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설앵의 손가락이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온 문자였다. '회사가 망했어. 아버지가 오늘 아침에 투신하셨단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서울 강남의 펜트하우스, 명문 사립고등학교, 줄곧 타고난 금수저라는 말을 들어왔던 그녀에게 이 순간은 마치 꿈 같았다.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투신 소식, 어머니의 울먹이는 목소리, 그리고 은행에서 온 압류 통보는 모두 너무나 생생했다.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아버지의 명성과 빚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발길을 끊었다. 임설앵은 검은 상복을 입고 홀로 관 앞에 서서 빈 장례식장을 바라보았다. 그때,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들이 들어왔다.
"임설앵 씨?" 앞장선 남자는 서너 살쯤 많아 보였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는 야마다 류이치라고 합니다. 당신 아버지와 거래가 있었던 사람이죠."
야마다. 그 이름에 임설앵의 등골이 오싹했다. 아버지가 한때 오사카의 흑인 조직과 거래했다는 소문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단지 정상적인 기업인이라며 일축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당신 아버지가 우리 조직에서 빌린 돈이 있습니다. 오늘 안으로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야마다는 서류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임설앵이 받아 펼쳐 보았다. 액수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가 평생을 일해도 갚을 수 없을 거금이었다.
"이건... 말도 안 돼요. 아버지가 그런 돈을 빌리지 않으셨어요."
"계약서가 있습니다. 도장도 있고요." 야마다의 목소리는 냉랭했다. "당신 아버지의 도장입니다. 부인하실 겁니까?"
임설앵은 그 계약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도장이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몰래 빌린 돈이었을 것이다.
"저는 이 돈을 갚을 수 없어요."
"갚을 방법이 있습니다." 야마다의 눈빛이 음흉하게 빛났다. "당신은 젊고 예쁩니다. 우리 오사카에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몸으로 빚을 갚는 거죠."
"무슨 말씀을..." 임설앵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니면 당신의 여동생을 생각해 보시죠. 아직 고등학생이지요?" 야마다는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어린 애들이 더 잘 팔린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경험은 없지만, 그게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고요."
"제발, 여동생은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임설앵의 목소리가 떨렸다. "제가... 제가 하겠습니다."
야마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류 하나를 더 내밀었다. "서명하십시오. 3년 계약입니다. 정해진 서비스를 성실히 이행하시면 빚은 점차 줄어들 것입니다."
임설앵은 떨리는 손으로 펜을 집어 들었다. 서류에는 그녀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고객 응대 서비스', '개인 위생 관리', '정기 건강 검진', 그 외에도 더 구체적인 항목들이 있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이름 석 자를 적어 넣었다.
그날 밤, 임설앵은 비행기에 실려 오사카로 향했다. 야마다의 부하들이 그녀를 감시했다. 도착한 곳은 도비타 신치(飛田新地)라는 지역이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거리,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자들, 그리고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의 그림자. 임설앵은 그 광경을 보며 자신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깨달았다.
그녀를 안내한 곳은 '벚꽃'이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인공적인 꽃향기와 담배 냄새가 뒤섞였다. 한 중년 여자가 그녀를 맞았다.
"네가 새로 온 설앵이지?" 여자는 마흔 살쯤 되어 보였다.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지만 눈매는 날카로웠다. "나는 사토라고 해. 이 가게를 관리하는 사람이야. 앞으로 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따라와."
임설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사토를 따라 좁은 복도를 지나 방 하나에 도착했다. 방 안에는 침대와 작은 테이블, 그리고 벽걸이 거울이 있었다.
"여기가 네 방이야. 하루에 손님을 몇 명 받을지는 내가 정할게. 기본적으로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영업이야. 그 외 시간에는 교육을 받아야 해."
"교육요?"
"응, 기본적인 서비스 교육." 사토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네가 명문가 출신이라고 들었어. 아마 아무것도 모를 거야. 하지만 여기서 배워야 해. 어떻게 웃고,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손님을 응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사토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임설앵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어떻게 몸을 다루는지. 손님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해. 모든 손님이 똑같은 걸 원하지 않아. 너는 그 걸 다 맞춰줘야 해. 이해하겠어?"
임설앵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 손님들 앞에 설 때는 이 옷을 입어야 해." 사토는 작은 상자를 건넸다. 그 안에는 끈 하나 달린 속옷과 투명한 소재의 가운이 들어 있었다. 임설앵은 그 옷을 보며 손이 떨렸다.
"빨리 갈아입어. 오늘 첫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 사토는 무심하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임설앵은 홀로 남았다.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명문가의 딸, 아버지의 자랑이었던 그녀가 이제 이런 일을 하게 되다니.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닦지 않았다. 그녀는 옷을 벗고 그 천 조각 같은 옷을 입었다. 천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차가웠다.
문이 열리고 사토가 다시 들어왔다. "됐어, 나와."
임설앵은 사토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 가게 앞에 도착하자 유리문 너머로 거리가 보였다. 여러 남자들이 지나다니며 가게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그녀의 몸을 더듬는 것 같았다.
"첫 손님이야." 사토가 턱짓으로 가리켰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은 흑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임설앵을 보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잭이라고 해. 단골이야." 사토가 임설앵의 귀에 속삭였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줘. 말썽 부리지 말고."
잭이 다가왔다. 그는 임설앵의 턱을 집어 올리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한국인인가? 귀엽군." 그의 목소리는 굵고 거칠었다.
임설앵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굳은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자, 방으로 가자." 잭이 그녀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의 손아귀가 강했다.
그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잭이 문을 닫았다. 임설앵은 벽에 기대어 섰다. 잭이 그녀에게 다가와 몸을 밀착시켰다.
"첫 번째야?" 잭이 물었다.
임설앵은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가 잘 가르쳐 주지." 잭이 그녀의 가운을 벗겼다.
임설앵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산산조각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그녀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살아야 한다. 여동생을 지켜야 한다. 그녀가 버텨야 한다.
잭의 손길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임설앵은 몸을 굳게 하고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이 모든 것이 끝나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녀는 이곳에서 영원히 타락해 버릴까.
오사카의 밤은 깊어 갔고, 도비타 신치의 네온사인은 여전히 변함없이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