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잎이 흩날리는 저녁이었다. 붉은 꽃잎들은 마치 피를 닮아 땅에 떨어지고, 다시 바람에 흩어졌다. 린음은 나막신 소리를 내며 벚꽃나무 아래에 섰다. 그녀의 기모노는 짙은 자주색이었고, 허리춤에 찬 족자는 검은 색이었다. 그녀의 손은 칼자루 위에 놓여 있었고, 눈동자는 차갑게 유키노를 응시하고 있었다.
유키노는 흰 기모노를 입고 그녀 맞은편에 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낙엽이 쌓여 있었고, 바람이 불자 꽃잎이 다시 춤추기 시작했다.
“린음.”
유키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떨림이 숨어 있었다.
“또 싸울 거야?”
린음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는 쓸쓸하고도 아름다웠다.
“네가 원하는 거 아니야?”
그녀의 손가락이 칼자루를 스쳤다. 유키노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린음을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은 그녀를 갉아먹고 있었다. 린음의 눈에는 항상 그늘이 있었고, 그 그늘 속에는 죽음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었다. 유키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를 막아야 했다. 그녀를 죽음에서 구하기 위해, 어쩌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기 위해.
린음이 먼저 움직였다. 나막신이 땅을 박차자 꽃잎이 흩날렸다. 칼날이 번쩍이며 유키노를 향해 내리꽂혔다. 유키노는 재빨리 몸을 비껴 피했지만, 린음의 공격은 거침없었다. 그녀의 칼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였고, 유키노는 그 흐름에 휩쓸려 점점 뒤로 밀려났다.
“왜 이러는 거야, 린음!”
유키노가 외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애처로웠다.
“왜 자꾸 나를 이렇게 만드는 거야?”
린음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더욱 맹렬하게 공격했다. 칼날이 교차하고, 쇳소리가 울렸다. 유키노는 간신히 린음의 공격을 막아내며 숨을 헐떡였다. 그 순간, 린음의 칼이 빈틈을 뚫고 들어왔다.
으스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린음의 칼이 유키노의 옆구리를 스쳤다. 유키노는 비명을 참으며 몸을 돌렸지만, 그 순간 린음의 복부가 드러났다. 유키노는 본능적으로 칼을 찔러 넣었다.
퍼억.
촉감이 둔탁하게 전해졌다. 유키노의 칼날이 린음의 배를 꿰뚫었다. 린음은 잠시 굳어 있었다. 그녀의 눈이 커졌고, 입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유키노는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손은 떨리면서도 칼자루를 놓지 않았다.
“린…음…”
유키노의 목소리는 거의 울음이 섞여 있었다.
린음이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칼날이 그녀의 복부를 관통했고, 상처에서는 내장이 조금 드러나 있었다. 피가 뚝뚝 떨어져 벚꽃잎을 적셨다. 하지만 린음의 표정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 이 느낌…”
린음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이 천천히 올라가 상처에 닿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장을 스치자, 전율이 그녀의 몸을 타고 흘렀다. 그녀의 눈이 흐릿해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린음!”
유키노가 당황하며 칼을 빼내려 했지만, 린음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기다려… 아직… 아직 끝나지 않았어…”
린음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 떨림은 고통인지 쾌락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린음의 상처에서 핏방울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피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의 몸 안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내장이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갔고, 찢긴 살이 아물었다. 유키노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바라보며 그녀의 칼을 떨어뜨렸다.
찰칵.
칼이 땅에 떨어지자, 린음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배는 이미 완전히 아물어 있었고, 피부에는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의 눈에는 쾌락이 스며 있었다.
“처음이 아니야, 유키노.”
린음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건… 반복되는 저주야. 나는 죽을 수 없어. 아무리 죽어도, 나는 다시 살아나. 그리고 그때마다… 이 감각은 더욱 강해져.”
유키노는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손이 떨리고 있었고,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왜… 왜 이런 일이…”
“치즈루가 알고 있어.”
린음이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어둠 속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아니면… 그녀가 나를 이렇게 발견했거나.”
어둠 속에서 치즈루가 나타났다. 그녀는 검은 기모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붓과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훌륭했어, 린음. 오늘은 특히… 아름다웠어.”
치즈루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냉소가 숨어 있었다.
“네 부활의 과정을 모두 기록했어. 이번에는 상처 회복 속도가 더 빨랐어. 네 몸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
린음은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 증오가 스쳤지만, 동시에 그 증오 뒤에는 쓸쓸함이 숨어 있었다.
“언제쯤 끝날까?”
린음이 물었다.
“네가 진정한 불멸의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치즈루가 대답했다.
“그때까지는… 계속 반복될 거야.”
린음은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손이 다시 자신의 배를 스쳤다. 그녀는 느꼈다. 그 상처가 아물었던 순간의 쾌감을. 그녀는 그것을 갈망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그것이 자신을 파멸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유키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벚꽃잎을 적셨다. 린음은 그녀를 바라보며 가슴이 저렸다. 그녀는 유키노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 사랑조차도 그녀를 끌어내릴 뿐이었다.
“유키노…”
린음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유키노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나를 잊어.”
린음이 말했다.
“네가 나를 잊을 수만 있다면… 너는 행복해질 수 있어.”
“안 돼!”
유키노가 외쳤다.
“나는… 나는 너를 사랑해. 이 사랑을 버릴 수 없어.”
린음은 쓸쓸하게 웃었다. 그녀는 치즈루를 바라보았다. 치즈루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두루마리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그녀는 린음의 운명을 조종하는 인형사였다. 그리고 린음은 그 인형사에게 묶인 인형이었다.
밤이 깊어졌다. 벚꽃잎은 계속해서 떨어졌고, 세 명의 여자는 그 아래에 서 있었다. 린음은 다시 한 번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다음 죽음이 언제 올까. 다음 부활이 언제 올까.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더욱 뒤틀릴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이 길을 가기로 선택했다. 아니, 선택당했다.
“가자.”
린음이 말했다. 그녀는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나막신 소리가 고요한 밤을 울렸다.
유키노는 그녀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치즈루는 여전히 어둠 속에 서서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