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살아 있는 듯 나를 집어삼켰다.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깨와 손목을 조르는 사슬은 차갑고, 피부를 파고드는 쇠사슬의 결이 육체를 파고들었다. 한때 내 몸을 감싸던 찬란한 성광(聖光)은 이제 한 줄기 빛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마왕성 지하 감옥의 벽돌 하나하나가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며, 내 안에 깃든 신성한 힘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무릎을 꿇은 돌바닥은 차갑고 거칠었다. 투박한 감옥복이 내 피부를 긁었지만, 그보다 더 아픈 것은 내가 무너져 내리는 신성함이었다. 나는 엘리시아 세인트라이트. 광명 교단의 가장 순결한 성녀. 하지만 지금 내 손목을 조르는 이 사슬은 내가 더 이상 빛의 여인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무겁고, 느리며, 확신에 차 있는 발걸음. 감옥의 어둠이 그 발걸음을 따라 물러나고,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즈모데 아비스. 어둠 심연의 마왕. 그의 눈동자는 붉게 타오르는 심연 같았고, 입가에는 잔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성녀여."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너무나 부드러워서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네가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볼을 스쳤다. 차갑고, 매끄러운 촉감.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사슬이 내 움직임을 가로막았다.
"이 얼굴. 한때는 그토록 고귀하고 거만했지."
그의 손가락이 내 턱선을 따라 내려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네 안에 숨겨진 약함을. 네가 아무리 신성한 빛을 두르고 있어도, 결국은 무너질 인간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침을 삼켰다. 목 안이 바짝 말라 있었다.
"죽여라."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나는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죽여. 나는 네 장난감이 될 여자가 아니다."
아즈모데는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은 깊고, 낮고, 내 뼛속까지 파고드는 소리였다.
"죽이라고? 하하, 성녀여, 네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는구나."
그가 일어서며 내 머리 위를 내려다봤다.
"죽음은 너에게 너무 쉬운 도피처야. 나는 네가 스스로 무너지고, 스스로 타락하며, 스스로 내 발아래 엎드리길 바란다."
그 말과 함께 그는 몸을 돌려 감옥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어둠이 다시 나를 감쌌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혀를 깨물었다.
선명한 고통과 함께 철혈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내 턱을 움켜잡았다. 강제로 입을 벌리고, 뜨겁고 어두운 마법의 기운이 내 목구멍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아즈모데가 내 귀에 속삭였다. 그는 이미 내 뒤에 서 있었다.
"죽음은 허락하지 않는다, 성녀여."
치유 마법이 내 깨문 상처를 감쌌다. 따끔거리는 통증과 함께 혀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나는 헛구역질을 하며 피를 토해냈지만, 상처는 이미 완전히 아물어 있었다.
"저항하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
그가 내 뒤에서 내 어깨를 감쌌다. 그의 체온이 내 등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저항은 단지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들 뿐이다. 너는 결국 내 것이 될 거다."
그는 내 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이번에는 진짜로 감옥을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감옥 문이 열리고, 두 명의 하인이 들어왔다. 그들은 침묵 속에 내 사슬을 풀고, 내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내 몸에서 거친 감옥복을 벗겼다.
추위가 내 살갗을 스쳤다. 나는 부끄러움에 몸을 웅크렸지만, 하인들은 무표정하게 내게 얇은 베일을 입혔다. 투명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얇은 천이 내 몸에 걸쳐졌다. 내 육체의 곡선이 그대로 드러나고, 가슴과 허벅지가 베일 너머로 선명히 비춰졌다.
그들은 나를 끌고 성의 복도로 나갔다.
성의 하인들이 나를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은 무겁고, 차갑고, 어떤 이는 탐욕스러웠다. 한때 내가 신성한 힘으로 축복했던 그들이, 지금은 내 알몸이 드러난 모습을 노골적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뺨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울면 지는 거다.
그날 밤, 나는 침실로 끌려갔다.
침실은 사치스러웠다. 검은 비단 시트, 호화로운 샹들리에, 은으로 장식된 침대 기둥.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나에게 감옥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문이 열리고 아즈모데가 들어왔다.
그는 내 앞에 서서 한참 나를 내려다봤다. 그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붉게 빛났다.
"첫날밤이다, 성녀여."
그가 침대에 앉으며 내 귀에 입을 맞췄다. 그의 숨결이 내 귀를 간질였다.
"지금부터 내가 네 잠재의식에 암시를 심을 것이다. 너는 깨어 있을 때 이 암시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네 영혼은 내 목소리를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 마."
내 목소리는 가냘프게 떨렸다.
"제발..."
"제발? 좋은 말이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내 턱을 잡아 돌려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들어라, 엘리시아."
그의 목소리가 내 뇌리를 파고들었다. 부드럽고, 깊고, 마치 꿈속에서 속삭이는 듯한 음성.
"너는 아름답다. 그리고 너의 아름다움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
나는 고개를 저으려 했지만, 그의 목소리가 내 의식을 마비시켰다.
"너는 강하다. 하지만 그 강함은 나에게 굴복할 때 더욱 빛난다."
내 저항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너는 나를 원한다. 너는 아직 모르지만, 네 영혼 깊은 곳에서는 이미 나를 갈망하고 있다."
그의 손가락이 내 등을 타고 내려갔다.
"네 몸은 나의 것이다. 네 마음은 나의 것이다. 네 영혼은... 언젠가 내 것이 될 것이다."
그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의 입술은 차가웠다.
"잠들어라. 그리고 깨어나면, 너는 조금 더 내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내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저항할 힘이 없었다. 어둠이 나를 감싸고, 나는 그의 품 안으로 쓰러져 내렸다.
꿈속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는 내 완벽한 장난감이 될 것이다, 엘리시아. 언젠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