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과 성직자의 봉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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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스는 마왕성 최상층 보좌에 몸을 깊이 파묻고,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백 년, 아니 천 년째 보아온 석회화된 문양은 이제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심심해.” 목소리는 작았으나, 그 안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마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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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마왕

릴리스는 마왕성 최상층 보좌에 몸을 깊이 파묻고,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백 년, 아니 천 년째 보아온 석회화된 문양은 이제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심심해.”

목소리는 작았으나, 그 안에는 권태로움이 가득했다. 마왕으로서 그녀가 가진 힘은 절대적이었다. 어떤 용사도, 어떤 마법도 그녀를 위협하지 못했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너무 강해서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았다. 그녀는 팔을 들어 올려 손끝에 화염을 응집시켰다. 붉은 불꽃이 허공에서 춤추다가, 그녀가 손을 털자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잇, 이제 지겨워 죽겠어.”

릴리스는 보좌에서 몸을 일으켜, 옆에서 서 있는 그림자 기사를 향해 말했다. “저기, 요즘 인간 쪽에 새로운 용사 팀이 왔다는 소문 들었어?”

그림자 기사는 고개를 숙였다. “네, 폐하. 제국에서 파견된 다섯 명의 용사가 성왕국을 통해 이곳으로 접근 중입니다.”

“다섯?” 릴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중에 누구라도 재미있는 녀석이라도 있어?”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전사, 마법사, 궁수, 도적, 그리고 한 명의 성직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직자?” 릴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성직자라면 치료나 버프 정도밖에 못 하겠네. 약하겠군. 그런데 그중에 특별한 녀석은 없어?”

“성직자는 앨리시아라는 이름의 여성입니다. 젊지만 성유물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고 합니다.”

릴리스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성유물이라... 그럼 그 성유물 중에 ‘봉인’ 계열이 있나, 없나?”

“정확히는 모르나, 그녀가 지니고 있는 성유물은 ‘봉인의 성배’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마왕을 봉인하는 데 특화된 성배라 하더군요.”

릴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봉인? 재미있네. 그럼 그 성직자가 나를 봉인하려고 하려나?”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폐하.”

릴리스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마왕이었지만, 사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전투도, 마법도, 권력도 이미 식상했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봉인이라니, 그것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좋아, 그럼 우리 그 성직자에게 기회를 주자.”

“기회란, 폐하?”

“내가 일부러 힘이 다한 척해서, 그녀가 나를 봉인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물론 진짜 봉인은 아니지만, 적당히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말이지.”

그림자 기사는 당황한 듯 잠시 침묵했다. “폐하, 그런 장난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위험? 내가 위험해지는 건 상상도 못 해봤어. 오히려 그게 재미있는 거 아니야?” 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보좌 앞까지 걸어갔다. “정찰병을 보내 그 용사 팀을 계속 관찰하게 해. 특히 성직자 앨리시아의 행동과 습관을 자세히 알아내야 해.”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그림자 기사가 사라진 후, 릴리스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자, 이제 어떤 방식으로 그녀를 속일까? 약하게 보이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겠지. 마력이 거의 바닥난 척, 전투 중에 실수하는 척... 아, 벌써 기대되는걸?”

며칠 후, 정찰병이 보고를 가지고 돌아왔다. “폐하, 용사 팀은 현재 마왕성 동쪽 숲에서 야영 중입니다. 성직자 앨리시아는 아침마다 기도와 훈련을 하고, 항상 팀원들을 먼저 치료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녀는 온화하고 신중한 성격으로, 봉인 의식을 준비하는 데 매우 철저합니다.”

릴리스는 듣고 나서 기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그녀가 준비된 상태에서 나를 만나게 해주자. 나도 준비해야지.”

