지만, 이내 그녀의 몸이 더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독기가 그녀의 심장을 찌르듯 쿡쿡 쑤셨다.

"소염 오라버니... 독체가... 제 몸을 집어삼키려 해요..."

소의선의 목소리는 떨렸다. 소염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내밀었다.

"움직이지 마라. 내가 진정시켜 주겠다."

소염의 손바닥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력이었다. 소의선은 그 힘을 느끼며 몸을 맡겼지만,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그 힘은 평소의 소염의 기운과는 달랐다. 더 차갑고, 더 어둡고, 더 집요했다.

"오라버니... 이 힘은..."

"조용히 해."

소염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그의 손이 그녀의 배꼽 아래에 닿았다. 그리고 순간, 사력이 그녀의 체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소의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힘은 독기를 억누르기는커녕 오히려 자극했다. 독기와 사력이 뒤엉켜 그녀의 경맥 속에서 미친 듯이 회오리쳤다.

"아아아아!"

소의선의 비명이 밤하늘을 찢었다. 그녀의 몸에서 검푸른 독기와 붉은 사력이 뒤섞여 뿜어져 나왔다. 주변의 초목이 순식간에 시들어 갔다.

"왜... 왜 이러는 거예요?!"

소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더 많은 사력을 주입했다. 소의선의 몸이 마치 용광로처럼 뜨거워졌다. 독기가 그녀의 내장을 녹이는 듯했다.

"참아라. 곧 끝난다."

소염의 목소리에는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소의선은 간신히 눈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아는 소염은 거기에 없었다. 그의 눈에는 차갑고 계산적인 빛만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건... 아니잖아..."

소의선의 말은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그 순간, 독기와 사력이 완전히 융합했다. 그녀의 몸에서 폭발적인 힘이 솟아올랐다. 땅이 갈라지고, 하늘의 구름이 흩어졌다. 그녀의 실력이 순식간에 몇 단계나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힘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이게... 무슨...!"

소염이 손을 들어 올리자, 소의선의 몸도 따라서 떠올랐다. 그가 손목을 돌리자, 그녀의 몸도 돌아갔다. 마치 인형처럼.

"됐다."

소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소의선은 자신의 몸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 무언가가 박혀 있었다. 사력이 그녀의 의지를 삼키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소의선은 울부짖었다.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사력은 그녀의 의지를 잠식하며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소염에 대한 충성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제발... 이러지 마... 오라버니..."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다. 눈물은 마르지 않고 계속 흘렀지만, 그녀의 눈에는 점점 초점이 흐려져 갔다. 저항할 힘이 사라지고 있었다.

소염은 그녀 앞에 서서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너의 운명이다. 액난독체는 강력하다. 하지만 그 강함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누군가의 인도가 필요하다."

"인도...?"

"그래. 나의 인도다."

소염의 손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소의선은 그 순간, 자신의 독체가 완전히 변질되었음을 느꼈다. 더 이상 액난독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력에 의해 오염된 '사독체'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독기가 다시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이었다. 더 치명적이고, 더 파괴적이었다. 그녀가 손끝에 독기를 모으자, 공기조차도 녹아내렸다.

"좋다. 이제야 제대로 된 힘이다."

소염이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손을 들어 독두기를 만들어 냈다. 그 위에 소의선의 독기가 스며들었다. 독두기가 더욱 강렬해지고, 주변을 오염시키는 독기가 퍼져 나갔다.

"액난독체의 천부... 드디어 내 것이 되었다."

소염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섞여 있었다. 소의선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몸은 이미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독체도, 그녀의 힘도, 그녀의 미래도 모두 소염의 것이 되었다.

"오라버니..."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더 이상 저항할 힘도,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소염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과 절망이 가득했지만, 그 깊은 곳에서 사력이 그 감정마저도 잠식해 가고 있었다.

