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겨 있지 않은 완행의 장막 사이로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선진은 아랫배에서부터 몸을 찢어내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십삭 동안 품어 온 생명이 마침내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이었다.
옆에 있던 내시가 다급히 뛰쳐나가더니 잠시 후 무거운 발소리가 급히 다가왔다. 문이 벌컥 열리고 군룡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긴장과 초조로 일그러져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 왜 아직도!”
산파들이 놀라 엎드리며 아뢰었다.
“폐하, 귀비 전하께서 진통이 길어지십니다...”
군룡은 침상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선진을 보았다. 선진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손가락은 이불을 꽉 쥐고 있었다. 군룡은 다가가 그의 손을 거칠게 잡았다.
“선진, 내가 여기 있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죽을 수 없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지만, 그 안에는 전에 없던 불안이 섞여 있었다. 선진은 그 손의 온기를 느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손이 그동안 그에게 얼마나 많은 치욕과 고통을 안겼는지,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손이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마침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침실을 가득 채웠다. 산파가 아이를 정성스럽게 닦아내고는 군룡 앞에 바쳤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건강한 황자님이십니다!”
군룡은 아이를 건네받았다. 보잘것없이 작은 덩어리. 주먹을 쥐고 우는 아이를 보며 그의 굳은 얼굴에 처음으로 웃음기가 스쳤다. 그는 아이를 안고 선진에게로 걸어왔다.
“선진, 보아라. 이 아이가 우리의 아들이다. 네가 낳았다.”
선진은 지친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순간,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이 아이는 단순한 핏줄이 아니었다. 수많은 치욕과 억압 속에서 그가 유일하게 피워낸 희망이었다.
군룡은 선진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수고했다. 네가 이 공을 세웠으니, 오늘부터 너를 귀비로 봉한다. 대건의 귀비, 선진이다.”
선진은 그 말을 들으며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숙였다. 군룡은 다시 아이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준이라 하겠다. 대건의 미래를 짊어질 자다.”
그날 이후 군룡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는 더 자주 귀비전을 찾았고, 선진에게 말을 건넬 때에도 부드러운 어조를 잃지 않았다. 심지어 선진을 침상에 눕히고 직접 죽을 떠먹이거나 약을 챙기는 모습까지 보였다. 신하들은 술렁였지만, 군룡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선진은 그 변화에 당황스러우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그는 아기 이준을 품에 안고 있을 때면 그동안 마음속 깊이 새겨 왔던 복수의 칼날이 무디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그는 생각했다. ‘더 이상 피를 보지 않고, 이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어느 날 밤, 선진이 이준을 재우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귀비 전하, 잠시 뵙고자 합니다.”
선릉과 선지였다. 선진은 망설이다가 그들을 들였다. 두 형제는 선진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형님,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선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저 아기가 잘 자라고 있어 다행일 뿐이다.”
선릉과 선지는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선릉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형님, 폐하께서 요즘 형님을 유난히 귀애하신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형님, 저희의 약속은 잊지 않으셨지요?”
선진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선릉은 선진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형님, 저희는 아직 그 치욕을 잊지 않았습니다. 선지가 당한 일, 제가 당한 일, 그리고 선옥이가 당한 그날을 기억하십시오. 저희는 그날 이후로 오직 하루하루를 이를 갈며 살아왔습니다.”
선지가 차갑게 덧붙였다.
“형님께서 폐하의 마음을 흔들고 계십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만약 형님의 마음이 약해지면, 저희는 다시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선진은 두 형제의 말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는 이준이 잠든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저 순수한 생명. 그가 복수를 선택하면, 이 아이는 아버지를 잃게 될 것이고, 혹은 아버지에게 아들을 빼앗길지도 몰랐다. 헤아릴 수 없는 혼란이 그를 덮쳤다.
“...나가라. 지금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선릉과 선지는 그의 결연한 표정에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문을 나서며 선릉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선진의 귀에 날카롭게 박혔다.
“형님, 잊지 마십시오. 저희는 아직도 하루하루를 피흘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형님 한 분의 마음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선진은 이준을 더욱 꼭 껴안았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손으로는 복수의 칼을 쥐고, 다른 손으로는 아기의 따뜻한 볼을 감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모성은 그를 얽매고, 복수는 그를 채찍질했다. 그는 그 사이에서 갈기갈기 찢겨 가고 있었다.
“이준아... 내가 어찌해야 하느냐...”
그의 혼잣말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아무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이에 군룡의 첩자는 이미 이 모든 광경을 군룡에게 보고하고 있었다. 군룡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했다.
‘선진아, 너는 내 품을 벗어날 수 없다. 아이라도, 무엇이라도, 너는 영원히 내 것이다.’
군룡의 집착은 더욱 깊어져 갔고, 선진의 동요는 또 다른 폭풍의 시작을 예고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