그녀는 팔을 휘둘러 공간을 열었다. 그 안에서 빛나는 마법 도구들이 보였다. 릴리스는 그중에서 가장 화려해 보이는 목걸이를 꺼냈다. “이걸 차고 가면, 마력이 불안정해 보일 거야. 완벽한 속임수지.” 그녀는 목걸이를 걸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귀여운 소녀의 모습에 화려한 보석 목걸이가 어울리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남은 건... 그녀가 나를 봉인할 때, 적당히 저항하는 연기를 하는 거야. 너무 쉽게 당하면 재미없으니까.”

릴리스는 계획을 세우며 미소 지었다. 그녀는 마왕의 위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지루함을 달래줄 새로운 오락만을 원했다. 그리고 그 오락을 위해, 자신이 직접 연기자로 나서기로 했다.

“앨리시아라는 성직자... 네가 나를 봉인할 수 있을까? 그게 기다려진다.”

그녀는 마왕성 발코니로 걸어가 동쪽 숲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작은 불빛이 보였다. 용사 팀의 야영지였다. 릴리스는 그 불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쾌감을 느꼈다. 이제 곧 그녀의 지루한 일상이 끝날 것이다. 비록 진짜 봉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잠시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을 터였다.

“자, 시작해볼까?”

릴리스는 발코니 난간에 가볍게 손을 얹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녀는 눈을 감고, 마력의 흐름을 조절했다. 마치 지친 듯, 힘이 빠진 듯, 불규칙한 파동을 만들어냈다. 이제 용사 팀이 이 기색을 감지하고 다가올 것이다.

“재미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그녀의 미소는 천진난만하면서도, 어딘가 음모를 품은 듯했다. 마왕성의 어둠 속에서, 한 소녀의 지루함이 새로운 게임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가짜 패배의 시작

마왕성의 대전당, 거대한 수정 샹들리에가 희미한 보랏빛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릴리스는 옥좌에 턱을 괴고 앉아 하품을 참았다. 지루했다. 너무나 지루했다.

“들어온다.”

그녀의 귀에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철컹철컹, 갑옷 부딪히는 소리. 다급한 숨소리. 그리고 신성력이 뿜어내는 은은한 윙윙거림. 드디어다.

대전당의 문이 거세게 열리며 다섯 명의 용사가 밀려들어왔다. 앞장선 전사는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마왕 릴리스! 오늘こそ 네놈을 쓰러뜨리겠다!”

릴리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전형적이었다. 불타는 의지의 전사, 지혜로운 척하는 마법사, 방패 든 수호자, 그림자 속의 궁수,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마지막 인물에게 멈췄다.

성직자였다. 백금발을 단정히 묶고, 순백의 로브를 입은 여성. 두 눈에는 결의가 가득했지만, 그 이면에는 부드러움이 숨어 있었다. 앨리시아. 그녀가 바로 이번 게임의 상대였다.

“준비는 끝났다. 모두 각자 위치를!”

전사의 고함에 팀이 움직였다. 릴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내디뎠다. 순간, 그녀의 발밑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후퇴!”

늦었다. 릴리스의 오른손이 스치듯 허공을 가르자, 충격파가 전사를 덮쳤다. 그는 대검을 내리치려다 그대로 벽에 나동그라졌다.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려 입을 여는 순간, 릴리스의 왼손 검지가 그를 가리켰다. 작은 암흑 구체가 마법사의 가슴을 명중했고, 그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이, 이럴 수가...!”

수호자가 방패를 세우며 앞으로 나섰지만, 릴리스는 이미 그의 뒤에 있었다. 그녀의 손바닥이 방패를 살짝 밀자, 수호자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궁수가 화살을 시위에 걸기도 전에, 릴리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단순한 응시만으로도 궁수의 손가락이 얼어붙었다.

순식간이었다. 다섯 명 중 넷이 쓰러졌다.

남은 것은 앨리시아뿐.

릴리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완벽해. 이제부터가 진짜 게임의 시작이다.

그녀는 일부러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무릎이 살짝 굽혀지고, 어깨가 축 처졌다. 마치 마력이 바닥난 것처럼.

“네 녀석...아직 힘이 남아 있군.”