운람종의 위기: 운운의 함락

# 사문창공 제5장: 운람종의 위기 - 운운의 함락

운람종의 산문 앞에는 검은 안개가 자욱했다. 하늘을 뒤덮은 혼전의 기운이 종문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운운은 백옥 같은 손으로 장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녀의 우아한 자태는 이미 지쳐 있었고, 하늘하늘한 옷자락 곳곳이 찢겨져 있었다.

"운람종주, 오늘 네 목숨을 바쳐라!"

혼전의 흑포 장로가 사나운 웃음을 지으며 손바닥을 내리쳤다. 검은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쳐 수많은 운람종 제자들이 나가떨어졌다.

운운이 급히 검을 휘둘렀지만, 혼전 장로의 공격은 너무 강력했다. 그녀의 몸이 뒤로 밀려나 입가에 핏물이 흘렀다.

"종주님!"

제자들이 놀라 소리쳤다.

운운은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일어섰다. 그녀의 눈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혼전의 장로, 그녀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한 줄기 붉은 빛이 스쳤다.

펑!

혼전 장로의 공격이 산산이 부서졌다. 소염의 모습이 운운 앞에 나타났다. 그의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고, 온몸에서는 괴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소염..."

운운의 목소리에는 안도감이 섞여 있었다.

"운람종주, 오랜만이오."

소염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예전의 따뜻함이 사라져 있었다.

혼전 장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서 온 놈이냐, 감히 혼전의 일에 끼어들다니!"

소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순간, 붉은 사력이 폭발하듯 퍼져나가 혼전 장로를 휘감았다.

"무... 뭐야!"

혼전 장로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자신의 투기가 이 붉은 기운에 잠식당하는 것을 느꼈다.

"너... 너 대체 누구냐!"

소염은 냉소를 지었다. 그의 손가락이 살짝 움직이자, 사력이 혼전 장로의 목을 조여갔다.

"죽어."

짜릿한 소리와 함께 혼전 장로의 몸이 산산조각났다. 검은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운운은 경악하여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소염의 실력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하지만 그 힘에는 무언가 섬뜩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운운."

소염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의 눈에는 붉은 빛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었다.

"혼전은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그들의 본대가 곧 도착할 테니, 그때는 나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운운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이를 깨물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소염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손에 작은 붉은 귀걸이가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피로 물든 것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내게 방법이 하나 있소. 하지만 대가가 따르오."

운운이 귀걸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에서는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본능이 경고를 울렸지만, 종문의 위기를 생각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슨 방법인데?"

"이 귀걸이를 착용하면, 잠시 동안 실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소. 하지만 그 힘은 내가 제어해야 하오."

소염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무언가 숨겨진 의도가 있었다.

운운은 망설였다. 그러나 멀리서 다시 혼전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심을 굳혔다.

"알겠어. 해줘."

소염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운운의 귀에 귀걸이를 걸어주었다.

그 순간이었다.

운운의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무언가가 자신의 의식을 잠식해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소... 소염... 이건..."

그녀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사력이 그녀의 경맥을 타고 흘러들어와 전신을 장악했다. 그녀는 저항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진정하시오, 운운."

소염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 목소리는 마치 최면처럼 그녀의 의지를 무너뜨렸다.

"이 힘을 받아들이시오. 그러면 더 강해질 수 있소."

운운의 의식이 점점 사라져갔다. 그녀의 몸에서 놀라운 기운이 폭발했다. 두존... 그것은 그녀가 한 번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였다.

"이것이... 두존의 힘..."

운운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주체성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붉은 빛이 어렸고, 소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염이 손을 내밀자, 운운이 자발적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 알겠소, 운운? 이것이 바로 진정한 힘이오."

운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직 저항의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지만, 몸은 이미 완전히 소염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소염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손을 들어 운운의 풍속성 투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바람의 기운이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좋아, 이제 나의 투기도 더욱 다채로워졌다."

