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아니다. 육설기는 죽음을 넘어선 그 무언가를 겪고 있었다.
그녀의 의식은 더 이상 조각나지 않았다. 조각날 것조차 없었다. 임일의 영혼이 그녀의 정신 세계 깊숙이 침투했을 때, 그는 더 이상 단단한 결정체를 보지 못했다. 그가 보는 것은 회색빛 안개 속에 흩어진 미세한 가루들뿐이었다.
"아직도 남아 있구나."
임일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그의 영혼의 손가락이 안개 속을 휘저었다. 가루들이 반응했다. 미약하게나마 움직였다. 그 움직임 속에 아직도 희미한 저항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실소했다. 저항이라니. 이미 몸은 완전히 길들여졌고, 정신은 산산조각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세한 가루들조차 여전히 '육설기'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었는지, 그 본질을 놓지 않으려는 발버둥.
"고집스럽군."
임일은 더욱 깊이 침투했다. 그의 의식이 육설기의 정신 세계 전반을 뒤덮었다. 마치 거대한 손이 모래성을 움켜쥐듯, 그는 그 가루들을 한곳에 모았다. 모여든 가루들은 희미하게 빛났다. 그것들은 여전히 서로를 향해 달라붙으려 했다. 다시 한 덩어리가 되려고, 다시 한 존재가 되려고.
임일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무(無)가 되어라."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혼의 목소리가 육설기의 정신 세계 전체를 진동시켰다. 가루들이 떨렸다. 그 떨림 속에서도 뭉치려는 본능이 꿈틀거렸다.
임일은 자신의 의지를 더욱 강하게 주입했다. 그의 의식이 거대한 맷돌처럼 변했다. 그는 그 맷돌을 돌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러나 무자비하게. 가루들은 맷돌 사이에서 더 잘게 부서졌다. 한때 감정이었던 것, 한때 기억이었던 것, 한때 자아였던 것이 모두 갈려나갔다.
육설기의 몸이 떨렸다. 그녀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눈은 허공을 응시했지만, 그 눈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신음조차 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신음하려면 감각이 필요했고, 감각이 있으려면 자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자아는 이미 사라져 가고 있었다.
임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맷돌을 더 빠르게 돌렸다. 가루들은 더욱 미세해졌다. 이제 그것들은 촉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안개였던 정신 세계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걷히고, 텅 빈 하얀 공간이 드러났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임일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아주 미약한,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한 '무언가'가 아직도 그 공간 한가운데 떠돌고 있었다. 그것은 육설기의 본질이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 그 무엇으로도 완전히 지울 수 없는, 그녀가 '육설기'라는 것을 증명하는 최후의 파편.
"아직도 버티는가."
임일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 지점까지 오는 데 꽤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다. 육설기는 단순한 검선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도의 괴수였다. 그녀의 정신은 오랜 수련을 통해 단련되었고, 그녀의 의지는 수많은 시련을 견뎌내며 강해졌다. 그 강인함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마지막 한 조각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임일에게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내심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더욱 응축했다. 그의 의식이 하나의 바늘처럼 가늘고 날카로워졌다. 그는 그 바늘로 그 마지막 파편을 찔렀다. 파편이 떨렸다. 저항했다. 그러나 그 저항은 이미 형체조차 없었다.
임일은 바늘을 돌렸다. 파편이 갈라졌다. 균열이 생기고, 그 균열을 따라 파편이 부서졌다. 부서진 조각들은 다시 가루가 되었고, 그 가루들은 임일의 의식 속에서 서서히 증발했다.
육설기의 눈이 완전히 흐려졌다. 그녀의 표정에서 모든 긴장이 사라졌다. 입술이 살짝 벌어졌고, 턱이 축 처졌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임일은 마지막으로 한 번 훑었다. 그의 의식이 육설기의 정신 세계 전체를 스캔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보는 것은 완벽한 텅 빈 공간뿐이었다. 그 안에는 아무 감정도, 아무 기억도, 아무 의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갓 태어난 아기의 정신처럼, 아무것도 쓰여지지 않은 백지(白紙) 그 자체였다.
"됐다."
임일은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는 육설기의 정신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현실로 돌아온 그의 눈앞에는, 바닥에 축 늘어진 육설기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과거의 육설기는 사라졌다. 이 자리에는 단지 빈 껍데기만이 남아 있었다.
임일은 그녀의 턱을 집어 올렸다. 그녀의 눈이 그의 눈을 마주했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한때 그 눈동자 속에 살아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 빈 눈이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임일은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부드러웠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는 차가운 만족감이 스며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완벽한 시작이로구나."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숨 쉬는 것조차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것처럼, 그녀의 호흡은 불규칙하고 얕았다.
임일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육설기. 청운문의 천재 검선. 정도의 괴수. 그 모든 것이 이제는 없었다. 이제 그녀는 단지 비어 있는 그릇이었다. 그가 무엇을 부어넣느냐에 따라, 그녀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쉬어라."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그녀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임일은 그녀를 받아 안았다. 그녀의 몸은 가벼웠다. 마치 모든 무게를 잃은 것처럼, 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조용히 숨을 쉬었다.
임일은 그녀를 안고 일어섰다. 그는 방 한가운데 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그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그녀의 얼굴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녀는 잠든 아기처럼 평화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 속에는 과거의 어떤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임일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육설기와 이제 막 태어난 육설기. 그는 그 차이를 만끽했다. 그녀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녀가 어떤 존재가 될 것인지. 그 모든 것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겠군."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부드러움 속에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네가 무엇을 채울지 정해야지."
임일은 그녀의 옆에 앉았다. 그는 그녀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녀는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깨어나지 않았다. 깨어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비어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깨어날 의지조차 없었다.
임일은 생각에 잠겼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육설기를 완전히 '백지'로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단계였다. 그리고 그는 그 단계를 완벽히 성공시켰다. 이제 두 번째 단계가 남아 있었다. 그 '백지'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달이 떠 있었다. 조용하고, 차갑고, 고요했다. 그 달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 잠든 육설기의 얼굴을 비추었다.
임일은 다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에 결의가 번뜩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곧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방 안에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러나 육설기는 듣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