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리스는 마왕성 최상층 보좌에 몸을 깊이 파묻고,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백 년, 아니 천 년째 보아온 석회화된 문양은 이제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심심해.”
목소리는 작았으나, 그 안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마왕으로서 그녀가 가진 힘은 절대적이었다. 어떤 용사도, 어떤 마법도 그녀를 위협하지 못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너무 강해서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았다. 그녀는 팔을 들어 올려 손끝에 화염을 응집시켰다. 붉은 불꽃이 허공에서 춤추다가, 그녀가 손을 털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잇, 이제 지겨워 죽겠어.”
릴리스는 보좌에서 몸을 일으켜, 옆에서 서 있는 그림자 기사를 향해 말했다. “저기, 요즘 인간 쪽에 새로운 용사 팀이 왔다는 소문 들었어?”
그림자 기사는 고개를 숙였다. “네, 폐하. 제국에서 파견된 다섯 명의 용사가 성왕국을 통해 이곳으로 접근 중입니다.”
“다섯?” 릴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중에 누구라도 재미있는 녀석이라도 있어?”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전사, 마법사, 궁수, 도적, 그리고 한 명의 성직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직자?” 릴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직자라면 치료나 버프 정도밖에 못 하겠네. 약하겠군. 그런데 그중에 특별한 녀석은 없어?”
“성직자는 앨리시아라는 이름의 여성입니다. 젊지만 성유물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고 합니다.”
릴리스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성유물이라... 그럼 그 성유물 중에 ‘봉인’ 계열이 있나, 없나?”
“정확히는 모르나, 그녀가 지니고 있는 성유물은 ‘봉인의 성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왕을 봉인하는 데 특화된 성배라 하더군요.”
릴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봉인? 재미있네. 그럼 그 성직자가 나를 봉인하려고 하려나?”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폐하.”
릴리스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마왕이었지만, 사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전투도, 마법도, 권력도 이미 식상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봉인이라니, 그것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 그 성직자에게 기회를 주자.”
“기회란, 폐하?”
“내가 일부러 힘이 다한 척해서, 그녀가 나를 봉인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물론 진짜 봉인은 아니지만,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지.”
그림자 기사는 당황한 듯 잠시 침묵했다. “폐하, 그런 장난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 내가 위험해지는 건 상상도 못 해봤어. 오히려 그게 재미있는 거 아니야?” 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보좌 앞까지 걸어갔다. “정찰병을 보내 그 용사 팀을 계속 관찰하게 해. 특히 성직자 앨리시아의 행동과 습관을 자세히 알아내야 해.”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그림자 기사가 사라진 후, 릴리스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자, 이제 어떤 방식으로 그녀를 속일까? 약하게 보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겠지. 마력이 거의 바닥난 척, 전투 중에 실수하는 척... 아, 벌써 기대되는걸?”
며칠 후, 정찰병이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폐하, 용사 팀은 현재 마왕성 동쪽 숲에서 야영 중입니다. 성직자 앨리시아는 아침마다 기도와 훈련을 하고, 항상 팀원들을 먼저 치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녀는 온화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봉인 의식을 준비하는 데 매우 철저합니다.”
릴리스는 듣고 나서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녀가 준비된 상태에서 나를 만나게 해주자. 나도 준비해야지.”
그녀는 팔을 휘둘러 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빛나는 마법 도구들이 보였다. 릴리스는 그중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목걸이를 꺼냈다. “이걸 차고 가면, 마력이 불안정해 보일 거야. 완벽한 속임수지.” 그녀는 목걸이를 걸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귀여운 소녀의 모습에 화려한 보석 목걸이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남은 건... 그녀가 나를 봉인할 때, 적당히 저항하는 연기를 하는 거야. 너무 쉽게 당하면 재미없으니까.”
릴리스는 계획을 세우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마왕의 위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지루함을 달래줄 새로운 오락만을 원했다. 그리고 그 오락을 위해, 자신이 직접 연기자로 나서기로 했다.
“앨리시아라는 성직자... 네가 나를 봉인할 수 있을까? 그게 기다려진다.”
그녀는 마왕성 발코니로 걸어가 동쪽 숲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용사 팀의 야영지였다. 릴리스는 그 불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쾌감을 느꼈다. 이제 곧 그녀의 지루한 일상이 끝날 것이다. 비록 진짜 봉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잠시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자, 시작해볼까?”
릴리스는 발코니 난간에 가볍게 손을 얹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력의 흐름을 조절했다. 마치 지친 듯, 힘이 빠진 듯, 불규칙한 파동을 만들어냈다. 이제 용사 팀이 이 기색을 감지하고 다가올 것이다.
“재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녀의 미소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어딘가 음모를 품은 듯했다. 마왕성의 어둠 속에서, 한 소녀의 지루함이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