그의 몸 주변으로 여러 가지 색깔의 투기가 소용돌이쳤다. 불, 바람, 그리고 다른 속성들의 힘이 한데 어우러져 더욱 강력해졌다.

운운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더 이상 이전의 생기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충성스러운 노예가 되어 소염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울부짖음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소염... 왜... 어째서...'

하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사력이 그녀의 모든 것을 잠식해 가고 있었다.

혼전의 위기는 사라졌다. 하지만 운람종은 더 이상 이전의 운람종이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다.

소염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더 큰 야망이 빛나고 있었다.

"이제 다음은... 누구일까."

사력 반감과 내적 갈등

깊은 밤, 대륙의 끝자락에 위치한 외딴 객잔의 방 안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소염은 침상 위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지만, 그의 온몸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오른손 약지에 낀 고대의 반지가 가냘프게 떨리더니, 이내 마치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맥동하기 시작했다. 반지 속에 봉인된 사력이 꿈틀거리며 그의 팔뚝을 타고 올라와 각혈을 파고들었다. 차갑고 음습한 기운이 피를 얼리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뜨거운 불길처럼 내장을 지져댔다.

“크윽...”

소염이 양악을 깨물었다. 이질적인 힘이 그의 의식을 집어삼키려는 듯 파도처럼 밀려왔다. 살아있는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사력은 그의 영혼 깊숙이 파고들어 ‘굴복하라, 이 힘을 받아들이라’고 속삭였다. 한때 투기대륙에서 정의와 의지를 굳건히 지켰던 소염의 본성은 이 사악한 기운에 격렬히 저항했다. 그는 남아 있는 의지력을 총동원해 사력을 억눌렀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고,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나는… 절대 네 녀석에게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의 내면에서 두 힘이 격돌했다. 선과 악, 본성과 타락, 저항과 유혹. 싸움이 길어질수록 소염의 온몸은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싸움 속에서 전에 없던 쾌감이 솟아올랐다. 타인의 의지를 짓밟고, 그 육체와 영혼을 완전히 장악하는 그 느낌이 그의 골수에 스며들었다. 그는 저항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왜 저항하는가? 이 힘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 아니었나? 약한 자들이 내 발아래 무릎 꿇는 그 광경… 그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가?*

그의 입가에 음습한 미소가 번졌다. 저항하던 의지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사력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그의 의식을 물들였다.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한 순간, 사력은 거침없이 그의 경락 전체를 장악했다. 고통은 사라지고 대신 짜릿한 쾌락이 전신을 감쌌다. 그는 깊은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다음 날 아침, 소염이 눈을 떴을 때 그의 눈동자는 전날과는 확연히 달랐다. 따뜻했던 온기는 사라지고, 대신 냉혹하고 탐욕스러운 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낮게 웃었다.

“좋다. 이제 진정한 지배자의 길을 걸어가야지.”

소염은 왼손에 착 달라붙은 고대 반지를 어루만졌다. 반지는 주인의 의지에 반응하듮 은은한 암흑색 광채를 뿜었다. 그는 방 밖으로 나가 짧은 의식의 명령을 내렸다. 사력의 노예가 된 네 명의 여인을 자신의 앞으로 불러들이라는 명령이었다.

잠시 후, 객잔 뒤편의 폐성(廢城) 터에 네 명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훈아는 표정이 창백했고, 두 눈에는 깊은 슬픔과 갈등이 어려 있었다. 미두사 여왕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소염을 노려보았지만, 그녀의 몸은 소염의 명령에 복종해 이미 무릎을 꿇고 있었다. 소의선은 순수했던 눈동자가 혼란으로 흔들리고 있었고, 운운은 고개를 숙인 채 떨고 있었다.

“다들 왔군.”

소염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는 네 명의 여인을 앞에 두고 낮고 음험한 웃음을 흘렸다. 쾌감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 이들은 한때 대륙에서 이름을 떨친 천재들이자, 당당한 지위를 가진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모두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노예에 불과했다.

