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칭 가문의 저택은 낮에는 화려했지만, 밤이 되면 어둠 속으로 잠겨들었다. 소청은 침실 창가에 서서 정원 너머로 펼쳐진 어둠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차가운 유리창을 더듬었다. 어머니는 오늘도 늦게 돌아오셨고, 아버지는 서재에서 누군가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계셨다. 벽 너머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목소리는 소청에게 어떤 불길한 예감을 안겨주었다.
“아가씨, 어서 짐을 챙기세요.”
집사 로진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며 낮고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손에는 작은 가방 하나가 들려 있었다. 소청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로진의 얼굴은 평소의 근엄함을 잃고 창백했다.
“무슨 일이에요?”
“더 이상 여쭤볼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당장 이곳을 떠나셔야 합니다.”
로진이 방 안으로 들어와 소청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갑게 얼어 있었다. 소청은 저항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 복도로 나섰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저택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평소에는 밤늦도록 들리던 집사들의 발소리도, 정원에서 울리던 경비병들의 대화 소리도 사라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요?”
로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이 더 무거운 대답이었다. 소청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정원 끝에 있는 뒷문까지 도달했을 때, 멀리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폭발음이었다. 이어 총성이 연달아 울렸다. 로진이 소청의 몸을 밀어 정문 쪽에서 달려오는 트럭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 트럭은 평소에 가문이 운영하는 ‘군팡거’의 물품을 나르던 차량이었다.
“저 차에 타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숨만 쉬고 계세요.”
로진이 트럭의 짐칸 문을 열었다. 안에는 커다란 나무 상자들이 가득했다. 그 상자들 사이에 좁은 틈이 있었다. 소청은 몸을 웅크려 그 틈으로 들어갔다. 로진이 문을 닫으며 어둠 속에서 마지막으로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당신은 그냥 상자 안의 물건일 뿐입니다.”
문이 완전히 닫히고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트럭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출발했다. 소청은 상자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숨을 죽였다. 차량은 거친 길을 달리며 이리저리 흔들렸다. 머리가 상자 모서리에 부딪혀 아팠지만, 소청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트럭이 급정거했다. 총성과 비명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소청의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올랐다. 아까 들린 폭발음… 그들은 살아 계실까.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두려움이 그 눈물조차 얼게 만들었다.
누군가 짐칸 문을 열려고 하는 소리가 났다. 빗장이 덜컹거렸지만 열리지 않았다. 욕설이 들리고, 이어 차량이 다시 출발했다. 이번에는 더 빨리, 더 거칠게 달리기 시작했다. 소청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트럭 안의 답답한 공기와 흔들림, 그리고 극심한 공포가 그녀를 기절시키기에 충분했다.
눈을 떴을 때, 소청은 자신이 딱딱한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천장에는 희미한 전등 하나가 매달려 있었고, 벽은 회색 콘크리트로 마감되어 있었다. 냄새가 이상했다. 땀과 소독약,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체취가 뒤섞인 악취였다.
“일어났네.”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청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손목과 발목이 무언가에 묶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쇠사슬이었다. 그녀의 손목은 두꺼운 가죽으로 감싸진 쇠고랑에 채워져 있었고, 발목에도 같은 것이 채워져 바닥에 고정된 고리에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가… 어디죠?”
소청이 물었다. 목소리는 쉰 목소리였다.
“어디긴. 네가 처음 왔냐? 여기는 노예 섬이야. 여기서 훈련 받고 나면 너를 원하는 주인에게 팔려 가는 거야.”
여자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푸른 작업복을 입고 있었고, 손에는 전기 충격기가 들려 있었다. 소청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노예 섬? 그녀가 아는 노예 섬은 오직 하나였다. 바로 자기 집안의 비밀 시설이었다.
“나는… 나는 쑤칭 가문의…”
“쑤칭? 그게 뭐야. 여기선 이름도, 신분도 필요 없어. 너는 그냥 상품 47호야.”
여자가 무심하게 말하며 소청의 턱을 잡아 얼굴을 들게 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가축을 평가하는 듯했다.
“조금만 있으면 교관 아리가 너를 평가할 거야. 그분 앞에서는 절대 버릇없이 굴지 마. 목숨이 아깝다면.”
여자가 몸을 돌려 철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며 굵은 빗장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소청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있는 방에는 자신 외에도 여러 명의 여자들이 누워 있었다. 모두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었고,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몇 명은 몸에 멍 자국이 선명했고, 누군가는 목에 전기 충격을 받은 듯 붉은 화상 자국이 남아 있었다.
소청은 자신의 처지가 비로소 실감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다. 아마도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자기 집안이 운영하는 노예 훈련소에 ‘포획된 노예’로 들어와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그녀가 어릴 적부터 은밀히 목격해 온 이곳의 진실. 그녀는 이곳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그녀 자신이 그 피해자가 될 줄은 몰랐다.
소청이 구출될 방법은 없었다. 이곳의 직원들은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설령 안다 해도, 그녀는 이미 상품으로 분류되었다. 이곳의 규칙은 단 하나뿐이었다. ‘들어온 자는 나가지 못한다.’ 아버지가 직접 만든 그 규칙이 이제는 그녀를 옥죄고 있었다.
두려움과 함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금의 정체성을 완전히 숨겨야 한다. 소청은 노예 훈련을 견뎌야 한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던 것처럼. 그래야만 언젠가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소청이 손목의 쇠고랑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 순간, 철문이 다시 열리며 무거운 발소리가 들렸다. 교관 아리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