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복도는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다. 천하오는 창백한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아 있었다.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대부업체였다. 그는 차가운 손가락으로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르고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하오야.”
어머니 왕슈란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병실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누워서 아들을 바라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또 빚 독촉 전화 왔니?”
“아니에요. 병원비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 마세요.”
거짓말이었다. 이미 그는 시중은행과 대부업체를 전전하며 천 만 원이 넘는 빚을 졌다. 어머니의 신장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늦어도 두 달 안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비용은 삼천만 원.
그는 인터넷 카페에서 우연히 ‘고수익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았다. 한 번 찍으면 백만 원에서 오백만 원까지. 클릭 몇 번이면 더 자세한 내용이 나왔다. SM 영상. 장애인, 노인, 특수 체형. 수요가 많은 소재였다.
천하오는 컴퓨터 모니터 속 숫자들을 바라보며 손가락을 깨물었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아들을 위해 밤낮으로 일하시던 그 손. 주름진 손. 이제는 물 한 잔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손.
“이건 안 돼. 말도 안 돼.”
그는 노트북을 힘껏 닫았다. 하지만 그날 밤,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어머니가 기침하는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기침할 때마다 하오의 심장도 덜컹거렸다.
다음 날, 그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검색창에 ‘SM 콘텐츠 제작’ ‘노인 돌봄 영상’이라는 단어를 입력했다. 관련 커뮤니티가 나왔다. 회원들은 수익 인증샷을 올리며 서로를 부추기고 있었다. 한 게시물에는 “어머니를 모델로 삼아 주 2회 촬영, 월 천만 원.”이라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하오는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하오야, 뭐 하고 있니?”
갑자기 문 너머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핸드폰을 집어 던지듯 가방에 넣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어머니는 문을 열고 들어와 침대 옆에 앉았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따뜻했다.
“요즘 네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엄마가 마음이 아파. 엄마 때문에……”
“그만하세요, 엄마. 제가 책임질게요.”
책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마자 하오는 자신의 위선에 토할 것 같았다. 그는 화장실로 달려가 세수를 했다. 거울 속의 자신이 낯설었다.
며칠이 지났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비를 내일까지 입금하지 않으면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하오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텅 빈 선반과 상한 김치 한 조각만 보였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날 밤, 하오는 커뮤니티에 ‘문의’라는 제목의 쪽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아파서 누워 계십니다. 가능할까요?” 곧바로 답장이 왔다. “가능합니다. 노인 케어 콘텐츠는 수요가 많아요. 사진 몇 장 먼저 보내주세요.”
하오는 어머니가 자고 있는 병실로 살며시 들어갔다. 어머니는 얇은 이불을 덮고 숨을 쉬고 있었다.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그는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플래시가 터지자 어머니가 살짝 눈을 떴다.
“하오야, 왜……?”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엄마 사진 찍고 있었어요. 예뻐 보이셔서.”
왕슈란은 희미하게 웃었다. “이 꼴이 예쁘다고? 거짓말도 잘 하네.”
그 웃음이 하오의 심장을 찔렀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초췌한 얼굴. 그 사진을 보내면 곧바로 계약금이 들어온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엄마, 저…….”
“왜?”
“아니에요. 잘 쉬세요.”
그는 방을 나와 복도 끝 창문 앞에 섰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 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한 모금 빨고 나서야 자신이 담배를 피운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담배는 친구에게서 받아 둔 것이었다. 기침을 하며 담배를 비벼 껐다.
결국 그는 사진을 보냈다. 그날 밤 12시가 넘어서. 답장이 왔다. “좋습니다. 내일 만나서 상의합시다. 선금 200만 원 드리겠습니다.”
하오는 화면을 응시했다. 200만 원. 당장 병원비로 쓸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그 돈을 받는 대가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그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를 카메라 앞에 세워야 한다. 채찍과 수갑, 그리고 굴욕적인 명령들.
“죄송합니다, 엄마.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핸드폰을 가슴에 꼭 쥐고 눈을 감았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는 닦지 않았다. 이미 더러워진 손으로는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엄마, 사진 찍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하게 됐어요. 돈도 많이 주고, 엄마도 좀 도와주셔야 해요.”
왕슈란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아들의 눈빛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그래, 네가 하라는 대로 할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천하오는 자신이 이미 인간의 탈을 벗어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선택은 끝났다. 어머니의 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자신 안에 깃든 탐욕과 절망이었다.
그는 거울을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거울에는 이미 낯선 사람의 얼굴이 비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