“오늘부터 사력의 효과를 시험해보겠다. 서로 겨루어라.”

“뭐... 뭐라고?”

미두사 여왕이 일어나려 했지만, 그녀의 몸은 소염의 의지에 반응해 이미 전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소훈아가 소염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소염... 제발, 우리를 이렇게 만들지 마...”

“닥쳐라. 명령이다.”

소염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네 명의 몸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력이 그들의 육체를 조종했다. 먼저 미두사 여왕이 포효하며 주먹을 내질렀다. 붉은 사력 불꽃이 휘감긴 그 주먹은 소훈아를 향해 날아갔다. 소훈아는 본능적으로 몸을 피하며 반격했지만, 그녀의 동작은 섬세함을 잃고 난폭했다. 소의선의 몸에서는 보라색 독기가 피어올랐고, 운운은 칼을 뽑아들며 어쩔 수 없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폐성 터에 굉음이 울려 퍼졌다. 대지가 갈라지고 돌무더기가 튀어 올랐다. 네 명은 서로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의 눈에는 고통과 저항의 빛이 아른거렸지만, 몸은 소염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소염은 이를 지켜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대단하군. 사력이 너희의 한계를 깨뜨리고 있다.”

그의 말처럼 그들은 본래의 실력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각자의 고유한 특기와 체질이 사력에 의해 극대화되었다. 소염은 이 전투를 통해 그들의 모든 기술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자신이 네 명의 몸을 동시에 조종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의 의식 속으로 훈아의 냉기, 미두사의 불꽃, 의선의 독기, 운운의 검술이 흘러 들어왔다.

*이것이… 지배의 진정한 맛이구나.*

그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네 명의 움직임이 동시에 멈췄다.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땅에 쓰러졌다. 소염은 그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깨달음을 얻었다. 그들의 모든 재능, 모든 능력이 이미 자신에게 완전히 공유되어 있었다. 그는 생각만으로도 그들의 기술을 사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천부적인 체질마저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 알겠다. 너희 네 명의 실력과 천부는 모두 내 것이 되었다. 하지만… 네 명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소염의 눈에 위험한 광채가 스쳤다. 그는 시선을 들어 어둠이 걷히는 먼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대륙에는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강자와 세력이 산재해 있었다. 그들을 모두 정복하여 자신의 사력 노예로 만든다면, 그는 이 대륙의 진정한 군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사냥감은 누구로 정할까…”

그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걸렸다. 사력이 그의 심장 속에서 요동쳤다. 새로운 야망이 소염의 가슴 속에 불타올랐다.

혼전의 탐욕: 사력 노출

혼전의 정탐 망루는 항상 어둡고 습했다. 어둑한 등불 아래, 한 노정탐사가 두꺼운 기록책을 뒤적이며 눈썹을 찌푸렸다.

“소염…… 또 소염.”

그는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책장 위의 글자를 가리켰다. 그 글자들은 모두 최근 몇 달 동안 남부 변경 지역에서 수집된 정보였다. 소염이 사인족을 구출한 일, 소염이 액난독체와 교류한 일, 그리고…. 소염 주위에 나타난 그 여자들.

그는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젊은 탐정을 바라보았다.

“네가 직접 목격했다고? 그 여자들, 실력이 보통이 아니라고?”

젊은 탐정은 긴장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중 한 명은 고족의 아가씨인데, 한 달 전만 해도 겨우 투왕 정도였어요. 그런데 지난번에 사인족 영지에서 만났을 때, 그녀가 내뿜는 기운이 이미 두존 봉우리 수준이었어요. 게다가…. 그 기운이 정상이 아니었어요. 마치 어떤 사악한 힘에 물든 것 같았어요.”

노정탐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사악한 힘?”

“예. 우리 혼전 고전에 기록된 ‘사력’과 매우 비슷했습니다. 몸에서 나오는 기운이 검붉었고, 주변의 영기가 비틀리는 느낌이 났어요.”

