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구석, 먼지가 켜켜이 쌓인 서가 사이에 낡은 수첩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라가는 무심코 그것을 주웠다. 표지는 누렇게 변했고, 모서리는 닳아 해졌다. 손끝이 닿는 순간, 이상한 전율이 손가락 끝에서 뇌까지 퍼져나갔다. 그녀는 수첩을 펼쳤다. 빈 페이지마다 형체 없는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그것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의식, 어둡고 집요한 힘의 조각들이었다.
라가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수첩의 비밀을 곧바로 깨달았다. 의식 융합. 타인의 정신을 침식하고 지배하는 능력. 그동안 학교에서 ‘추녀’라 불리며 멸시당했던 자신에게 이 힘은 신의 선물과도 같았다. 그녀는 입가에 비뚤어진 미소를 띠며 수첩을 품에 꼭 껴안았다.
첫 번째 실험 대상은 도서관 앞마당을 배회하는 떠돌이 고양이였다. 라가는 구부정한 몸으로 다가갔다. 고양이는 경계하며 꼬리를 세웠지만,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몸이 굳었다. 의식의 촉수가 고양이의 작은 뇌 속으로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저항했다. 야생의 본능이 발톱을 드러내며 그녀의 침입을 물리치려 했다. 그러나 라가는 더 깊이, 더 세게 밀어붙였다. 고양이의 눈동자가 흐려졌다가 다시 초점을 잡았다. 이제 그 눈은 더 이상 고양이의 것이 아니었다. 라가의 의식이 그 안에서 웃고 있었다.
“일어나.” 라가가 낮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고양이가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빙글빙글 돌아.” 고양이가 제자리에서 돌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지만, 라가의 가슴은 쾌감으로 벅차올랐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완전히 지배했다. 이 작은 생명체조차도 그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발로 살짝 걷어찼다. 고양이가 비명도 없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시 일어나서 그녀의 발등에 얼굴을 비볐다. 완전한 복종. 라가의 입술이 떨렸다. 더 큰 것을 원했다. 더 강한 의식을 삼키고 싶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연희. 학교의 교화. 청순하고 아름다우며 모든 이의 사랑을 받는 그녀. 라가의 오랜 질투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버려두고 일어섰다. 발걸음은 진연희의 화실을 향했다.
화실은 대학 서쪽 건물 3층에 있었다. 라가는 복도 끝에서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문을 살짝 열었다. 진연희가 그곳에 있었다. 그녀는 캔버스 앞에 앉지 않고, 작은 고양이 화화를 무릎에 앉힌 채 붓을 들고 있었다. 화화는 새하얀 털에 파란 눈을 가진 귀여운 페르시안 고양이였다. 진연희는 조심스럽게 화화의 털을 붓으로 쓰다듬으며 그림 속에 옮기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번져 있었다. 햇살이 창문을 통해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화화야, 오늘은 좀 더 예쁘게 그려줄게.” 진연희가 속삭였다. 화화가 그녀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가르랑거렸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화화의 턱을 간지럽혔다. 그 순간, 문틈에 선 라가의 그림자가 방 안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진연희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라가 씨? 무슨 일 있어?”
라가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빛 속에 어두운 욕망이 꿈틀거렸다. 저 순수한 얼굴, 저 행복한 미소를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까. 곧 모든 것이 무너질 것이다. 라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말은 짧았지만, 그 속에는 차가운 예고가 담겨 있었다. 진연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다시 화화에게 시선을 돌렸다. 라가가 문을 닫았다. 복도로 돌아서며 그녀는 손에 쥔 수첩을 꽉 움켜쥐었다. 곧이다. 곧 저 하얀 고양이도, 저 여자도,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을 것이다.
창밖으로 햇빛이 구름에 가려지기 시작했다. 화실 안의 따뜻한 빛이 점점 흐려졌다. 진연희는 문득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을 느꼈지만, 고개를 저으며 화화에게 다시 집중했다. 위험은 이미 문턱을 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