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국경을 넘는 순간, 유웨는 모든 것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마차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은 낯설었고,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는 제국의 공주였다. 한때 온 백성이 그녀에게 고개 숙였으나, 지금은 적국의 손에 인질로 잡혀 연방 수도성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주님, 곧 도착합니다.”
곁에 앉은 여기사 시니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유웨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마음은 천 근 무게였다. 마차는 번화한 대로를 지나 호화로운 건물들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연방의 수도성은 제국의 그것과는 다른 화려함을 자랑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거대한 석상과 분수가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 번화함 속에는 어딘가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저것 봐.”
시니가 창밖을 가리켰다. 유웨는 그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거리 한복판, 벌거벗은 여자가 개처럼 끌려다니고 있었다. 목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고, 피부는 상처와 흙투성이였다. 주변 사람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지나가거나 비웃음을 터뜨렸다. 여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다만 숨을 헐떡이며 무거운 쇠사슬에 이끌려 바닥을 긁고 있었다.
유웨의 입술이 떨렸다.
“저게…… 노예인가?”
“연방은 노예 제도를 합법화했습니다. 공주님, 조심하셔야 합니다. 우리도 이곳에서는 예외가 아닙니다.”
시니의 말은 차분했지만, 그 눈동자에는 분노가 타오르고 있었다. 유웨는 손에 쥔 드레스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 여자가 자신의 미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녀는 제국의 공주다. 협상의 카드다. 하지만 그 생각은 불안과 공포를 잠재우기에는 너무나 빈약했다.
마차는 마침내 호화 호텔 앞에 멈췄다.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물은 황금빛 장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문지기들이 허리를 굽혀 그들을 맞이했지만, 그 인사에는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유웨와 시니는 안내를 받아 호텔 안으로 들어섰다.
로비는 찬란했다. 수정 샹들리에가 빛을 반사하며 천장을 수놓았고, 비단 소파와 호화 카펫이 발 밑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함 속에서 유웨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낮고 음탕한 웃음소리, 그리고 숨을 참는 신음. 그녀는 고개를 돌려 로비 한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반쯤 벗은 노예 소녀들이 무릎을 꿇고 술잔을 들고 있었다. 어떤 귀족들은 그들의 몸을 더듬으며 웃고 있었다.
“이런……”
시니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주먹이 바짝 쥐어졌다. 유웨는 자신도 모르게 시니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녀의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움직이십시오, 공주님. 여기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호텔 직원이 그들을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7층, 그들의 방은 복도 끝에 있었다. 넓고 호화로운 스위트룸이었지만, 창문에는 철창이 가려져 있었다. 문밖에는 무장한 경비병들이 서 있었다. 연금, 그 단어가 유웨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니가 방 안을 살피며 창가로 다가갔다. 그녀는 철창 사이로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거리에는 노예 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알몸의 남녀를 평가하며 손가락질했다. 아이들조차 그 광경을 구경하며 웃고 있었다. 연방의 번화함은 그들의 타락을 감추고 있었다.
“공주님, 이곳은…… 악몽입니다.”
시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유웨는 그녀의 뒤에 서서 같은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흘리지는 않았다. 공주로서의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절망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무엇이 될지,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시니가 돌아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확고한 결의가 서 있었다.
“반드시 벗어나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러나 그 말이 무색하게, 저녁이 되자 호텔 관리인이 찾아왔다. 그는 공손한 태도로 작은 카드를 내밀었다.
“연방 의회의 명령입니다. 내일부터 공주님은 공식 석상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그에 맞는 복장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유웨가 카드를 받아 들었다. 거기에는 일정과 함께 ‘품위 유지’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그녀는 알았다. 그 품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주가 아니라, 연방의 정치적 도구였다. 노예처럼 다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녀의 가슴을 짓눌렀다.
시니는 방문에 귀를 기울였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소리, 낯선 언어의 속삭임. 그 안에서 그녀는 어떤 위협도 감지했다. 두 사람은 그날 밤, 침대에 나란히 누워 말없이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잠들지 못했다.
연방의 달빛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유웨와 시니의 운명은 서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