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스물두 살 생일을 사흘 앞두고.
장례식장은 차가운 화이트 톤으로 꾸며져 있었고, 조문객들의 발걸음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울렸다. 나는 정장 차림으로 아버지의 영정 앞에 서서 일일이 인사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었다. 애도, 동정, 그리고 그 아래 숨겨진 호기심. 스물두 살의 젊은 회장이 회사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해하는 눈빛들이었다.
그녀는 그 틈을 비집고 나타났다. 하이힐 굽이 대리석을 때리는 소리가 명확했고, 검은색 원피스는 몸에 착 달라붙어 모든 곡선을 드러냈다. 나이는 서른다섯, 하지만 몸매는 이십대 소녀처럼 탱탱했다. 가슴은 풍만하게 부풀어 올랐고, 허리는 가늘게 잘록했다. 그녀는 내 앞에 멈춰 섰다.
"회장님, 조문 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달콤했다. "저 고아입니다. 전 회장님의 비서였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젊은 여비서를 두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녀가 아버지의 정부였다는 소문도. 그녀는 내게 악수를 청했고, 손을 잡는 순간 손바닥에 무엇인가를 살짝 긁어주었다. 명함이었다.
"회사 일은 제가 다 정리해놨습니다. 내일 출근하시죠."
그녀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는 몸을 돌렸다. 뒤태도 완벽했다. 짧은 치마 아래로 드러난 허벅지가 유난히 하얗고 매끄러웠다.
이튿날, 나는 회사에 도착했다. 임원들이 모여 나를 맞았고, 그 중 고아가 가장 눈에 띄었다. 그녀는 오늘도 타이트한 스커트 정장을 입고 있었다. 하얀 블라우스 위로 가슴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고, 목 아래 첫 번째 단추는 의도적으로 풀어놓아 깊게 파인 가슴골이 보였다.
"회장님, 이쪽으로 오세요. 모든 서류를 준비해놨습니다."
그녀는 내 옆에 바짝 붙어 걸었다. 걸을 때마다 팔이 내 팔뚝에 스치고, 가슴이 내 팔꿈치에 닿을 듯 말 듯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녀는 커피를 내려 내 앞에 놓았다. 그리고 몸을 숙일 때 일부러 천천히 해 내 시선이 그녀의 가슴골에 머물도록 유도했다.
"회장님, 전 회장님은 항상 이렇게 일하셨어요. 먼저 중요한 서류부터 보시고, 점심 때는 제가 예약해드렸습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알겠어. 고마워."
그녀가 웃었다. 입술이 붉고 도톰했다. "별말씀을요. 앞으로 회장님을 제가 모실 거예요."
며칠이 지났다. 고아는 매일 내 주변을 맴돌았다. 커피를 타주고, 서류를 정리해주고, 점심 약속을 조정했다. 하지만 항상 선을 그었다. 가까이 다가갈 듯 하면서도 정작 손을 뻗으면 잡히지 않는 거리. 그 거리가 오히려 나를 더 자극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 그녀가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손에는 우아한 포장의 선물 상자가 들려 있었다.
"회장님, 이거 보세요."
그녀는 상자를 열어 내 앞에 내밀었다. 명품 시계였다. 가격이 상당할 것 같았다.
"전 회장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겁니다. 회장님 스물두 번째 생신 선물이라고."
나는 시계를 꺼내 손목에 찼다. 딱 맞았다. "아버지가 참 세심하셨네."
"네, 그리고 전 회장님은 이걸 남기셨어요."
그녀는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속에는 편지와 함께 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나이 삼십대 중반쯤 돼 보였고, 얼굴은 순박했지만 눈빛은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다.
"이 사람은 누구지?"
"조강입니다. 부서 주임이에요, 서른여섯 살이구요. 성격이 유순하고, 권위에 약해요."
고아가 내 옆에 서서 내 어깨 위로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숨결이 내 귀에 닿았다. "전 회장님께서 이 사람을 눈여겨보셨어요. 녹노의 잠재력이 있다고 하셨죠."
"녹노?"
"네, 복종하는 남자. 훈련시키면 완벽한 노예가 될 거예요."
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 속에는 음흉한 빛이 반짝였다.
"왜 아버지가 그런 걸 원하셨을까?"
"전 회장님은 사람을 다루는 걸 좋아하셨어요. 특히... 약한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요."
그녀의 말투에 음탕한 기운이 섞여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한번 볼까."
그날 오후, 나는 조강을 내 사무실로 불렀다. 전화를 받고도 10분 만에 그는 숨을 헐떡이며 나타났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고, 넥타이는 삐뚤어져 있었다.
"회,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그는 허리를 구부린 채 내 앞에 섰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내 발끝만 바라보았다. 체격은 나보다 컸지만, 그 자세에서 모든 기가 꺾여 있었다.
"앉아."
그가 의자에 앉았다. 엉덩이를 걸치는 듯 앉았고, 두 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조 주임, 너는 지금 몇 년 차지?"
"십, 십이 년 차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주임이야?"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네... 네.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누군가 밀어주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니야?"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더 숙였다. 그의 귀가 빨개지는 게 보였다.
"내가 이번에 타부서 대리 감독 자리를 하나 내줄 생각이야. 하지만 정식 임명은 아니야. 수습 기간을 거쳐야 해."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정,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회장님!"
"아직 안 끝났어. 조건이 있어."
"무슨 조건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그의 눈빛이 간절했다. 나는 그 눈빛을 음미했다. 이렇게 쉽게 무너지는 사람이라니.
"네 아내에 대해서 들어봤어."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왕, 왕설 말씀이십니까?"
"응, 그녀가 간호사장이라고 들었어. 얼굴도 예쁘다고 하고."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네... 맞습니다."
"야간 근무가 많다고 하던데?"
"네... 병원 일이 바빠서..."
"한마디만 하면 병원장이 그녀를 한가한 자리로 옮겨줄 텐데."
그의 두 눈이 커졌다. "회장님, 그 말씀이... 정말 가능하십니까?"
"가능하지. 하지만 그 대가가 있을 거야."
나는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다렸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고민하는 듯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저... 제 아내를 위해서라면."
"좋아. 그럼 지금부터 내 말에 순종해. 모든 것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는 굴욕과 기대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며칠 후, 고아가 내게 보고했다.
"회장님, 왕설과 친해졌어요. 점심도 같이 먹고, 쇼핑도 다녔어요."
"어때?"
"아주 우아한 여자예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아요. 조강 같은 남자의 아내가 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녀에게 어떻게 말했어?"
"회장님이 얼마나 젊고 유능한지 칭찬했어요. 그러자 그녀도 회장님에 대해 궁금해하더군요. 남편이 승진한 일도 자랑했어요."
"좋아. 계속 가."
그녀가 웃었다. "물론이죠. 제가 잘할게요."
그날 저녁, 고아는 왕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고아가 보낸 사진 속에서 왕설은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단정한 단발머리에 단아한 이목구비, 하지만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야망이 반짝였다.
고아가 문자를 보냈다. "회장님, 왕설이 회장님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표했어요. 제가 주선해도 될까요?"
나는 답장을 보냈다. "해. 이번 주말에."
그리고 조강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네 아내를 만나기로 했어. 너도 올 거야."
그는 곧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네, 회장님. 가겠습니다."
나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사무실 창문 너머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았다. 권력은 달콤했다. 특히 연약한 사람들을 손에 넣었을 때 그 쾌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좋은 유산을 남겼다. 회사뿐 아니라, 이런 재미있는 장난감들까지.
이제 게임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