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택은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며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방 안에는 키보드 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는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오늘따라 유난히 가라앉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진택은 손을 멈추고 액정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언니'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여보세요?"
"택아! 나야. 지금 뭐 하고 있어?"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밝고 상쾌했다. 진바오바오 특유의 촉촉한 음색이었다.
"글 쓰고 있어. 왜?"
"에이, 또 글 쓰고 있어? 나랑 KTV나 가자. 오랜만에 나가서 좀 놀자."
"미안, 마감이 얼마 안 남았어. 다음에 가자."
"다음에가 또 다음에야! 너 일만 하고 어떻게 사니? 나랑 재미 좀 보자. 제발~"
진바오바오의 목소리는 애교 섞인 불평으로 변했다. 진택은 한숨을 쉬며 미간을 문질렀다. 언니는 항상 이랬다. 자기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애교를 부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정말 다음에 가자. 오늘은 진짜 안 돼."
"흥! 넌 항상 그래. 언니를 얼마나 기다리게 할 거야? 알았어, 알았어. 할 일 하라고. 난 친구랑 갈 테니까."
진바오바오는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다정함이 섞여 있었다. 진택은 가볍게 웃으며 진정시켰다.
"다음엔 꼭 같이 가자. 약속할게."
"약속이야? 안 지키면 혼날 줄 알아!"
"알았어, 알았어. 약속할게."
전화를 끊고 진택은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렸다. 언니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섞여 있었던 것 같았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기분 탓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키보드에 손을 얹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한편, 진바오바오는 전화를 끊고 거실 소파에 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일어나서 외투를 집었다. 왕자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지금 출발할게. 너도 준비해."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응. 바로 갈게."
진바오바오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엔진 소리가 부드럽게 울렸다. 그녀는 핸들을 꽉 쥐고 도로로 나갔다. 차는 조용히 미끄러지듯 달렸다.
그녀는 왕자진의 집 앞에 도착했다. 잠시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왕자진이 나왔다. 그녀는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얼굴에는 차분한 표정이 깔려 있었다. 그녀는 차 문을 열고 조용히 올라탔다.
"늦었네."
진바오바오가 농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일찍 왔네."
왕자진은 담담하게 대꾸하며 좌석 벨트를 맸다. 두 사람은 가볍게 웃고 말없이 차를 몰았다.
KTV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스름이 깔리고 있었다. 네온사인이 반짝이며 화려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진바오바오가 차에서 내리자 왕자진도 뒤따라 나왔다. 두 여자는 건물 입구로 걸어갔다.
그때, 낯선 남자 네 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대충 껴입은 옷차림에 얼굴에는 싱글벙글 웃음을 띠고 있었다.
"아가씨들, 혼자야? 우리랑 같이 놀래?"
한 남자가 건방진 목소리로 말했다.
진바오바오는 눈썹을 찌푸리며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왕자진의 팔을 잡고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려고 했다.
"왜? 바쁘네? 우리가 인사하는 건데."
또 다른 남자가 앞을 막았다.
"길을 비켜주세요."
왕자진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철했다.
남자들은 잠시 당황했지만 곧 다시 웃음을 지었다.
"예쁘면 참견하기 좋아하지. 알았어, 알았어. 가라."
그들은 비켜섰지만, 눈빛에는 여전히 흥미가 담겨 있었다. 진바오바오와 왕자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KTV 안으로 들어갔다.
위층 창가에서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왕국민이었다. 경찰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전혀 정직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두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와, 저 몸매... 진짜 끝내주네."
그는 옆에 서 있는 바텐더에게 고개를 돌렸다. 바텐더는 작은 개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는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샤오거우쯔."
"네, 형님."
"저 두 여자 봤어?"
"네, 봤습니다."
"저 여자들한테 특별 대접을 해줘. 알겠지?"
왕국민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바텐더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약은 넣어."
"형님, 그건..."
"조용히 해. 네가 할 일만 하면 돼. 알겠지?"
바텐더는 잠시 망설였지만, 왕국민의 차가운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좋아. 잘하면 보답이 있을 거야."
왕국민은 다시 담배를 빨아들이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탐욕과 음흉함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오늘 밤은 재미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