노정탐정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밖은 어두웠고, 먼 곳에서 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사력…… 설마 그 전설이 사실이라고?”

그는 몸을 돌려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이 정보를 당장 상층부에 전해라. 소염이 이미 사력을 얻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그의 주변 여자들까지도 사력에 감염되었다는 정황을 보고해야 한다. 혼전은 이 전승을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한다.”

그날 밤, 혼전의 밀실에서 고위 간부들이 급히 소집되었다.

“사력 전승? 정말로 존재하는 겁니까?”

한 백발의 장로가 의심스럽게 물었다.

또 다른 고위 간부는 냉랭하게 말했다.

“존재하든 말든, 한 번 시도해 볼 가치는 있다. 만약 진짜라면, 우리 혼전이 천하를 통일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잠시 논의한 끝에 최종 결정을 내렸다. 두존 봉우리 강자 한 명을 보내 소염을 암살하고, 사력 전승을 빼앗아 오기로 했다.

이튿날, 두존 강자가 혼전을 출발했다. 그의 이름은 혈표라 불리며, 혼전에서도 손꼽히는 살수였다. 그의 임무는 단 하나, 소염을 죽이고 그의 모든 비밀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며칠 후, 혈표는 소염이 머무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그는 마을 입구의 나무 위에 몸을 숨기고, 눈을 가늘게 뜨고 마을 안을 관찰했다. 곧, 그는 네 명의 여자가 마을 한가운데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각각 소훈아, 미두사 여왕, 소의선, 그리고 운운이었다. 네 명의 기운이 모두 비범했고, 특히 그 눈동자 속에는 희미한 검붉은 빛이 스쳐 지나갔다.

혈표는 마음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두존 봉우리? 그까짓 것, 자기에게는 아직 상대가 안 된다. 그는 천천히 칼을 뽑으며, 찬란한 칼날을 드러냈다. 바로 그때, 마을 안에서 소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거라. 손님이 왔다.”

혈표는 마음이 놀랐다. 자신의 은신술은 혼전에서도 최고 수준인데, 어떻게 발각된 것일까?

어쩔 수 없이 그는 나무에서 뛰어내려 마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을 광장에서 소염은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있었고, 네 명의 여자는 그의 앞에 일렬로 서 있었다.

“혼전의 벌레가 또 왔구나. 지난번에는 한 방에 다 죽었었는데.”

소염의 말투는 무심했지만, 눈에는 차가운 빛이 반짝였다.

혈표는 칼을 들어 소염을 가리켰다.

“네 목숨과 사력 전승을 바쳐라. 그러면 너와 네 여자들을 살려줄 수도 있다.”

소염은 하품을 하며 손을 흔들었다.

“네 노예들아, 가서 이 시끄러운 놈을 처리해라.”

네 명의 여자가 동시에 움직였다. 그들의 몸에서 순간적으로 농후한 사력이 폭발했고, 검붉은 안개가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혈표는 깜짝 놀라며 급히 칼을 휘둘렀지만, 그 공격들이 마치 허공을 가르는 듯했다. 네 명의 여자는 서로 호흡이 완벽하게 맞으며 공방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소훈아는 가장 먼저 다가가서 손바닥을 내질렀다. 손바닥에는 검붉은 사력이 응집되어 있었다. 혈표는 급히 몸을 피했지만, 미두사 여왕이 뒤에서 왼손을 휘둘렀다. 그녀의 손톱은 길고 날카로우며, 마치 무기의 형상이었다. 혈표는 다시 피해 보려 했지만, 소의선이 이미 그의 퇴로를 막고 있었고, 몸속의 액난독체가 검은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운운은 뒤에 서서 손가락을 튕기며 공중에 비늘 같은 영기 장벽을 만들어 혈표의 도주를 막았다.

“네 이년들아!”

