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우리
1장. 양면 사장
서울의 중심, 강남대로에 우뚝 솟은 유리창 건물. 그 48층 전체를 차지한 '세진 테크놀로지'의 회의실은 오전 열 시, 이미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소설아는 긴 회의 테이블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끝이 노트북 키보드 위를 가볍게 스쳤다. 빔 프로젝터에 펼쳐진 분기별 실적 보고서가 형광빛을 반사했다.
"4분기 영업이익률이 3% 하락했습니다.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
차갑고도 맑은 목소리였다. 마치 겨울바람처럼 모든 잡음을 잘라내는 음색이었다. 영업 본부장 박 상무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서둘러 목을 가다듬었다.
"그, 그게...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자재 가격 상승? 당신은 그걸 변명이라고 생각하나?"
소설아가 고개를 들어 박 상무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검고 깊었다.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그 시선 앞에서 박 상무는 말문이 막혔다.
"이미 세 달 전에 원자재 가격 변동 폭이 예상된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그럼 그에 대한 대비를 했어야지, 왜 지금 와서 변명을 늘어놓습니까?"
회의실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소설아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세 번의 똑똑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3일 안에 개선안을 내놓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작년에 같은 실수를 한 마케팅 팀장은 지금 어디에도 없었다.
회의가 끝나자 임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안도감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소설아는 여전히 자리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만든 회사의 분위기였다.
그녀가 회의실을 나서자 비서가 다가왔다.
"대표님, 오후 세 시에 베트남 법인 화상 회의가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 시에는..."
"여섯 시 이후의 일정은 모두 취소해."
소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비서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저녁 자리가..."
"취소하라고 했어요."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거기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소설아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48층 창밖으로는 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는 잠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네 시. 시간이 충분했다.
집무실 뒤편에 있는 비밀 문을 열자 좁은 복도가 나타났다. 그 복도를 따라 걸으면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일반 직원들은 모르는, 오직 그녀만 사용할 수 있는 통로였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3층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그녀의 또 다른 사무실이 있었다.
지하 사무실은 지상의 그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화려한 가구 대신 실용적인 금고와 서류들이 가득했다.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노인이 다가왔다. 임숙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무표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오늘 장부가 도착했습니다."
"보여줘."
소설아가 금고 앞 의자에 앉았다. 임숙이 두꺼운 장부 한 권을 그녀 앞에 펼쳤다. 장부에는 각종 부호와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일반인이 보면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암호같은 기록이었다.
"이번 달 베트남 지선에서 총 47명이 들어왔습니다. 그중 12명은 특별 관리 대상이고요."
"품질은?"
"대부분 중상급입니다. 한 명은 특급으로 분류됩니다."
소설아의 손가락이 장부 위를 빠르게 훑었다. 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여기 3페이지, 이 숫자들은 뭐지?"
임숙이 잠시 장부를 살펴보았다.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제가 확인을 소홀히 했습니다. 거래처의 배당금이 누락되었습니다."
"임숙."
소설아가 차분한 목소리로 불렀다.
"네."
"당신은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 믿음이 실수로 이어져서는 안 돼. 알겠니?"
"명심하겠습니다."
임숙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소설아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장부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손은 숫자들을 마치 계산기처럼 처리했다. 머릿속에서 모든 거래가 정리되었다.
"이번 달 순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8% 상승했군. 좋아. 하지만 베트남 지선의 관리비가 너무 높아. 본사에서 직접 감독관을 보내겠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소설아가 장부를 닫았다. 그 순간 그녀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소설아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가 고개를 들어 임숙을 바라보았다.
"오늘 밤 교외 장원에서 거래회가 열린다. 이번에는 규모가 크다고 하더군."
"네. 저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중국 본토에서도 몇몇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다고 합니다."
"직접 가보겠다."
임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께서 몸소 나서실 필요까지는..."
"이번 거래는 달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어."
소설아의 말은 단호했다. 임숙은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고개를 숙여 순종을 표시했다.
소설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기 전에 작은 거울을 꺼냈다. 거울 속의 자신은 여전히 냉철하고 우아한 기술 회사의 CEO였다. 그 모습에 만족하며 그녀는 거울을 집어넣었다.
집무실로 돌아오자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님, 방금 전달받은 긴급 문서입니다."
"됐어. 나는 오늘 일찍 퇴근할 거야. 남은 일은 내일 처리하겠다."
비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갔다. 소설아는 집무실 문을 닫고 혼자 남았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지상의 그녀는 빛나는 CEO였다. 하지만 지하의 그녀는 어둠을 다스리는 존재였다.
저녁 일곱 시, 소설아는 검은색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운전석에는 임숙이 앉아 있었다. 차는 조용히 교외로 향했다. 도시의 불빛이 점점 멀어지고, 어둠이 짙어졌다.
"아가씨, 도착까지 약 40분 남았습니다."
"알았어."
소설아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가로등 불빛이 드문드문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 놓인 핸드백의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그 안에는 소형 권총 한 자루와 몇 장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
차가 점점 외진 길로 접어들었다. 산길을 따라 10분쯤 달리자 거대한 대문이 나타났다. 대문 앞에는 무장한 경비원들이 서 있었다. 임숙이 차창을 내리고 특별한 수신호를 보냈다. 경비원이 확인하고 고개를 숙였다. 대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웅장한 장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풍스러운 유럽식 저택이 어둠 속에서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이미 수십 대의 고급 승용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소설아가 차에서 내리자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대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그녀를 저택 안으로 안내했다. 화려한 로비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넓은 홀이 펼쳐졌다. 거기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소설아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아무런 동요 없이 걸어갔다. 그녀의 발걸음은 경쾌했지만, 그 속에는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녀가 홀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자 임숙이 그 뒤에 섰다.
거래회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