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우는 처음으로 중급 여성 노예 반의 문을 넘어섰다. 초급 때의 하얀 교실과는 달리, 여기는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벽면에는 여러 가지 전자 장비와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고, 방 안에는 반투명한 칸막이로 구분된 공간들이 놓여 있었다. 각 칸에는 적어도 한 명의 여성 노예가 앉아 있었고, 그들 앞에는 작은 스크린과 여러 도구들이 정렬되어 있었다.
“모우, 4번 좌석으로 가시오.”
조련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짓했다. 모우는 고개를 숙여 대답한 뒤 발걸음을 옮겼다. 발바닥이 차가운 바닥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조금씩 빨리 뛰는 것을 느꼈다. 설렘과 두려움이 섞인 그 감정은 낯설었다.
4번 좌석에는 이미 두 여성이 앉아 있었다. 하나는 샤오웨이였고, 다른 하나는 모르는 얼굴이었다. 샤오웨이가 그녀를 보자 살짝 눈썹을 움직여 인사했다. 모우는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중급 과정은 점수제로 운영됩니다. 각 과제마다 0점에서 10점까지 평가되며, 총점이 80점을 넘으면 상급으로 진급할 수 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3점 이하를 받으면 재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조련사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모우는 스크린을 응시했다. 첫 번째 과제는 ‘음성 조절’이었다. 주어진 대본을 읽으면서 자신의 목소리 톤을 정확히 제어하는 것. 그녀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과학자 시절에도 발표를 위해 목소리를 훈련했던 기억. 하지만 지금은 그 기술이 전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것이었다.
첫 번째 실습이 시작되었다. 스크린에 문장이 떠올랐다.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모우는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청량했다. 옆에서 샤오웨이가 놀란 듯 쳐다봤다. 조련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점수를 입력했다. 8점.
“좋습니다. 다음은 감정 표현 훈련입니다. 분노, 슬픔, 기쁨, 공포, 각각을 목소리만으로 전달하세요.”
모우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분노. 그녀는 전생의 배신을 떠올렸다. 연구실에서 뒷통수를 친 동료의 얼굴. 목소리에 날카로운 가시를 실었다.
“당신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말이 끝나자마자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조련사의 눈이 반짝였다.
“10점. 완벽합니다.”
모우는 자신의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왜 이렇게 잘하는 걸까. 왜 이 과제가 즐거운 걸까.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대답은 없었다.
훈련이 끝난 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모우와 샤오웨이는 구석에 있는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위핑도 다가와 합류했다.
“와, 너 오늘 대단했어. 첫날부터 10점이라니.”
위핑이 감탄하며 말했다. 모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예전에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경험? 무슨 경험?”
샤오웨이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모우는 잠시 망설였다.
“과학자 시절에 연구 발표를 많이 했거든. 그때 목소리 훈련을 받았어.”
“과학자? 너 과학자였어?”
샤오웨이의 눈이 커졌다. 모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와. 전직 교수, 변호사, 연예인... 그런데 과학자는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만해. 말하지 마.”
모우가 재빨리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샤오웨이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
“약 한 달.”
샤오웨이가 스크린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무의미하게 두드렸다.
“그동안 많은 걸 배웠어. 이 중급 과정은 진짜 성 노예 훈련이야. 초급 때는 그냥 하녀처럼 행동하는 법을 배웠는데, 여기서는...”
그녀가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서는 진짜로 주인을 만족시키는 법을 배워. 신체 접촉, 감정 조절, 심지어 고통을 즐기는 법까지.”
모우는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호기심이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그것을 억누르려고 애썼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걸 배워야 하는 거야?”
“점수 때문이야. 높은 점수를 받으면 상급으로 올라갈 수 있고, 그러면 더 좋은 주인을 만날 기회가 생겨. 어떤 여성들은 아예 결혼해서 이 섬을 떠나기도 해.”
“결혼?”
모우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위핑이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극소수야. 대부분은 계속 여기 있어. 우리는... 상품이니까.”
그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샤오웨이가 갑자기 일어섰다.
“다들 쉬는 시간 끝났어. 다시 훈련하러 가자.”
모우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걷다가 문득 샤오웨이의 손목을 잡았다.
“샤오웨이,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뭔데?”
“너는 여기서... 행복해?”
샤오웨이가 잠시 멈춰 섰다. 그녀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다.
“행복? 그런 건 없어. 하지만 적응은 했어. 그리고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여기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이 삶을 받아들이는 거야. 저항하지 말고, 즐겨.”
모우는 그 말을 곱씹었다. 즐기라고? 그녀는 훈련장으로 돌아가면서 생각했다. 방금 전 10점을 받았을 때의 기쁨이 떠올랐다. 그 기쁨은 진짜였다. 그녀는 조련사의 칭찬을 받으며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무서웠다.
오후 훈련은 신체 접촉 연습이었다. 각 여성 노예는 파트너와 짝을 지어 서로의 신체를 탐구하는 법을 배웠다. 모우의 파트너는 샤오웨이였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손을 잡았다.
“긴장하지 마. 천천히.”