혈표가 욕하며 몸을 돌리려 했지만, 네 명의 여자는 전혀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들의 합동 공격은 이미 완벽한 포위망을 형성했고, 혈표는 그 안에 갇혀 점차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몇 번의 호흡 만에, 혈표는 이미 부상을 입었다.

“죽어라!”

소염이 차갑게 말했다.

네 명의 여자가 동시에 움직여, 그들의 사력이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검붉은 기둥을 형성했다. 그 기둥이 혈표를 덮쳤다. 혈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 힘에 산산조각났다.

소염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그들도 다시는 감히 우리를 건드리지 못할 거야.”

그러나 그가 모르는 것은 멀리 혼전 밀실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고위 간부들이 이 광경을 모두 보았다는 것이었다.

“이런…… 두존 봉우리 강자가 몇 초 만에 죽었다?”

백발 장로의 목소리가 떨렸다.

또 다른 고위 간부는 이를 악물었다.

“이 소염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혼전에 큰 재앙이 될 것이다.”

그들은 다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결국 한 명의 두성 강자를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혼전 최고의 전력 중 하나였다. 두성 강자는 한 번 출동하면 반드시 혈풍을 일으켰다.

“두성 강자 한 명이면 충분해. 소염은 이제 곧 죽은 목숨일 뿐이다.”

한 고위 간부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러나 이때, 소염은 마을 안에서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 그의 눈에는 검붉은 빛이 어른거렸다.

“두성 강자…… 흐음.”

그는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책상 위의 지도를 가리켰다. 그 지도에는 고대 유적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다.

“더 강한 노예가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혼전을 당해낼 수 없어.”

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다가 마침내 한 곳에 멈췄다. 바로 고대 마족의 무덤이었다.

“여기야. 거기에 분명 강력한 존재가 있을 거야.”

소염은 일어서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밖은 이미 어두워지고, 별빛이 지붕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그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기다려라, 혼전. 곧 너희가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의 말에는 냉랭하고도 뚜렷한 탐욕이 스며 있었다. 그의 주변 네 명의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서 있었지만, 그들의 눈동자 속에는 억누를 수 없는 아픔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소염의 노예였고, 그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

어둠이 내려앉고, 마을은 다시 고요 속에 잠겼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서 혼전의 그림자가 이미 소염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고족의 시험: 훈아의 배신

고족의 장로전당, 밤이 깊었다.

대장로 소천명은 눈을 찡그리며 수정구에 비친 영상을 응시했다. 영상 속 소훈아는 어둠 속에 홀로 서 있었고, 그녀의 주변에는 기이한 흑색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기운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그녀의 피부 틈새로 스며들었다 나왔다 하며, 그녀의 눈동자는 때때로 섬뜩한 붉은 빛을 번뜩였다.

"사흘째다."

소천명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훈아가 폐쇄 공간에서 나온 이후로 줄곧 이런 상태다. 처음에는 수련에서 무언가를 얻은 줄 알았지만..."

그는 손을 휘저어 수정구를 확대했다. 훈아의 목 뒤에 있던 은은한 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저건..." 옆에 있던 이장로 소경산이 벌떡 일어났다. "사인! 저건 사력의 인장이다!"

소천명의 손가락이 의자 팔걸이를 세게 쥐었다. 나무 의자가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훈아를 제어하고 있다."

"소염 놈이다!" 소경산의 목소리에 분노가 실렸다. "훈아가 유적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 녀석만 유일하게 접촉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 녀석이 사력을 얻었다는 소문은 벌써..."

"조용히 해."

소천명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의 눈빛은 깊은 늪처럼 어두웠다.

"사력을 얻은 놈이 정말 훈아를 노예로 만든 거라면... 우리가 직접 나서야 한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내일 새벽, 나와 함께 깜짝 방문을 하겠다. 소염 놈이 자고 있는 사이에 훈아를 구출한다. 만약 저항하면..."

그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즉석에서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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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아직 동트기 전이었다.

