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연은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촛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문득 문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이내 가볍고 부드러운 노크 소리가 두 번 울렸다.
“사형.”
전령아의 목소리였다. 평연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일어나 문을 열었다.
“들어와.”
전령아가 방 안으로 들어서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이상한 빛이 감돌았지만, 표정은 무던히 평온했다. 평연이 그녀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준비는 다 되었느냐?”
“예. 이미 사형에게 약을 먹였습니다.”
전령아가 대답했다. 평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가로 걸어갔다. 복도는 고요했고, 멀리서 바람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 육설기가 머무는 별당으로 향했다.
별당의 문은 닫혀 있었다. 평연은 손을 들어 문을 밀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실내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나왔다. 육설기는 침상에 누워 있었고,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소리는 고르지 않았다. 평연이 다가가 침상 옆에 앉았다.
“사형.”
그는 부드럽게 불렀다. 육설기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눈동자는 맑았지만, 무언가에 홀린 듯한 몽롯함이 어려 있었다. 평연은 손을 내밀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피부는 차가웠다.
“오늘은 좀 어떤가?”
육설기가 고개를 저었다. “별일 아니다. 그저... 약간 피곤할 뿐이다.”
평연은 손을 거두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쉬어야지. 내가 옆에 있을게.”
그는 조용히 말하며 손을 육설기의 손목에 얹었다. 맥박은 평소보다 빠르고 불규칙했다. 평연은 마음속으로 만족감을 느꼈다. 최면의 효과가 점점 깊어지고 있었다. 육설기는 자신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평연이 불러일으키는 감각조차 그저 나른한 피로로 착각할 뿐이었다.
“사형, 생각나는 게 있나? 자네가 전에 말했던 그 검법 말이야.”
평연이 물었다. 육설기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어떤 검법?”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평연은 손가락으로 살며시 그녀의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편하게 쉬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느릿느릿했으며, 무언의 명령이 섞여 있었다. 육설기의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그녀는 저항할 힘도 없이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평연은 그녀의 깊은 잠을 확인한 뒤, 방 안에서 작은 향로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은은한 연기가 피어올랐고, 방 안은 기묘한 향기로 가득 찼다. 그는 육설기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제부터 네 몸은 내 명령에만 반응할 것이다. 네가 깨어 있을 때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겠지. 그러나 너의 다른 자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육설기의 호흡이 다시 거칠어졌다. 그녀의 몸이 살짝 떨리기 시작했다. 평연은 그것이 제2인격이 깨어나는 신호임을 알았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제... 일어나라.”
육설기의 눈이 갑자기 떠졌다. 그러나 그 눈동자는 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날카롭고 빛나는 눈빛이 평연을 응시했다. 평연은 그 시선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잘 왔다. 너는 나를 알고 있느냐?”
“물론이다. 너는 내 주인이다.” 목소리는 낮고도 매혹적이었다.
평연은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육설기는 침상에서 일어나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 움직임은 유려했고, 전혀 저항감이 없었다. 평연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오늘부터 너는 나를 섬길 것이다. 명령에 복종하고, 의심하지 마라. 네 몸과 마음은 모두 내 것이다.”
“명령대로.”
육설기가 대답했다. 평연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웃었다. “좋다. 이제... 네가 얼마나 민감해졌는지 확인해보자.”
그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살짝 스쳤다. 육설기의 몸이 움찔 떨리며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평연은 그 반응을 눈여겨보았다. 이전보다 훨씬 예민해졌다. 제2인격이 지배할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녀는 평소에는 전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더.”
평연이 명령했다. 육설기는 고개를 숙여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평연은 손을 빼내며 일어섰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너는 다시 잠들어라. 깨어나면 모든 것을 잊어라.”
육설기의 눈이 다시 흐려지더니, 그대로 쓰러져 잠에 빠졌다. 평연은 방 안을 정리하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 복도로 나오자 전령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진도는 80% 정도다. 앞으로 며칠만 더 하면 완벽해질 것이다.” 평연이 대답했다. 그의 눈에는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전령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형께서 명령하시면 언제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잘했다. 이제 가서 쉬어라.”
전령아가 돌아서서 사라졌다. 평연은 혼자 서서 별당을 바라보았다. 곧 모든 것이 완성될 것이다. 육설기는 완전히 그의 것이 될 것이고, 그녀의 천재라는 재능조차 그의 손아귀에 놓일 것이다. 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밤, 별당 안에서는 육설기의 가느다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녀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지만, 그 내면에는 두 개의 자아가 서로 뒤엉켜 있었다. 하나는 순수하고 지고한 검사였고, 다른 하나는 주인에게 복종하는 인형이었다. 평연의 최면은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고, 육설기는 그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점차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