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봉 위에 서서 차가운 바람이 소매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묵은 손에 든 청풍검을 바라보며 칼날에 비친 달빛이 은은하게 번져갔다.
단 한 번의 검기. 허공을 가르는 푸른 빛.
그는 소매를 휘날리며 검을 거두었다. 깊게 숨을 들이쉬자 가슴속에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일렁였다.
내일이면, 드디어 그녀를 내 품에 안을 수 있다.
어렸을 적, 천검종의 산문에서 함께 수련하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초가을 어느 날, 그녀가 "묵 오빠" 하고 부르며 조심스레 다가오던 모습,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카락, 입가의 수줍은 미소. 그때부터 진묵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자리 잡았다.
소완청.
그 이름을 떠올리면 심장이 뜨거워지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이 여인을 지키리라 다짐했다. 목숨을 걸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발소리가 들렸다.
진묵이 뒤돌아보니 소완청이 술병을 들고 다가오고 있었다. 흰 치마자락이 밤바람에 나풀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달빛 아래 더욱 창백해 보였고, 눈동자는 바닥을 떠돌며 그의 시선과 마주치지 않았다.
"묵 오빠, 검술 수련하느라 고생했지? 내가 영약주를 좀 가져왔어."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약간 떨리고 있었다. 진묵은 그것이 단순한 긴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식 전날, 누구라도 설레고 불안하기 마련이니까.
"미안하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신경 써 줄 필요 없는데."
진묵이 술잔을 받아 들었다. 투명한 액체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그는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면서도 약간 쌉쌀한 맛이 혀끝을 스쳤다.
소완청은 손가락을 비틀며 자꾸만 산 아래 방향을 힐끗거렸다. 진묵이 무언가를 느꼈는지 그녀의 턱을 살짝 집어 올렸다.
"완청, 무슨 일 있어?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소완청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곧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니야, 그냥... 결혼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나 봐."
그 말에 진묵의 가슴이 약간 저렸지만 그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걱정 마. 이 결혼은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너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어. 나는 평생 너를 지킬 테니까."
소완청의 얼굴에 모호한 미소가 스쳤다. 그것은 기쁨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비웃음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진묵은 알아채지 못했다.
밤이 깊어 갔다.
진묵은 침실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달빛이 창문을 통해 스며들어 방 안을 은은하게 비췄다. 그는 눈을 감고 내일의 결혼식을 상상했다. 기쁨에 찬 웃음, 그녀의 순백색 옷자락, 신랑과 신부의 입맞춤...
그 순간, 가까운 문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아주 가볍고 조심스러운 발걸음.
진묵은 귀를 기울였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져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보았다. 달빛 아래 흰 그림자가 뒷산을 향해 사라지고 있었다.
소완청이었다.
그녀가 이런 시각에 어디로 가는 거지? 그것도 그녀가 가서는 안 되는 금지 구역으로.
진묵의 마음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는 재빨리 옷을 차려입고 몰래 그녀의 뒤를 따랐다.
뒷산 길은 구불구불했고, 주변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진묵은 검술 수련으로 단련된 예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림자처럼 소완청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그녀는 몇 번을 뒤돌아보며 경계했지만, 진묵의 솜씨는 그녀의 눈을 피할 정도였다.
산 정상으로 올라가자 달빛이 더욱 맑아졌다. 거기에는 폐허가 된 암자가 있었다. 무성한 잡초에 덮인 폐사.
소완청은 암자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두려움과 기대가 뒤섞인 표정으로 어둠 속을 응시했다.
그 순간, 암자 안에서 낮고 음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완청, 기다리게 했구나."
그 목소리. 진묵은 그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적련마군.
천검종의 최대 숙적. 그가 왜 이곳에? 그리고 소완청과 무슨 관계인 거지?
진묵의 가슴속에서 분노와 충격이 폭발할 듯했다. 그러나 그는 참았다. 좀 더 지켜봐야 했다. 좀 더 진실을 알아야 했다.
소완청이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땅을 짚고 머리를 숙였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지만, 이상한 달콤함을 포함하고 있었다.
"소인은 주인님을 뵙습니다. 주인님의 명령대로 왔습니다."
적련마군이 그림자 속에서 걸어 나왔다. 붉은 장포가 달빛 아래 핏빛처럼 타올랐다. 그의 얼굴은 잔혹한 미소로 가득 차 있었다.
"좋아, 좋아. 정말로 순종적인 년이구나. 내일 결혼식 전에 이런 밀회를 즐기다니, 참으로 간 큰 계집이로구나."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소인은 기꺼이..."
소완청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그녀는 떨면서도 일어나 적련마군의 품에 안겼다.
진묵은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의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손에 쥔 청풍검이 덜덜 떨렸다.
그 여자가, 자신의 약혼녀가, 자신과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마도에 몸을 바치고 있다.
"너, 너희들..."
진묵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분노와 배신감이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의 손이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고통과 증오로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그가 칼을 뽑기도 전에, 소완청이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 속에는 더 이상의 부끄러움도 망설임도 없었다. 오직 차가운 조소만이 담겨 있었다.
"묵 오빠, 너는 정말 순진하구나."
진묵의 심장이 산산조각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