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재 세계, 끝없이 펼쳐진 폐허 위에 핏빛 노을이 드리워져 있었다.
요우는 피 묻은 손을 닦으며 부서진 돌더미 사이를 걸었다. 이 세계는 이미 며칠째 전란에 휩싸여 있었다. 목진의 세력이 닥치는 대로 약탈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는 본래 이 세계의 일에 간섭할 의도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이 혼란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때, 희미한 신음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요우의 발걸음이 멈췄다. 귀를 기울여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무너진 궁전 잔해 아래, 옅은 푸른색 옷자락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그는 걸음을 재촉해 다가가 거대한 석주를 밀어 젖혔다.
그 아래에 있던 여인은 얼굴이 창백했고, 흰 옷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소박하고 우아한 긴 치마가 여기저기 찢겨져 상처가 드러났고, 그 깊은 상처는 아직도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그럼에도 숨길 수 없는 단아하고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괜찮소?” 요우가 그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부드럽게 물었다.
여인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 눈동자에는 고통과 경계심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요우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저는 청연정이라 합니다. 이 은혜를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또렷했다.
요우는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맥을 짚었다. 내상이 심각했고, 기운이 흩어져 가고 있었다. 이 상태로 두면 죽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먼저 상처를 치료하는 게 낫겠소.”
그가 기운을 손바닥에 모아 그녀의 등에 전하자, 따뜻한 기운이 천천히 그녀의 경맥 속으로 스며들었다. 청연정은 전신이 떨리며 감각을 되찾는 기분을 느꼈다. 흩어졌던 기운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내상도 점차 안정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안심하는 것도 잠시, 깊은 절규가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여기 숨었구나!”
몇 명의 무사가 무너진 담장 너머에서 뛰어나왔다. 그들 각자의 손에는 날카로운 무기가 들려 있었고, 몸에서는 사특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청연정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그들은... 목진이 보낸 자들입니다. 제 아버지가 그들에게 붙잡혔습니다. 저는 도망치다가 그들에게 발각되었습니다.” 그녀가 급하게 말했다.
요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무사들을 훑어보았다. 무위는 수련자 정도로, 그에게는 별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청연정 앞으로 섰다.
“조금만 쉬십시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다음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무사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거꾸러졌다. 요우의 신형이 그들 사이를 오가며 기운이 번개처럼 휘둘렀다. 일련의 빠른 동작이 끝난 후, 여섯 명의 무사는 모두 땅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했다.
청연정은 믿기지 않는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의 무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녀는 힘겹게 몸을 일으켜 요우에게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했다.
“은인의 구명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만약 은인이 바라신다면...”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몸과 마음을 다해 은인을 섬기겠습니다.”
요우는 뜻밖이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청연정의 눈에는 결연함과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세계의 아가씨들은 구하면 몸으로 은혜를 갚으려 하는구나.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나도 사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나도 거절하지 않겠소.”
그는 청연정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본능적으로 그의 목을 붙잡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자, 그녀의 볼이 순간 불타올랐다.
요우는 그녀를 데리고 곧바로 폐허를 떠나 한적한 산속 작은 마을로 향했다. 거기서 간단히 집 한 채를 빌려 청연정의 상처를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저녁때가 되자, 상처는 거의 다 나았다.
달빛이 창틀에 비치고, 은은한 등잔불이 방 안 가득 따뜻한 빛을 드리웠다. 청연정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고, 하늘하늘한 겉옷은 이미 벗어둔 채 얇은 속옷만 걸친 모습이 우아하면서도 약간은 쓸쓸해 보였다.
“은인께서 오셨군요.” 그녀가 고개를 들어 온화한 웃음을 지었다.
요우가 문지방을 넘어 들어와 그녀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청연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직 은인의 존함을 묻지 못했습니다.”
“요우.”
“요우 님...”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이 이름을 한 번 불렀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눈을 깊게 뜨고 요우를 바라보았다. “오늘의 구명의 은혜, 연정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일어나 요우에게 다가가 두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은 부드러우면서도 차가웠다.
“연정, 별로 할 말 없소. 다만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나는 반드시 당신을 아껴줄 것이오.” 요우가 부드럽게 말했다.
청연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체를 숙여 그의 가슴에 기대었다. 그녀의 몸은 은은한 향기를 풍겼다. 요우는 한 손으로 그녀의 가는 허리를 감싸 안았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뺨을 살며시 어루만졌다.
두 사람의 입술이 겹쳐졌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청연정은 온몸이 떨렸지만, 몸을 웅크리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녀는 두 팔을 들어 요우의 목을 감싸 안으며 이 깊은 키스에 응답했다.
옷자락이 하나둘 벗겨져 바닥에 흩어졌다. 얇은 달빛이 두 사람의 뒤엉킨 그림자를 비추었다. 침대 위에서, 요우는 조심스럽게 그녀를 밑으로 내려놓았다. 그의 손길은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었고, 모든 동작에는 숨길 수 없는 정성이 담겨 있었다.
청연정은 눈을 감고 이 모든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약간 아팠지만, 곧 말로 다 할 수 없는 쾌감이 몸을 휘감았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가느다란 신음을 흘렸고, 요우가 힘을 더할 때마다 그 소리는 더욱 짙어졌다.
밤은 깊어 갔다. 마치 모든 것이 이 순간을 위해 멈춘 듯했다. 뜨거운 숨결과 뒤엉킨 몸짓, 낮은 신음소리가 안개처럼 방 안 가득 퍼져 나갔다.
드디어 파도가 가라앉았다. 청연정은 지친 채 요우의 가슴에 평온히 누워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직 홍조가 남아 있었고, 눈에는 만족감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요우 님...”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저... 아버지를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시오.” 요우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쉬어야 할 것 같소.”
청연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따뜻함을 나누었다. 잠시 후, 그녀는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다시 폐허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렵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옆에 있는 그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며 모든 고난과 역경을 한 걸음 한 걸음 헤쳐 나갔다.
“요우 님...” 그녀가 꿈속에서 낮은 소리로 불렀다. “요우 님... 저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꿈속의 요우는 뒤돌아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미소는 태양처럼 따뜻했다. 청연정은 마음이 확 가라앉았다. 이 순간, 그녀는 모든 것을 잊었다. 아버지도, 목진도, 모든 책임과 의무도. 오직 눈앞의 이 남자만이 남았다.
꿈에서 깬 후에도, 그녀의 입가에는 아직 미소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요우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자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의 마음은 갑자기 착 가라앉았다.
나는... 간통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자신에게 물었다.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목진에게 시집가기로 약속한 신부인데... 지금은 다른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마음에는 죄책감이 없었다. 오히려 일종의 해방감이 가득했다. 목진의 세계는 그녀에게 질식할 듯한 압박을 주었다. 반면, 요우의 품은 그녀에게 안전함과 따뜻함을 주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요우의 이마를 살며시 스쳤다. 이 순간, 그녀는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목진을 배신하더라도, 이 남자를 절대 놓지 않으리라고.
요우가 눈을 떴다. 그는 청연정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고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은 꿈 꿨어요?”
청연정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숙여 그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했다.
“은인 덕분에, 아주 좋은 꿈을 꿨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는 전에 없던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