릴리스가 일부러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앨리시아의 눈빛이 단호해졌다. 그녀는 주먹을 쥐고 가슴 앞에 성스러운 문양을 그렸다.

“마왕 릴리스. 당신의 폭정은 여기까지다.”

“그래? 그럼 해 봐.”

릴리스는 일부러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앨리시아가 정화 마법의 기도를 시작했다. 은백색 빛이 그녀의 손끝에서 모여들었다.

“신이시여, 이 어둠을 거두소서... 정화!”

찬란한 빛이 대전당을 가득 메웠다. 릴리스는 그 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우아하게, 마치 모든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눈을 감으며, 릴리스는 생각했다.

‘재미있어지겠군. 성직자 양.’

앨리시아는 마왕이 쓰러진 모습을 보며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승리감보다는 신중함이 어려 있었다.

“봉인을...확인해야 해.”

그녀가 릴리스의 손목을 잡았다. 마왕의 미세한 떨림을 느꼈지만, 앨리시아는 그것을 마력 소진의 후유증이라 생각했다.

릴리스는 눈을 반쯤 뜨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성직자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스쳤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짜 패배의 막이 오른 것이다.

봉인의 준비

앨리시아는 조용히 방 안을 살폈다. 마왕 릴리스는 여전히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성직자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고, 허리에 찬 특수 가방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가방은 겉보기엔 평범한 여행용 가죽 주머니였지만, 내부는 마법으로 확장되어 있었다. 앨리시아가 손을 넣자 가죽이 달그락거리며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자, 마왕님. 당신을 안전하게 봉인하기 위한 도구들이야.”

릴리스는 눈을 반쯤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지만, 앨리시아는 그것을 의식의 혼란으로 착각했다.

앨리시아가 먼저 꺼낸 것은 은백색 비늘로 덮인 긴 슬리브였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매끄럽게 움직였다.

“이건 설산 비단뱀의 가죽으로 만든 슬리브야. 냉기가 느껴질 거야, 하지만 너를 다치게 하지는 않아. 이 슬리브를 팔에 끼우면 마력 흐름이 봉쇄돼. 너처럼 강력한 마왕이라도 이걸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지.”

릴리스는 속으로 키득거렸다. ‘설산 비단뱀? 재밌네. 한번 써볼까?’

앨리시아는 다음으로 황금빛 액체가 담긴 작은 병을 꺼냈다. 병을 흔들자 내용물이 꿈틀거리며 반응했다.

“그리고 이건 황금 슬라임 장갑이야. 너의 손가락 하나하나를 감싸서 주문을 외우거나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마치 두꺼운 장갑을 낀 것처럼 움직임이 둔해지겠지.”

‘황금 슬라임?’ 릴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그건 처음 들어보는데. 얼마나 끈적거릴까?’

앨리시아는 계속해서 가방에서 도구들을 꺼냈다. 마법이 깃든 철퇴, 성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밧줄, 그리고 은색 고리들. 그녀는 하나하나를 설명하며 릴리스 앞에 정렬했다.

“이 밧줄은 성스러운 힘으로 축복받았어. 마왕인 너는 닿기만 해도 약해질 거야. 그리고 이 고리들은 발목과 손목에 채울 거야. 가볍지만 절대 풀리지 않아.”

릴리스는 잠든 척 심호흡을 고르게 하면서도, 그녀의 귀는 모든 설명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 많은 도구들이야. 그렇다면 게임은 더욱 재미있어지겠네.’

앨리시아는 마지막으로 뾰족한 성창을 꺼냈다. 창날에는 푸른 빛이 감돌고 있었다.

“이게 마지막이야. 성창. 네 심장에 꽂으면 봉인이 완성돼. 하지만 걱정 마, 죽지는 않아. 다만 아주 오랫동안 잠들게 될 뿐이야.”

앨리시아는 도구들을 다시 가방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자, 이제 준비는 끝났어. 마왕 릴리스, 너의 폭정은 여기서 끝이다.”