샤오웨이가 조용히 말했다. 모우는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샤오웨이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을 따라 올라갔다. 따뜻한 감촉이 피부를 타고 전해졌다. 모우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좋아. 이제 네가 나를 만져 봐.”
모우는 떨리는 손으로 샤오웨이의 팔을 더듬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차 손길에 익숙해졌다. 그녀는 샤오웨이의 맥박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도 그에 맞춰 뛰고 있었다.
“잘하고 있어.”
샤오웨이가 속삭였다. 모우는 눈을 떴다. 그녀의 시선이 샤오웨이의 눈과 마주쳤다. 그 순간,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두려움도, 혐오감도 아닌, 어떤 애틋함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모우는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속의 여자는 낯설었다. 그녀의 눈에는 결의와 혼란이 섞여 있었다. 손가락으로 거울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너는 누구야?”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훈련이 계속될수록, 그녀 안의 모우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에 새로운 모우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것을 막을 힘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그날 밤, 모우는 잠들기 전에 샤오웨이에게 물었다.
“샤오웨이, 이 섬에는 비밀이 많다고 들었어. 너 알고 있는 거 있어?”
샤오웨이가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불빛이 희미하게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
“비밀이라면... 이 섬은 단순한 성 노예 훈련소가 아니야. 여기는 실험장이야.”
“실험장?”
“응. 이 섬의 소유주들은 우리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딜 수 있는지, 얼마나 깊이 타락할 수 있는지... 그걸 연구하는 거야.”
모우는 숨을 삼켰다. 그녀는 전생의 연구실을 떠올렸다. 거기서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그녀는 그 일에 동참했었다.
“그럼 우리는... 실험쥐야?”
“맞아.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 나도 우연히 알게 됐거든.”
모우는 침묵에 잠겼다. 그녀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소용돌이쳤다. 만약 이 섬이 실험장이라면, 그녀는 이곳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다시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있을까. 아니면 그저 실험쥐로 남을 것인가.
“모우, 너는 특별해.”
샤오웨이가 갑자기 말했다.
“네 눈빛이 달라. 다른 여성들처럼 두려움에 떨거나 체념한 게 아니야. 오히려...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 같아.”
모우는 가슴 한쪽이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샤오웨이의 말은 정확했다. 그녀는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더 컸다. 그리고 그 호기심이 자신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잘 자, 샤오웨이.”
모우는 몸을 돌려 이불을 덮었다. 눈을 감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일 있을 훈련을 생각했다. 점수 평가, 신체 훈련, 그리고 더 깊은 굴종. 그 모든 것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그것이 무서웠다.
다음 날, 모우는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조련사의 표정에 만족감이 스쳤다. 그녀는 다른 여성 노예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위핑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너는 금방 상급으로 올라갈 거야. 분명히.”
모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쾌락과 고통을 나눌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훈련이 끝난 후, 모우는 샤오웨이와 함께 정원을 산책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샤오웨이가 갑자기 멈춰 섰다.
“모우, 나는 이 섬에서 도망칠 생각을 했어.”
“도망?”
“응. 하지만 방법이 없어. 전기 울타리, 감시 카메라, 그리고 이 장치...”
샤오웨이가 목에 걸린 검은 띠를 만졌다.
“이걸 빼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만약 도망가려고 하면 전기 충격이 가해져서 죽을 수도 있어.”
모우는 그 띠를 응시했다. 전생의 지식을 떠올리며 그 원리를 분석했다. 나노 기술과 생체 인식이 결합된 장치였다. 해체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에게 시간을 줘. 방법을 찾아볼게.”
샤오웨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과학자였어. 이런 장치를 분석할 수 있어. 물론 지금은 몸이 다르지만, 지식은 남아 있어.”
모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빛에는 결의가 번뜩였다. 샤오웨이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좋아. 믿을게.”
둘은 다시 방향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모우는 별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섬에서 탈출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변해가는 것을 막는 것. 하지만 그녀는 이미 느끼고 있었다. 이 훈련이 주는 쾌락이, 이 굴종이 주는 안도감이 그녀를 점점 잠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는 그것을 원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날 밤, 꿈에서 모우는 전생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그녀는 실험용 쥐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쥐들이 우리 안에서 전기 충격에 몸부림칠 때마다 그녀는 더 큰 쾌락을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우리 안에 갇힌 것이 자신임을 깨달았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방안은 고요했다. 샤오웨이가 깨어나 그녀를 바라봤다. 모우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꿈을 꿨어... 끔찍한 꿈을.”
“무슨 꿈인데?”
“내가... 우리가 실험 대상이 되는 꿈이었어.”
샤오웨이가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괜찮아. 현실은 더 끔찍하니까. 꿈보다는 덜 무서울 거야.”
모우는 그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현실이 꿈보다 더 끔찍하다니. 그럼 꿈에서조차 그 끔찍함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란 말인가.
그녀는 다시 누워 눈을 감았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다가올 훈련을 생각했다. 새로운 기술, 더 높은 점수, 그리고 더 큰 만족감. 그 모든 것이 기다려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기대에 몸을 맡겼다.
이것이 타락의 시작임을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