고족 강자 여섯 명이 소염의 거처를 포위했다. 소천명이 앞장서서 손짓하자, 다른 이들은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소경산이 손에 황금색 봉인을 쥐고 있었다. 그것은 사력을 봉인하는 고대의 비보였다.

"들어간다."

소천명이 문을 열려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장로님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모두가 놀라 뒤돌아보았다. 소염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약간의 조롱이 섞여 있었다.

"너..."

소천명의 눈이 커졌다.

"우리가 오는 걸 알고 있었다."

"당연하죠." 소염이 천천히 걸어왔다. "훈아가 며칠째 이상 행동을 보였으니, 고족이 눈치채지 못할 리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이 언제 올지 줄곧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건방진 놈!"

소경산이 몸을 날리며 봉인을 휘둘렀다. 황금색 빛이 소염을 향해 번쩍였다.

그러나 그 순간, 한 줄기 검은 그림자가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퍼어억!

소경산의 공격이 그 검은 그림자에게 맞았다. 그림자는 비틀거리며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그 모습이 드러났다.

"훈아?!"

소천명이 경악했다.

소훈아는 두 팔을 벌려 소염 앞을 막고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괴로운 표정이 어렸다.

"훈아, 비켜!" 소천명이 소리쳤다. "우리가 널 구하러 왔다!"

"아... 안 돼요..."

훈아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의 손가락이 자신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제발... 제발 여기서 돌아가 주세요..."

"훈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소경산이 다가가려 했다. "소염 놈이 널 제어하고 있잖아!"

그때, 소염이 조용히 말했다.

"훈아, 가서 이장로의 목을 베어라."

"!"

훈아의 몸이 크게 떨렸다.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소... 소염... 제발... 그건..."

"말을 안 듣겠느냐?"

소염의 목소리에 냉기가 깃들었다. 그의 눈에 붉은 빛이 번뜩였다.

훈아의 몸이 다시 한 번 크게 떨렸다. 그녀의 손이 저절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손은 이미 그녀의 의지를 떠나 움직이고 있었다.

"훈아, 이 미친 녀석아!"

소경산이 뒤로 물러서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훈아의 움직임은 그보다 빨랐다. 그녀의 몸이 흑색 기운에 휩싸이며 순간적으로 소경산 앞에 나타났다.

철썩!

검날이 허공을 갈랐다.

소경산은 놀라서 몸을 비틀었지만, 이미 늦었다. 검날이 그의 어깨를 스치며 깊게 베어 들어갔다. 피가 튀었다.

"이장로님!"

다른 고족 강자들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훈아는 이미 그들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귀신처럼 빠르고 정확했다. 그녀가 휘두르는 검은 모든 공격을 막아내며,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멈춰라, 훈아!"

소천명이 자신의 힘을 폭발시키며 훈아를 제압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는 순간, 검은 기운이 그의 손목을 휘감았다.

"이건...!"

소천명이 경악했다. 훈아의 힘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수련으로 얻은 힘이 아니었다. 사력이 그녀의 몸을 강제로 개조한 결과였다.

훈아는 울고 있었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

소염이 그 광경을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죽여라, 훈아."

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저 늙은이의 목을 베어라. 그러면 그들이 더 이상 널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아아아아!"

훈아가 절규했다. 그녀의 몸에서 흑색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눈에서 붉은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녀의 검이 다시 한 번 허공을 갈랐다.

이번에는 소경산의 목을 향해 있었다.

"훈아, 안 돼!"

소천명이 몸을 날렸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었다.

검날이 소경산의 목에 닿기 직전——

척!

훈아의 검이 멈췄다. 그녀의 손이 끝까지 저항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과 피가 섞여 흐르고 있었다.

"못... 못하겠어..."

그녀의 목소리는 숨이 막힐 듯 떨렸다.

"소염... 제발... 그만..."

소염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다.

"내가 명령했는데도 안 듣겠다는 거냐?"

"난... 난 내 족인을 죽일 수 없어..."