하지만 릴리스는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아니야, 앨리시아. 이게 시작이야. 네가 준비한 이 모든 도구들이 나를 더욱 즐겁게 해줄 거야.’

앨리시아는 손을 내밀어 릴리스의 팔을 잡았다. 그 순간, 릴리스의 눈이 살짝 떠졌다. 하지만 성직자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봉인의식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속박의 시작

앨리시아는 가방에서 조용히 꺼낸 두 개의 손목 슬리브를 릴리스 앞에 내밀었다.

“먼저 손목부터 하겠습니다.”

릴리스는 눈을 깜빡이며 의자에 앉아 두 팔을 내밀었다.

“응, 뭐든지 해 봐.”

앨리시아는 릴리스의 가느다란 손목에 슬리브를 조심스럽게 채웠다. 부드러운 가죽 안쪽에는 정교한 마법진이 수놓여 있었고, 겉면은 은색 장식이 둘러져 있었다. 착용감은 예상보다 훨씬 편안했다. 릴리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슬리브를 살폈다.

“생각보다 꽤 예쁘네.”

“불편하지 않도록 부드러운 소재로 제작되었습니다.”

앨리시아는 대답하며 이번에는 발목 슬리브를 꺼냈다. 릴리스는 순순히 다리를 들어 올렸다. 앨리시아는 신발을 벗기고, 그 아래 드러난 맨발의 발목에 슬리브를 채웠다. 착 달라붙는 감촉이 약간 간질간질했지만, 릴리스는 참았다.

“자, 다음 단계입니다.”

앨리시아는 다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손가락이 없는 장갑이었다. 그것은 손목 슬리브와 연결될 수 있도록 특별히 디자인되어 있었고, 장갑 안쪽에는 여러 개의 고리가 달려 있었다.

“손가락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손목과 손바닥은 고정됩니다.”

릴리스는 손을 내밀어 장갑을 끼게 했다. 앨리시아는 장갑을 손목 슬리브에 연결하는 고리를 하나씩 채웠다. 금속이 부딪히는 차가운 소리가 울렸다.

“이번 건 발목 주머니입니다.”

릴리스가 고개를 숙여 보았다. 발목 슬리브에 연결되는 주머니 형태의 장비였다. 앨리시아는 릴리스의 발을 주머니 안에 넣고, 발목 부분을 단단히 조였다. 이제 릴리스의 손목과 발목은 각각 연결되어 움직임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릴리스는 팔을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장갑이 손목 슬리브와 연결되어 있어 팔을 완전히 펼 수 없었다. 발목도 비슷하게 제한되어 있어 보폭이 좁아졌다.

“흠… 움직임이 좀 불편해졌네.”

릴리스는 중얼거리며 일어서 보았다. 균형을 잡는 것이 예전보다 더 신경을 써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나를 속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앨리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입니다.”

릴리스는 자신의 몸을 둘러보았다. 가죽과 금속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낯설었다. 그녀는 천천히 팔을 움직여 보았다. 묶인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것은 순간이었다. 그녀는 마왕이다. 이런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작은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몸이 묶인 상태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앨리시아는 어떤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을까?

릴리스는 앨리시아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재미있어지고 있군.”

점점 강해지는 구속

앨리시아는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용근 밧줄을 꺼냈다. 은은한 푸른 빛을 띠는 밧줄은 용의 힘이 깃들어 있어 마왕의 힘을 억제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다.

“릴리스 님, 잠시만 움직이지 말아 주십시오.”

릴리스는 천장에 매달린 쇠사슬에 양손이 묶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귀여운 얼굴에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반짝이며 앨리시아의 손놀림을 지켜봤다.

앨리시아는 먼저 릴리스의 오른팔을 잡았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손길로 용근 밧줄을 감기 시작했다. 밧줄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미지근한 열기가 느껴졌다. 릴리스는 그 감촉이 낯설면서도 신기했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네.”

릴리스가 중얼거렸다. 앨리시아는 대답 없이 계속해서 밧줄을 감아 나갔다. 왼팔, 그리고 양쪽 다리까지 차례차례 묶기 시작했다.

