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티켓을 끊은 건 일주일 전이었다. 나는 의자에 느긋하게 기대어 핸드폰으로 일본 날씨를 검색하다가 슬쩍 시선을 들어 어머니를 바라봤다. 어머니는 거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화면 속 연속극에 집중하는 척하면서도 내가 던질 말을 기다리고 있는 게 역력했다.
“엄마, 나 일본 여행 같이 갈 사람이 없는데.”
내가 말을 꺼내자 어머니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갑자기 일본은 왜?”
“그냥. 한 번쯤 가보고 싶었어. 엄마도 오랜만에 외출 좀 해.”
어머니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였다. 목덜미가 살짝 붉어지는 게 보였다. 그녀는 내가 왜 하필 일본을 골랐는지, 도쿄의 그 유명한 SM 클럽들을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몇 번이고 내 컴퓨터 검색 기록을 우연히 본 척하며 지나갔으니까.
“너... 나랑만 가려는 거 아니지?”
“엄마 빼고 누가 더 있겠어? 나는 엄마랑만 있고 싶은데.”
내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는 분명했다. 어머니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잠시 나를 쏘아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억지로 TV로 시선을 돌렸다.
“변태 같은 녀석.”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에는 애처로운 투정이 섞여 있었다. 나는 웃으며 일어나 내 방으로 들어가다가 어머니 방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문틈으로 보이는 그녀의 침대 위, 베개 옆에 꽂아둔 가방 속에 새끼줄 한 타래가 보였다. 어머니는 내가 보지 못하게 재빨리 옷가지로 덮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어머니는 새로 산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착용했다. 일본에 꽃가루 알레르기가 유행한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스크 위로 반짝이는 눈망울만 드러내며 나를 바라봤다.
“이거 하나만 있으면 아무도 엄마 얼굴 못 알아볼 거야.”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 어머니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내 팔을 툭 쳤다. 하지만 그 손길은 애정 어린 가벼운 접촉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가 되어 있었다. 나리타 공항을 나오니 정말로 거리에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로 가득했다. 노란 꽃가루가 바람에 흩날렸지만, 그 아래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표정을 숨기고 있었다. 어머니도 그중 하나였다. 그녀의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호기심과 불안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호텔은 신주쿠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골랐다. 방은 넉넉한 더블룸이었다. 어머니는 방 안으로 들어서면서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걸 보고 얼굴이 새빨개졌다.
“침대가 하나네?”
“더블 침대니까 둘이 자도 넉넉해. 아니면 엄마가 내 품에 안겨 자고 싶어?”
내 농담에 어머니는 손에 든 가방을 내게 던졌다. 그 안에서 쇠사슬 소리가 딸랑, 났다. 나는 웃으며 그 소리를 무시하고 가방을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짐 풀었으니 나가자. 도쿄 디즈니랜드.”
“에? 지금? 피곤한데...”
“엄마랑 놀러 온 건데 안 가면 섭섭하지. 가자, 제발.”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 끌었다.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밖으로 나와 전철을 타고 디즈니랜드로 향했다.
디즈니랜드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족, 연인, 친구들...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즐기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군중 속을 헤쳐 나갔다. 그녀의 손은 땀으로 촉촉했다. 긴장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살짝 더 세게 잡으며 귀에 속삭였다.
“긴장 풀어, 엄마. 여기선 아무도 신경 안 써.”
어머니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몇 가지 어트랙션을 탔다. 스페이스 마운틴에서 내려올 때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내 팔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가슴이 내 팔뚝에 닿을 때마다 나는 미소를 참았다.
해가 질 무렵, 우리는 디즈니랜드를 나와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머니는 앞에 놓인 파스타를 포크로 돌리며 말을 꺼냈다.
“오늘 재밌었어. 고마워.”
“다행이다. 엄마가 웃는 얼굴 보니까 나도 좋아.”
내 말에 그녀는 또 얼굴을 붉혔다. 어머니는 쉽게 얼굴이 붉어지는 편이었다. 그것도 하나의 매력이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거리의 가로등이 우리 그림자를 길게 늘이고 있었다. 어머니는 마스크를 내리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나는 그 미소 뒤에 숨은 복잡한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두려움과 기대, 저항과 굴복이 섞인 감정.
호텔 방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나는 문을 잠그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방 안은 정적만 감돌았다.
“엄마, 오늘도 수고했어. 좀 쉬어.”
나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머니는 눈을 감고 내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녀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졌다.
“내일부터... 천천히 시작하자.”
내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방 안의 어스름한 불빛에 반짝였다.
나는 그녀를 침대에 눕혀주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았다.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자, 엄마. 잘 자.”
나는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내 침대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어머니도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밤을 보냈다. 내일이 오면, 진짜 게임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게임의 승자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단지 그녀의 손이 주는 온기를 느끼고 싶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당분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