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락한 순백
## 제1장 순백의 캠퍼스
가을 햇살이 캠퍼스의 은행나무 길을 따라 쏟아지고 있었다. 진몽요는 가방을 한쪽 어깨에 메고 걸음을 재촉했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려 그녀의 긴 생머리에 몇 장 붙었다.
“몽요야!”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불렀다. 돌아보니 이밍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또 도서관이지? 아침도 안 먹었잖아.”
이밍은 다정하게 웃으며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 진몽요는 고마운 듯 받아 들고는 살짝 미소 지었다.
“고마워, 밍아. 너 없었으면 나 아침마다 굶었을 거야.”
“그러게 말이야. 너 공부만 하면 밥 생각도 안 하나 봐.”
둘은 나란히 도서관으로 걸어갔다. 캠퍼스 곳곳에는 신입생 환영회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동아리 홍보 부스에서 시끌벅적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앞에서 담배 연기가 풀풀 날렸다. 선배들로 보이는 몇 명의 학생이 화단 옆에 둘러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진몽요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담배 냄새는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것은 그녀에게 술 냄새와 함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저 선배들, 또 흡연장도 아닌 데서 피우네.”
이밍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에이, 몽요야. 괜히 참견했다가 괜한 일 생겨. 저 선배들 우리 과 선배들이야. 알지? 저기 가운데 있는 사람이 김민우 선배. 작년에 학생회에서도 문제 일으켰던 사람이야.”
진몽요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원칙을 중요하게 여겼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밍의 걱정 가득한 얼굴을 보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도서관 3층 열람실. 둘은 창가 자리를 잡았다. 진몽요는 가방에서 노트북과 교재를 꺼내고, 이밍은 커피를 홀짝이며 앉았다.
“이번 중간고사, 경제학 원론이 제일 걱정이야.”
“나도. 교수님 시험 스타일이 까다로우셔서 말이지.”
이밍이 교재를 펼치며 투덜거렸다. 진몽요는 고개를 숙여 필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펜은 종이 위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깔끔하고 예쁜 글씨체로 정리된 노트는 그녀의 성실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이밍이 고개를 들어 시계를 봤다.
“아, 다음 수업 시간 다 됐네. 나 먼저 갈게.”
“응, 그래. 나도 이 부분만 더 보고 갈게.”
이밍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겼다.
“몽요야, 너무 무리하지 마. 점심 꼭 챙겨 먹어야 해!”
“알았어, 잔소리꾼아.”
이밍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진몽요는 다시 노트에 집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점심을 먹으러 나가야 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도서관을 나와 학생 식당으로 향하는 길. 갑자기 화장실 쪽에서 소란이 들렸다.
“야, 이게 무슨 짓이야?”
“제발 그만둬 주세요...!”
울먹이는 목소리와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진몽요는 발걸음을 멈췄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화장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세 명의 선배로 보이는 여학생이 한 신입생을 둘러싸고 있었다. 신입생은 얼굴이 새파래져서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야, 너 말 잘 듣는 법을 배워야 해. 선배 말이 곧 법이야. 알겠어?”
선두에 선 여학생이 신입생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진몽요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거기, 그만두세요!”
진몽요의 목소리가 화장실 안에 울려 퍼졌다. 세 선배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뭐야, 너 누군데?”
여학생이 눈을 가늘게 뜨며 쏘아봤다.
“이런 행동은 잘못됐어요. 신고할 거예요.”
“하, 신고? 누구한테? 교수님한테?”
또 다른 선배가 비웃었다. 첫 번째 선배가 신입생의 머리를 놓고 천천히 진몽요에게 다가왔다.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나는 사회학과 3학년 박지혜야. 너 신입생이지?”
“신입생이든 아니든 잘못된 건 잘못된 거예요.”
진몽요는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며 당당하게 말했다. 박지혜는 코웃음을 쳤다.
“잘못? 우리가 잘못했다고? 재수 없는 신입생 좀 봐. 선배한테 예의도 없나?”
박지혜가 진몽요의 어깨를 밀쳤다. 진몽요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다가 벽에 부딪혔다.
“다시 한 번만 더 참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해줄게. 알았어?”
박지혜는 위협적인 눈빛으로 진몽요를 노려봤다. 그러고는 일행들을 데리고 화장실을 나갔다. 신입생이 울먹이며 일어났다.
“언니... 고마워요. 그런데 괜찮아요? 저 선배들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괜찮아. 너는 다친 데 없어?”
신입생은 고개를 저으며 눈물을 닦았다. 진몽요는 그녀를 일으켜 세워주고 어깨를 토닥였다.
“조심해. 앞으로 저 선배들 만나면 피하는 게 좋아.”
“네... 고마워요, 언니.”
신입생이 화장실을 나간 후, 진몽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사실 그녀도 무서웠다. 하지만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저녁, 학생 기숙사.
진몽요는 책상 앞에 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녀는 펜을 들어 글을 써 내려갔다.
*10월 15일, 화요일.*
*오늘 캠퍼스에서 신입생 괴롭힘을 목격했다. 나는 나서서 제지했지만, 선배들의 위협은 무서웠다. 나는 잘한 걸까? 원칙을 지키는 게 맞는 걸까? 가끔은 이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내 신념을 지킬 거다. 담배도, 술도, 그런 타락한 것들로부터 나를 지킬 거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 그것이 나의 꿈이다.*
진몽요는 일기를 덮고 창밖을 바라봤다. 캠퍼스의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미래는 밝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몰랐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어둠이 얼마나 깊고 질척한 것인지를. 그리고 그녀의 순백이 얼마나 쉽게 더럽혀질 수 있는 것인지를.
진몽요는 책상 서랍에서 하얀 리본을 꺼냈다. 그 리본은 그녀가 고등학교 졸업식 때 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순수함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녀는 리본을 손에 쥐고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방에 부드러운 불빛이 비치고, 창문 너머로 달빛이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달빛은 그녀가 앞으로 맞이할 어둠을 전혀 비춰주지 못했다.
밤이 깊어갔다. 캠퍼스는 고요에 잠겼다. 진몽요는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일기장을 한 번 더 열어보았다. 거기에는 그녀가 몇 달 전 썼던 글이 있었다.
*미래는 언제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그 희망을 붙잡고 살아갈 거다.*
그녀는 일기장을 덮고 불을 껐다. 어둠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