밧줄이 팔뚝을 감쌀 때마다 약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냥 조이는 느낌이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달랐다. 용근 밧줄이 피부에 닿은 부분에서부터 미세한 저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릴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 감각, 단순한 압박 이상이었다. 마치 마력이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밧줄, 용의 힘이 들어있군.”

“예, 마왕님의 마력을 억제하는 특수한 밧줄입니다.”

앨리시아는 냉정하게 대답하며 마지막 매듭을 단단히 조였다. 릴리스의 팔과 다리가 몸통에 밀착되어 움직임이 완전히 봉쇄되었다.

“자, 이제 다음 단계입니다.”

앨리시아는 다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검은 금속으로 만들어진 코르셋이었다. 표면에는 정교한 문양이 새겨져 있어 빛을 받으면 은은하게 반짝였다.

“현철 코르셋입니다. 마왕님의 허리에 착용하겠습니다.”

릴리스는 눈을 크게 떴다. 저런 것을 허리에 찬다고? 그것도 코르셋이라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이미 팔다리가 묶여 있어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앨리시아는 릴리스의 뒤로 돌아갔다. 차가운 금속이 릴리스의 허리에 닿았다. 릴리스는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조금 조일 겁니다.”

앨리시아가 코르셋의 끈을 당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허리를 감싸는 정도였지만, 점점 조여들었다. 릴리스는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에 얼굴을 찌푸렸다.

“크...”

“참으십시오. 마왕님의 마력을 완전히 봉인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입니다.”

앨리시아는 무정하게 계속해서 끈을 조였다. 코르셋이 허리를 압박할 때마다 릴리스의 호흡이 얕아졌다. 숨을 깊게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어지러움이 몰려왔다.

릴리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참아야 했다. 이 정도야. 마왕인 자신이 이 정도 구속 따위는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조여드는 압박감 때문에 불편함이 배가되었다.

“자, 완료했습니다.”

앨리시아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릴리스는 아래를 내려다봤다. 검은 코르셋이 허리를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코르셋이 갈비뼈를 누르는 느낌이 선명하게 전해졌다.

“어때요, 마왕님?”

앨리시아의 질문에 릴리스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별거 아니군. 이 정도 가지고 마왕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앨리시아는 그것을 눈치챘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릴리스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점점 더 거세지는 압박감과 저림에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건 좀... 예상보다 심한데.

입마개와 마구

앨리시아가 가죽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은은한 자줏빛 광택을 띤 금속제 입마개였다. 형태는 마치 짐승의 재갈을 닮았지만, 더욱 정교하고 위협적이었다. 표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미세하게 새겨져 있었고, 양쪽 끝에는 부드러운 가죽 끈이 달려 있었다.

“이건… 천마족이 만든 봉인 도구야.” 앨리시아가 조심스럽게 입마개를 들어 올렸다. “마력의 흐름을 차단하는 특수한 합금으로 제작되었어. 마왕님의 입을 막으면 주문을 외우지 못할 거야.”

릴리스의 눈이 반짝였다. 천마족의 기술이라니. 그것도 자길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라니.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입마개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무거워 보였고, 안쪽에는 부드러운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재미있네.” 릴리스가 손을 내밀었다. “한번 써봐도 될까?”

앨리시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하지만 불편하시면 바로 말씀해 주세요.”

릴리스가 입을 벌리자 앨리시아가 조심스럽게 입마개를 밀어 넣었다. 차가운 금속이 혀에 닿았고, 가죽 끈이 머리 뒤로 감겼다. 앨리시아의 손가락이 능숙하게 움직여 끈을 조였다.

“칙… 이거…” 릴리스가 말하려 했지만, 혀가 금속에 눌려 제대로 발음되지 않았다. 대신 ‘응앵’ 같은 소리만 흘러나왔다.

