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자주색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던 날들, 그 영광은 이제 먼지처럼 흩어졌다. 유월 공주는 호화 호텔의 창가에 서서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연방 수도성의 거리는 끝없이 이어진 네온사인과 사람들로 가득했다. 화려한 마차들이 질주하고, 거리의 상점들은 각양각색의 간판을 내걸고 손님을 유혹했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어딘가 불안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
“공주님, 차가 식지 않게 여기 두었습니다.”
사니가 은쟁반에 찻잔을 받쳐 들고 다가왔다. 그녀의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방에 들어온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이미 두 차례나 호텔 직원이 ‘안내’를 핑계로 방 안을 샅샅이 살폈다. 모든 서랍과 옷장, 심지어 침대 밑까지. 그들은 마치 숨겨진 무기를 찾기라도 하듯 행동했다.
“두지 마. 나는 마실 기분이 아니야.”
유월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창틀을 감쌌다. 한때 그녀의 손은 비단과 보석만을 만졌지만, 지금은 이 냉철한 금속을 더듬고 있었다. 제국이 멸망하고, 그녀는 인질로 이곳에 끌려왔다. 말로는 ‘외교 사절’이라는 명목이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감금된 몸이었다.
“저 아래 사람들, 저들은 자유롭게 거리를 걸어다녀요. 하지만 우리는요? 이 방이 감옥이에요.”
유월의 목소리에 분노와 절망이 뒤섞였다. 그녀는 창문을 열고 싶었지만, 열리지 않았다. 모든 창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호텔은 겉으로는 호화로웠지만, 그 안은 철통 같았다.
사니는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녀는 유월보다 두 살 많았지만,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며 그녀의 시종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단순한 시종이 아니라 유일한 동반자였다.
“공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는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니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녀는 유월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 손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유월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참고 있었다.
“사니, 나는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할지 알고 있어. 그들은 나를 모욕하고, 나를 괴롭힐 거야. 나는 제국의 마지막 자존심일 뿐이야.”
“공주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우리는 아직 싸울 수 있습니다.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사니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제국의 함락 소식은 이미 며칠 전에 들렸다. 황제와 황후는 전사했고, 황실의 모든 재산은 몰수되었다. 유월과 사니는 운 좋게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또는, ‘운 좋게’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거리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유월과 사니는 동시에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아래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 무리의 노예들이 줄지어 끌려가고 있었다. 그들의 손과 발은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목에는 번호표가 걸려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아이들과 노인들도 있었고, 젊은 여성들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초췌한 표정이었다.
“저게 뭐야?”
유월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본 적이 없었다. 노예, 그 단어는 제국에서는 금기시되는 단어였다. 하지만 지금, 그 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노예 시장이에요. 연방에서는 노예 매매가 합법입니다. 그들은 전쟁 포로나 채무자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서 경매에 부칩니다.”
사니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녀는 이미 연방에 도착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그것은 상상을 초월했다. 유월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어? 사람을 짐승처럼 다루다니!”
유월의 주먹이 창턱을 세게 내리쳤다. 분노가 그녀의 가슴을 꽉 채웠다. 그녀는 한때 제국의 공주였다. 수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조차 보호하지 못하는 몸이었다.
“공주님, 진정하십시오. 지금 우리는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의 법과 질서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아남을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니는 유월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녀를 창가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녀는 유월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는 당신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설령 이 몸이 부서져도, 저는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이 지옥을 헤쳐 나갑시다.”
유월은 사니의 눈에서 빛나는 결의를 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에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그 불꽃은 약했지만,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고마워, 사니. 너만 있으면 나는 견딜 수 있어.”
유월이 사니의 손을 꼭 쥐었다. 그들의 손은 서로를 감싸며, 이 혼란한 세계에서 유일한 온기가 되었다. 하지만 유월은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삶은 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잔혹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녀는 곧, 그 잔혹함을 직접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