훈아가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검이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제발... 제발 이렇게 하지 마... 소염... 너는 예전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잖아..."

"예전?"

소염이 냉소를 지었다.

"예전의 나는 약했다. 그래서 당하고만 살았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강해졌다. 그리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훈아의 몸이 떨리며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네가 내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내가 직접 네 몸을 조종하면 된다."

흑색 기운이 더욱 거세게 휘몰아쳤다. 훈아의 몸이 경직되었다. 그녀의 눈에서 붉은 빛이 더욱 강하게 빛났다.

"소염! 이 미친 놈!"

소천명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뻗기도 전에, 훈아의 몸이 움직였다.

철썩!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훈아의 검이 소경산의 목을 관통했다.

소경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훈아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이... 이장로님..."

훈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의 손에서 검이 떨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아... 아아... 내가... 내가 이장로님을..."

소경산의 몸이 땅에 쓰러졌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장로!"

다른 고족 강자들이 절규했다. 그들의 눈에 분노와 증오가 타올랐다.

"소염! 네놈! 죽어 마땅하다!"

소천명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힘을 폭발시켰다. 대지가 갈라지고 공기가 진동했다.

그러나 소염은 태연하게 웃었다.

"고족이라면 이 정도일 줄 알았습니다. 실망이군요."

그가 손을 휘저었다. 흑색 기운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소천명의 공격이 그 기운에 막혀 산산조각 났다.

"훈아, 가자."

소염이 몸을 돌렸다. 훈아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가라니까."

소염의 목소리가 냉랭하게 떨어졌다.

훈아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항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이미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소염의 명령을 따르도록 강제되었다.

두 사람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소천명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소염...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반드시..."

그러나 그가 뒤돌아보았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러진 소경산의 시체와 울부짖는 고족 강자들뿐이었다.

---

며칠 후, 소염과 훈아는 이미 고족의 영역을 떠나 중주로 향하는 길에 있었다.

훈아는 말없이 걸었다. 그녀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의 몸은 살아 있었지만, 그녀의 영혼은 이미 죽은 듯했다.

소염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나를 원망하느냐?"

훈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 약간의 빛이 돌아왔다.

"원망... 한다고?"

그녀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난... 지금도 널 믿고 싶어. 우리가 함께 싸웠던 날들... 네가 나를 지켜주던 그때... 그게 진짜 너였으면 좋겠어..."

소염이 잠시 침묵했다. 그의 얼굴에 어떤 감정이 스쳤다. 그러나 곧 그 감정은 사라지고 차가운 표정이 돌아왔다.

"그때의 나는 약했다. 지금의 나는 강하다. 그것뿐이다."

"강하다고... 그래서 이게 옳은 거라고 생각해?"

훈아의 목소리에 눈물이 섞였다.

"소염, 너는 예전에 말했잖아. 힘은 약한 자를 지키기 위해 있는 거라고... 그게 네가 나에게 가르쳐준 거였어..."

소염이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복잡한 빛이 스쳤다.

"세상은 변한다. 나도 변했다."

그가 고개를 돌려 훈아를 바라보았다.

"약한 자는 영원히 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 세상의 진리다. 나는 그 진리를 깨닫기로 했다. 지배하는 쪽이 되기로."

"그럼... 나는...?"

훈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네가 지배하는 노예가 되어야 하는 거야?"

소염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손을 내밀어 훈아의 뺨을 스쳤다. 그의 손길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너는 특별하다. 훈아. 너는 내가 가장 처음 얻은... 보물이다."

그의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 섞여 있었다.

"그러니 내 곁에 있어라. 영원히."

훈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났다.

고족의 땅은 점점 뒤로 멀어져 갔다. 앞에는 거대한 중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더욱 강한 자들이 있었고, 더욱 거대한 야망이 숨 쉬고 있었다.

소염의 눈에 붉은 빛이 다시 한 번 번뜩였다.

중주여, 나 소염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