앨리시아가 흠칫 웃음을 참는 듯했다. “말이 잘 안 나오시죠? 그래도 적응하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릴리스는 입안에서 금속 덩어리가 차지하는 감각을 음미했다. 확실히 마력이 약간 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하게 다가온 것은 묘한 흥분감이었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힘을 제한하는 이 도발적인 행위가 그녀를 자극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릴리스가 더듬더듬 말을 뱉어냈다. 침이 조금 흘러내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앨리시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말 괜찮으세요? 불편하시면…”

“아니, 괜찮아.” 릴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더 해볼래? 다른 것도?”

앨리시아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또 다른 도구를 꺼냈다. 이번에는 가느다란 금속 사슬이 달린 팔찌 두 개였다.

“이건 마력을 묶는 팔찌예요.” 앨리시아가 설명했다. “착용하면 양팔의 마력 흐름이 차단돼요. 하지만… 너무 위험할 수도 있어서…”

“어서 해봐.” 릴리스가 재촉했다. 그녀의 눈에는 경계심 대신 순수한 호기심만이 가득했다.

앨리시아가 망설이며 팔찌를 들어 올렸다. 차가운 금속이 릴리스의 손목에 닿자, 그녀는 약간 움찔했다. 그러나 이내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팔찌가 채워지고 사슬이 연결되자, 릴리스의 마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몸이 무거워지고, 시야가 약간 흐려졌다. 하지만 그 불편함조차 새로운 자극이었다.

“신기하네…” 릴리스가 중얼거렸다. “이렇게까지 마력이 차단될 줄은 몰랐어.”

앨리시아가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마왕님, 괜찮으세요? 좀 쉬시는 게…”

“괜찮다고 했잖아.” 릴리스가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더… 이게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궁금해.”

그녀는 손을 들어 사슬을 만져보았다. 표면이 매끄럽고 차가웠다. 안쪽에는 미세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것이 마력을 흡수하는 것 같았다.

“천마족의 기술은 역시 대단해.” 릴리스가 혀를 찼다. “이런 걸 만들다니.”

앨리시아가 그녀를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마왕님…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아무것도 아니야.” 릴리스가 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입마개 때문에 어색한 표정이 되었다. “그냥…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을 뿐이야.”

하지만 속으로는 점점 불안감이 커져가고 있었다. 이 도구들이 단순한 봉인 도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기 시작했다. 마력이 차단되는 정도가 너무 강력했고, 그것을 해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스는 그 불안감마저 즐기고 있었다. 지루함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게임의 판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바이브레이터의 습격

릴리스는 숨을 죽이고 누워 있었다. 눈을 감은 채로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앨리시아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꺼내는 소리, 가죽과 쇠가 부딪히는 차가운 금속음.

“드디어 시작이군.”

릴리스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짜릿한 기대감이 몸을 스쳤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곧 의문으로 바뀌었다. 앨리시아가 꺼낸 것은 검도, 방패도, 성서도 아니었다. 길고 가느다란 막대기였다. 끝부분이 동그랗게 마감되어 있었고, 손잡이에는 작은 버튼이 달려 있었다.

“뭐야, 저건?”

릴리스는 눈을 살짝 떠서 확인했다. 앨리시아는 막대기를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의 봉인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자극이 필요합니다.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참아주십시오.”

그녀의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그 안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릴리스는 여전히 잠든 척을 유지했다. 앨리시아가 다가왔다. 차가운 손가락이 릴리스의 허벅지를 스쳤다.

“뭐… 뭐 하는 거야?”

릴리스는 참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앨리시아의 손길은 더 아래로 내려갔다. 무언가가 살짝 밀려 들어오는 느낌. 그것은 부드러우면서도 이질적이었다. 막대기의 끝이 그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으…!”

릴리스는 참으려고 했지만,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앨리시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막대기를 더 깊이 밀어 넣었다. 손잡이에 달린 버튼을 누르자, 갑자기 막대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

릴리스는 거의 몸을 일으킬 뻔했다. 전율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그녀의 몸이 저절로 움찔거렸다. 하지만 앨리시아는 단호하게 그녀의 엉덩이를 붙잡고 막대기를 고정시켰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곧 끝납니다.”

릴리스는 이빨을 악물었다. 진동이 점점 강해졌다. 그녀의 배 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쾌감이 밀려왔지만, 그녀는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건… 이상해. 분명히 나는 마왕인데… 이렇게 당하다니.”

릴리스는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하지만 동시에 호기심도 생겼다. 저 막대기는 대체 뭐지? 어떻게 이렇게 강한 진동을 낼 수 있지? 그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뭔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앨리시아는 한참 동안 진동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막대기가 조용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빼내며 말했다.

“이걸로 첫 번째 단계는 끝났습니다. 다음 단계는 좀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릴리스는 여전히 숨을 고르며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은 아직도 진동의 여운에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

“이런… 이건 내가 생각한 것과 달라. 저 성직자, 나를 이용하고 있어. 하지만 아직 괜찮아. 난 아직 벗어날 수 있어. 잠든 척만 잘하면… 아마도.”

릴리스는 눈을 꼭 감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걱정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마왕으로서의 자존심이 그녀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기다려, 앨리시아.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결국엔 내가 이길 거야.”

그녀는 속으로 다짐하며, 다음 단계를 기다렸다. 그녀의 몸은 아직 떨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쇠 목걸이와 활성화

릴리스는 팔꿈치로 몸을 반쯤 일으키며 지루한 듯 하품을 했다. 앨리시아의 손에 들린 반짝이는 쇠 목걸이가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 뭐야? 너 참 집착이 심하구나."

앨리시아는 대답 없이 조용히 다가왔다. 손끝이 살짝 떨렸지만 표정은 평온했다. 그녀가 목걸이를 릴리스의 가느다란 목에 살며시 채웠다. 차가운 금속이 살에 닿는 순간, 찌릿한 전기가 흘렀다.

"이건 특별히 제작된 봉인구야. 너의 마력을 완전히 차단할 거야."

릴리스는 킥킥 웃었다. "또 시작이네. 내가 그런 걸로 당할 것 같아?"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굳었다.

목걸이에서 푸르스름한 빛이 번쩍이더니, 동시에 전신에 착용된 모든 도구가 일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손목의 포박, 발목의 고리, 그리고 가장 깊숙한 곳에 박힌 바이브레이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 뭐야, 이게..."

릴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가 그녀의 마력 핵을 옥죄어 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녀의 힘을 하나하나 잡아당기는 듯했다. 목걸이가 점점 뜨거워지며 그녀의 마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만둬!"

릴리스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려 했지만, 무릎에 힘이 풀렸다. 그 순간 바이브레이터의 진동이 갑자기 강해졌다. 우웅, 우웅, 우웅, 저음의 진동이 골반을 타고 척추까지 전해졌다.

"하아...!"

참으려 했지만 입술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는 앨리시아를 노려보며 이빨을 드러냈다.

"이런 하찮은 도구로 나를...!"

하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바이브레이터가 이상한 움직임을 보였다. 릴리스의 마력을 흡수한 그 도구가 오히려 그 힘을 증폭시켜 그녀의 몸속으로 되돌려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요동치며 복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 아아아!"

릴리스의 몸이 활처럼 휘어졌다. 손가락이 바닥을 긁었지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마력이 빠져나갈수록 바이브레이터의 자극은 더 거세졌다. 악순환이었다.

발버둥치려 할수록 포박이 더 깊이 살을 파고들었고, 움직일 때마다 목걸이의 압박이 심해졌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쾌락이 동시에 그녀를 덮쳤다.

"악... 놔... 이 미친...!"

릴리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마왕으로서의 자존심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앨리시아는 그 모습을 냉정하게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것이 바로 신의 은총이다, 마왕 릴리스여. 너의 죄업을 정화하는 시간이다."

릴리스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말을 듣지 않았다. 바이브레이터가 마지막 힘을 끌어내듯 강렬하게 진동했다. 그녀의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